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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시대는 달라도 구원은 하나
부제: 믿음은 걸어가고, 피는 속량한다
1. 히브리어 두 단어 공부하기
1) אֱמוּנָה — 에무나
뜻: 믿음, 신실함, 견고함
2) כָּפַר — 카파르
뜻: 속죄하다, 죄를 처리하다, 속죄를 이루다
3) “믿음은 마지막 날에 속죄로 이끈다”
הָאֱמוּנָה מוֹבִילָה לְכַפָּרָה בַּיּוֹם הָאַחֲרוֹן׃
하에무나 모빌라 레카파라 바욤 하아하론.
הָאֱמוּנָה (하에무나) — 그 믿음
מוֹבִילָה (모빌라) — 이끈다
לְכַפָּרָה (레카파라) — 속죄로
בַּיּוֹם הָאַחֲרוֹן (바욤 하아하론) — 마지막 날에
여기서 אֱמוּנָה가 여성명사이기 때문에 ‘이끌다’도 여성형 מוֹבִילָה(모빌라)를 사용합니다.
2. 모든 언약 백성의 구속은 예슈아의 피로 완성된다
구약의 제사가 죄를 최종적으로 제거한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매우 분명하게 말합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히10:4)
그렇다면 아브라함, 모세, 다윗을 비롯한 구약의 신실한 사람들이 드린 제사가 그들의 죄를 영원히 제거한 최종적인 속죄였던 것은 아닙니다.
동물의 피는 여호와께서 정하신 언약적 제사였지만, 그것 자체가 최종적인 구속의 실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예슈아에 대하여 말합니다.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최종적인 속죄의 피는 하나입니다.
3. 예슈아의 죽음은 ‘이전 시대의 범죄’까지 속량한다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히 9:15)
이 말씀은 매우 강력합니다.
예슈아의 죽음은 예슈아 이후 사람들의 죄에만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량합니다.
즉 십자가 사건은 역사적으로 어느 한 시점에 일어났지만, 그 속죄의 효력은 그 시점 이후에만 갇혀 있지 않습니다.
4. 바울도 ‘이전에 지은 죄’를 말한다
로마서 3장도 같은 방향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로마서 3:25)
여호와께서 과거의 죄를 단순히 없는 것처럼 처리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슈아의 속죄 안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시간의 방향으로 표현한다면,
구약의 신실한 자들 → 약속을 바라봄 → 예슈아의 속죄
우리 → 이미 이루어진 예슈아의 속죄를 바라봄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라보는 역사적 위치는 다르지만 구속의 근거는 하나입니다.
5. 그렇다면 구약 성도들은 어떻게 믿었는가?
여기서 “예슈아라는 이름을 알고 고백했는가?”만을 구원의 조건으로 만들어 버리면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을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그들을 계속해서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로마서 4:3, 창세기 15:6)
그런데 히브리적 믿음은 단순한 머릿속 동의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떠남으로 나타났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히브리서 11:8)
바로 이것입니다.
믿음 → 순종이지,
믿음 ↔ 순종이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6. 그래서 히브리서가 예슈아와 ‘순종’을 직접 연결한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브리서 5:8–9)
여기에는 매우 아름다운 대칭이 있습니다.
예슈아께서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순종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슈아를 믿는다”는 것을 단순히 어떤 교리적 문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예슈아 자신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마태복음 7:21)
물론 이것은 행위로 예슈아의 피를 얻어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호와를 진실하게 믿는 믿음은 순종이라는 열매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7. 예슈아의 피는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다시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
“양심을 씻어 새롭게 하신다”는 부분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브리서 9:14)
피의 목적이 단순히,
죄를 지었다 → 형벌을 면했다 → 끝이 아닙니다.
예슈아의 피는
죄에서 깨끗하게 함
→ 양심을 정결하게 함
→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함
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속죄와 순종은 서로 적이 아닙니다.
속죄는 우리를 다시 순종할 수 있는 백성으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 언약의 약속과 정확하게 연결됩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27)
8. 결론
구약의 성도들도 기다렸고, 사도들도 기다렸으며, 우리도 기다립니다.
시대는 달라도 구원의 길이 둘인 것은 아닙니다.
구약의 신실한 백성도 자기 의로 영생을 얻은 것이 아니며, 우리 역시 단순히 ‘예슈아를 안다’는 입술의 고백만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믿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났고, 모세와 선지자들도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제사와 순종 자체가 죄를 영원히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마침내 예슈아께서 단번에 자신의 피를 드리셨고, 그 피는 첫 언약 아래의 죄까지 속량하는 영원한 속죄가 되었습니다.
예슈아는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고, 그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과 순종과 예슈아의 피는 서로 분리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믿음은 여호와의 약속을 붙들게 하고, 그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나며, 죄를 씻고 영생에 이르게 합니다.
아브라함도 그 약속을 바라보았고, 바울도 몸의 구속을 기다렸으며, 우리도 아직 보이지 않는 영광의 자유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시대를 넘어 여호와를 믿고 순종하며 약속을 바라본 언약 백성은 예슈아께서 이루신 구속 안에서 함께 몸의 속량과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시대는 달라도 구원은 하나이며, 믿음은 순종으로 걸어가고 그 모든 언약 백성을 영원히 속량하는 피는 예슈아의 피입니다.”
9. 비유 이야기
"왕이 놓은 다리"
어느 왕이 백성들에게 강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나라로 오라고 약속했습니다.
왕은 오래전부터 백성들에게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내 말을 믿고 이 길을 따라오너라. 때가 되면 내가 너희를 반드시 건너게 하겠다.”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들은 왕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직 다리가 보이지 않았지만 왕의 말씀을 믿고 길을 떠났습니다.
모세와 다윗과 선지자들도 그 길을 걸었습니다. 넘어지면 돌이켰고, 왕이 가르쳐 주신 길을 따라 계속 강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자기 힘으로는 그 강을 건널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순종은 그들을 강까지 인도했지만, 강을 없애거나 건널 다리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습니다.
마침내 왕의 아들이 와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어 누구도 만들 수 없었던 하나의 다리를 놓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다리가 왕의 아들이 온 이후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왕의 약속을 믿고 먼저 길을 걸었던 사람들도, 아들이 온 뒤 그 길을 걷는 사람들도 모두 그 하나의 다리를 통해 왕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리가 생겼으니 이제 왕이 알려준 길을 걸을 필요가 없겠군요.”
왕이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다리가 너를 구원한다고 해서 아무 길로나 걸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알려준 길을 떠나 반대 방향으로 걸으면서 어떻게 그 다리에 이를 수 있겠느냐?”
또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열심히 걸었기 때문에 강을 건널 자격을 얻은 것입니까?”
왕이 대답했습니다.
“그것도 아니다. 네가 천 년을 걸어도 스스로 그 강을 건널 수는 없다. 너를 건너게 하는 것은 내가 마련한 다리다. 그러나 네가 내 말을 정말 믿었다면 너의 발걸음은 내가 알려준 방향으로 향할 것이다.”
그제야 백성들은 깨달았습니다.
길을 걷는 순종이 다리를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왕을 믿는 믿음은 그들을 다리가 있는 곳으로 걷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을 강 건너편으로 데려간 것은 왕의 아들이 놓은 단 하나의 다리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걸었던 사람도, 나중에 걸었던 사람도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왕을 믿었고,
그 믿음을 따라 걸었으며,
마지막에는 왕의 아들이 마련한 하나의 길을 통해 강을 건넜기 때문입니다.
“시대는 달라도 구원은 하나입니다.
믿음은 순종으로 걸어가고,
우리를 끝까지 건너게 하는 구속은 예슈아께서 이루셨습니다.”
객관식 문제 20개
1. 히브리서 10:4에 따르면 황소와 염소의 피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① 모든 죄를 영원히 제거한다
② 이스라엘의 죄만 제거한다
③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한다
④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필요하지 않았다
2. 히브리서 9:12에서 예슈아께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은 무엇을 통해서입니까?
① 아브라함의 믿음
② 자신의 피
③ 모세의 토라
④ 제사장의 기도
3. 히브리서 9:15에 따르면 예슈아의 죽음은 어느 죄까지 속량합니까?
① 예슈아 이후에 지은 죄만
② 이방인의 죄만
③ 첫 언약 때에 범한 죄까지
④ 모르고 지은 죄만
4. 구약과 신약의 언약 백성에게 공통되는 최종적인 구속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① 인간의 선행
② 동물 제사의 반복
③ 예슈아께서 이루신 구속
④ 성전의 존재
5. 로마서 3:25에서 예슈아를 무엇으로 세우셨다고 말합니까?
① 왕
② 화목제물
③ 선지자
④ 제사장
6. 창세기 15:6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었을 때 그것을 무엇으로 여기셨습니까?
① 지혜
② 능력
③ 의
④ 제사
7. 히브리서 11:8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① 마음으로만 믿었다
②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여 나아갔다
③ 많은 제사를 드렸다
④ 왕이 되었다
8. 믿음과 순종의 관계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입니까?
① 서로 반대된다
② 믿음이 있으면 순종은 필요 없다
③ 순종으로 구속을 얻는다
④ 참된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난다
9. 히브리서 5:8에 따르면 예슈아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무엇을 배우셨습니까?
① 지혜
② 순종
③ 제사법
④ 인내만
10. 히브리서 5:9에서 예슈아는 누구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고 합니까?
① 예슈아의 이름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
②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
③ 이스라엘 사람에게만
④ 제사를 드리는 사람에게만
11. 마태복음 7:21에서 예슈아께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신 사람은 누구입니까?
① “주여 주여”라고 말하는 모든 사람
② 기적을 경험한 사람
③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
④ 성경 지식이 많은 사람
12. 히브리서 9:14에 따르면 예슈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무엇에서 깨끗하게 합니까?
① 세상의 지식
② 육체의 연약함
③ 죽은 행실
④ 가난
13. 예슈아의 피로 양심이 깨끗하게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① 더 많은 지식을 얻도록
②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③ 세상에서 성공하도록
④ 제사를 더 많이 드리도록
14. 에스겔 36:27에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영을 백성 가운데 두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① 미래를 알게 하기 위해
② 율례를 행하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기 위해
③ 모든 고난을 없애기 위해
④ 토라를 더 이상 필요 없게 하기 위해
15. 히브리어 אֱמוּנָה(에무나)의 의미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입니까?
① 심판
② 믿음과 신실함
③ 제사
④ 용서
16. אֱמוּנָה(에무나)와 같은 א־מ־נ 어근과 연결되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① 토라
② 샬롬
③ 아멘
④ 카파르
17. 히브리어 כָּפַר(카파르)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① 기억하다
② 속죄하다
③ 기다리다
④ 믿다
18. “믿음은 속죄로 이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문장은 무엇입니까?
① שְׁמַע יִשְׂרָאֵל
② הָאֱמוּנָה מוֹבִילָה לְכַפָּרָה
③ תּוֹרָה צִוָּה לָנוּ
④ שׁוּבוּ אֵלַי
19. ‘왕이 놓은 다리’ 비유에서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① 왕의 말을 듣는 것
② 길을 걷는 것
③ 강을 건너는 것
④ 서로 돕는 것
20. 이번 샤밧 말씀 전체의 핵심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① 순종 자체가 사람의 모든 죄를 속량한다
② 믿음만 고백하면 삶의 순종은 중요하지 않다
③ 구약과 신약에는 서로 다른 두 구원의 길이 있다
④ 시대는 달라도 구속의 근거는 하나이며, 참된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나고 최종적인 속량은 예슈아께서 이루신다
주관식·하브루타 5문제
1. 아브라함은 예슈아의 십자가 사건보다 훨씬 이전에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9:15을 근거로 구약의 신실한 언약 백성과 예슈아의 속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해 보세요.
2. “참된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난다”는 말과 “우리의 순종이 우리를 속죄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은 어떻게 동시에 참일 수 있을까요? 자신의 말로 설명해 보세요.
3. 히브리서 9:14은 예슈아의 피가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속죄받은 사람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4. ‘왕이 놓은 다리’ 비유에서 왕을 믿고 길을 걷는 것과 왕의 아들이 놓은 다리로 강을 건너는 것은 각각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비유를 통해 믿음·순종·속죄의 관계를 설명해 보세요.
5. “시대는 달라도 구원은 하나이며, 믿음은 순종으로 걸어가고 그 모든 언약 백성을 영원히 속량하는 피는 예슈아의 피이다.”라는 이번 말씀의 결론을 자신의 신앙과 삶에 적용한다면, 지금 내가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나누어 보세요.
객관식 답안지
1. ③ 2. ② 3. ③ 4. ③ 5. ② 6. ③ 7. ② 8. ④ 9. ② 10. ②
11. ③ 12. ③ 13. ② 14. ② 15. ② 16. ③ 17. ② 18. ② 19. ③ 20. 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