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의 충신 최염^
태조가 원씨를 격파하고 기주(冀州)목을 겸임한 후에 최염을 별가종사로 임명하고는 최염에게 말했다.
*(태조= 조조며' 원씨=원소이다.)
“어제 호적을 조사해 보니'
병사 30만 명을 얻을 수 있으니 기주를 대주(大州)라고 부르겠소.”
최염이 대답했다.===
“지금 천하는 나뉘어 무너졌고, 구주는 갈기갈기 찢겨졌으며,
두 원씨 형제는 골육끼리
서로 다투고 있고, 기주의 백성들은 백골을 황야에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저는 명공이 인솔하는 천자의 군대가 인의의 소리로써 앞장서서 진군하여 그곳의 풍속을 물어 도탄에 빠진 그들을 구한다는 것을 듣지 못했으며, 오히려 병사들의 수를 조사하고,
오직 이 일만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으니' 이 어찌 벽지에 위치한
주의 백성들이 명공에게 바라는 것이겠습니까!”
태조는 태도를 바꾸어'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당시 그곳에 있던 빈객들은 모두 고개를 떨구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태조가 병주를 정벌할 때, 최염을 업(鄴)에 남게 하고 문제(조비)를 보좌하게 했다.
세자(조비)는 자주 수렵을 나갔는데 옷과 수레를 수렵용으로 바꾸고, 머릿속은 짐승을 좇는 것으로만 가득했다.
최염은 글을 올려 간언했다.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놀이와 사냥에 정신을 잃는 것을 상서에서 경계한 바 있고,
노은공이 물고기를 보고 끌리는 것을 춘추에서 비난했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주공과 공자의 격언이며 상서와 춘추 두 경전에서 명확히
밝힌 진리인 것입니다.
은(殷)은 하후씨로써 귀감을 삼았고, 시경에서는 먼 시대의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은의 주왕과 하의 걸왕이 죽은 갑자일과 을묘일은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는데, 예기에서도 이 날을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 기일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것은 또한 근세의 득실의 귀감이 되므로 깊이 고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씨 일족은 부강하고 자제들은 방종하며,
수렵에 빠지고 사치가 점차 심하여 도의의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철인과 군자는 잠시 이것에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였고, 용맹한 무사는 다른 나라를 집어삼키는 도구로 타락했습니다. 비록 한낱 백 만 무리를 끌어안고 하북 일대를 넘더라도 발을 들여놓을 곳이 없는 까닭입니다.
지금 국가는 쇠약해지고,
은혜와 안락한 생활은 천하에 보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자건 여자건 간에 바라고
그리는 것은 덕입니다.
하물며, 공은 친히 전마를 통솔하여 위와 아래의 관병들은 매우 고달픕니다.
세자는 응당 정도를 존중하여 따르고 행위를 삼가며 단정하게 하고, 항상 국가를 다스릴 높은 책략을 생각하고, 안으로는 근세의 혼란스런 정치를 교훈으로 하고, 밖으로는 원대한 절개와 의리를 드날리며, 당신이 신자군의 중요한 지위가 되었음을 깊이 생각하여 몸을 귀중하게 여겨야만 됩니다.
그러나 당신은 사냥꾼이나
병졸들의 천한 의복을 입고,
갑자기 말을 달려 험난한 곳을 뛰어넘고, 꿩이나 토기를 잡는 작은 즐거움만을 목적으로 하고
국가의 중요한 일을 잊고 있으니, 이는 진실로 식자들이 마음을 측은해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오직 세자의 수렵용품을 불살라 버리고, 말을 탈 때 입는 옷을 버려서 모든 사람의 희망을 만족시켜 주어 늙은 신하로 하여금 하늘에 죄를
짓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세자(조비)가 대답하여 말했다.
“전날에 나는 당신의 좋은 충고를 받았고, 여러 차례 나에게 고매한 이치를 나타내어 나에게 사냥 용품을 부수게 했고, 말 탈 때 입는 옷도 버리게 만들었소. 지금 이후로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한다면 다시 당신의 충고를 받겠소.”
태조가 승상이 되었을 때, 최염은 동조에 또 서조의 연속이 되고 징사가 되었다. 처음 동조를 받았을 때, 교서를 내렸다.
“그대는 청렴한 백이의 풍격이 있고 사어의 강직함이 있으며, 탐부는 그대의 명성을 사모하여 청렴하게 되었고, 장사는 그대의 명예를 숭상하여 떨쳐 일어났으니,
이는 시대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동조의 관직을 제수하니, 그 직책을 이행하도록 하라.”
위나라 건국 초, 최염은 상서로 임명되었다. 그 당시는 태자를 세우지 않았었는데, 임치후 조식(植)이 재능이 있어 태조의 총애를 받았다. 태조는 후사를 세우는 문제를 결정짓지 못하여, 봉함된 문서로 은밀히 외부에 있는 자에게 자문하였다. 그 중 최염만이 봉하지 않은 서면으로 대답했다.
“제가 듣건대 춘추의 뜻에 의하면, 세자를 세울 경우에는 맏아들로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게다가 오관장(五官將, 조비)은
애정이 깊고 효성스러우며 총명하므로 대통을 이어야만 합니다. 저 최염은 죽음을 각오하고 이것을 지키겠습니다.”
조식은 최염의 형의 사위이다.
태조는 최염의 공명함을
존중하고 감탄했다.
세어(世語)에 따르면 : 조식의 아내는 수놓은 옷을 입었는데 태조가 대에 올라 이를 보고는 금지령(制命)을 어겼다는 이유로 집에 돌아와
죽음을 내렸다.
중위로 승진시켰다. 최염은 음성과 자태에 기품이 있었고 눈썹은 시원스럽게 퍼져 있었으며, 두 눈은 맑았고 수염의 길이가 넉 자나 되어 더욱 위엄이 있었다. 평소 조정의 대신들은 그를 우러러 보고, 태조 조차도 그를 공경하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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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염은 거록(钜鹿) 사람 양훈(楊訓)을 천거했다. 양훈은 비록 재기는 부족하지만 청렴하고 성실하여 도의를 지켰기에 태조는 예의로써 그를 초빙했다. 후에 태조가 위왕이 되자, 양훈은 표를 올려 태조의 공적과 정벌의 노고를 칭송하고, 성덕을 찬양하였다.
당시 사람들 중에 어떤 이는 양훈을 비웃으며 최염이 천거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최염은 양훈에게서 표의 초고를 받아 보고, 양훈에게 서신을 보냈다.
“표문을 살펴보니 아름다울 뿐(耳)이오!
정말 훌륭하구려(時乎時乎). 이렇게 변하는 시대에 말이오.”
최염의 원래 뜻은 의논하는 자들이 다른 사람을 욕하기만 좋아할 뿐 올바른 뜻을 찾으려 않는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태조에게 최염의 편지가 그 시대를 무시하고 태조를 원망하고 비방한 것이라고 말하였으므로, 태조는 화가 나 말했다.
“속담에 ‘여자를 낳을 뿐(生女
耳)’이라는 말이 있는데, ‘뿐(耳)’이라는 것은 좋은 말이 아니오. ‘이렇게 변하는 시대에 말이오.(會當有變時)’라는 말의 뜻도 불손하오.”
그래서 최염을 처벌하여 역소에서 잡일 하는 노예로 만들고, 사람들에게 그를 보게 했는데, 그의 말과 얼굴에는 굴복의 기색이 없었다. 태조가 명령을 내렸다.
“최염은 비록 형벌을 받았는데도, 집에 빈객들을 통하게 하여 문 앞은 장사하는 사람의 집과 같다. 그는 빈객들을 규룡의 수염(虯鬚)을 기르고 얼굴을 직시하니, 마치 노여워하는 것 같다.”
이에 최염에게 죽음을 내렸다.
위략(魏略)에 따르면 : 어떤 사람이 최염의 글을 얻었다. 그는 그것을 상자에 넣어 두건으로 싸고 행차를
할 때마다 가지고 다녔다.
당시에 최염과 오랫동안 불편하게 지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길을 가다가 최염의 이름이 적힌 궤짝을 가지고 가는 사람을 보고 뒤를 따라가 자세히 살핀 다음 그 사실을 고발했다. 태조는 최염이 속으로 자신을 비방하고 있다고 하여 그를 잡아서 곤형에 처한 다음 유배시켰다. 전에 최염을 고발했던 사람이 다시 이렇게 고발했다.???
*** 사평35" 옮긴글입니다.-백세-
* 최염이 후한의 신하이긴 하나'
실재로- 원소와 조조를 섬겼다.
(섬겼다기 보다 = 관직에올라?=
결국'죽음에이르러 한조를 위해)
이대목은 최염이-조조와 조비에게
인의와 정도를 가르치는 순간이다.
맨뒤줄= 양훈이 양수와 야합하여'
결국^ 최염을 죽게 만들었다.
또, 인간의 간사하고 비겁한마음이
계속해서^ 중상하고 모함하였다.
이 모함을 그치는것이 군자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