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챙겨 보지도 않던 연예가중계를 오늘은 어찌하
여 챙겨 보게 되었는지...
샤워 후 젖은 머리 드라이하며, 무심코 틀어 놓은 티비
속에선 연예가중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채림의 cf나들이도 무슨 화제거리가 되는지 리포터가 그
녀의 매력 분석해가며,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 가던 중,
그녀의 작년 스캔들 날리 부루스에 대한 짓궂은 리포터
질문이 띠익 그녈 향해 날아갔습니다. 그녀,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처음엔 잠도 못이뤘으나, 나중엔 그래 내친
김에 기록이나 한 번 세워보자 싶더라는 그녀의 대범한
아니, 그딴 얘기에는 이젠 무감각하다는 듯 오바하며,
리포터를 향해 날리는 그녀의 대답을 들으며, 저는 기대
감이 베이킹파우더 흠씬 뿌린 밀가루 반죽처럼 빠방하
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습니다. 아! 승환님 얼굴이 자료
화면으로 나올 터인데, 과연 티비에 어떤 얼굴도장이 찍
힐 것인가? 채림의 열애설이라는 미명아래 기자들의 밥
이 되었던 남자들이 쭈루룩 열거 되었습니다.
조성모...이승환...구본승...
그들은 어떤 자료화면으로 쓰이는지도 모르는 채, 화알
짝들 웃고 있었습니다. 승환님이 그렇게 목젖이 보일 정
도의 웃어 젖히는 모습이 어떤 연유로 카메라에 담겨졌
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좋았습니다. 그의 활동기
에도 티비로는 잘 볼 수 없었던 그의 모습을 작년 한해
기자들의 세기말 코미디 시리즈물 중 한 편이었던 생뚱
맞은 내용으로나마 볼 수 있음이 너무 기뻤습니다.
배시시도 아니고, 보조개 있음을 확인시켜주며 이렇게
좋을 수 없다는 웃음이 만연한 승환님얼굴 보는 기쁨도
잠시... 자료화면의 속성 상, 티비에 나오는 둥 마는 둥
하며 부리나케 화면 저편으로 사라지며, 구본승 얼굴로
빠르게 교체되나 싶더니, 다시 채림 얼굴이 티비에...
자연스레 티비에서 눈길을 거두었습니다.
좀 있으니, 뮤직비디오 대한 내용이 등장했습니다.
차은택 감독이 나왔습니다. 또 기대감이 스리슬쩍 고개
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렸습니다. 총기 난사, 사무
라이식 칼부림, 등의 핏빛 화면들의 행진이 끝나자,
스타는 마지막에 나온다며,<당부>! 마지막에 나왔습니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라며, 심문선씨가 튀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어느 덧, 젖어서 축 쳐져 있던 제
머린 드라이로 가볍게 날리고 있었고, 뜻하지 않은 승환
님과의 만남에 제 기분도 머리카락과 함께 날고 있었습
니다.
그러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작년 한해
스포츠XX 기자들의 뜨고 싶은 비행욕구와 불타는 창작욕
구의 절묘한 버무림인 염문설의 단골손님으로 각광을 받
았던 채림의 곁다리 중 하나로 등장한 승환님 얼굴이 뭐
그리 좋다고 왜 티비에 나왔는지 망각한 채 희희낙낙하
는 제 자신이 우스웠습니다. 송씨 집안의 모윤아 라는
탤런트가 나왔던 cf도 생각났습니다. "파로마" 외마디
외침과 함께 장롱 속으로 사라지는 그 cf.
오늘 티비에 비춰진 승환님이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의 만남은 그 기
쁨이 두 배인가 봅니다. 하물며, 오매불망하는 님과의
만남이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 가 맞긴 맞나
봅니다.
당시는 눈살 찌푸리게 했던 채림과의 열애설 덕분에 "기
나긴 날 이제는 어떻하나요. 눈물로 시를 써도 그댄 없
는데" 라는 노래가 절실히 가슴에 와닿는 승환님 공백기
에 잠시나마 웃음 띤 얼굴 티비로 보며 그리움의 갈증을
달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새옹지마", "전화위복(轉禍爲福)" 이런 말들은 살면서,
'더 월 인 라이프(삶의 고비)'때 마다 저에게 힘을 줍니
다. 이런 말들이 지금까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걸 보
니, 마치 세기말이 통조림 유통기한 인 것 처럼 호들갑
떨었던 이 세상도 아직까지는 살 만한 세상인가 봅니다.
그래서, 인생은 아름답다는 영화도 나오나 봅니다.
어제, 로베르또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얼
마나 울었던지...꺼이 꺼이 펑펑 울었습니다. 어린 아들
조수아의 때묻지 않은 순수를 지켜주기 위해 아버지 귀
도는 눈물겨운 연극을 계속하였고, 그러기 위해 승환님
의 <세가지 소원>중 두 번째 소원인 착한 거짓말을 끊임
없이 만들어냈습니다. '동화처럼 슬프고 놀라우며 행복
이 담긴 이야기' 라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끝내 제 울음보에 적시타를 날려 감동의 몸부림에 치를
떨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곤, 흐르는 눈물 한 손으로 훔쳐내며, <눈물로 시를
써도>를 들었습니다.
죽일 땐 죽여 주고, 살릴 땐 살려 주는, 감정이 꿈틀꿈
틀 살아 움직이는 'his ballad 수록 버전'이 아닌, 풋사
과 내음이 물씬 풍기는 1집, 세련된 작금의 모습에 찬물
을 디립따 끼얹으며, "까만 바지, 흰 양말, 그리고 닭머
리"라는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잎'영화
의 아류작 냄새가 물씬...)를 찍을 법한 모습으로 정면
을 응시하고 있는 승환님 사진이 압권인 그 1집 앨범 속
<눈물로 시를 써도>를 들었습니다.
박자 하나 틀릴세라, 또박또박 음 하나하나 짚어가며 부
르는 그의 노래소리가 얼마나 정겹던지...
'사랑은 말이 아~닌 것을~'에 이어서 나오는 여자 코러
스의 '~우우~우우우~'에서 그 여음의 옛스러움에 웃음이
나왔지만, 웃음조차 '풋'하고 만화스럽게 웃을 정도로,
그의 풋풋한 순수함이 한껏 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니, 배어나오다 못해 물방울처럼 맺혀 제 가슴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몇 번 반복해서 듣다보니, 어느덧
제 가슴엔 웅덩이 하나가 패어 있었습니다. 그 웅덩이
속 맑은 물은 승환님의 순수한 음악열정이었습니다. 그
것이 환장으로 승화되어 승환님을 '무적'으로 만들었고,
우리를 '이사늙'으로 만들었을겁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버지 '귀도'가 아들의 '순수'
를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지켜냈 듯이, 팬들의 맘과는
상관없이 승환님 혼자 창피해하는 1집 속에 담겨진 순수
한 음악열정 만큼은 변질되지 않도록 우리 팬들이 버팀
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각박한 세상에 '순수'라는 희귀 보석의 존재만으로도
인생은 참 아름답습니다.
아무리 눈물로 시를 쓴다 하더라도, 그 맘 어루 만져 줄
승환님 음악이 있기에, 인생은 더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