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은 정말로 이성적인가?”
탈진실, 음모론, 정보 과잉, 극단의 시대
당신이 보고 믿는 것이 정말로 진실인지 질문하는 책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를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또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이 항상 옳고 ‘팩트’에 부합하다고 간주한다. 그래서 나와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틀렸고 ‘비합리적’이라고 쉽게 단정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인간은 합리적인가? 내가, 당신이 아는 것이 전부인가? 《제정신이라는 착각》은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보고 믿고 진실이라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일종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낱낱이 논증한다.
저자 필리프 슈테르처는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이다. 막스플랑크 정신의학연구소와 시각지각연구소 등에서의 다양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분열증(조현병)’의 지각 과정 변화에 대한 선구적 연구로 학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런 그가 주목한 사실은, 우리가 흔히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평범한 사람들의 뇌 기능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것, 즉 망상적 사고와 정상적 사고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뇌는 머리뼈 안 깜깜한 공간에 갇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시종일관 주어지는 감각 데이터(자극)로 세계상을 구성한다. 이 책은 이렇게 뇌가 데이터에 의지해 세계상을 형성하는 과정을 추적하며, 확신은 어디서 생겨나 유지되고 어떻게 기능하는지 안내한다. 철학, 유전학, 사회심리학, 인지심리학, 신경과학을 넘나들면서 최신 뇌과학 이론과 지난 10년간 자신의 연구 결과를 총망라해 인간 이성의 오류를 파헤친다.
이 책은 독일 아마존에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라 두 달 넘게 1위를 달성하며 화제를 낳았다. 독일 언론의 찬사와 함께,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철석같이 믿어온 인간의 이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많은 이에게 통찰과 적잖은 충격을 동시에 안겨줬기 때문이다. 극단의 시대,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이성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이 책은, 이성이라는 환상에 발목 잡힌 현대인을 위한 필수 교양서가 되어줄 것이다.
뇌과학과 정신의학이 밝히는 인간 이성의 오류
왜 모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까? 나와 다른 생각이 불편한 까닭은?
철학적 탐구를 넘어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추적하다!
이 책은 질문한다. 코로나 음모론자, 기후 위기 회의론자, 가짜 뉴스 신봉자… 우리는 왜 같은 것을 보고 서로 다른 논리에 빠질까? 누가 제정신이고, 누가 제정신이 아닐까? 우리의 정상적인 생각조차 비합리적이라는 사실, 즉 합리성의 착각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뇌는 우리에게 유리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세계를 구축한다. 우리의 인식은 때로는 세상과 더 많이, 때로는 덜 일치하는 환상에 불과하다. 일치성이 적을수록 제정신과는 멀어지지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유동적이다.
1부에서는 인간의 비합리성을 규명한다. 러시아 마피아가 자신의 휴대폰을 해킹했다고 확신한 존, 뉴욕 지하철에서 제2의 9·11 사건이 일어났다고 느낀 뼛속까지 철두철미한 과학자 헬렌, 사위가 계속 자신의 물건을 훔친다고 여긴 노부인 마르가레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비합리적 확신이 예외적이지 않고 주변에 만연한 일임을 알린다. 이로써 ‘정상’과 ‘비정상’, 심리적으로 ‘건강한’ 상태와 ‘병든’ 상태가 서로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이러한 비합리성이 결과적으로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하나의 전략임을 밝힌다.
2부에서는 예측 기계로서의 뇌를 탐구한다. 과학적 사례와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왜 인간이 모두 자기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지 그 이유를 들려준다. 특별히 이 책에서 다루는 주요 이론으로 ‘예측 처리 이론(predictive processing)’은 대중 과학서에는 처음 소개되는 내용이다. 신경과학과 철학에서 ‘현실과 조화를 이루는 환상’을 묘사하며, 뇌가 생성 모델로 일하며 감각 데이터를 근거로 자신의 예측에 부합하는 데이터를 만들어낸다고 가정하는 뇌 기능 이론이다.
◆ 남성은 왜 실제보다 자신을 더 잘생기고 우월하다고 여길까?
대개 남성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여성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합리적인 이성’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남성도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매긴다. 저자는 이런 비합리적 사고의 원인을 진화적 적합성에서 찾는다.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생존과 번식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번식의 기회를 놓치면 손해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수컷 공작새가 실생활에 전혀 쓸모가 없고 심지어 방해가 되는 화려한 깃털을 가진 것도 그러한 진화의 연장선이다. 반면, 여성은 이성을 빈번히 유혹했다가는 임신이라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기 때문에 실수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남자와 여자의 지각에서의 비합리성이 다르게 발현된 이유다.
◆ 엄마는 왜 고슴도치맘이 될 수밖에 없는가?
자기 자녀의 자질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열렬히 칭찬하는 부모를 보면서 속으로 눈을 흘겨본 경험이 있는가? 부모에게는 세상에서 내 자식이 제일 귀하다.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그런 이유로 자녀의 부족함을 객관적으로 지각하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 일종의 긍정적 환상으로, 이는 배우자와의 관계를 안정시키고, 후손을 더 잘 돌보게 만든다. 이 역시 인간 이성의 오류인 셈이다. 자녀의 약점을 간과하는 부모의 생각은 일종의 망상으로, 생존과 번식을 잘해내기 위해 나타나는 인지 편향의 결과다.
◆ 인간은 왜 집단에 소속될 때 안정감을 느끼는가?
기후변화와 진화, 종교, 정치, 스포츠 등에 대한 서로 다른 확신은, 관련 정보가 얼마나 있는지 혹은 그 지식이 얼마나 잘 전달되는지와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런 확신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와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는지가 더 중요하다. 대대로 인간은 같은 종족과 잘 지내는 일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공동의 신념은, 복잡한 사회에서 집단을 한데 뭉치고 연대하는 유익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탈자나 다른 집단을 배제하는 데 유용하게 작용해왔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비합리적 확신을 띠는 이유다.
◆ 언제 어디서나 규칙을 찾아 헤매는 인간의 본능
뇌는 예측 기계로서 반복되는 패턴을 인지하는 데 특화됐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함이다. 가령 행운이 여러 번 겹칠 때조차 사실 우연인데도, 그 행운이 다음에도 일어날 거라고 확신하는 식이다. 예측 기계인 뇌가 어느 정도 무리 없이 기능하는 것은 뇌가 예측하고자 하는 세상이 많은 면에서 상당히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예측은 뇌가 지각을 만들어내는 일을 돕기 때문에 명확하지 않은 상황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쉽게 예단한다. 또한 감각 데이터가 불확실하면 뇌는 예측을 더 강하게 구축한다. 우리의 확신이 더 굳건해지는 원리다.
지나친 자기 확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와
타인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
“확신을 합리와 비합리, 건강한 것과 병든 것으로 양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확신이 ‘정상적인 것’으로 혹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해도, 모두 가설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나와 다른 관점에 열린 태도를 취하고 세상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_본문에서
확신은 복잡성을 줄이고, 결정을 수월하게 하고, 집단에 소속감을 부여하는 등의 편리성을 갖지만, 흑백논리, 양극화, 이분법적 사고와 같은 폐해도 함께 수반한다. 전쟁, 팬데믹, 기후변화 등 시대가 마주한 많은 현안 아래에 우리가 각자의 확신을 고수하기보다 서로에게 관용을 베풀고 개인의 확신이 가설로 기능한다면, 건설적인 대화의 가능성을 확장시킬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우리 자신의 사고에 비판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세상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자, 이제부터 확신이 생기면 다음과 같이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면 어떨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가? 진실인가? 이토록 확신하는 근거는?”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이 같은 생각의 교정이 나와 생각이 다른 타인과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다.
핵심 명제는 바로 이것이다. 어떤 확신이 ‘정상적인’ 것으로 혹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것은 언제나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설은 종종 우리에게 커다란 유익이 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견하게 해주고, 그런 사건에 더 쉽게 대응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설은 가설일 따름이다. 즉 아직 입증되지 않은 가정이므로, 언제든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_19쪽
비합리적 확신의 모든 예는 인식적 비합리성이 결코 망상만의 특성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에게서도 만연한 것임을 보여준다. 종교적 믿음이나 미신처럼 인식적 합리성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확신이든, 이성의 옷을 입었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비이성적인 음모론이든, 인식적 비합리적 확신은 예외라기보다는 규칙에 가깝다. 대부분 병리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히 ‘평범한’ 것들이다. _83쪽
진화는 뇌를 굉장히 예민한 패턴 인식 기계이자 행위 감지 기계로 만들었다. 그렇게 해야 생존하고 번식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비합리적 결론, 확신, 행동으로 이어지는 인식적 오류를 저지른다. 그러나 오류 관리 이론에 따르면 이렇게 현실을 오인하는 것은 적응적일 수 있다. _144쪽
즉 어떤 확신이 사회적 의미에서 그르다면 그것은 개인으로 하여금 굉장히 높은 비용을 지불하게 할 수 있다. 일탈자나 배신자가 되어 공동체에서 배제될 수 있고, 나아가 생존에 중요한 자원이나 성적 파트너에게 접근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사회적 압력이 있기에 비합리적 확신을 가져도, 그 확신이 사회적으로 잘 기능하는 한 우리 뇌는 비합리적 확신을 하는 경향을 띨 것이다. _161쪽
그 밖에 우리는 이렇게 예측하는 일이 원래 어디에 좋은지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우리 뇌에 중요한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일투성이인 세상에서 가능하면 안전하게 지내는 것이다. 생존 가능성과 재생산 가능성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잘 지내려면 행동을 분명히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다. _211쪽
우리의 확신이 가설이라는 것은 그것이 언제든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결국 세상에는 뇌의 수만큼 많은 서로 다른 내적 모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모델들은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 이 모델들이 우리가 똑같은 현실 세계를 살아가며
경험하는 것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유전적 소인이 다르고 삶의 경험이 다른 만큼 모든 뇌는 자신의 개인적 내적 세계 모델을 바탕으로 기능한다. _306쪽
자신의 확신이 완전히 확실한 팩트가 아닌, 원칙적으로 가설임을 의식하고, 자신의 확신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만 해도 정말 많이 이룬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 대한 완전한 진실을 알 수 없다. 우리의 확신은 이런 불확실함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 뇌의 중요한 전략이다. 확신은 우리에게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옳은 것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주관적 확실함에 오도된 채 자신의 확신만이 옳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_320쪽
나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다. 포퓰리즘적 여론 선동은 합리적 논증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열린 태도와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분별력과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해나가라고 권하고 싶다. 이런 일에서 우리의 머릿속에서 확신이 어떻게 생겨나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의식하는 것은 굉장히 도움이 될 것이다.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건설적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언제나 가치 있는 일이다. _3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