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탄강일작현례에 향교를 다녀와서
향교 출입을 한 지, 삼 년은 넘었지만, 명륜당의 크기를 유심히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전면을 보면서, 전면 5칸 측면 3칸으로 15칸 건물임을 보았다. 가만히 생각하니 여러 향교를 갔었지만, 규모가 생각나지는 않는다. 지난 일요일에 칠곡 향교에서 시조 대회가 열려서, 밖으로 나와 명륜당 안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찍은 사진을 보니 15칸이다. 그러면 그동안 보았던 옥천 향교, 회인 향교도 같을 것이다?. 경주 향교와 나주 향교는 강당이 넓어 보여서 다음에 다시 봐야겠다. 대성전 앞의 동무와 서무는 모두 같은 면적이다. 전면 5칸 측면 2칸 10칸 건물로서 같다. 서울에서 청주 향교에 고유나 봉심을 가야 하니, 거리와 시간이 좀 걸려서 금 년에 겨우 네 번 참사했다. 오늘이 ‘공자탄강일작현례’가 있는 날이라, 특별히 시간을 냈다. 기원전 551년에 탄강하셨으니 공기 2576년 팔 월 초이레이다.
유교의 핵심은 인의예지와 효인데 과연 효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나? 노나라 때 아비가 양을 훔치는 장면을 아들이 보고 관가에 아비가 도둑질했다고 아들이 신고했다. 그리고 아비는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그러면 아들은 정의를 실천한 것인가? 공자는 아비의 잘못을 감추는 것이 효도라고 했다. 또 아들의 잘못도 감추어야 했다. 법보다 오륜인, 부자유친을 먼저 강조한 것이다. 몇 년 전에 우리 문화재 국보 1호인 남대문이 불이 났다. 작은 감정을 못 이기고, 방화로 보복한 아비가 집에 오고, 방송에 남대문 불타는 장면이 방송되었다. 이 집 아들은 아비의 평소 행실로 범인임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경찰이 찾아낼 때까지 아비를 신고하지 않았다. 이것이 정의고 효이고 부자유친이다. 불을 낸 죄는 크지만, 작게는 나는 아비를 통해 이 세상에 나온 것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 아니겠나 모를 일이다. 북한 공산당은 아이들에게 아비의 잘못이나 반동적 언행을 당에 신고하라 부추기는 데, 꼬마들은 여기에 말려들어 아비가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정의가 나치즘 독재화로 진실과 효가 뒤바뀐 것이다.
예부터 위정자들은 정치 수단으로 효를 강요하기도 했다. ‘삼강행실도’나 ‘오륜행실도’를 편찬하여 백성을 바르게 이끌려고 했다. 현재의 사고로는 고루한 면도 있다. 삼 년 아비 묘소에서 움막을 짖고 시묘를 산다거나, 단지하여 피를 입에 넣으면 잘못하면 효과보다 역효과가 있을 것이다. 살을 베어 부모를 봉양했다는 얘기는 더욱 이해가 어렵다. 당시 의술로 마취나 수술 도구의 열약함으로 더 위험하리라 본다. 그런데 이 효를 국가는 충성을 요구하며 국가를 위해 죽기를 강요한다. 대표적 예가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다. 비행기로 국가를 위해 천황 만세를 부르며 개인이 죽으라는 강요다. 여기도 사고의 갈등이 생긴다. 과연 그것이 나라와 황제에게 충성인가?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국가에 대한 불충이고, 죄인가?, 아니면 개인의 부모에 대한 더 한 효도일까? 이 몫은 판단은 나의 글을 읽는 독자의 목이다.
중국 공산당은 공자가 사회를 망쳤다고 문화대혁명(1966~1976)에 홍위병 청소년들이 몰려다니면서 낡은 사상 (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습관) 그들의 중요 문화재인, 공자 사당, 묘소, 석상, 공림의 비석 등을 무참하게 파괴하였다. 더불어 공자 제사 제도를 강제로 폐지 했다. 이유는 공자가 ‘봉건주의 대변자’이고 ‘반혁명의 우상‘이라 비난하고 유물과 서적까지 태웠다. 그리고 1978년 등소평의 개혁개방으로 다시, 공자 유적은 복원되고 유교는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공자 관련 유물을 정비하였으나 무형문화 공자묘 제례악 은 없어지고 아는 사람이 없자, 우리 종묘제례의 의식무, 왼손에 악(대나무 피리) 오른손에 적(꿩 깃으로 만든 깃발)을 들고 추는 일무 춤(팔일무로 하여 8행 8열 64명이 추는 춤)과, 무무 (무공을 기리는 춤; 왼손에 창, 오른손에 방패)을 슬쩍 카피하여 가져가 제례에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공자를 “중국 문화의 상징”으로 적극 활용하고, 세계 각지에 ’공자 학원’을 세워 문화적 정치적 영향력 수단으로 쓰고 있다. 공자 학원의 과오는 정치적 문제가 있어서 여기서 논외로 한다.
중국은 이제 공중도덕과 ‘에티켙’을 전 국민에게 펴지 않으면, 안될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들의 문자 체계로는 세계화를 주도하여 패권국이 됨은 불가능하다. 알파벳을 쓰는 영-미 국가들과 한글을 쓰는 한국에 절대 속도전에 뒤진다. 개인의 거주이전을 막거나, 의사표현의 자유인 자기주장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검열로 억압하거나, 자본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고 외국인 투자자들 포함한 모든 사람이 신뢰할 법체계를 막아서는 절대 세계의 일등 국가가 앞으로 30년 이내에 될 수 없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지 나만의 주장은 아니다. 더구나 인구 14억은 중국의 짐이다. 10억 5천만 명이 하루 6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극빈층이다. 일부 서해안에 면한 대련, 천진, 청도, 연태, 위해, 상해, 소주, 항주, 우피, 온주, 복주, 하문, 선전, 홍콩 등의 해안에 접한 도시 인구 중, 팔천~ 1억 명은 한국 수준이나 나머지 중산층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여기 문제는 공산당의 국수주의에 취하도록 강요된, 자국민 우월성만을 강요하는 교육은 전 중국, 겉멋만 든 국민을 오만하게 만들고, 다른 나라들은 존중하기는커녕, 소국이라 깔보는 심성만 심어놨다. 그러니 중국인이 실제 외국을 방문하여 피부로 느낀 자국 현실, 인프라 열악성이나 공동서비스 후진성을 발견한다. 국제 질서의 열차에 하자 당하는 현실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중국 국민이 추대를 부리다 국격과 자기 수준을 반성 하기 시작했다. 본질을 뒤로 한 당국의 ‘우민 정책’은 대부분 베이징 구경도 못한 내륙의 농민공을 더욱 우물 안의 개구리로 만들 뿐이다.
2025.09.28.
공자탄강일작헌례에 참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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