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세월이란 그림 그리시려고
파란색 탄 물감솥 펄펄 끓이다
산과 들에 몽땅 엎으셨나봐
(손석철·시인, 1953-)
어느 여름
애벌레들이 녹음을 와삭와삭 베어먹는
나무 밑에 비 맞듯 서다.
옷 젖도록 서다.
이대로 서서 뼈가 보이도록 투명해지고 싶다.
(신현정·시인, 1948-)
여름 숲
언제나 축축이 젖은
여름 숲은
싱싱한 자궁이다
오늘도 그 숲에
새 한 마리 놀다 간다
오르가슴으로 흔들리는 나뭇가지마다
뚝뚝 떨어지는
푸른 물!
(권옥희·시인, 1957-)
비 개인 여름 아침
비가 개인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綠陰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김종삼·시인, 1921-1984)
여름방
긴 여름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앉아
바람을 방에 안아들고
녹음을 불러들이고
머리 위에 한 조각 구름 떠있는
저 佛岩山마저 맞아들인다.
(김달진·시인, 1907-1989)
여름날
버스에 앉아 잠시 조는 사이
소나기 한줄기 지났나보다
차가 갑자기 분 물이 무서워
머뭇거리는 동구 앞
허연 허벅지를 내놓은 젊은 아낙
철벙대며 물을 건너고
산뜻하게 머리를 감은 버드나무가
비릿한 살냄새를 풍기고 있다
(신경림·시인, 1936-)
초여름, 네 벗은
초여름, 네 벗은 가는 팔을 보고 싶어라
초여름, 네 벗은 종아리를 보고 싶어라
긴 겨울 옷 속에 감추었던 팔과 종아리
신록 푸른 바람 속에서 보고 싶어라.
(나태주·시인, 1945-)
여름방학
여름방학 때 문득 찾아간 시골 초등학교
햇볕 따가운 운동장에 사람 그림자 없고
일직하는 여선생님의 풍금 소리
미루나무 이파리 되어 찰찰찰 하늘 오른다.
(나태주·시인, 1945-)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