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섭(同事攝)이란?
동사섭(同事攝)이란 말은 불교의 사섭법(四攝法 : 布施攝 · 愛語攝 · 利行攝 · 同事攝)중의 한 개념이다.
사섭법이란 보살이 중생을 향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베풀고(보시섭)
경우에 따라서는 자애어린 말로 더불고(애어섭)
또는 이로운 일로 도와주고(이행섭)
나아가 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동사섭) 삶의 태도를 말한다.
본 동사섭수련회에서는, 동사섭의 개념을 사섭법 중의 동사섭의 의미를 기본으로 하되 보시, 애어, 이행을 다 아우르며, 세상에 존재하는 유정 무정의 개개가 낱낱이 우주의 주인공이되 낱낱이 서로 평등하게 어우러져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만 존립할 수 있으니 우주 전체가 한 생명체일 수밖에 없다는 일체(一體) 사상을 뜻매김하여 쓰고 있다.
우리 모두의 至高한 幸福...
사람은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보다 높은 행복을 지향해 간다.
「우리 모두의 행복」
이것은 전 인류가 전 문화, 전 문명을 통해 지향하는 바이다. <우리 모두>란 현실적으로 <공동체>를 의미할 터, 사람이 지향하는 것은 끝내 <이상공동체>이다.
행복이란 「좋은 느낌 상태」를 의미한다.
좋은 느낌, 좋은 기분, 좋은 감정, 좋은 정서이다. 해탈이니 구원이니 하는 것도 그 본질은 결국 지극히 투-욱 트인 기분 상태를 말할 것이다. 쓰이기에 따라 행복의 조건까지를 포함해서 행복이라 말하기도 하겠지만 끝내 그 본질은 느낌이다. 따라서 우리의 이상(理想)은 우리 모두의 지극한 호감정(好感情, 느낌)이다.
행복의 본질이 느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느낌에 대한 바람직한 신념이 선명하게 정립될 필요가 있다. 느낌에 대한 신념을 두 가지만 들어본다면,
1. 감지하지 못할 수는 있겠지만 느낌 없는 순간이란 없고, 순간순간 ~ 만큼의 느낌 수위(감정수위, 행복수위)가 흐르고 있을 것이니, 바로 그 느낌을 아는 것(느끼는 것, 감지하는 것, 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2. 행복 수위를 높이기 위해 어떤 작업(행복의 조건을 구비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행복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그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그 조건들을 구비해야 한다. 행복의 조건은 사람에 따라, 그 시대, 그 지역, 그 문화에 따라 다양하고 무수하다. 건강·돈·가족·지식·사랑·명예·권력·직업·친구·안정…등등, 무수한 것들을 사람들은 원하고 성취함으로써 행복해 한다. 어느 조건이 보다 우선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5여 년 동안 업그레이드되어온 동사섭수련회에서는 ‘삶의 오대원리(五大原理)’ 혹은 ‘이상공동체(理想共同體) 오요(五要)’ 라는 이름으로 극히 중요한 행복조건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이것들이 왜 그토록 중요한 행복조건이 되는가, 어떤 방법으로 이 다섯 가지 원리를 깨닫고 익힐 것인가 하는 답이 5박 6일의 수련 기간동안 연찬·토론·학습되어진다.
원리란 다수 전체에 공통적으로 내재해 있는 이치를 말한다. 열 곳의 행복한 가정이 있다고 보자. 이들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요인을 분석해 보았을 때 공통되는 인자가 있다면 그것이 그 가정들을 행복하게 하는 원리이다. 불행한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가정을 불행하게 하는 요인들을 분석해 볼 때 공통되는 인자가 있다면 그것이 그 가정들을 불행하게 하는 원리이다.
원리를 알면 그 원리를 강화 혹은 지양함으로써 원하는 현실을 끌어 올 수 있다. 그러므로 원리를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원리를 모르고 원하는 일의 성취를 기대한다는 것은 모래를 삶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결정한다는 유가의 말씀이 있다.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원리가 있다면 그 원리를 알아야 할 것이요, 그 원리를 활용하여 우리 모두가 행복해진다면 좋을 것이다. <재단법인 행복마을>은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다섯 가지의 원리를 제시하여 이를 심도 있게 알게 하고 실천하게 하며, 인격화하게 한다.(知行)
첫째, ‘정체(正體)의 원리’이다.
정체의 원리란 자신에 대한 바람직한 정체관[자아관]을 가져야 한다는 원리이다.
<나>란 무엇인가? 무한 우주의 한 중심에 있다 할 수 있고, 모든 의미의 첫 단초가 된다고 볼 수 있는 <나>란 무엇인가? 무엇이 <나>인가? <나>에 대한 앎[사고]의 체계를 바로 정립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나는 그럭저럭한 놈이다.’라는 생각[신념, 사고, 믿음, 가치관, 사상]을 가진 사람은 그럭저럭한 삶을 살 것이요, ‘나는 착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며 살려고 할 것이다.
이 <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당하여 사람마다 답이 다를 수 있고, 답의 수준이 다를 수 있다. 기독교적인 답과 불교적인 답이 다를 수 있고, 같은 종교인의 답일지라도 그 수준이 각각 다를 수 있다. 이것은 다섯 가지 원리에 있어서 각각 그러하다. 보다 수준 높은 자아관을 정립해 가기를 권장하면서 본 수련회에서는 <정체(正體) 원리>라는 제목 하에 삼중 차원의 자아관(三重次元自我觀)을 하나의 모범 답안으로 제시한다. 지족 자아관(知足自我觀)→초월 자아관(超越自我觀)→묘유 자아관(妙有自我觀) 등이다.
둘째, ‘대원(大願)의 원리’이다.
원대한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원리이다.
<나>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 어떤 <나>이든 나는 한 생 무엇인가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삶을 산다. 궁극적으로 무엇을 향하여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좋은 답을 지닌다는 것은 인생에서 극히 중요하다. 이에 대한 답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그 수준이 다를 수 있다. 향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향방(向方)이 좋아야 할 것이요, 그 향방에 대한 사무치는 마음이 인격적으로 여물어야 할 것이다.
수준 높은 삶의 향방을 선명하게 정립하기를 권장하면서 본 수련회에서는 <대원(大願)의 원리>라는 제목 하에 <우리 모두의 행복>이라는 모범 답안을 삶의 궁극의 목적으로 제시한다. <행복>의 정의를 선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이요, <우리 모두>의 범주를 어디까지 잡아야 할 것이냐 하는 것 등이 각인의 한 과제가 될 것이다.
셋째, ‘수심(修心)의 원리’이다.
마음을 잘 닦아야한다는 원리이다.
<이러저러한 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우선 수심(修心)을 잘 하여 자신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행복을 위한 절대적인 조건은 <마음을 잘 관리하는 것> 곧 수심(修心)이다. ‘수심(修心)을 어떻게 해 갈 것인가?’ 세상에는 다양한 수심(修心)법들이 있다. 본 수련회에서도 <수심(修心)의 원리>라는 제목 하에 중대 수심(修心)의 길들을 제시한다.
넷째, ‘화합(和合)의 원리’이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러저러한 내가,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우선 스스로 수심(修心)을 잘하여 큰 행복 · 해탈을 산다면 좋을 것이다.
나아가 내 개인만의 세상이 아닌 이웃과 더불어 공존하는 세상이니, 내 주변 사람 내지는 일체 존재와 평화로운 관계, 곧 화합(和合)하는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다른 존재와 어떻게 화합할 것인가? 본 수련회에서는 <화합(和合)의 원리>라는 제목으로 절묘한 화합의 길이 제시되어지고 그 익힘을 위한 실습을 반복 실시한다.
다섯째, ‘작선(作善)의 원리’이다.
바람직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러저러한 내가,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우선 스스로 수심(修心)을 잘하여 큰 행복 해탈을 산다면 좋을 것이요,
함께하는 이웃과 화합(和合)을 하여 사이좋은 관계가 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나아가, 책임과 의무가 부여된 소임(所任)의 일과 혹은 소임 이외에 비소임(非所任: 비소임의 소임) 영역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활동의 작선(作善)이 더해진다면 공동체는 완벽해질 것이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원리가 조화롭게 흐르고 있는 세상 공동체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 동사섭문화의 목표이다.
2014.3.4, 동사섭 홈페이지에서
첫댓글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히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