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에 있는
갈라파고스 섬에는 수많은 희귀동물들과 식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외부와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입니다.
이
섬이 유명해 지게 된 것은 1835년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연구하기 위해 이 섬을 방문했기 때문입니다.
이
섬에서 다윈은 거북이가 섬마다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나아가 이 섬에서만 사는 유일한 종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유래되어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오랜 세월 다른 문화나 정치, 경제적으로
격리되어 나타나는 고립현상을 말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일본이 내수시장에만 안주하여 자기들만의 표준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갈라파고스 섬처럼 고립되었고,
정치적으로는
북한이 자주 자립을 내세워 외부세계와 단절을 가져와 국제 사회의 이단아가 되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갈리파고스 증후군이라고 할 만한 일들이 있습니다.
미국에
건너온 청교도들 중 일부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자기들만의 마을을 만들고 살았습니다.
대표적인
단체들이 퀘이커, 메노나이트, 아미쉬 같은 종교단체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고 문명과 담을 쌓고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신앙의 아름다움과 순수성은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고 문화만 남은 관광지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좋은 것에는
머무르기 쉽습니다.
머무르면
갈라파고스 현상처럼 고립되고 닫혀버리게 만듭니다.
세상에
대해 문을 닫으면 순수성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분별없이 다 받아들이면 혼합되고 변질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모든 집은 벽과
문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다른 성질들을 막아내는 벽이 있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로부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문이 있어야 합니다.
세포가
이물질을 막는 벽과 산소와 영양을 받아들이는 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생명의
순수성을 지켜야하지만,
새로운
도전들을 끊임없이 받아들여 무엇에도 침해되지 않는 사회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성경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 성은 진주로 된 열 두 문이 있는데,
밤이
없어서 문을 닫을 일이 없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진주는
몸에 들어 온 이물질은 생명으로 덮어서 된 것이기에 생명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문이
사방으로 열둘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모든 것이 들어올 수 있지만 생명으로 덮어 승리하는 곳입니다.
항상 열려 있어도 혼합되거나 변질되지 않는 생명,
무엇이
들어와도 침해
되지 않는
사람,
사탄이
흉내낼 수
없는 유일한
자리,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리 뿐입니다.
제도나 조직은 철마다 갈아 입을 수 있는 옷 같은 것이고,
다른 것은 언제라도 바꿀 수 있지만,
하나님의 필요는 언제라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
죽음의 향기가 나는 사람입니다.
첫댓글 교회가 우물안 개구리가되어 그대로 화석화되어 가는 것을 마땅히 여기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세대의 변화수준에 맟추는 이유가 외적인 부흥때문이어서는 더더욱 못마땅 할 것입니다.
'본질을 지키기 위한 비본질의 변화'이어야 하겠지요.
비본질을 목숨걸고 지키느라 정작 지켜야 할 본질이 망가지는 것은 옳지 않으니까요.
문제는 본질이라 여기는 부분의 범위가 무엇일까 하는거겠지요.
"'본질을 지키기 위한 비본질의 변화'이어야 하겠지요."
전적으로 공감임다^^
그래서 그 지켜야할 본질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라고 말한 것입니다.
중요한 문제라 답글로 화답합니다.^^
만일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면 그 집이 나가는 문이 있고
들어 가는 문이 있어도 주인 없는 흉가집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다시 오시는 예수님만을 기다리는 믿음이라면 유대교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지금이라는 시간에 나는 예수님 믿음 즉 구원(영생)이 없다면 나는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말하고 부활을 말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삶과 우리의 일상생활은
따로 떼어저 있지 않습니다.
예외적으로 북한이나 아랍이나 이스라엘 아랍 국가들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핍박을 받고 죽이기 까지 하는 곳에서야 어쩔 수 없이 드러내고 믿을 수 없지만
우리나라나 미국처럼 종교에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에서 따로 경건의 훈련을 생활화한다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거룩은 이미 구별된 것이지
무슨 행위를 하여 거룩함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바나바로 누구든지 거룩한 사람이 되면
성경에 나온 대로 진실하고 착하고
의를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죄가 뭔지 의가 뭔지
심판이 뭔지 알 수도 없습니다.
@바나바로 "믿음의 삶과 우리의 일상생활은 따로 떼어저 있지 않습니다.
거룩은 이미 구별된 것이지 무슨 행위를 하여 거룩함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아멘.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필요는 언제라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
죽음의 향기가 나는 사람입니다 "
크게 와닿습니다 . 주님께 감사 합니다
이 소망없는 옛사람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
바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
그것만이 소망입니다.
나사로님 반갑습니다.
십자가는 대속의 화목제물이요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정됨은 부활이지요. 사도들이 목숨바처 전한것은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고 전하고... 그것만이 본질이겠지요
서로기뻐해님 반갑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단단한 자기껍질에 둘러쌓인 마음보다도
차라리 아픈 상처속에
터닝포인트에... 아멘~
하나님이 일하시면 사탄의 방해가 따랐지만
빛과 어두움의 창조적 긴장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경륜은 더 온전하게 드러났습니다.
아픈 상처까지라도 누군가를 살리는 약재가 되겠지요.
반갑습니다. 고동엽님
참 좋은 말씀이네요
감사합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반갑습니다. 세즈윅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