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I HAAK RHO님 후기
■2015 1127 처음읽은 로마사 - 동경대 교수셨던 모토무라 료지님께서 저술하시고, 이민희 한림대 일본학 연구소 연구원님께서 번역하신 책
ㅡ (료지 교수님께서는 고대로마사가 아니고 기계공학을 전공하시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모토를 무으마.. 음.. =_=;)
ㅡ 이 책은 일본인 특유의 간결함과 명확함으로 1200년간 존속했던 대제국 로마를,
'1. 공화정, 2.로마군, 3. 제국,
4. 시민권, 5.검투사, 6.기독교,
7. 멸망'
... 이라는 7개 키워드로 잘 정리해 놓았다.
■1. 공화정
▪︎로물루스로부터 시작된 로마의 왕정은 7대까지 이어지는데, 마지막 3왕은 로마인이 아닌, 현재 토스카나 지방에 위치해 있던 에트루리아인이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이를 기원전 509년 7대 왕인 루키우스의 아들인 섹스투스(일마 이름을 잘못지어가가 문제가 생긴듯..^^)의 루크레티아 강간을 계기로 원로원이 왕을 추방하고 공화정을 수립하였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자유민'이라는 의식이 굉장히 강하여 최고위직인 '집정관 Consul'도 두 사람으로 구성하며 위기시에만 6개월 임기의 '독재관 Dictator'를 예외적으로 임명하였다고 한다..
▪︎원래 로물루스의 보좌기관으로 창설되었다고 전해지는 원로원은 100명으로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300명까지 늘어나게 되었으며, 재산정도를 척도로 193개 계급으로 나누어졌으며 상위계급에 할당된 표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귀족들의 횡포에 맞서 BC 494년 평민들이 몬스 사케르 언덕에 진을 치고 파업을 결행하여 '호민관 제도'와 '12표법'을 제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를 나타내는 SPQR이라는 것도 Senatus Populus Que Romanus' 약자로써 '로마의 원로원과 국민'을 나타낸다..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바뀌었을 때에도 이를 유지했으며, 원로원의 인준을 제대로 받지 않은 황제는 진짜 황제로 인정받지 못했을 정도로 원로원의 힘은 막강했다고 한다..
ㅡ 다만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내용이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2. 로마군
▪︎로마군은 왕정후기부터 그리스의 밀집형 장창대형인 '팔랑크스 Phalanx'를 도입하여 운용하다가 산악부족인 삼니움족과의 전투에서 100인대로 번역되는 '켄투리아 Centuria'를 통합하여 독립적 작전이 가능한 '중대 Manipulus'를 구성하여 전장의 운용력을 높였다고 한다 (영어단어 Manipulate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ㅡ 다만 저자가 고대 페니키아 해전에서 주로 사용된 충파작전을 이기기 위한 '까마귀 발'이나 로마인의 방패를 중심으로 한 '거북이 대형' 그리고 그 거북이 사이로 비겁하게도(!) 스며나오는 Gladius, 중무장 보병의 둔중함을 보충하기위한 갈리아 기병이나 화염통을 던져대가 적군을 식겁하게한 투석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점은 조금 아쉽다..
■3. 대제국
▪︎전설에 따르면 로마귀족은 약 300명의 '파트리키이 Patricii'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평민과 귀족의 통혼도 가능해지고, 부유한 평민이 집장관으로 선출되면서 새로운 귀족으로 인정받아 '새로운 귀족 Nobiles'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혈연적인 개념이라기 보다는 재산정도에 따라서 결정되었다고 하며, 귀족으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위해서는 자기 재산으로 원형경기장이나 도로를 건설하여야 했으며, 대표적인 것이 아피우스가 만든 '아피아 가도'라고 한다..
▪︎이러한 'Noblesse oblige'와 재력가와 추종자 간에 형성된 Patronus-cliens(후원자-클라이언트) 관계를 기반으로 로마는 대제국을 건설했음에도 300명의 국가관료와 만명 정도의 공무원만으로 굉대한 제국을 통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70%의 국가재정이 국방비로 사용될 수 있었다고 한다..
■4. 시민권
▪︎로마의 지배방식은 '병합'에서 '동맹지배'를 거쳐 '속주지배' 방식으로 변화하여 갔다고 한다..
▪︎속주지배방식은 BC 201년 2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시칠리아에서 시작하였는데, 로마 시민권을 얻으면 군역과 조세부담이 있기 때문에 동맹시에서조차 로마 시민권 취득이 인기가 없었다가 마리우스 군사제도 개혁으로 징집제에서 지원군에게 보수를 주는 쪽으로 변화하고 속주의 세금으로 군사비용을 충당하게 되자 인기가 높아져서 BC 91년 '동맹시 전쟁'을 계기로 모든 동맹시민에게 로마시민권이 부여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당시 '동맹시'의 종류가 두 종류가 있었었다는 것.. 독일 Köln시의 어원이 되는 큰 '콜로이나 Colonia' 시민들은 모두 시민권을 받았지만, 작은 '무니키피움 Municipium'에서는 힘있는 시민들만 시민권을 받았다고.. 세상 불공평한건 예나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 싶다.. •_•;;
▪︎이러한 로마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서류로써는 동판이나 철판에 새긴 병역증명서인 Diploma가 발급되었으며, 160 종에 달하는 디플로마를 분석해보면 로마시민이어서 병역의 의무를 다한 사람과 20년 동안 '로마군대에서 말뚝박고 일해서(!)' 시민권을 취득한 경우가 있다고.. 지금도 라티노 중에는 미군으로 근무하면 시민권 받는 경우가 많던데, 미국과 로마는 유사한 면이 많이 있는 듯하다..
■5. 로마의 멸망
ㅡ그렇다면 로마는 왜 멸망한 것일까?
▪︎저자는 게르만족과 같은 이민족의 침입, 도로/수리시설과 같은 인프라의 노후화, 이탈리아의 자체의 쇠락의 3가지 원인을 지목하고 있다..
ㅡ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으나, 개인적으로는 로마가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적국이 패한 후에 취한 관용정책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큰게 이탈리아 북부 삼니움족, 남부 라틴족의 포용.. 몽골제국도 마찬가지로), 그 부분이 다루어 지지 않아서 조금은 아쉽다..
ㅡ 수학과 공학은 그리스인, 보병전술은 에트루리아인, 기마전술과 농업기술은 갈리아인, 항해술은 페니키아인, 종교와 음악은 이집트인들이 기여한 부분이 크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로마의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나와 다름'을 곧 '틀림'으로 해석하는 자가 많은 한국에서는 특히나 '관용정신'이 중요해 보인다..
첫댓글 ▪︎그리이스의 학문과 예술 그리고 신화를 배운 로마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