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크레파스'라는 동요풍의 가사가 인상적인 곡으로 잘 알려진 배따라기는 전곡을 작사, 작곡하는 특출난 감성의 소유자 이혜민이 리드하고 맑은 음색을 가진 양현경이 주요 멜로디를 부르는 형식으로 짜여진 혼성듀엣이다. 혼성듀엣이지만 둘이 번갈아 부르는 형식이나 한쪽이 주요 파트를 부르고 다른 한쪽이 화음을 넣는 여타 그룹과 달리 대부분의 앨범에서 3~4곡을 제외하곤 이혜민이 거의 다 부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여성 보컬 위주의 곡들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981년 <연포 가요제>에서 데뷔한 이들은 1984년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란 곡으로 라디오를 강타하며 최고의 인기 그룹으로 떠오른다. 이어 '내 마음은 외로운 풍차예요', '그대 작은 화분에 비가 내리네' 등의 긴 제목으로 계속 해서 인기를 얻으며 꾸준한 앨범 판매고를 올린다.
이들은 TV에 거의 등장하지 않아 얼굴 없는 가수의 전형처럼 여겨졌는데 그 이유는 이혜민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팬들은 이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비와 찻잔 사이', '당신의 창가에', '유리벽 찻집', '아빠와 크레파스' 등을 사랑했으며 1987년에는 '안개 속에', '크레파스 사랑', '회상의 등불', 라디오의 로고송으로 쓰인 '나 그대를 사랑해요' 등이 꾸준히 인기를 얻었고 양현경이 결혼으로 탈퇴하고 이혜민 혼자서 발표한 1988년의 7집에서도 '희야'를 히트시켰다.
1986년 이동기에게 '커텐을 내려줘요'란 곡을 준 바 있는 이혜민은 1988년 김흥국에게 '호랑나비'를 작곡해 주며 히트 작곡가로 위상을 드높이고 그에게 '59년 왕십리', 김재희에게 '애증의 강' 등을 주며 인기 있는 작곡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전형적인 발라드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배따라기는 3집에서는 시낭송의 형태를 띤 곡을 발표하기도 하고 '희미한 불빛 아래'와 같은 트로트 성향의 곡들도 이혜민의 둔탁한 목소리로 소화해내며 아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했던 팀이었다.
'90년대 중반 8집을 끝으로 이민을 갔던 이혜민은 그룹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이끌고 다시 그 만의 작품 세계를 펼쳐보였으며 개인적 이야기를 다룬 신곡을 포함한 새앨범 <배따라기 Old & New Song>을 10년 만에 발표했으며 그의 아우라를 고스란히 전하던 양현경은 현재 라이브 카페의 한 칸을 차지하며 옛 팬들에게 즐거운 속삭임을 전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까지 이렇다할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지극히 섬세하고 부드러운 멜로디에 과거의 사랑을 회상하는 투의 가사 그리고 비가 들어가는 제목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듯이 일상의 아름다운 소재들을 제목으로 붙인 이혜민의 음악세계는 1980년대 하반기를 쥐고 있었던 발라드의 명백한 결정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