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시에는 삼성산(三聖山)과 관악산(冠岳山)에서 발원한 삼성천(三聖川)이 흐르고 있습니다.
요즈음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ㅇㅇ8경' 또는 'ㅇㅇ9경'을 선정하여 자기네 지역을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장 안양시에서도 2003년에 '안양8경(安養八景)'을 선정하였다가, 2020년에 관내 설문조사를 통해 '안양9경(安養九景)'으로 새롭게 변경 하였는데, 맑은 삼성천이 흐르는 계곡 일대가 제1경 안양예술공원(安養藝術公園)입니다.
안양9경에 대하여 한번 더 살펴보겠습니다.
◎ 제1경 - 안양예술공원
◎ 제2경 - 안양천
◎ 제3경 - 평촌 중앙공원
◎ 제4경 - 망해암 일몰
◎ 제5경 - 안양1번가
◎ 제6경 - 수리산 성지(최경환 성지)
◎ 제7경 - 평촌1번가 문화의 거리
◎ 제8경 - 병목안 시민 공원
◎ 제9경 - 만안교
지방하천 삼성천(三聖川)은 안양예술공원을 지나 삼막천(三幕川)을 품고 안양천과 합류되어 한강으로 흘러갑니다.
삼성산(三聖山)과 삼성천(三聖川)이 만들어낸 자연경관은 예부터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간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 박기준(朴基駿, 생몰연대 미상)은 1826년(순조 26) 4명의 문인들과 함께 관악산과 삼성산의 명승을 유람하며 그림과 시문을 <삼성기유첩(三聖記遊帖)>에 남겼습니다.
11폭의 그림 중 제1폭 남자하(南紫霞)가 바로 이곳 안양예술공원 일대입니다.
안양예술공원의 초입 중초사교(中初寺橋)에서 바라보면 옛 (주)유유산업 공장을 리모델링한 안양박물관 뒤로 삼성산이 보입니다.
1950~60년대 수도권 대표 관광지였던 안양유원지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삼성산 골짜기에 천연수를 이용한 자연풀장 '안양풀'(安養プール)이 문을 연 이래로 오랫동안 서울 근교에서 인기 높은 휴양지 였습니다.
1960년대 안양유원지 입구의 모습입니다.
(주)유유산업에서 안양유원지 홍보탑을 세워서 후원을 하고있습니다.
반공 방첩 표어도 보이네요.
이렇게 조성된 풀장이 1970년대에는 7개에 달했고, 1969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고 안양유원지(安養遊園地)로 불리며 여름철엔 수많은 인파가 찾아와 계곡을 가득 메웠습니다.
1960년대 안양역사의 모습.
안양유원지가 한창 인기가 높을때에는 서울에서 안양까지 임시열차가 운행되었다고 합니다.
# 이렇게 큰 사랑을 받던 안양유원지가 쇠락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60년대 말 삼성천 상류에 대형 인공풀장들이 들어서면서 많은 행락객으로 자연경관은 점점 훼손되어가고 행락객들이 마구 버린 오물들이 문제였습니다.
또한 1977년 대홍수로 상류에서 떠내려 온 토사와 자갈, 바위로 휩쓸리고 메워지며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그 후 국민관광지 지정이 취소되고 삼성천은 방치되었습니다.
안양시는 2000년대에 들어서 안양유원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홍수로 파괴된 계곡을 정비하고 계곡 주변에 조경수를 식재, 노후된 상업시설 철거와 새로운 상가 조성으로 안양유원지는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양유원지가 새롭게 태어난 계기는 2005년에 개최한 제1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였습니다.
안양시는 안양유원지를 단순한 휴식 공간의 차원을 넘어 자연과 사람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명소로 새롭게 탈바꿈하고자 시민공모를 통해 '안양예술공원'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안양예술공원 주차장에서 상류쪽을 바라보면 물막이가 쌓여있고 축대 중간에 큼지막한 바위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공원 초입 계곡에 있는 이 바위는 일본어 표지석인데, 일제강점기 당시인 1932년 안양풀을 만들때 조성한 표지석으로 대형 암석에 새겨진 명문입니다.
이 표지석은 안양예술공원 입구 주차장을 지나 오른쪽 도로를 따라 100미터쯤 지나 삼성천으로 가는 돌계단을 내려가면 돌을 쌓아 만든 사방댐 중간에 있는데 불쑥 튀어나와 있는 자연석에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바위에 '안양풀(安養ブ-ル)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1920년대 안양역장(安養驛長) 이었던 혼다 사다고로(本田貞五郞) 가 이곳 삼성천을 막아 안양풀장을 만들면서 세운 안양 풀장 준공비입니다.
이곳 석수동의 원래 명칭은 석수동(石手洞) 이었으나, 안양 풀장을 만들면서 '손 수(手)'자를 '물 수(水)'자로 바꾸어서 석수동(石水洞)이 되었습니다.
한자와 일본어로 '안양풀(安養ブ-ル)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준공비 말미에 '소화 7년 8월 준공 마쓰모토 씀(昭和七年八月 松本 書)'이라고 일본어로 적혀 있습니다.
소화 7년은 1932년입니다.
마쓰모토 마코토라는 이는 이 글씨를 쓸 당시에 경기도지사(재임, 1931. 9. 23.~1934. 11. 5)를 지낸 인물로 준공비를 세우고 자기 이름을 새겼습니다.
안양 풀장 준공비의 모습입니다.
*안양풀장에 대해 상세하게 나와있어 소개합니다
<네이버 민족문제연구소 출처 >
일본인 도지사의 휘호로 새겨진 ‘안양풀(安養プール) 바위글씨(1932년)’
- https://naver.me/GKUztoeZ
일본인 도지사의 휘호로 새겨진 ‘안양풀(安養プール) 바위글씨(1932년)’
[이 땅에 남아있는 저들의 기념물 7] 일본인 도지사의 휘호로 새겨진 ‘안양풀(安養プール) 바위글씨(1932년)’ 1938년에는 혼다 사다고로(本田貞五郞) 안양역장의 기념비도 건립 이순우 특임연구원 수도권 전철 1호선 관악역(冠岳驛,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서 내려 10여 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안양예술공원의 초입에서 삼성천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옛 유유산업 안양공장 터에 남아 있는 김중업건축박물관과 안양박물관이 나타난다. 이 구역의 주변에는 중초사지 당간지주, 중초사지 삼층석탑, 안양 석수동 마애종(磨崖鐘)은 물론이...
naver.me
<참고자료>
[안양의 자랑 안양9경 알아보기 - 한국평생교육사협회 안양지회]
[1960~70년대 안양유원지 사진 제공 - 안양시문화유산해설사회 조성현]
[네이버 민족연구소 자료 소개 - 안양시문화유산해설사회 문애심 총무]
첫댓글 오늘에서야 읽어봅니다.
임곡중수업에 참고용으로 올려 주신것 같은데 ㅎㅎ
어쨌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