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3: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3: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3: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3:9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
◈ 주해
1. 디모데가 복음을 전하면서 흘린 눈물과 거짓 없는 믿음을 아는 바울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한다.
1) 이는 생명을 환히 드러내는 복음을 전하는 소명이 은혜이기 때문이다.
2) 바울은 먼저 디모데가 은혜 속에서 강하여져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한다.
2. 주의 종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해야 하며,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써야 한다.
1) 하나님의 교회에는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같은 다양한 사역자가 있고, 중요한 것은 주인이 쓰시기에 좋은 깨끗한 그릇이 되는 것이다
3. 디모데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단지 거짓 교사들의 헛된 말과 말 다툼만이 아니다.
1) 바울이 복음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이 거짓 교사들의 말을 받아들이고, 헛된 말이 악성 종양처럼 퍼져 나가는 것은 말세의 고통하는 때의 증상이다.
2) 말세는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 사이의 모든 기간을 가르킨다.
4. 말세의 특징은 고통이다.
1) 사람들은 이 고통을 해결하기 위하여 각자 자기 소견대로 해법을 추구한다.
2) 그 중심에는 “자아 사랑”과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이 있다.
3) 거짓 교사들이나 그들을 따르는 자들 모두 이런 공통점이 있다.
딤후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딤후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딤후 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디모데는 말세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원인을 진단해야 올바른 처방이 나오기 때문이다.
1) 허물과 죄로 죽은 자는 존재적인 고통부터 상황적인 고통까지, 고통의 문제에 항상 직면하여 있다.
2) 모든 불행은 “자기 사랑”으로부터 온다. 그런데 고통이 심해질수록 자기 사랑은 더 심해지고 그로 인한 불행도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이 펼쳐진다.
6.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기 위하여 돈을 사랑하고, 자신을 자랑하며, 교만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않으며, 거룩하지 아니한다.
1)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워지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2)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기 위하여 배신까지 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한다.
7. 물론 말세의 고통을 이기는 것은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 것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안에 거하는 것이다.
1) 그로 인하여 자기가 부인되고, 그리스도가 나의 생명이요 주인이 되어야 고통에서 자유로워진다.
2) 고통스러워서 마약을 하고, 그 마약으로 고통이 가중되듯이 인생은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하여 자기를 사랑하는데, 심지어 교인들도 그렇게 하고 있음을 알라고 한다.
8. 교회 안의 거짓 교사들은 외적으로 매우 경건하게 보인다.
1) 그들은 겉으로 볼 때 예배, 기도, 금식, 구제, 율법 준수 등 여러 가지 종교 행위를 실천하며 진리에 대해 담론도 하지만 그들 안에는 경건의 능력이 없다.
2) 왜냐하면 그들의 중심은 “하나님 사랑이 아니라 자기 사랑”이기 때문이다.
3) 그러므로 그들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 즉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 경건, 모든 일에 유익한 경건은 없다.
4) 디모데는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야 한다.
9. 외적으로는 경건하지만 내적으로는 자기 사랑에 빠져 있는 거짓 교사들은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서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1) 유혹받는 여자들은 여러 가지 정욕에 이끌려 죄에 짓눌려 있고, 늘 배우기는 하지만 진리를 깨닫는 데에는 전혀 이를 수 없다(6-7절).
2) 바울은 교회 안의 거짓 교사들을 뱀에, 미혹 당하는 여자들을 하와로 비유한다.
10. 이 여자들은 진리를 알고 싶어서 항상 배운다.
1) 성경을 열심히 배우고, 제자훈련을 받고, 신학까지 배우면서 진리를 알고자 하지만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흔히 있다.
2) 바울은 항상 배우기 전에 “욕심에 끌려서” 배우려는 것이 문제임을 알라고 한다.
3)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기 위하여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 자기 욕심, 자기 고통을 위해서 배우려고 하다 보면, 진리대신 거짓 교사들의 속임에 넘어간다는 것이다.
4) 실제로 이단에 빠지는 많은 분들이 이렇게 빠진다.
- 또 교회 안에서도 항상 배우나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도 이러하다.
11. 역사는 반복되고, 진리를 왜곡하는 이들도 반복된다.
1) 거짓 교사들은 모세를 거역한 얀네와 얌브레와 같은 자들이다.
- 유다 전승에 따르면 얀네와 얌브레는 모세와 논쟁을 벌인 애굽의 마술사이다.
2)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해도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을 온전히 이끄셨듯이, 거짓교사들이 교회를 어지럽혀도 하나님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12. 거짓 교사들은 마음이 부패하고 믿음에 실패한 자들이다.
1) 하나님은 모세 때와 같이 거짓 교사들의 실체를 드러내실 것이다.
13. 성도들을 미혹하는 거짓교사들은 얀네와 얌브레처럼 실패할 것이다.
1) 그러므로 생각보다 크게 당황하거나 낙심하지 않아도 된다.
2) 도리어 경계하고 알아야 할 것은 고통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자기 사랑”이다.
3)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를 때”인데, 세상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고 부추기기 때문이다.
4)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교만하면서 경건을 추구하면 경건의 능력은 없다.
14. 디모데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자아를 사랑하면서 경건을 추구하는 것”이다.
1) 그러면 어리석은 여자들처럼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고, 경건의 능력을 누리고 싶지만 끝내 경건의 능력, 생명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다.
15. 그러므로 지금 고통하고 사랑하는 “자아”는 참 나가 아니라 병든 자아요 옛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참된 나는 거듭난 영이며, 나의 생명되신 그리스도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골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1) 나는 거듭난 새생명이기 때문에, 영의 생각을 하며, 나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새생명인 나를 참되게 사랑하는 것이다.
2) 이를 위하여 복음을 통하여 내 안에 생명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 안에 생명 있음을 알 때,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의 생명임을 알게 된다.
3) 그럴 때 자아사랑이 아니라, 자아를 부인하고, 나의 생명되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4) 영생은 자기 사랑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영광의 교제다.
- 삼위 하나님과의 연합에서 오는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삶이다.
5) 그럴 때 고통에서 벗어나 삼위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기쁨에 참여한다.
◈ 나의 묵상
자아 사랑,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한다는 말씀이 아프게 다가온다. 바울의 말대로 고통과 자아 사랑은 깊이 연대한다. 고통을 이길 수 있을 때에는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름으로 인한 생명을 누리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임하자, 신기하도록 자아를 보호하는 본능이 나타났다. 물론, 고통을 외면한 것도 어리석은 일이었다. 몸의 훈련, 주님이 주신 몸을 관리하는 것은 약간의 유익이 있고, 의의 지체로 드려지기 위하여 몸을 관리해야만 했다. 자아를 부인한다는 이유로 몸을 돌보지 않았는데, 도리어 몸의 고통이 심해지자, 자아 사랑의 본능은 놀랍게 작동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진다”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자아보다 더 큰 생명의 능력, 경건의 능력이 필요하다. 생명의 능력이 없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고행이고 고통을 더할 뿐이다. 자아를 사랑하는 어리석은 길을 걸으면서, 주의 은혜에 의탁한다. 복음의 말씀 앞에 나아갈 때, 복음이 주는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만,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에 연합되지 못하기 때문에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자아 사랑의 증상이 여러 가지 나타난다.
그래도 소망하는 것은 은혜의 왕노릇, 은혜의 군림과 지배다. 나의 힘으로 말세에 고통으로 인한 자아 사랑을 거스를 힘은 없다. 바울도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다고 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말씀 앞에 나가지만, 내가 그 은혜를 의지하지만, 결국 그 은혜가 복음을 통하여 나의 왕이 되고, 나를 지배하기까지 군림하길 원한다. 내 영혼과 몸을 그 은혜에 내어드린다. 그 은혜가 나를 지배하고 통치하기를 바란다.
내 힘으로 자아를 부인하기 보다는, 그 은혜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로 나아가, 그 은혜안에 거한다. 그리고 그 은혜가 강력한 지배력으로 군림할 때, 저절로 자아는 부인되고, 그 은혜가 나를 세우고, 이끌며, 생명을 얻게 한다. 그러기에 오늘도 그 은혜로 나아간다. 내가 은혜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가 나를 지배하도록 그 은혜에 나를 맡긴다. 십자가 구속의 은혜, 견인하시는 성령의 은혜, 내 안에서 시작한 일을 마치실 아버지의 은혜 아래로 들어간다. 그 은혜의 보좌에서 다스리시는 그 통치를 간구한다.
◈ 묵상 기도
주님, 수능을 마친 자녀들을 생명과 영광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사경회를 통하여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저희를 만나 주시고, 말씀을 마음에 새겨주시며, 은혜의 왕노릇으로 생명을 주십시오.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맛보아 누리게 하소서. 부활의 주님이 교회 사이를 거니시면서 연약한 자를 강하게, 미련한 자를 지혜롭게, 속박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에게 은혜의 해를 선포하여 주십시오. 항상 배우나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경건의 모양만 있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성령으로 진리에 이르고, 은혜로 경건의 능력을 맛보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성령이 가르치지 아니하며, 은혜가 왕노릇하지 아니하면 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불가능을 이루시는 주님, 죄에서 의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복으로, 주님의 헤세드로 인도하신 주님께서 은혜의 지배 아래에서 생명을 얻고, 주님이 내 생명임을 알며, 주님을 사랑하는 경건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주의 영광이 선포되며, 주의 부흥이 속히 임하게 하여 주십시오. 모든 교인들이, 모든 교인들의 가족들이 구원받게 하시며, 주님의 기쁨을 맛보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