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직권남용도 직접수사… 시행령으로 ‘검수완박法’ 우회
검수완박法 시행 한달 앞두고
법무부, 대통령령 개정 입법예고
매수-기부 등 선거범죄 일부도 포함
野 “국회통과 법 무력화 좌시안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시행을 한 달 앞두고 각각 ‘공직자범죄’와 ‘선거범죄’로 분류됐던 직권남용과 매수·기부행위 등을 ‘부패범죄’로 재규정해 검찰이 직접 수사하게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법무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검사의 수사개시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을 12일부터 29일까지 입법 예고한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개정안의 골자는 다음 달 10일 시행되는 검수완박법에 규정된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폭넓게 해석한 것이다.
가령 기존 규정에서 공직자범죄로 분류됐던 직권남용은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법과 유엔 부패방지협약 등에 부패범죄로 분류된 점을 근거로 부패범죄로 재분류했다. 법무부는 또 검찰청법에 ‘부패·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규정한 것을 근거로 무고와 위증 등 사법질서 저해 범죄는 ‘중요 범죄’에 해당돼 직접수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안’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과천=뉴시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입법 취지를 고려해 최소한의 필요 범위 내에서 개정했다”며 “국가 중요 범죄 대응력을 강화하고, 사건 관계인의 인권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야당은 “법 기술자들의 ‘시행령 쿠데타’”라며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법무부가 국회에서 통과된 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우회 통로로 대통령령을 활용하려고 하면 국회가 좌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시행령 고쳐 檢수사 범위 확대… 뇌물수사 ‘4급 이상’ 제한도 없애
법무부, 대통령령 개정안 마련
방위산업법 위반, 경제범죄 간주… 위증-증거인멸은 ‘중요 범죄’ 분류
마약유통- 조폭도 직접수사 가능, 내달 10일 이후 개시 수사에 적용
韓법무 “개정 검찰청법 무력화 아냐”… 野 “입법취지 무시, 법기술자 꼼수”
“검찰 수사권을 과도하게 제한해 국가 대응력이 약화되면 우리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묻고 싶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1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시행령으로 (법을) 무력화한다는 지적은 맞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위를 축소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시행을 앞두고 국가범죄 대응력을 약화시키고 현장 수사 실무에도 맞지 않는 시행령을 정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취지다.
검찰청법 개정에 따라 다음 달 10일부터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는 6대 범죄에서 부패·경제범죄로 축소되지만 이날 시행령 개정에 따라 공직자·선거·방위사업범죄 등 일부에 대해선 직접 수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개정된 시행령은 국무회의 등을 거친 뒤 검찰청법 시행일 이후 수사를 개시하는 경우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 대통령령 재량권으로 직접수사 범위 확대
개정 검찰청법은 검찰 직접수사 범위를 ‘부패·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이 문구의 ‘등’이란 표현을 두고 입법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문구가 수사 범위를 제한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무부는 다르게 해석했다. 부패·경제범죄 외에 정부가 구체적 범위를 정한 ‘중요 범죄’가 수사 개시 범위에 포함된다는 점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얼마든지 직접수사 범위를 넓힐 수 있는 근거가 됐다.
시행령 개정에 따른 대표적 변화는 직권남용, 직무유기, 허위 공문서 작성 등 공직자범죄뿐 아니라 매수 및 이해 유도, 기부행위 등 선거범죄 일부를 부패범죄로 재분류한 부분이다. 방위산업기술보호법 위반도 경제범죄로 재분류해 검찰이 직접수사할 수 있게 했다. 마약류 유통 관련 범죄와 서민을 갈취하는 폭력 조직, 기업형 조폭, 보이스피싱 등 경제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범죄도 경제범죄로 정의해 검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위증, 증거인멸, 무고 등 사법질서 저해 범죄와 각 법이 검사에게 고발·수사의뢰하도록 한 범죄에 대해선 ‘중요 범죄’로 분류해 검찰 직접수사 범위에 넣었다.
검경 간 사건 ‘핑퐁’ 우려가 나온 ‘직접 관련성’ 개념도 손봤다. 범인·범죄사실 또는 증거가 공통되는 관련 사건은 검사가 계속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 송치 사건에서 관련된 다른 범죄가 검찰 수사 단계에서 발견될 경우 검찰이 이 사건만 따로 분리해 경찰에 넘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다만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별건 수사 제한 조항에 따라 수사권 남용을 방지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또 직급·액수별로 수사 대상 범위를 쪼개 놓은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시행규칙’을 폐지했다. 현행 시행규칙상 뇌물죄는 4급 이상 공무원, 부정청탁 금품수수와 알선수재 등은 5000만 원 이상, 전략물자 불법 수출입의 경우 가액이 50억 원 이상 등의 경우만 검찰 수사가 가능하게 돼 있지만, 앞으로는 예전처럼 직급과 액수에 관계없이 수사할 수 있게 된다.
시행령 개정에 대해 검찰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1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제도가 시행된 결과 발생하는 범죄대응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일 뿐 수사권 조정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 민주당 “법 기술자들의 꼼수”
이날 법무부 발표에 대해 민주당은 즉각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만약 법무부가 국회에서 통과된 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또다시 대통령령으로 주요 수사 범위를 원위치시킨다면 국회와의 전면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 입법 취지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법문을 해석한 ‘법 기술자’들의 꼼수”라며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 쿠데타’를 당장 멈추지 않는다면 국회는 헌법정신 수호를 위해 입법으로 불법행위를 중단케 할 것임을 경고한다”고 비판했다.
장은지 기자, 신희철 기자, 박훈상 기자, 유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