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와 그의 자손이 영원토록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고 확약하셨다.사실 다윗 왕국은 구약 역사에서 백성들이 동경하던 하나님 왕국의 실체임과 동시에 장차 메시야에 의해 건설될 항구적인 평화의 왕국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그 나라의 영속성은 다윗 언약에 기초하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내부 구조는 '공평'과 '정의'이다. '공평'과 '정의'야말로 메시야 왕국을 지상의 나라와 구별짓는 결정적인 표지인 셈이다. '보존하다'는 '떠받치다', '유지하다'는 뜻이다.
[사 9:8]"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 본문에서 '말씀'은 보냄을 받은 자 곧 사자와 동일시되고 있다. 이 말씀은 여호와로부터 보내졌기 때문에 일점 일획의 어김도 없이 성취되기 전까지는 보내신 자에게로 헛되이 돌아가지 않는다.여기에 히브리적 사고의 독특함이 있다. 히브리적 사고에서는 말씀과 사건이 구별되지 않는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사건으로 구체화되며, 이를 통해서 그 말씀의 진실성이 입증된다. '다바르'는 말씀이란 뜻과 함께 사건이라는 의미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그 말씀이 야곱에게 보내어진다. 마치 음울한 소식을 전하러 가는 전령처럼 말이다. '야곱'과 '이스라엘'은 동의어로 쓰였으며, 여기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사 9:9]"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 것이어늘 -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과 대조되는 표현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그 결과를 가져오고야 만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미루어 충분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서 겸손하기보다는 교만으로 일관한다.
[사 9:10]"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대신하리라 하도다 - 자만으로 가득 찬 에브라임의 말이다. 벽돌과 뽕나무는 둘 다 값싼 건축 자재들인데, 빈약한 건물이나 서민들의 집을 지을 때 주로 사용되었다. 이에 반해서 다듬은 돌과 백향목은 고급품들로서 권세자들의 거처나 호화로운 건물을 지을 때 주로 이용되었다.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들이 외국 군대의 침공을 받아 손상을 입을지라도 자신들의 힘으로 이전보다 더 강성해진다고 호언하고 있는 것이다.
[사 9:11]"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 에브라임은 그들의 교만의 대가를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르신의 대적'은 언어 유희를 이용한 수법으로 앗수르인들을 가리킨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르신과 동맹을 체결했었다. 그러나 르신이 죽고 앗수르에 의해 수리아가 정복된이 에브라임은 앗수르의 종속국으로 전락한 아람에 의해 침략을 당하게 된다.
[사 9:12]"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찌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 '앞'과 '뒤'는 오히려 동과 서로 이해함이 자연스럽다.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 그러나 실제로 블레셋은 북이스라엘을 침략한 적이 없고 남유다만을 괴롭혔을 뿐이다. 따라서 여기 언급된 '이스라엘'은 온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