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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astern Church Theology ]
1. 동방교회신학 개념 및 정의
동방교회신학(東方敎會神學, eastern church theology)이란 첫 번째 천년에 형성된 교회의 신앙에 뿌리내린 신학(神學, church theology)을 말한다. 삼위일체, 그리스도, 성령, 교회, 마리아 등 1세기부터 8세기 그리스도교 형성에서 나타나는 많은 신앙의 주제들 가운데 그리스 교부들이 전개한 신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동방교회신학은 신앙의 주제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서방의 조직신학과 다르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다루는 융합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학문이다. 시대와 사회를 달리함에 따라 각각의 신학 주제들과 이론이 나타나는 서방신학과 달리 초세기와 중세 그리고 현대에도 신학 방법론과 주제의 큰 변화가 없으면서 그 깊이와 의미가 영성화해 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동방교회신학은 제2경전을 포함한 성경과 성전에 기반을 두고, 이 세상을 초자연적 세계의 가현물로 본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다분히 신비적이고 그리스적이다.
동방교회의 신학자들은 사실 그리스철학의 개념들을 유용하였다. 특히 신화(theosis) 개념이 그러하다. 그래서 지난 세기 서방 신학자 아돌프 본 하르나크(Adolf von Harnack)는 그리스화된 동방교회신학을 비난하였다. 하지만 그리스 문화 안에서 그리스도교가 형성하는데 그리스 교부들의 노력은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타당하기까지 하다. 동방교회신학자 니콜라이 로스키(Nikolay Onufriyevich Lossky)는 동방교회신학이 그리스 사상의 살아있는 규범 안에서 교회의 전승을 표현하는 노력과 투쟁밖에 그 어떤 것도 아니라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헬레니즘으로가 아니라 헬레니즘이 그리스도에로 회심한 것이라고 역설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동방교회신학의 구원론 주제, 신화(神化)는 헬레니즘에서 출발하지만 비인격적인 존재에게 향하는 신플라톤으로의 복귀가 아니다. 오히려 신화는 인격적인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일치 안에서 성경적인 삶의 새로운 표현으로 드러나는 구원론이다.
2. 동방교회의 기원과 특징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 종교의 자유가 이루어지고, 그 이후 즉시 325년 니케아(Nicea) 공의회(성자의 동일본질)를 시작으로 콘스탄티노플(Constatinopolis) 공의회(381, 성령의 동일본질), 에베소(Ephesus) 공의회(431, 하느님의 어머니), 칼케돈(Calchedon) 공의회(451, 그리스도의 본질과 위격)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이 선언되었다. 그리스도교는 공의회를 통해 신앙이 선언될 때마다 단일한 교의(敎義)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었다. 하지만 동시에 같은 교의를 수락하지 않는 교회는 갈라져 나가는 고통을 겪는다. 이와 같이 교회는 신앙 교의의 선포로 일치와 갈라섬의 역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동방교회(eastern church)는 전례의 다양성으로 분류되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안티오키아(Antiochia), 칼데아(Caldea), 아르메니아(Armenia), 비잔틴(Byzantine)교회가 있다. 신앙고백의 측면에서는 칼케돈 공의회 교의를 받아들이는 동방교회와 비(非)칼케돈의 동방교회(단성론의 콥틱(Coptic)교회, 양성론의 네스토리우스(Nestorius)교회 등)로 구분할 수 있다. 동방교회를 규정하는 전례가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비잔틴 전례를 거행하는 동방교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곧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라고도 불리는 동방교회는 교부들의 유산과 7번의 세계 공의회의 결정 등 옛 전통을 서방 가톨릭교회와 함께 지속하고 보존한다. 주요 교회는 그리스 비잔틴교회, 988년 그리스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를 통해서 받아들여 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는 러시아 정교회(Russian Orthodox Church)가 대표적이다.
한편 동방교회 전통을 유지하며 교황의 통치권에 속하는 동방 가톨릭교회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동방 정교회 그리고 가톨릭교회로 들어온 동방 가톨릭교회가 있다. 루마니아,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 그리고 인도에도 동방 가톨릭교회가 존재한다. 동방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현재까지 미국, 호주, 남미로 이민하여 신앙을 지키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선언한 동방교회 교령(敎令)은 동방 가톨릭교회를 위한 교령이다. 현대 한국교회 신자들의 영적인 갈증을 해소하는데 동방교회신학에 근거하는 영성과 기도, 명상수행 등의 방법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동방교회들이 보편 교회에 얼마나 많은 공헌을 하였는지는 역사와 전통과 수많은 교회 제도가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거룩한 공의회는 이 교회의 영적 유산을 마땅히 존중하고 찬양할 뿐만 아니라 이를 온 그리스도 교회의 유산이라고 확언한다. 동방교회의 진정한 신학 전통은 성경에 뿌리를 두며, 전례 생활로 육성되고 표현되며, 살아 있는 사도 전승과 동방 교부들과 영성가들의 저술에서 양식을 얻고, 올바른 생활제도와 그리스도교 진리의 완전한 관상을 지향하고 있다.
한편 동방교회의 신학과 영성의 특징이 마음의 신학과 영성이다. 한국 심성과 정서와 연관되는 점에서 한국교회는 영적 갈증과 신앙의 토착화를 위해 동방교회신학에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동방교회에서 영적 수행의 중심은 마음이다. 마음영성, 마음기도는 동방교회 영적 전통의 헤시카즘(Hesychasm, 침묵; 고요)에서 출발하고 있다.
3. 동방교회신학의 특징과 주요주제
1) 동방교회신학의 고유한 가치
교회는 그리스인들에 의해 심어졌고 4세기 말까지 그리스어로 자신을 표현하였다. 4세기 초 원심력이 작용하여 로마제국 두 부분 사이의 정치적, 문화적 일치에 문제가 생기고 이는 교회 자체의 삶과 진지하게 신앙을 증거하는 사람들의 정신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원리는 동방교회에서 특별히 중요한 몇 가지에 상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게 될 것인 즉, 거기에서 동방교회신학의 특성이 나온다.
서방교회신학이 작고 분명한 최소화 개념을 분석하며 출발하는 곳에서 동방교회신학은 최대를 느낀다. 동방교회신학이 과학적 방법론으로 모든 것을 계획한 대로 짜임새 있게 채워가기보다는 신비의 직관적인 방법으로 신의 뜻에 따라가 스스로의 변모를 위해 모든 신학적인 가능성을 맡기고 비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백성은 신인(神人)의 충만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신화(神化)를 체험한다. 동방교회신학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일치 안에서 교회 공동체를 바라보며 하느님의 신비 안으로 몰입하여 간다.
동방교회신학의 방법론은 분석과 조직화하기 보다는 결합하고 통합하며 보편적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는 여정에서 다양한 형태와 충만한 상징으로 표현하는 교회의 경험적인 차원으로 나타난다.
동방교회신학은 삼위일체론, 그리스도론, 성사론, 교회론 등을 막론하고 철저하게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 곧 인간의 구원에 그 목적을 둔다. 그들에게 신학은 인간이 하느님을 알고 그분 생명 안에 참여하고, 구원되기 위한 길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구원은 하느님의 외적의 행위나, 명제적인 진리를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통하여 얻는 무엇이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이 되는 그 자체(신화 theosis)를 의미한다. 동방교회신학은 서방에서 ‘신학’이라고 부르는 내용의 그것보다 더 넓은 그리스도인 생활 전체를 포함한다. 신학의 중심이자 출발로 보는 신론 역시 분석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고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 머물고 일치를 이루는 그리스도인 삶에 집중한다.
동방교회신학에서 삼위일체 교의(敎義)는 단순한 철학적인 추론이 아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영적이건 물적이건 창조된 모든 실재의 원천인 동시에 세상과 인류 그리고 개인을 위해 모든 것을 이해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느님 없이 인간과 세상을 규명하려는 시도는 헛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느님은 극단적으로 알 수 없는 분이시지만 자신을 알려 주시는 분이요,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시지만 인류에게 다가오시는 분이다. 신학적 언어는 하느님을 ‘초월적 타자’인 동시에 ‘내재적 당신’이시라고 말한다. 인간 언어와 정신적 능력의 범주로는 파악할 수도 정의를 내릴 수도 없는 하느님 본질과 이해는 오직 하느님의 자기 계시에 의해서 파악된다.
계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육화의 신비 안에서 충만하게 일어난다. 세인트 그레고리우스 니사(Saint Gregorius of Nyssa),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of Nazianzus), 고백자 막시무스(C. Maximus), 팔라마스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of Palamas)의 위대한 동방교부들은 철학 문제로서가 아니라, 알 수 없는 분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이 ‘육화’의 신비를 묵상하였다. 참 사람이요, 참 하느님이신 예수님 덕분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과 참된 일치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이론이 아니라 개별 인간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나타난 하느님 사랑과의 살아있는 접촉이다. 동방교회에서 참 신학자란 신학의 내용을 보고, 체험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체험은 지성만이 아니라 영적인 눈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접촉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계시란 쓰인 문서나 공의회의 선포에 한정되지 않고 교회 안에서 현존하시는 하느님 체험, 살아있는 진리로써,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동방교부들은 하느님-인간이신 예수를 통해 인간이 하느님을 직접 알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동방교회신학에서 신앙은 전례로 표현되며 성사와 예배는 늘 삼위일체 하느님께로 향한다. 모든 전례는 영광송(doxology)으로 시작하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되풀이 찬양한다. 성경과 공의회의 신조(信條)를 바탕으로 형성된 교의의 신비는 개념이 아니라 경배 공동체의 전례 안에서 경축되고 상징과 표지로 전달된다. 성사(聖事)를 은총의 통로와 인간적 축제로 여기는 서방교회와 달리 성사는 영성생활에 도움을 주거나 단순한 경배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는 삶 자제이다. 성 요한 크리소수토무스(Johann Chrysostomos)는 성체성사를 일컬어 “우리는 거룩하신 분이 된다. 그분 살에서 나온 살이요, 뼈에서 나온 뼈가 된다. 이것이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양식이다.”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인 삶은 그리스도 안의 생명을 누리고 그분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과 맺고 생활하는 일치가 바로 성사이다. 동방교회신학은 성사가 바로 우주적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세상은 성사 안에서 성령에 의해 재창조된다. 성사는 피조물이 하느님께 되돌아가도록 한다. 성사는 사람의 존재를 신화 안에서 참된 본질로 되돌이키고 하느님이 되게 한다. 기도와 성사를 통해 믿는 이들은 육화의 신비로 인간에게 드러내신 성부와 직접적인 친교를 맺는다.
동방교회신학은 신학적인 실재 이해를 다양하게 시도하는데 신성과의 일치를 대표하고 신비주의와 제휴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계시에서도 분리를 포용하는 것을 가장 고귀한 것으로 여기고, 일치하는 정신을 가르친다. 곧 그리스도인에게 모든 것은 자유롭게 성부의 사랑하는 인격 안에서 하나를 이룬다. 신 삼위일체 논의가 인간에게 인식되는 지점은 풍요로운 다양성과 하나 되는 일치를 재건하고, 어려운 한계 안에서도 하느님의 현존을 인식하는 체험의 장이 된다. 결국 동방교회신학의 삼위일체적 신성의 가치는 신화(神化)의 실현에서 잘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다.
4. 주요 용어 및 관련 직업군
1) 주요 용어
• 신화(theosis 神化): ‘바로 이러한 목적을 두고 하느님의 말씀이신 분께서 인간이 되셨고, 하느님의 아들께서 인간의 아들이 되셨으니, 말씀께서 거두어 주심으로써 양자권을 받게 된 인간이 하느님의 아들이 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신성한 역사의 요약이 바로 동방의 영성적 가르침의 근간이다. 이러한 가르침의 목표는 인간의 신화(神化)이다.
• 삼위일체: 그리스도인의 신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시는 성부이시다. 인간성화(聖化)의 ‘왕도’는 다름 아닌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로부터 성부에게로 올라가는 것이다. 동방교회에게 있어서 이러한 원리는 관상적인 토론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적용되어 동방교회신학을 특징짓게 한다. 성령론적, 그리스도론적, 삼위일체적이 그 것이다. 성 삼위일체의 관상은 ‘신학’의 정상이다. 신학이란 우주와 우주의 법 뒤에 있는, 신 안에서의 그리고 신과의 개인적 관계를 발견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라 정의할 수 있다
• 관상: 우주적 법칙과 운명에서 해방된 인간은 성부의 현존 안에서 그분과 대화한다. 인간이 여러 존재들 및 여러 사물들과 맺는 관계는 신과의 그러한 대화에 의존한다. 따라서 인간은 기도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도, 그 어떤 것을 조직할 수도 없다. 기도의 정도가 ‘신앙생활의 척도’이다.
• 초월적 인간학(人間學, anthropology): 동방교회신학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시작하는데, 그 모상에 따라 인간은 창조되었고, 언젠가는 창조주와의 ‘닮음’에 이른다. 그것은 전적으로 영적인(서방에서 말하듯 초자연적인) 인간학이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것, 영혼과 육신의 모든 기능을 아우르니, 각자가 자신을 성령께 내어드릴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영화(靈化)되는 것이다. 따라서 세속적 ‘철학’과 세속적 학문과 문화가 순전히 인간적인 수준에서 풀고자 하는 모든 문제들은 지식, 자유, 인간의 영적 특성, 혼의 열망, 육의 욕구, 물리적 삶에 있어서의 건강에 이르기까지 더 높은 수준으로 들어 올려진다. 인본주의의 이상이 인간의 완성이라면, 그리스도교적 인간학의 이상은 인간이자 신의 이상이다.
• 교회: 동방교회에 친숙한 공동체 개념은 구원이 보편적임을 시사하며, 다른 이들과 다 함께 구원받지 않고서는 진정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함을 암시한다. 고대의 도덕적 관념에서 전제로 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일치성(unity)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생활화되어 있다. 인간의 진실한 본성이 성령을 포함하기에, 그는 모든 이에게 보편적인 ‘영혼과도 같으며,’ 한 인간의 ‘영성’은 신화된 인간인 충만, 즉 교회 안에서만 자랄 수 있다.
• 우주론: 유대인들은 하느님을 역사 속에서 발견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우주의 아름다움과 조화 속에서 그분을 찾고자 했다. 그리스도인이 된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우주적 소명을 깊이 인식했다. 그것은 단지 자신을 우주적 조화에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하여 파괴된 아름다움을 재수립하는데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우주의 완성을 위해 힘써야 하는 소명을 받았으니, 그 우주의 한 가운데에 인간은 창조의 순간부터 자리 매겨졌고, 우리는 우주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해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주적 기쁨’에 이르기 위한 수덕주의적 정화의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 수도공동체: 수도자들과 수도원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동방교회신학의 개념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처음부터 수도원 생활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상이었다. 수도자들은 계명, 모든 계명을 준수하기를 원하는 이들이었으며, 그러기에 그들은 유일한 참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들이 집요하게 실천한 세상으로부터의 도피, 엄격한 수덕주의, 그리고 그들의 노고가 목표했던 것은 다름 아닌 세례였다. 더럽혀진 인간 안에 계신 신의 모상을 정화하여 그 충만한 빛을 되찾는 것이다.
• 은수자(隱修者, hermit; anchorite) 경향: 비록 관상이 수도자들에게 자신과 인류의 영적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주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인간과 사물들로부터 고립되어 사는 가운데 이러한 일치를 사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은수적 생활이야말로 기도를 통하여 신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방법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 수덕주의: 수도원주의의 기초 가운데 하나가 수덕주의와 신비주의의 결합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은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인 즉, 실천(praxis)은 관상(theoria)에로 이끌어 준다.’ 동방 수덕주의자들은 때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고행을 하였는데 그 가치를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피의 순교를 대신하는’ 이러한 고행이 신에 대한 사랑을 충실히 실행하는 것이며, 신에 의해 창조된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세상을 정화하는 것인 동시에 성령의 힘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 마음의 영성: 동방교회는 서방 그리스도인들의 ‘이성주의(rationalism)’를 비난했다. 반면에 서방교회에서는 동방교회의 ‘감상주의(sentimentalism)’를 비난했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오해는 아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활동적인 사람들보다는 관상적인 사람들이 ‘손으로 더듬듯 어렴풋하게’ 알 수 있는 신비의 현존 안에 자신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다 더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활동적인 사람들의 관심사는 행동의 완성이다. 따라서 도덕성에 관한 책들이 그들의 흥미를 끌게 되며, 그들로 하여금 도덕성을 연구하도록 독려한다. 그러나 동방교회 사람들은 마음의 상태(katastasis)와 그 영구적 성향의 탐구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 종말론: 서방은 마르타(Martha), 그리고 동방은 마리아에 비유되었다. 수도자들의 수동성과 사도직에 관한 열정의 결여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동방 교회의 관상적 정신은 종말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우주 안에서의 인간의 완성은 바로 ‘하느님의 영광’이자, 꿰뚫는 통찰이며, 그것은 또한 맑은 눈으로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현존의 비전을 보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의 궁극적 완성이 있으며 이것이 또한 관상의 목표이다(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보는 것).
동방의 전례는 그 예식과 찬송의 풍부함을 통하여 인간의 눈에 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들은 걸출한 이콘(icon)들로 장식된 교회로 들어와서 ‘지상의 천국’을 보라고 우리를 초대한다.
2) 관련 직업군
• 동방교회 성직자(한국정교회, 성직자, 동방교회 수도원 수도자)
• 동방교회신학자(신학대학 교수, 종교연구소 연구원, 교회영성작가)
• 종교출판사 및 언론사(작가, 기자), 성지순례 여행사(해외순례안내 및 해외순례성지 개발)
참고문헌
곽승룡(2004년), 『비움의 영성』, 가톨릭출판사.
Jean Meyendorff(1979년), Byzantine Theology, Historica trends/doctrinal themes, New York.
Maria Jaoudi(1998년), Christia Mysticism East and West, New York.
Tommaso Federici(1990년), Teologia Biblica della Divinizzazione, Doxologia3, Roma.
Tomas Spidlik(1986년), The Spirituality of the Christian East, Kalamazoo Michigan.
Vladmir Lossky(1944년), Theologie mystique de l'Eglise d'Oriente, Paris.
[네이버 지식백과] 동방교회신학 [Eastern Church Theology] (학문명백과 : 인문학, 곽승룡)
첫댓글 현대 한국교회 신자들의 영적인 갈증을 해소하는데 동방교회신학에 근거하는 영성과 기도, 명상수행 등의 방법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동방교회들이 보편 교회에 얼마나 많은 공헌을 하였는지는 역사와 전통과 수많은 교회 제도가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거룩한 공의회는 이 교회의 영적 유산을 마땅히 존중하고 찬양할 뿐만 아니라 이를 온 그리스도 교회의 유산이라고 확언한다. 동방교회의 진정한 신학 전통은 성경에 뿌리를 두며, 전례 생활로 육성되고 표현되며, 살아 있는 사도 전승과 동방 교부들과 영성가들의 저술에서 양식을 얻고, 올바른 생활제도와 그리스도교 진리의 완전한 관상을 지향하고 있다.
서방교회신학이 작고 분명한 최소화 개념을 분석하며 출발하는 곳에서 동방교회신학은 최대를 느낀다. 동방교회신학이 과학적 방법론으로 모든 것을 계획한 대로 짜임새 있게 채워가기보다는 신비의 직관적인 방법으로 신의 뜻에 따라가 스스로의 변모를 위해 모든 신학적인 가능성을 맡기고 비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백성은 신인(神人)의 충만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신화(神化)를 체험한다. 동방교회신학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일치 안에서 교회 공동체를 바라보며 하느님의 신비 안으로 몰입하여 간다.
동방교회의 신학과 영성의 특징이 마음의 신학과 영성이다. 한국 심성과 정서와 연관되는 점에서 한국교회는 영적 갈증과 신앙의 토착화를 위해 동방교회신학에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동방교회에서 영적 수행의 중심은 마음이다. 마음영성, 마음기도는 동방교회 영적 전통의 헤시카즘(Hesychasm, 침묵; 고요)에서 출발하고 있다.
동방교회신학은 삼위일체론, 그리스도론, 성사론, 교회론 등을 막론하고 철저하게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 곧 인간의 구원에 그 목적을 둔다. 그들에게 신학은 인간이 하느님을 알고 그분 생명 안에 참여하고, 구원되기 위한 길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구원은 하느님의 외적의 행위나, 명제적인 진리를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통하여 얻는 무엇이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이 되는 그 자체(신화 theosis)를 의미한다.
하느님은 극단적으로 알 수 없는 분이시지만 자신을 알려 주시는 분이요,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시지만 인류에게 다가오시는 분이다. 신학적 언어는 하느님을 ‘초월적 타자’인 동시에 ‘내재적 당신’이시라고 말한다. 인간 언어와 정신적 능력의 범주로는 파악할 수도 정의를 내릴 수도 없는 하느님 본질과 이해는 오직 하느님의 자기 계시에 의해서 파악된다.
계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육화의 신비 안에서 충만하게 일어난다. 세인트 그레고리우스 니사(Saint Gregorius of Nyssa),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of Nazianzus), 고백자 막시무스(C. Maximus), 팔라마스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of Palamas)의 위대한 동방교부들은 철학 문제로서가 아니라, 알 수 없는 분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이 ‘육화’의 신비를 묵상하였다. 참 사람이요, 참 하느님이신 예수님 덕분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과 참된 일치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이론이 아니라 개별 인간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나타난 하느님 사랑과의 살아있는 접촉이다. 동방교회에서 참 신학자란 신학의 내용을 보고, 체험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체험은 지성만이 아니라 영적인 눈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접촉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계시란 쓰인 문서나 공의회의 선포에 한정되지 않고 교회 안에서 현존하시는 하느님 체험, 살아있는 진리로써,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동방교부들은 하느님-인간이신 예수를 통해 인간이 하느님을 직접 알게 되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