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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도를 걷다
박대영 기자
SBS NEWS 기사 작성일 : 2017.03.09
이른 3월의 어느 아침, 창문을 넘어온 한 줌의 봄 햇살이 어딘가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고 유혹을 한다. 또 어쩌면 봄이 왔다고 속살대는 내 안의 누군가가 회유내지 겁박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하나?
스마트폰을 뒤적이다, 장봉도라는 이름을 발견한다. 어딘가에서 듣고 적은 놓은 것이리라. 그래, 장봉도로 가자!
장봉도는 영종도의 삼목 선착장에서 카페리로 30분 거리에 있는 섬이다. 3,000원의 뱃삯을 치르고 배에 올랐다. 꽃샘추위가 시샘하는 평일 낮의 한계였을까? 배에는 10여 명의 승객만이 오도카니 있었다.
그런데 뱃전에 오르자마자, 나에게 떠나라고 유혹했던 봄 햇살이 사실은 기망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도둑고양이처럼 창을 넘어선 여린 봄 햇살의 월창(越窓)이 추위와의 전쟁이라는 참화의 서막이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하였다.
배에 오르고 나서는 새우깡에 꼬여든 갈매기들의 소란에 정신을 팔린 터라 다만 꽃샘추위이겠거니 했다. 그렇게 추위보다는 새우깡을 들고 희롱하는 사람들의 그 치사한(?) 손짓을 향해 날아드는 갈매기를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 줌의 새우깡을 보고 연대 병력의 갈매기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양은 신기하면서도, 안타까웠던 것이다.
배가 기적도 없이 뱃머리를 돌리고 나서도, 갈매기들은 새우깡에의 미련인지, 아니면 사람들과 어우러져 노는 맛에 길들여진 것인지, 여하튼 다음 섬(신도)에 다 가도록 배와 동행하고 있었다. 갈매기가 지쳐 서서히 멀어질 즈음, 저 멀리 또 하나의 섬이 보인다. 장봉도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장봉도에 입도했다는 처녀지 정복의 환희를 느낄 새도 없이 바닷바람의 강력한 스파이크가 내 뺨과 몸뚱이를 강타한다. 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바닷바람 무서운 줄 몰랐더니, 신고식이 예사롭지가 않다. 강풍 속에 바늘이라도 숨겨져 있는 듯 따갑고, 또 아프다.
잠시, 이대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추위 속에서 산행이 가능할까? 올겨울 들어 최고의 추위와 맞선 느낌이라, 괜한 고집부리지 말자는 유혹에 잠시 흔들린 것이다.
산행은 나중에 생각하자 하고, 선착장에서 멀리 보였던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작은 섬이나마 보고 가자는 생각을 했다. 그 작은 섬의 이름은 ‘멀곶’이다. 멀곶이라는 이름은 바다 가운데에 있는지라 가까워도 먼 곳과 같다 해서 멀곶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멀곶이 관광의 목적으로 장봉도와 잔교로 연결되어 있으니 더 이상 멀곶은 ‘먼 곳’이 아니었다.
그 멀곶을 가기 위해 잔교에 올라서는 순간, 어라~ 몸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리고 추위는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다. 얼굴이 따가울 지경이다. 바람을 막아 줄 벽 하나 없는 바다 한 가운데서 맞는 추위는 꽃을 시샘하기는커녕, 그냥 한겨울이었던 것이다.
고민이 깊어진다. 산으로 가야하나...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야 없지 않은가.
도망치듯 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바다에 비하면 산은 부드러웠고, 또 너그러웠다. 그렇다고 바람이 비껴갔다는 건 아니다. 그 바람이 산을 오르는 동안에는 조금은 순해졌다는 말이다.
장봉도의 산은 국사봉(151m)를 정점으로 크고 작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150여m의 산도 산이냐고 되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나름 아기자기하면서도 적잖은 체력과 끈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주요 코스는 장봉 선착장에서 시작해서 가막머리 전망대에 이르는 완주코스로, 길이는 13km 남짓. 오늘 걸어야 할 길이다.
등산로 초입의 오르막은 우려와 달리 오히려 가뿐하다. 아마도 그 길이 칼바람을 피하는 도피처였고, 아직도 뒤쫓아 오는 바람이 등을 떠미는 덕에 힘이 반나마 덜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걸었을까. 산이 너무나 한적하다. 오가는 이가 하나 없는 그야말로 고즈넉하기 그지없다.
길 위의 양지바른 언덕에는 언제 칼바람이 불었던가 싶을 정도로 따사로운 햇살이며, 바다가 눈앞 가득인 탁 트인 조망이 그야말로 딴 세상이다. 숨어있던 기운과 의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장봉도의 산등성이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들이 모여 만들어진 길들이 굽이굽이 이어지고 있었다. 새삼 루쉰(魯迅)의 “본시 땅 위에 길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 보면 그곳이 곧 길이 된다.”는 말을 실감한다.
장봉도의 길은 섬을 가로지르는 등성이를 따라 이어져 있으므로 단순하다. 그냥 걷기만 하면 길은 저절로 열린다.
산등성이에 오르자, 정자가 낯선 이를 맞는다. 새삼 고요한 천지간에 좌우로 바다를 거느리고 나 홀로 걷고 있음을 깨닫는다. 흔치않은 경험이고, 작은 섬인 장봉도만의 특별한 풍경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홀로 걸으며, 내 몸과 길이 만나는 그 접점의 감각이 오롯이 살아나 몸속으로 퍼져나가는, 지금 이 순간의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어쩌면 걷는다는 것은 사색의 여정이기 보다는, 몸을 자각하는 과정일 것이다. 흐르는 땀과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길의 변덕스러움과 다양성, 스치는 바람의 싱그러움, 들풀과 같은 자연의 변화를 깨달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걷는다는 것은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살아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장봉도의 길은 주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어 좌우로 바다를 아우르며 걷는 즐거움이 있다. 그런 이유로 능선을 걸을 때, 산을 따라가는 제 딴에는 반가워서 그러는지 모르지만 무턱대고 안겨드는 칼바람은 반가우면서도 성가시다. 차라리 무섭다. 아직은 겨울의 긴 터널을 벗어나지 못한 탓이리라.
어느새 길은 바닷가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름이 재미있다. ‘뒷장술’ 해안가이다.
장술의 의미는 해변의 물을 막아준다는 뜻으로, 해변의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이 파도를 막아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뒷장술은 독바위 뒤에 있다하여 뒷장술이라는 설명이다. 마찬가지로 ‘앞장술’도 있고, ‘긴장술’도 있다.
이정표가 백사장을 걸으라 하니 가고는 있지만 제대로 가는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다행인 것은 얼마 전 대부도의 해솔길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지라 가다 보면 길이 나올 거라는 믿음은 있다.
동행이 없는 호젓한 백사장에서의 걷기는 뒤따라오는 내 움직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무심히 모래 위에 박혀있는 발자국들이 가없이 이어지고 그 위를 걷는 사람은 생각한다. 내 삶의 여정도 어딘가에 수많은 흔적을 남겨두었으리라는 짐작이 그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지자 새삼 걷는 걸음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과거와의 절연이야 가능하겠느냐마는 새롭게 걷는 걸음만큼은 부드럽고 단정해야 한다는 부담이 뒤따른다.
오래지 않아 이정표는 다시 산을 오르라 하고, 길은 장봉도의 지붕인 국사봉(151m)으로 향한다.
어느 길이야 걷는 행위는 다를 게 없다. 두 발을 뚜벅뚜벅 번갈아 내딛으면 될 일이다. 다만 길에는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고 부드러움과 거침이 있어, 걷는 이가 가려 걸으면 될 일이다. 그렇게 걸음을 떼어놓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다.
국사봉이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장봉도의 마을은 북풍을 피해 산을 등진 채로 섬의 남쪽 해안을 둘러 퍼져 있다. 장봉1리부터 장봉4리까지가 장봉도의 마을이다.
길은 다시 내리막으로 접어들어 가막머리 전망대를 향해 뻗어 있다. 가막머리는 장봉도 서쪽 끝, 그야말로 장봉도의 땅끝이다. 가막머리 전망대가 장봉도 종주의 대미(大尾)인 것이다.
산을 내려온 길은 마을 옆을 지나고, 나무를 베어 실어 나르던 임도를 만나기도 하고, 또 그렇게 희미해지기도 하다가 기어이 산으로 다시 이어진다. 때로는 길은 길속에 다른 길을 숨겨놓아 선택을 강요하고, 걷는 이는 제 원하는 방향의 길을 선택하여 부지런히 발을 옮겨 놓는다. 그렇게 길은 길 위에서 또 다른 길을 만나고 또 헤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끊어진 길은 사람들이 출렁다리로, 잔교로 이어놓았다.
또다시 오르막이 저 멀리 계단의 모습으로 이어져 있다. 인간의 삶은 올라갈 때가 행복하다고 하더니 산길은 오르막이 힘겹다. 그것도 계단은 더 힘들다. 하지만 가야 하는 길이니 달리 다른 방도가 없기에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게 오르고 내리기를 여러 번, 아뿔싸! 가막머리를 2km를 남겨둔 지점에서 애지중지하던 스마트폰 밧데리가 종언을 고하고 말았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사진 촬영과 같은 기록이 불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마트폰이 아웃되니 아쉬운 건 검색이나 카메라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간과의 이별이라는 막막함이었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걷는데, 시간을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암담할 줄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삶의 강박은 그나마 여유를 누려보자며 떠난 장봉도에까지 따라나선 것이다.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만의 특수성이 강박을 더욱 키우고 있었다. 왜냐하면 마지막 배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간이 오후 3시 무렵, 남은 길은 가먹머리를 갔다가 버스정류장이 있는 마을까지 돌아오는 거리는 5~6km 남짓. 6시의 마지막 배(그때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나중에 선착장에 도착해 알아보니 오후 9시 20분이 막배였다.)를 타기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다.
하지만 걸음은 바빠지고 분주해졌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혹시나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시간이 더 지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부에서부터는 길은 오직 외길이다. 봉화대를 지나고, 바위 능선에 오르니 탁 트인 조망이 나타났다. 따로 카메라를 챙기지 못한 준비부족이 두고두고 못내 아쉽다. 저만치 아래 남쪽 해변에는 긴 모래톱이 이어진다.
얼마를 더 갔을까. 오래지 않아 가막머리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널찍한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전망대는 덩그러니 외롭게 바다와 외롭게 대면하고 있었다. 가막머리 전망대에서는 낙조가 일품이라는데,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다만 가막머리 낙조의 아름다움은 나중에 옹진군청 사진갤러리에서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가막머리는 긴 세월 동안 파도와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해식절벽이다. 바다를 뚫고 강화도 저 너머까지 나아가고자 했지만 섬은 더 이상 바다를 뚫지 못하고, 파도에 가로막히고 맞아 머리가 뭉개진 채로 그렇게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을 돌아가는 방법이 있고, 썰물일 때는 해안길을 따라 이어진 해안 둘레길을 따라가도 된다. 해안 둘레길은 가막머리에서 장봉4리 건어장 해안까지 이어져 있다.
나의 목적지도 건어장 해안이다. 거기에 버스 종점이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걷기에는 저질 체력이 받쳐주질 않고, 그보다도 막배 시간을 맞추려면 걷는 만용은 지극히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안둘레길은 나무 목책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갯바위를 타고 넘고, 개펄이 드러나 보이는 모래톱을 지나는 길은 산길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 거기에도 오르막 내리막은 번갈아 행인의 발을 성가시게도 하고, 또 재촉하기도 한다.
다만 바다를 에둘러 가는 해안 둘레길은 산과 바다가 주는 조화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산을 걷는 이의 투쟁심에, 바다가 드넓게 펼쳐지는 전망대에서의 여유로움이 더해져 걷는 이는 마음을 한결 여유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시간을 모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다. 걷다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해의 기울기로 시간을 가늠해 보지만,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수준일 뿐이다. 그저 발을 서둘러 움직이는 것 말고는 달리 다른 방도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간간이 저 혼자 섬 전체를 세 얻어 노니는 착각에 빠지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길 위로 오가는 사람들, 또 길 위에서 만나는 풀 한 포기, 들꽃 하나, 바람 한 점, 햇살 한 줄기, 하물며 돌멩이 하나와도 인연을 맺고, 또 그들과의 동행을 인식하는 것이 걷는 일의 본질일진데, 여유 없는 바쁜 마음이 이를 허락하지 않음이 아쉽다.
해안 둘레길이 끝나갈 즈음, 마을이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화살표로 방향을 일러준다.
포장길이 나타난다. 마침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시는 마을 어르신께 시간을 물었더니, ‘아까 4시가 넘었던 것 같던데......’ 하신다. 그 분에게는 시간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모름지기 섬에서는 시간에 쫓기지 말아야 했던 것이다.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가면서 스스로 자문해 본다. 왜 여기까지 와서 걸었느냐고? 사실 무작정 나선 길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으랴 마는, 굳이 대답한다면 길 하나는 수집하였다는 생각에 위안을 한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 하나를 얻었다고......
사색이니 자아발견이니 하는 거창한 구호야 내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닌지라, 단지 다시 찾아와 걸을 수 있는 길을 얻었으며, 덤으로는 몇 방울의 땀과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공기와 왠지 반 평(坪) 정도는 넓어진 것 같은 마음 정도가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누군가 말했다. “삶이 고독하면 걸으라.”고...... 아마도 걷기에는 나름의 치유력이 있다는 말일게다. 장봉도의 일주 코스를 걸으며 무언가가 치유되었기를 기대해 본다.
인어가 사는 곳, 섬들과 어깨동무하며 걷는 장봉도
여행스케치 기사 승인일 : 2021.10.07.
박정웅 기자
거칠지만 투박해서 더 멋진 갯티길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트레킹, 가막머리 전망대의 조망
[여행스케치=옹진(인천)] 트레킹으로 유명한 섬이 있다. 길 ‘장’(長)에 봉우리 ‘봉’(峰) 자를 쓰는 인천 옹진군 장봉도가 그곳이다. 지명이 말하듯 장봉도(長峰島)에는 국사봉(150m)을 중심으로 동서로 뻗어나간 외줄기 산봉우리가 길게 이어져 있다. 덕분에 아름다운 숲과 바다를 아우르는 섬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서해안 낙조 명소가 있어 사진과 추억을 담기에 그만이다.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장봉도 섬 트레킹
산 능선과 해안을 걸으며 숲과 바다가 주는 청량함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게 장봉도 트레킹의 매력이다. 장봉도는 섬 치고는 접근성이 좋아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 인천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장봉도 옹암선착장(장봉바다역)까지 뱃길로 30분(신도선착장 경유 10분 포함)이면 된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장봉도를 많이 찾는 이유이다.
장봉도 섬 트레킹 길은 갯티길로 통한다. ‘갯티’는 만조와 간조 때의 조간대(潮間帶)를 가리킨다. 갯티길 7개 코스가 장봉도의 능선과 해안을 감싼다. 등산로와 해안둘레길로 이뤄진 갯티길 가운데 섬의 서북쪽 끝인 가막머리전망대는 갯티길의 핫플레이스다. 가막머리전망대는 서해안 낙조 명소 가운데 하나다. 탁 트인 하늘과 숲, 그리고 바다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가막머리전망대로 향하는 갯티길은 2코스(하늘나들길)와 4코스(장봉해안길)이다. 장봉도 공영버스의 종점인 건어장해변(장봉4리)에서 등산로를 오르면 된다. 등산로와 해안둘레길, 다시 말해 장봉도의 산과 바다를 두루 걷고 싶다면 이 두 코스를 엮어 원점회귀 코스를 잡을 수 있다. 각각 약 3km 코스로, 더해서 걸으면 3시간가량 걸린다. 참고로 장봉도 공영버스는 여객선 시간에 맞춰 장봉바다역에 머문다. 장봉바다역과 건어장해변을 오가는데 요금은 현금(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만 받는다.
버스 종점(팔각정) 바로 옆 등산로를 오른 뒤 약 100m 지점에서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걸으면 2코스를 만난다. 2코스는 코스명에서 짐작되듯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다. 외줄기 능선 좌우로 서해바다를 내려다보고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막머리전망대까지는 땀깨나 쏟아야 한다. 능선을 따라 크고 작은 봉우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봉화산(130m) 봉화대에서의 바다 조망은 시원하다. 이곳까지 대략 1시간 걸음이니 팔각정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다.
어깨동무하는 섬, 가막머리전망대에서의 조망
가막머리전망대에서 2코스와 4코스가 만난다. 전망대에 서면 동만도와 서만도, 볼음도, 석모도 등 서해의 여러 섬들이 어깨동무하는 풍광을 담을 수 있다. 이곳의 바다는 여러 개의 풀등을 연출한다. 이런 즐거움을 맛보려면 수고로움은 감수해야 한다. 서해안의 다른 낙조 명소와는 달리 이곳은 두발 말고는 다른 교통편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롯이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길의 시작부터 전망대까지 인가나 가로등이 전무하다. 만약 낙조를 염두에 둔다면 채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전망대에서 건어장해변까지 아주 빠른 걸음을 해도 1시간 이상이 걸린다는 점도 주의하자.
전망대에서 바다로 향해 난 4코스 장봉해안길 또한 만만치 않다. 해안둘레길이라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편안한 데크길을 생각해선 안 된다. 등산로 뺨치는 길이 건어장해변까지 이어진다. 깎아지른 산사면, 아찔한 해식애에 발끝에 힘이 들어간다. 말 그대로 해변을 걷는, 해안둘레길 구간은 짧다. 봉화대를 오르는 지점 이후부터 유노골(윤옥골)까지 해변길은 수백여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장봉도 섬 트레킹을 위해선 등산화와 스틱을 준비하자. 다소 거친 길이나 투박해서 멋이 있다. 덜 훼손된 산과 바다의 길이다. 능선길과 해안길에서의 조망, 바닷바람을 가르는 맛이 장봉도 트레킹의 매력이다.
인어상·옹암구름다리, 장봉바다역 명물
장봉도의 관문은 장봉바다역(옹암선착장)이다. 장봉도를 찾는 탐방객은 배 시간에 장봉바다역 주변에 잠시 머문다. 섬의 관문답게 장봉바다역 주변에는 섬을 상징하는 것들이 있다. 인어상과 옹암구름다리(작은멀곶잔교)가 대표적이다. 이것을 담지 않으면 장봉도 여행은 헛걸음이란 얘기다.
장봉바다역 매표소와 나란한 장봉도 여행자센터에서 ‘동화 같은 섬, 장봉도’ 여행 리플릿을 손에 쥔 뒤 바로 옆 장봉도 인어상 해상쉼터로 향한다. 해상쉼터에는 인어 청동상이 앉아 있다. 바다를 등지고 장봉도를 바라보는 인어상은 전설을 갖고 있다. 한때 장봉도 어장은 우리나라 3대 어장에 속했다. 한 어부가 날가지 어장에서 그물에 걸린 인어를 측은하게 여겨 다시 바다에 넣어줬는데 그 후로 많은 물고기가 잡혔다는 것. 장봉도 사람들은 이를 인어의 보은(報恩)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인어상 북쪽에는 인상적인 구름다리가 보인다. 해상쉼터에서 북쪽으로 약 500m 지점에 있는, 장봉도와 작은멀곶을 연결한 약 200m 길이의 옹암구름다리다. 장봉도와 모도 사이의 작은 무인도인 작은멀곶은 간조 때에도 장봉도로 이어지는 바닷길이 열리지 않는다. 오로지 배로 건너갈 수 있었다. 가깝고도 먼 곳이라는 작은멀곶의 지명을 엿볼 수 있다.
장봉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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