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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자전소설)
-한강-
<0>
내 어머니는 다섯 아이를 낳았다. 그중 나는 네번째 태어난 아이였다. 지금 나에게는 오빠와 남동생이 하나씩 있다. 어머니가 낳은 첫번째와 두번째 아이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첫아이가 딸이었고 이듬해 태어난 아이는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임신 여덟 달과 일곱 달째에 뜻하지 않은 진통과 함께 그 아기들은 이 세상의 빛을 보았다. 그무렵 어머니는 벽촌 초등학교의 사택에 살았다. 전화도 없을 때였다. 교사로 근무하던 아버지를 부르러 보낼 만한 사람도 없었고 당신의 발로 걸어간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산월을 두 달 남짓 앞뒀을 때니 준비가 없었다. 어머니는 진통이 잠시 가라앉을 때마다 무명천을 오리고 꿰매 태어날 아이의 배내옷을 지었다고 했다. 때때로 나는, 어둑신한 아랫목에 홀로 구부정하게 앉아 식은땀을 흘리는 젊은 여자의 모습을 그려본다. 입술을 악문 채 한땀 한땀 바늘을 움직이는 그 여자의 목덜미는 파묻히듯 깊숙이 수그려져 있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는 바느질 가위로 탯줄을 끊었다. 갓 지은 배내옷을 아이에게 입힌 뒤 이불을 꼭꼭 여며 쌌다. 갓난아이는 십중팔구 못생겼다는데, 여자아이의 얼굴은 달떡같이 예뻤다.
그날따라 아버지는 귀가가 늦었다. 아랫목에 뉘어놓은 아이가 자정녘이 되어 싸늘하게 식어갈 때까지, 어머니는 터질 듯 불어오는 젖가슴을 문지르며 신음을 참고 있었다.
그 두 아이가 살았다면 넌 없었을지도 모르지.
아홉 살 무렵, 함께 살던 막내고모가 놀림삼아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이상하게도 그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엉뚱하게, 어쩌면 내가 그 얼굴 흰 계집아이의 환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하나>
지난 세밑의 저녁 무렵, 나는 털로 짠 외투를 여미며 회기 역전의 황량한 거리를 걸어올라오고 있었다. 늘 걷던 거리였지만 무엇인가 전날과 달라져 있다고 나는 느꼈다.
무엇이 달라졌나?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만 내 오감이 극도로 고양되었기 때문에 사물들이 낯설게 보이는 것 같았다. 모든 신경들의 촉수가 기묘하리만치 날카롭고 예민하게 벼려져 있었다.
그날 밤 백건우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를 듣던 중 나는 그때까지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흥분 상태에 빠졌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불안도 아니고 격정도 아닌, 마음이 아니라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동요하는 듯한 낯설고 생생한 감정이었다.
다음날부터 일 주일 남짓 나는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여러 달 동안 괜찮았던 위장이 다시 고통스러워졌다. 한 가지 특별한 점은 위가 괴로워질 때마다 동반되곤 하던 안두통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신 저항할 수 없는 잠이 몰려들었다. 억지로 밥을 떠넘기고 나면 바로 쓰러지듯 이부자리에 드러눕곤 했다.
연말에는 그와 함께 이박삼일간의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었다. 그 무렵 잡고 있었던, 열여섯 살에 입산한 사미니가 등장하는 소설을 위해 수덕사에 가기로 한 것이다. 수덕사에는 그의 대학선배였던 비구니 스님이 있다고 했다.
못 가겠어.
그는 놀란 듯했다.
왜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 다닐 자신이 없어.
내내 건강하더니, 왜 그러지?
염려를 숨기지 못한 얼굴로 그는 문턱에 서 있었다.
모르겠어.
이불 속에 웅크려 앉은 채 나는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겠어…… 내가 요즘 대체 왜 이러는지.
마치 바닥에서 무엇인가가 몸뚱이를 끌어당기는 듯해 나는 다시 상체를 뉘었다. 밑없는 잠이 거기 칠흑 같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난 새벽은 흐렸고 몹시 기온이 떨어져 있었다. 밤 사이의 건조한 공기를 바꾸려고 유리창을 열어보았으나, 창틀의 습기가 얼어붙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간밤의 꿈을 생각해냈다.
나는 어두운 한옥 부엌에 서 있었다. 가느다란 빛이 새어나오는 정지문을 삐걱 소리와 함께 열어젖히자 바깥은 청냉한 겨울 햇빛으로 환했다. 무릎을 굽혀 들어올려야 할 만큼 높은 문턱을 건너나오자, 마른 풀들이 돋은 흙길 아래는 바로 강기슭이었다. 강이라기보다는 호수처럼 느껴지는, 마치 거울처럼 고요한 수면에 건너편 기슭의 먹빛 산이 비쳐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곳은 내가 처음 가본 장소가 아니었다.
이따금 나는 빛의 꿈을 꾼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찬연한 햇빛이 내리비치는 강의 꿈이다. 그 기슭쯤의 장소를 나는 기억한다. 대학 시절에만도 두 번, 그 뒤로도 적어도 두 번은 그곳을 보았다. 그 지형과 수면의 느낌, 온몸이 눈부신 빛으로 적셔진 뒤 마침내 빛의 알갱이로 흩어지는 듯한 감각이 그때마다 선명했다.
다만 이번의 꿈은 어두운 부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강기슭에서 두 마리의 늑대를 보았다는 것이 특별한 점이었다. 진돗개와 닮았으나 몸집이 훨씬 큰 짐승들이었다. 몸은 황금빛 털로 덮였고, 마치 사람의 그것처럼 잘생긴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앞쪽에 앉아 있는 녀석의 얼굴은 사려깊고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그 뒤쪽에 서 있는 녀석은 좀더 유순해 보였으며, 비슷하게 신중하고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섣불리 달아나면 그들을 자극할 것 같아, 나는 천천히 그들을 피해 걸어갔다. 어느결에 다가온 한 녀석의 콧등이 내 맨종아리를 부비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모퉁이를 돌아나갔다.
마른 풀들을 밟으며 마침내 그 집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나아갔을 때에야 뒤를 돌아보았다.
어쩐 일이었을까. 나는 그 늑대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종아리에 코를 부볐던 녀석이 모퉁이를 뒤따라 돌아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리며 나는 간절히 서 있었다. 청명한 겨울 아침이었다. 찬연한 빛을 머금은 강 가운데 비친 산이 수묵화처럼 고요했다.
<둘>
그가-그녀가-나에게 온 것을 나는 새해 첫날의 새벽에 알았다. 와이투케이에 대한 염려 때문에 나라 안팎이 떠들썩하던 구십구년의 마지막 날, 나는 만일의 경우 사용해야 할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넣을 몇 개의 부탄 가스를 사들고 오는 길에 약국에 들렀다.
눈을 뜨자 탁상시계의 야광 바늘은 새벽 네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안방을 나와 부엌의 불을 켰다. 켜졌다. 뒷베란다의 불투명한 안쪽 창문을 열자, 멀리 이문동 어귀까지 드문드문 밝혀진 불빛들과 교회의 붉은 십자가들이 보였다. 나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당겨보았다. 당겨졌다. 싱크대의 수도꼭지도 틀어보았다. 변함없는 수압으로 물이 쏟아져나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날 약국에서 산 시약을 들고 욕실에 들어갔던 나는 얼마 뒤 뒷베란다의 창문 앞에 돌아와섰다. 딱 꼬집어 단정할 수 없는 감정들이 그 적막한 불빛들 위로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잠시였던 것 같은데, 정신이 들어보니 사십 분 가까이 시계바늘이 옮겨가 있었다.
마침내 안방의 불을 켜고 들어가 잠든 그의 머리맡에 앉은 것은 여섯시가 다 되었을 때였다.
지금, 몇시야?
여섯시.
별일 없지?
응.
다시 잠들려고 하는 그에게 나는 그날 새벽 일어난 일을 말했다. 그는 잠시 더 눈을 감고 있다가 번쩍 몸을 일으켜 앉았다. 정작 기다려왔던 쪽은 그였는데, 선뜻 기뻐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 어두운 창문 앞에서 내 안에 스쳐갔던 마음들을, 그 수분 동안 그도 겪고 있었을까.
잘 키워보자.
잠이 깨끗이 달아난 눈으로 그는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웃었다.
<셋>
왜 그 새벽 나에게는, '내 아이'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걸까. 본능처럼 나는 느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이 세상을 떠돌아왔던 생명의 에너지가 내 몸속에 자리를 잡은 거라고. 그는-그녀는-'나'의 것이 아니라고. 그러자 기쁨이라기보다는 맑은 축복감이 정수리를 고요히 적셔왔다. 무릎을 꿇은 채 차가운 시냇물의 세례를 받은 것 같았다.
<넷>
나는 초능력자가 되었다.
이따금 영화나 만화에 나오지 않는가. 외계인이나 마법사, 도깨비 따위가 평범한 주인공에게 초능력을 주고 사라진다. 갑자기 주인공은 투시력이 생기거나 힘이 세어지거나, 원할 때마다 투명인간이 되어버리거나 하여 스스로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나에게는 투시력도 생기지 않았고 특별히 힘이 세어지지도 않았지만, 대신 현미경 같은 후각과 미각을 얻었다. 본래 예민한 편이었던 청각도 더욱 날카로워졌다.
지하철에 오를 때마다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누구에게서 어떤 스킨 냄새가 나는지, 어느 노인에게서 살비늘 냄새가 풍기는지, 잰 걸음으로 지나가는 남자에게서 간밤의 덜 깬 술냄새가 날아오는 것까지를 나는 제법 먼 거리에서 감별해낼 수 있었다. 온갖 로션과 향수와 퀴퀴한 옷 냄새가 세분되어, 또렷하게 감각되었다. 인파가 붐비는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너무 강한 자극들 때문에 혼돈스럽기까지 했다.
후각이 예민한 동물들에게는 세계가 이런 곳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던 세계란 정작 한정된 부분일 뿐이었던 건가.
매연과 나쁜 공기에도 나는 민감해졌다. 자동차가 지나가고 나면 배기 가스 때문에 코와 입을 막아야 했다. 산소가 희박한 지하 상가에서는 숨을 쉬기 어려워 걸음을 빨리했다. 식당에 들어가 찌개를 한 숟가락 떠먹으면 얼마나 화학 조미료를 썼는지 감이 왔고, 많이 쓴 경우에는 구역질이 났다. 대형 트럭이 지나가며 내는 굉음, 엔진 소리와 시끄러운 음악 소리를 견디기 어려워졌다. 텔레비전의 볼륨을 조금만 크게 해도 정신이 흐트러졌다.
시간이 좀더 흐른 뒤에야 나는 내 초능력의 비밀을 알았다. 새끼를 밴 짐승들이 유난스럽게 난폭하고 예민해지는 까닭을. 자신과 새끼를 모든 종류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감각들이 벼려지는, 원시 이래의 까마득한 본능이라는 것을.
<다섯>
그러던 어느 날, 오후의 햇빛 속에서, 마치 꿈인 듯 나는 문득 보았다.
한 어린 여자아이가 울고 있다.
네 살이나 되었을까. 그을린 얼굴에 먼지 낀 멜빵 치마를 입은 아이는 거칠게 눈을 비벼댄다.
낯선 사람들이 아이를 흘끔흘끔 내려다보며 지나간다. 어쩌다가 자신이 이 삼거리까지 왔는지 아이는 모른다. 열린 대문을 나서서 홀린 듯이 봄날의 햇살을 따라 골목을 걸어나왔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굉음을 내며 버스가 지나갔고 모래먼지가 얼굴을 덮었다.
그래서 아이는 울고 있다. 처음에는 악을 쓰며 울다가, 목이 쉰 이제는 쪼그려 앉아 빨갛게 일어난 눈두덩을 문지르며 흐느끼고 있다. 아이는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공포가 믿어지지 않아 아이는 운다. 순간마다 자신의 고통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운다. 아무리 울어도 그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아이는 운다.
나는 보았다. 아이의 눈앞으로 지나가는 버스들을, 낯선 사람들을, 발치에 깨어진 보도블럭을. 귓전에 이명처럼 웅웅거리는 소리…… 재앙 같은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여섯>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사십대 중반의 의사는 초음파 검사실로 나를 데려갔다. 희고 차가운 유액이 내 아랫배에 발라졌다. 뭉툭한 플라스틱 기계가 피부를 가볍게 눌렀다.
이게 자궁이고…… 여기, 이 조그맣게 보이는 게 양숩니다. 아직 아이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아요. 삼 주 있다가 오시면 보일 겁니다. 그땐 심장 박동 소리도 들을 수 있어요.
흑백 모니터에 검게 나타난 양수는 사분의 일 컵도 되지 않아 보였다. 저 한 움큼의 양수를 만드느라고 나는 그토록 졸립고, 소화가 안 되고, 금세 피로를 탔던 건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갔던 출판사에서 나는 일 년 동안 유아신서를 만들었다. 주로 태교와 육아에 관한 책들이었는데, 삼교쯤 보고 나면 대충 안 보고도 내용을 꿸 수 있어서 또래의 처녀들보다 그쪽의 상식에 익숙한 편이었다. 뜨거운 물로 목욕을 오래 하면 기형아가 출생할 수 있다거나, 알코올을 과용하면 태아의 두뇌가 작아진다거나, 제왕절개보다는 자연분만이, 인공수유보다는 모유수유가 모자 모두에게 좋다거나 하는 따위의, 주어와 술부부터 맞추어야 하는 악필의 문장들로 수차례 반복되던 내용들.
병원에 다녀온 뒤 너무 뜨겁지 않은 물로 몸을 씻다가 문득 그때 읽었던 교정지의 한 부분을 떠올렸다. 첫 두 달 동안 태아는 작은 세포에서부터 수천만 년의 진화 과정을 거친다. 올챙이처럼 꼬리가 달린 원시적 형태가 되었다가, 차츰 팔다리가 생기고 장기가 분화되며 인간으로 탈바꿈해간다.
흰 유액이 발라졌던 배꼽 아랫부분을 나는 가만히 쓰다듬어보았다.
지금은, 몇만 년 전쯤을 거슬러올라오는 중일까.
잠들기 전이면 나는 궁금해졌다. 오늘쯤 '그 존재'에게는 심장이 생겼을까. 이 순간쯤은 인간으로 진화했을까. 길을 건널 때, 주차한 트럭 옆을 지날 때, 무거운 물건을 들 때 나는 조심스러워졌다. 생각에 잠겨서 아무 데나 부딪히곤 하던 버릇도 언젠가부터 없어졌다.
<일곱>
먹고 싶었다.
식욕 때문이라기보다는, 차츰 모든 음식이 맛이 없어졌고 구역질을 일으켰기 때문에, 생각나는 그 한 가지 음식만을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이상한 점은 평소에 좋아했던 초밥이나 알탕, 치즈케익 같은 것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은 배를 갈아 넣은 동치미, 김치만두, 깨와 설탕을 넣은 송편, 간단한 시골 나물을 넣은 비빔밥 같은 것들이었다.
곧이어 그것들에게서 내가 발견한 공통점은 바로 어린 시절에 먹었던 음식들이라는 것이었다.
반면 관심이 없어졌으며 심지어 이름만 들어도 눈살을 찌푸리게 된 초밥이나 알탕 따위에게는 스무 살 이후부터 좋아했던 음식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마치 내 무의식이 거꾸로 가는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음식들이 점입가경으로 먹고 싶어졌다.
이를테면, 막걸리를 넣어 부풀린 찐빵.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곤 했던 별식이었다. 정백 안한 밀가루 반죽을 막걸리로 부풀리고 너무 달지 않은 팥고물을 넣은, 찜통에 이리저리 겹쳐넣었기 때문에 군데군데 동전만하게 살점이 떨어져나간 그 빵들은 한입 베어물 때마다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났다. 어머니는 한꺼번에 삼사십 개씩을 쪄서 연두색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은 뒤 그 위에 젖은 가제보를 덮어 서늘한 곳에 내어놓았다. 오며가며 꺼내 물긴 했지만, 동네 구멍가게에서 팔던 하얗고 고물이 달착지근한 호빵보다 촌스럽다고 여겨졌던 빵들이다.
그 다음으로 먹고 싶었던 것은 팥죽이었다. 동짓날에 먹는 새알죽이 아니라 여름에 먹던, 칼국수를 넣은 팥죽이다. 어머니는 밀반죽을 납작하게 맥주병으로 밀어서 네 겹으로 접어 잘잘하게 썬 뒤 밀가루에 뒹굴려 서로 붙지 않도록 했다. 곁에 앉아 있던 어린 나는 재미삼아 병으로 반죽을 밀어보기도 했고 어머니가 썰어놓은 국숫가락에 밀가루를 묻혀보기도 했다. 뜨거울 때도 맛있지만 차갑게 식으면 국숫발을 숟가락으로 뚝뚝 끊어 먹는 재미가 있었던 죽이다.
그러자 생각났다. 열 살쯤 되었던 여름방학, 아버지의 고향에서 한 달쯤 지내던 때의 일이다.
한씨 집성촌이었던 동네 아랫집에는 큰아버지네가, 윗집에는 이젠 돌아가신 작은아버지네가 살았다. 아랫집 툇마루에서 수박이라도 한 통 쪼개 먹는 저녁 무렵이면 윗집의 사촌동생이 마당 어귀에서 외쳤다.
팥죽 잡수러 올라오세요!
어두운 밤길을 어른들과 함께 올라가 보면 윗집 마당에 멍석이 깔려 있었고 모기향이 피워져 있었다. 방금 가마솥에서 푼 팥죽은 혀를 델 만큼 뜨거웠다. 국숫발을 훌훌 들이마시며, 간혹 손을 휘저어 모기를 쫓으며 그릇을 비운 뒤 나는 하늘을 봤다. 설탕가루 같고 더러는 왕소금 같은 별들이 얼굴 가득 서늘하게 쏟아져내렸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 음식들을 만드는 법을 모른다. 어떤 책에도 그것들의 조리법은 나와 있지않다. 식당에서 만들어 팔리는 더더욱 없는 그것들을 먹고 싶다는 이루어지지 않는 갈망 속에서, 내 무의식은 계속해서 시간여행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네 살에서 여덟 살까지 살았던 광주 중흥동의 한옥집 내부가 떠올랐다. 그 목제 대문 안쪽의 빗살 무늬가 어제까지 보았던 것처럼 선명하게 재생되었다. 그 마당에 심어졌던 포도나무의 넝쿨을, 그 아래에서 해바라기하며 들었던 길 옆 채석장의 돌 깨는 소리를 기억했다. 그 오후 문득 백일몽처럼 보았던 길 잃은 여자아이는 네 살의 나였으리라. 소방서가 있는 그 삼거리는 중흥동의 한옥집과 구불구불한 골목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 기억은 어디로 가는 중일까.
나는 알고 싶었다.
내가 태어나던 때까지, 아니, 태어나기 이전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걸까. 며칠 뒤의 새벽쯤이면 전생의 어느 모퉁이를 더듬어 돌아가게 될까.
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찬연한 강기슭에 닿게 될까. 어두운 부엌문을 열고 문턱을 넘어 나아가던 나는 누구였을까. 그 장소는 어디이길래 몇 번씩이나 내 잠을 두드리며 찾아왔던가. 마침내 그곳에 이를 때, 알 수 없는 당신을 만나게 되나. 얼마나 많은 생을 건너서 당신은 나에게로 왔는가.
<여덟>
두 번의 실패 끝에 오빠를 낳은 뒤 네번째로 나를 가졌을 때 어머니는 막내고모와 함께 의사 장티푸스에 걸렸다. 어머니는 오래 앓았다. 거지처럼 여름옷과 겨울옷을 모두 꺼내 겹쳐입고 오한에 떨며 입덧을 했다.
임산부인 것을 병원에서 고려해 지어줬다곤 하지만, 한 달 남짓 한 움큼씩 알약과 가루약을 복용한 어머니는 병이 호전된 뒤로도 기형아의 가능성을 염려했다. 중절을 결심하고 산부인과에 갔을 때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일찍 왔으면 됐을 텐데…… 현재는 태반이 생겨서 산모에게 위험합니다.
의사는 덧붙였다.
한두 달 더 있다 와보세요.
그는 유도분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만일 어머니가 의사의 권고대로 두 달 뒤 그 병원에 갔다면 나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어머니는 병원에 가지 않았고, 대신 내가 태어나는 순간까지 기형의 가능성을 집요하게 염려했다.
함께 병에 시달렸던 탓인지 갓 태어난 나는 체구가 작았고 몸에 살이 붙어 있지 않았다. 열 달을 채웠는데도 미숙아 같았다. 발육도 유난히 늦었다. 백일사진을 찍으려고 동네 사진관에 가자, 목을 못 가누는 나를 본 사진사가 뜨악하게 물었다.
왜 백일도 안 된 앨 데려왔어요?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어머니의 태중에서 무엇을 겪었는지, 어떻게 그 탯줄에 매달려 살아남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결코 끄집어낼 수 없을 깊은 기억 어디쯤에 그것들이 냄새처럼 묻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다.
나를 배고 낳아 돌까지 키우는 동안 어머니는 기찻길 옆의 블록집에 살았다. 아버지는 철교 옆 둔덕에 내 태(胎)를 묻었다고 했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내가 기차 소리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마치 뼛속까지 배어든 듯한 친숙함이 혹 거기에서 기인하는 건 아닐까 하고. 침목과 철길과 객실과 역사(驛舍) 따위, 기차와 관계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때마다 나는 깊숙이 매혹되어버리고 만다.
그 철로변 어디쯤, 필경 오래 전에 헐리고 말았을 그 미지의 집을, 내 안의 누군가는 아직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홉>
위경련의 통증에 익숙했던 나는 처음에 이까짓 소화불량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입덧의 어려움은 바로 그 대수롭지 않은 체한 느낌과 토할 것 같은 느낌이 장기간 계속되면서 차츰 악화된다는 데 있었다.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양수는 커피잔 한 잔 정도로 불었고, 손가락의 매듭 하나만한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의사가 모니터의 자궁 부분을 확대시킨 뒤 아이의 몸뚱어리 중간쯤에 커서를 놓고 마우스의 단추를 누르자 규칙적인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집에 돌아와 책을 펼치고 그에게 발달 정도를 읽어주었다.
이제 키가 이 센티미터라는데…… 이 센티라니, 너무 작지?
그가 대답했다.
아니지. 사람말고 이 센티 크기의 생물을 생각해봐. 개미보다도 훨씬 크잖아.
그러고 보니 충분히 큰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한동안은 내 손가락 마디를 들여다 볼 때마다, 조그맣게 축소된 사람의 몸뚱어리가 그 위로 겹쳐 보였다.
다시 병원에 갔을 때 나는 그 사이 삼 킬로쯤의 체중을 잃은 상태였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볼은 꺼져, 누가 봐도 건강한 사람 같지 않았을 것이다. 의사는 실감나지 않는 예언으로 나를 위로하려 했다.
입덧이 끝날 때쯤 됐는데요. 곧 끝날 겁니다.
초음파 모니터로 본 아이는 이제 손가락 하나만큼 자라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팔다리를 헤엄치듯 흔들며 이리저리 몸을 뒤트는 모습이었다.
……움직이네요.
진찰대에 누운 채로 나는 중얼거렸다. 까닭 모를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려 귀를 적셨다.
며칠 뒤, 일요일에만 개방되는 가까운 작은 수목원에 갔다. 오랜만에 흙을 밟고 겨울숲의 냄새를 맡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와 나란히 벤치에 앉아 있다가 나는 숨을 멈추었다. 가냘픈 비눗방울 같은 것이 몸 안쪽을 건드리는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웃었다.
이제 겨우 십이준데, 벌써 태동을 하는 건 아니겠지?
느낌이 어떤데?
그냥, 공깃방울 같은 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닐 거야. 초산인 경우엔 오 개월은 지나야 느낀다는데…….
그런데?
망설이다가 나는 대답했다.
굉장히 부드러운 느낌이긴 했는데…… 아마 아닐 거야.
<열>
왜 나를 낳으셨어요, 라고 어머니를 원망하던 때가 있었다. 낳아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왜 나를 던져놓으셨어요. 낯선 성당의 고해실에 들어가 내 안의 불덩어리를 끄집어내놓고 싶던 때가 있었다. 입술을 열면 욕설과 울음과 비명이 한꺼번에 터져나올 것 같아 더욱 견고한 침묵을 지키던 때가 있었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결혼을 한 뒤에도, 나는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았다. 아이를 갖고 낳는 건 특별한 경험이야, 라고 고백하는 친구나 선배의 말에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딸이 하나 있었으면 싶긴 해요, 하고 대답하기도 했다. 진심은 아니었다.
왜 어서 아이를 갖지 않느냐는 주위의 질문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왜 아이를 가져야 하나? 키우는 기쁨을 위해서? 그렇다면 그 아이는? 무슨 자격으로 내가 한 인간의 일생을 멋대로 시작해놓을 수 있나.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가-그녀가-시시각각 무엇을 겪게 될지 전혀 예측하거나 책임질 수 없으면서.
열한 살쯤이었다. 석간 신문을 들춰보다가 아동심리에 관한 짧은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몇가지 이론에 대해 씌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의 마음은 순수한 백지'라는 주장에 이르러 나는 의아해졌다. 사람은 누구나 애초에 아이였지 않나? 그들은 모두 잊었을까. 아이에게도 어른과 똑같은 감정이 있다는 것을. 똑같은 갈망과 후회와 외로움, 권태와 수치, 절망감, 분노와 슬픔 들을 느낀다는 것을. 다만 그 인식과 사고의 수준이 미숙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때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아무리 지난다 해도 나는 잊지 않으리라고.
다짐대로 나는 잊지 않았다. 때로 아이들을 볼 때면 괴로웠다. 저 무방비 상태로 어떻게 순간순간을 살아나갈까. 기껏해야 십 년도 안 되는 경험적 지식으로 그들은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내야만 한다. 내가 처음 목으로 우는 법을 배웠던 아홉 살 무렵처럼, 저들도 은밀히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을 것이다. 은밀히 제 가슴에 상처를 내고 그 자리를 제 혀로 핥고 있을 것이다.
대를 잇겠다는 따위의 욕망이 나에게 있을 리 없었다. 못다 이룬 꿈을 자식의 인생에 이르러 성취하겠다는 식의 소유욕에는 염증을 느꼈으며, 다가오는 세상의 빛깔은 삭막하게 보였다. 가상의 몸을 찌르고 총으로 구멍을 뚫는 데 열중하는 소년들을 볼 때면, 그보다 잔혹한 현실의 일들을 볼 때면, 고민 없이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하는 여자를 차갑고 이기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나는 되묻고 싶어지곤 했다. 혹시 당신은 더욱 이기적인 이유로 아이를 낳지는 않았나요.
결혼한 지 이태가 되어가던 겨울, 그 문제에 대해 그와 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조심스럽게 그는 말했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갈 만도 하잖아?
세상이 아름다운 순간들이 분명히 있고, 현재로선 살아갈 만하다고 나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한번 살아보게 한다 해도 죄짓는 일은 아니잖아.
하지만 그 아이가, 하고 나는 말했다.
그 아이가 그 생각에 이를 때까지, 그때까지의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올지, 과연 빠져나올 수 있을지…… 내가 대신 살아줄 수 있는 몫도 결코 아닌데.
나는 물었다.
어떻게 그것들을 다시 겪게 해?
……왜 그렇게만 생각해?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말했다.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아. 여름엔 수박도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목마를 땐 물도 달잖아. 그런 거, 다 맛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빗소리도 듣게 하고, 눈 오는 것도 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느닷없이 웃음이 터져나온 것은 그때였다. 다른 건 몰라도 여름에 수박이 달다는 것은 분명한 진실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설탕처럼 부스러지는 붉은 수박의 맛을 생각하며, 웃음 끝에 나는 말을 잃고 있었다.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을 베어물 때, 내가 아무런 불순물 없이 그 순간을 맛보았다는 것만은.
우스꽝스러운 얘기가 될지 모르겠다. 그 수박의 맛이 그날 이후 나의 화두가 되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내 단단한 마음에 금을 그어간 균열의 처음이 되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인생의 중요한 일들의 대부분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 결정되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은.
<열하나>
그 뒤 한동안 나는 예의 '부드러운 느낌'을 잊고 지냈다. 마침 두번째 소설집을 준비하느라 출판사에 출입할 일이 잦았다. 출판사까지는 지하철을 갈아타고 가야 했는데, 목적지를 세 정거장쯤 남겨놓고부터 숨이 막혀오곤 했다.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했지만, 내릴 때쯤에는 이맛속이 희어져 있었다. 마침내 지하철 문이 열리면 난간을 짚으며 출구를 향해 걸어나갔다. 하저터널 때문에 깊어졌다는 그 역사는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었다.
지나간 줄 알았던 고비는 그때부터였다. 토하고, 죽을 먹고, 먹은 죽을 다시 토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잊고 있던 안두통이 돌아왔다. 체중이 곤두박질쳤다. 가만히 앉거나 누워 있어도 장판바닥이 빙글거리곤 했다. 호르몬 때문에 내부 기관들의 활동이 위축된다곤 하지만, 연말부터 써왔던 단편소설의 완성이 그전에 가능했던 걸 보면 아무래도 책을 묶는 편이 좀더 심신에 부담스러운 일인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교정지를 보내놓고 나는 병원에 갔다.
그 동안 몸이 안 좋아서, 아이한테 어땠을지 걱정이에요.
초음파 모니터에 잡힌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의사가 물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가만히 있는 거, 보이죠?
조금도 안 움직이는데, 괜찮긴 괜찮은 건가요?
의사는 아이의 심장에 커서를 놓고 박동 소리를 들려주었다.
엄마가 시달리면 아이도 힘들죠…… 무리는 절대 금물입니다. 너무 심하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돌아오는 길의 바람은 차고 건조했다. 귓바퀴를 번갈아 주무르며 나는 걸었다. 희부연 흑백화면 속에서 책상다리를 한 아이는 고개와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있었다. 그 수그린 둥근 정수리가 얼어붙은 보도블록에 어른거렸다. 떨군 얼굴이 돌멩이처럼 목구멍 안쪽에 걸렸다. 삼켜지지 않았다.
그것은 내 얼굴이었다. 내 괴로움과 민감함과 긴장으로, 더러는 치열함이라는 이름으로 방기하고 학대해왔던, 내 오랜, 어린 얼굴이었다.
치미는 부끄러움 속에서 나는 묵묵히 걸었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 온 너까지 괴로움을 받는구나.
나는 입 속으로 되뇌었다.
더 힘들게 하지 않을게.
건강해질게.
언젠가 같은 결심을 한 적이 있었다. 건강해져야만 첫 장편소설을 완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새벽마다 집 근처의 신학대학교 운동장을 여덟 바퀴씩, 네 귀퉁이에 꼭지점을 찍어가며 달렸다. 하루도 쉬지 않았다. 비가 오면 우비를 입고 달렸다. 그때 보았던 하늘을 기억한다. 다섯시 반에서 여섯시 사이, 봄이면 서서히 동이 터왔고 늦은 가을이면 캄캄한 서쪽에 조각달이 맺혀 있었다.
그 무렵만큼 먹는 것에 신경을 썼던 때는 없었다. 신선한 야채를 그날그날 구입했다. 힘이 부친다 싶으면 시간을 들여 요리를 했다. 허리나 목을 상하지 않으려고 한 시간에 한 번 일어서서 오 분씩 스트레칭을 했다.
그렇게 다시 건강해져야 했다. 더 아파선 안 되었다.
<열둘>
하룻밤.
시시각각을 견뎌야 하는 하룻밤. 얼굴 없는 귀신들이 목과 눈과 가슴에 우글우글 매달린 것 같은 하룻밤. 마침내 통증이 차츰 누그러질 때쯤이면, 구토에 지친 몸으로 욕망과 모든 갈급함이 지워진 아침을 보게 해주는 하룻밤. 그렇게 내 영혼에서 속기(俗氣)를 빨아마셔주는 하룻밤.
여러 배로 시간을 연장해주는 하룻밤. 그래서 때로 아주 긴 세월을 살아온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하룻밤. 삶을 포기하는 순간에만 삶을 얻을 수 있음을 가르쳐주는, 그렇게 나에게 '간격'을 선물해주는 하룻밤. 누군가 내 따귀를 갈겨도 가만히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 생의 간격. 그 쓸쓸함만이 사람을 강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게 하는 하룻밤.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러온 하룻밤. 정든 하룻밤. 빌어먹을 하룻밤. '마음먹은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고 맙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게 한 하룻밤. 숱한 굳은 계획과 약속과 돌잔치와 결혼식들을 체념하게 한 하룻밤. '반드시'라는 말을 믿지 않게 한 하룻밤.
누구도 나눠가거나 대신할 수 없는 밤. 이번으로 끝이야, 이를 악물며 몇만원어치 약봉지를 쓰레기통에 구겨넣게 한 하룻밤. 한 달 뒤에 후회하며 정든 의사를 만나게 한 하룻밤. 눈물과 각오 따위에는 흔들리지 않는 하룻밤. 몇 번이고 뿌리치며 무릎을 꿇리는 밤. 긴 호흡으로 견디는 밤. 내 젊은 하룻밤, 이제 그만 작별을 고하려는.
<열셋>
천천히 몸이 회복되어갔다. 조금씩 죽을 소화해냈다. 그나마 먹기 힘들 때는 과일로라도 대신했다. 마침 토마토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 다행이었다. 하루에 일 킬로씩을 사서 갈거나 썰어 먹었다. 움직일 만해졌을 때 책이 나왔고 외출이 잦아졌는데, 현관을 나설 때마다 나는 다짐했다.
일단 최선을 다한 일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으리라. 마음쓰지 않기로 마음먹으면 정말 마음이 쓰이지 않는 체질이 되어보리라.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렇게 되었다.
잊고 지냈던 공깃방울 같은 감각이 다시 느껴진 것은 그 즈음이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나는 의심했다.
설마, 이런 게 태동이려구.
하루에 서너 번쯤 그 부드러운 감각은 찾아왔다. 사흘이 지나자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산이라고 해도 오 개월이 꽉 찰 때쯤 첫 태동을 한다는데, 난 십이주에 처음 느꼈던 게 태동이란 말이야?
그는 물었다.
책에는 뭐라고 나오는데?
아주 예민한 산모 같으면 사 개월에도 느끼는 경우가 있긴 하다는데.
그럼 맞겠네…… 당신 이상 예민한 사람이 어디 있으려구?
반신반의한 채, 그와 나는 마주 보며 웃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무엇인가 배 안쪽에서 살을 눌러오는 감각에 놀라 눈을 떴다. 그는 일찍 일어나 식탁 앞에서 신문을 읽고 있던 참이었다.
……이것 좀 봐!
머리맡으로 다가오는 그에게 나는 말했다.
여기…… 여기 뭔가가 뻐근하게 기대와. 살갗이 다 딱딱해졌어.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여기 있나 봐, 나는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세상에, 여기 기대고 있나 봐.
<열넷>
혼자 있어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파도 혼자 아픈 게 아니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전화를 받을 때도,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럿이 먹는 접시에서 가장 크고 좋아 보이는 딸기를 집어드는 염치없음을 나는 처음으로 실행해보았다. 과일을 사러 가면 웃으면서 말했다.
임산부가 먹을 거예요.
그때마다 나를 감동하게 한 것은 그 아주머니들이 얼마나 세심하게 크고, 예쁘고, 상처 없는 것들을 오랫동안 골라 봉지에 담아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내 뒤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을 그녀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한참 부대낄 때 '좋은 소식 있어?' 하고 물어주고, '입덧이 심하나 보네…… 토할 때 토하더래두 억지로 먹어야 돼'라고 말해준 이들이 바로 그 여인들이다.
임산부용 스타킹과 타이즈를 사기 위해 속옷 가게를 찾았을 때는 토실한 몸매의 아주머니가 '허리가 많이 아프죠? 난, 얼마나 허리가 아프던지 몇 달씩 잠을 제대로 못 잤었어' 하고 혀를 찼으며, 점퍼 스커트를 사러 갔던 옷가게의 아주머니는 한 치수 헐렁한 옷을 골라주면서 '어휴, 지금 생각만 하면 안 되지. 초산이래두, 칠 개월 넘어가면 한정없이 배가 불러와요' 하며 활짝 웃었다.
그 여인들이 나와 똑같은 과정을 겪었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버스를 타고 갈 때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제각기 거대한 나무들 같았다. 생채기투성이의 몸 안쪽에 푸른 수액이 흐르는 나무들. 알 같은 흰 뿌리를 힘겹게 땅속에 박은 나무들. 여자들뿐 아니었다. 저마다 누군가의 자궁에 열 달 동안 담겨 있었을 남자들과 노인과 아이들을, 나는 그때까지 미처 몰랐던 다른 눈으로 보고 있었다. 누가 저들을 다 낳았을까.
셀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여자들이 소화불량과 구토에 여위어갔을 것이다.
숙면을 이루지 못하고 몇 번씩 깨어 화장실에 가는 괴로움을 겪었을 것이다. 한없이 피로하고 잠이 쏟아지는 시절을 지나, 돌아누울 때마다 신음이 나올 것 같은 요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을 다만 말없이, 알처럼 품어내었을 것이다.
그 여인들이 모두, 내 동지가 되었다.
<열다섯>
다시 꿈인 듯 문득 나는 보았다.
한 아이가 길을 가고 있다.
책가방을 메고 신주머니를 들고, 필통 소리를 내면서 간다. 한 시간쯤 다섯 리를 걸으면 집에 닿는다. 길가엔 아카시아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한 동네 사는 아이와 함께 걸을 때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아카시아 잎을 떼어낸다.
집에서는 염소를 키운다. 아침이면 어머니가 방금 짠 따뜻한 염소젖을 대접에 담아, 굵은 소금을 뿌려 휘 저은 뒤 세 남매에게 준다. 학교에 다녀온 오빠와 어머니가 염소 먹일 꼴을 베러가면, 따라가기엔 아직 어린 아이는 마당에 심어진 사루비아 꽃을 따먹으며 집을 본다. 달다고 꽃술을 다 먹어버리면 내년부턴 꽃이 피지 않는다고 아이는 들었다.
하지만 하나만. 요번 하나만 더.
단물이 빠진 여린 꽃잎을 질겅질겅 씹으며 아이는 빈 마당을 서성거린다. 황소보다 커 보이는 염소들의 눈을 올려다본다. 놀던 동생이 그을린 얼굴로 뛰어들어온다. 아이는 아껴뒀던 사루비아 꽃술을 따서 네 살 어린 동생에게 건넨다. 동생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난다.
맛있어?
응.
많이?
응.
아이가 길을 간다. 가위바위보에 이길 때마다 연두색 아카시아 이파리가 발자국을 따라 떨어진다. 깊숙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맵싸한 향기가 아이의 몸을 채운다.
두고두고 아이는 잊지 않는다. 아무것도 잊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므로, 그 먼 흙길과 꽃냄새와 필통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고스란히 담아둔다. 설령 꺼내보지 않고 지내더라도, 기억 속의 감각들만은 흐려지거나 흐트러지지 않도록. 일단 떠올리기만 하면 갓 퍼낸 것처럼 생생하도록. 이십년이 더 지난 뒤에도 어제 걸었던 길 같도록.
<열여섯>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십삼 년 동안 죽음과 싸웠던 K시인을 첫 직장에서 만났다. 나는 스물네살이었다.
커피 한 잔만…… 설탕 두 스푼 넣어서.
그는 기적적으로 완치되었으나, 그 치료 과정에서 당뇨병을 얻었다. 상태가 나쁜 아침이면 설탕 넣은 커피나 초콜릿을 나에게 부탁했다. 부탁한 것들을 책상에 내려놓는 나에게 그는 지친 얼굴로 웃어 보이곤 했다.
고맙소!
어느 날 아침 그는 나에게 미당 시집을 건네주었다. 속표지에 만년필로 씌어 있었다. 처음인 듯/마지막인 듯/세상과 만나게나./그리고 그 순간 느낀 감동을/시로 써보게.
그 말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마지막의 눈과 처음의 눈.
대학 시절 시창작론 시간에 J선생님이 말했던, 어린아이의 눈과 회복기 환자의 눈.
그 눈으로,
그 귀로,
내 안에 담긴 그의-그녀의-몸으로,
처음인 듯 나는 느꼈다.
노란 장판 바닥에, 창문 모양으로 네모나게 고인 햇빛.
꽃눈이 돋기 시작한 앙상한 목련 가지. 하오의 정적.
모과 향기. 콩나물 삶기는 냄새. 쑥국 끓이는 냄새. 갓 볶은 참깨 냄새.
함석 지붕에 듣는 빗소리. 활엽수 흔들리는 소리. 잠든 당신의 고른 숨소리.
<열일곱>
어머니의 마지막 아이, 내 동생이 태어나던 날을 기억한다.
구월의 청명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중흥동 집에 며칠 전부터 외할머니가 와서 묵고 있었지만 나는 그 까닭을 몰랐다. 다만 그날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안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는 직감, 그에 대비되어 물밑처럼 고요하던 집안의 분위기만을 기억한다. 심지어 나는 갓난아이의 울음조차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다섯 아이를 낳는 동안 소리를 지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언젠가 내가 그 까닭을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다.
소리쳐봤자 힘만 빠지고…… 견딜 힘만 없어지는 거 아니냐.
안방의 문풍지를 손가락으로 뚫고 다섯 살의 나는 몰래 들여다보았다. 방 안쪽은 소스라치게 붉었다. 그 색깔에 압도돼 나는 다른 것을 잘 기억해낼 수 없다. 어둑한 아랫목에 힘없이 늘어져 있던 어머니의 검은 머리털, 새빨갛게 젖은 이불, 머리 흰 외할머니가 대야에 붉은 수건을 짤 때마다 떨어지던 선명한 핏물을 기억할 뿐이다.
어머니는 아프지 않아서 침묵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힘으로 끝까지 버텨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 오전의 물밑 같은 고요 속에 숨겨져 있었을 그녀의 고통을, 나는 아직 짐작해낼 수 없다.
<열여덟>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그는-그녀는-종종 내 몸을 두드려왔다. 때로 놀랄 만큼 세차게 두드릴 때마다 그쪽을 어루만져주며 나는 궁금해했다. 그는-그녀는-내 손길을 느낄까. 훗날, 먼 무의식 속에 이 손길이 냄새처럼 배어 있게 될까.
이제 그는-그녀는-주먹만큼은 자라난 것 같다. 눈썰미 있는 사람은 알아볼 만큼 내 배는 둥글어졌다. 가슴도 함께 둥글어졌다. 대신 얼굴이나 팔다리는 예전과 같거나 오히려 가늘어졌다.
멀리 있는 어머니는 내 몸무게가 좀처럼 불지 않는 것을 염려하곤 한다. 조산의 경험 때문에 내 영양 상태에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내가 그때, 요즘처럼 잘 먹었다면 두 번씩이나 실패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는 근래에 본 영화들에서 아이를 낳다가 목숨을 잃은 여자들이 유난히 자주 등장한 것을 불쾌하게 여긴다. 출산의 어려움에 대한 화제가 나올 때마다 그의 얼굴은 희어진다. 오래 전에 그는 동생을 낳던 어머니를 잃었다.
괜찮아.
자신이 겁날 때 그는 나에게 겁내지 말라고 한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말아.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때가 되어, 감히 어머니처럼 침묵할 수 있기를 빌 뿐이다.
<열아홉>
수목원의 비탈진 숲에 봄이 돌아와 있었다. 연둣빛 즙이 차오른 가지들과 여린 잎사귀들, 진달래와 산수유꽃들을 보며 나는 천천히 걸었다.
조금씩, 빛 쪽으로 걸어나오렴.
나는 멈추어 서서 멜빵 바지의 호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움직이는 그를-그녀를-어루만졌다.
맥박 같은 진동이 나직이 손바닥을 울려왔다. 진동은 차츰 강해졌다. 내 손의 가느다란 실핏줄들을 타고 거슬러올라오는 심장 소리를 환청처럼 나는 들었다.
별안간 눈시울이 더워졌다. 처음으로 알 것 같았다. 내 삶은 내 뜻이 아니라는 것을. 해와 달이 움직이고 계절이 돌아오는 뜻이라는 것을. 먼지보다도 작은 그 일부가 나라는 것을. 마침 내 몸에 그 뜻이 찬란하게 피어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어리석게도 나는 그것을 몰랐다. 내 의지로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줄만 알았다. 이 숨 한 번에도 얼마나 오랜 시간이 스며들어 있는지, 미처 모르면서 살아왔다.
한 쌍의 젊은 남녀가 내 옆으로 지나갔다. 남자는 생후 팔 개월쯤 되어 보이는 아기를 안았고 여자는 기저귀 가방을 어깨에 멨다. 낯선 향기가 나는 히어리꽃을 향해 아기의 통통한 손이 들어올려졌다.
꽃 이쁘지?
저 꽃, 이뻐?
남자와 여자가 멈춰 서서 아기를 들여다보며 웃었다. 어린 오누이처럼 닮은 얼굴들이었다.
그들의 뒷모습이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나는 서 있었다. 촉촉한 흙의 감촉이 얇은 운동화 밑창으로 고스란히 빨려들어왔다.
언젠가 나는 늙고 죽겠지.
어떻게 심장을 멈추고 호흡을 멎게 하는지 모르지만, 어떻게 이 익숙한 육체를 떠나게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겠지. 태어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어머니의 산도(産道)를 비집고 나왔던 것처럼, 방법도 모르는 채 너를 품으며 다섯 달을 지내온 것처럼, 내가 아닌 내가 그것을 알고 있겠지.
이상하지. 그 모든 일들이 어쩐지 예전만큼 두렵지 않아.
빽빽한 전나무숲 줄기 사이로 오전의 햇빛이 푸릇하게 스며나왔다. 젊은 부부의 웃음소리가 멀어진 사위는 고요했다. 그 침묵 속에 가득 찬 형언할 수 없는 울림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삐쮸우 삐쮸우, 부리 긴 새들이 이따금 적요를 가로지르며 날아갔다.
그러니 오렴.
조금씩, 빛 쪽으로 다가오렴.
먼 전생으로부터, 몇 겹의 어두운 태중으로부터, 천천히 밝아지며 오렴. 이번 세상의 빛을 보게 될 늦은 여름날까지, 무사히 내 몸에 깃들여 있으렴.
바람 끝이 아직 찬 이른 봄의 비탈을 따라 나는 한 발짝씩 걸어올라갔다.
네가 이따금 그토록 작은 손과 발로 흔들어대는 것이 누구의 몸인지, 너는 알고 있니?
-끝-
첫댓글
한강의 ‘침묵’
잉부(孕婦,임산부)
그 몸은 육체를 초월한 또 하나의 새로운 몸.
그 몸이 느끼는 저 신비하고 미묘하고 섬세한 것들.
모체(母體)가 지니고 있는 용감한 것들 위대한 것들.
남자라는 족속으로서는 몇겁의 세월이 흘러도 아지못할.
< 그러니 오렴.
조금씩, 빛 쪽으로 다가오렴.
먼 전생으로부터, 몇 겹의 어두운 태중으로부터, 천천히 밝아지며 오렴. 이번 세상의 빛을 보게 될 늦은 여름날까지, 무사히 내 몸에 깃들여 있으렴.>
후제 뉜가의 어미가 될, 이제 처녀티 완연한 내 두 녀석을 보면, 때로 슬퍼지는 감정도 없지 않습디다. ㅎㅎ
늙어 더욱 그런가...
아직 꼬맹이들. 왕서방은 아직 멀었수. 하하하하
남자는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것은 분명.
姙夫가 되지 않는 한.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임신하는 영화처럼 먼 미래에는
그런 변종이 나타날런지.
우리 꼬맹이들이 그럴즈음엔 이 세상에 나는 없겠지요 ㅎ ㅎ.
벗님들,
happy sun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