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인구는 1억이 조금 넘으면서 대한민국의 약 2배다.
2020년 필리핀 기대수명(Life Expectancy)은 71.7세이며, 여자는 75.9세, 남자는 67.7세로 세계 128위. 71.7세라는 수치는 30년 전 대한민국의 1990년 평균수명과 비슷하다.
75세 이상의 인구는 필리핀 전체의 4~5프로에 지나지 않는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몇 살까지 살고 싶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70살 정도를 이야기한다. 한국사람에게는 너무 짧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70살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으면 LUCKY로 인식되어 있다. 이렇듯 필리핀 사람들이 오래 살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식습관이 아닐까 합리적인 추론을 해본다.
1. 음식은 단짠단짠, 반찬은 하나
더운나라 특성상 대부분의 음식이 짜면서 달다. 그리고 반찬과 비교해 밥을 많이 먹으며, 식초와 간장이 발달하여 밥을 비벼먹기도 한다. 그리고 채소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2. 달달커피와 탄산은 나의 친구
필리핀 사람들은 인스턴트커피를 즐겨(?) 마신다. 달달하고 양도 많다. 밥 먹을 때 함께 먹기도 하며, 밥 대신 먹기도 한다. 아메리카노는 거의 마시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한다면 설탕을 무지하게 넣어 마신다. 믹스커피를 보면 달고나가 연상된다.
탄산음료는 나의 베프. 일상적으로 마시기도 하지만, 밥 먹을 때도 탄산음료를 많이 마신다. 한국처럼 국이나 찌개 문화가 발달이 안되어, 우리가 햄버거나 치킨을 먹을 때 마시는 것처럼 밥 먹을 때 먹는 탄산은 일종의 세트 개념으로 자리 잡혀있다. 설탕이 많이 들어간 커피나 탄산이 몸에 좋을 리 없지 않은가.
3. 기름에 튀긴 음식이 많다
필리핀은 음식의 스펙터클이 좁다. 한국의 조림, 국, 찜, 찌개, 튀김, 전, 무침, 탕 등과 비교해 필리핀은 대부분 튀김요리가 많다. 필리핀도 맛있는 음식과 전통적인 요리가 있지만, 한국의 음식과 비교해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다. 그리고 기름에 튀기는 요리가 많다 보니 몸에 안 좋을 가능성이 크다.
4. 고기위주의 식단. 채소는
필리핀 친구와 밥을 먹다가, "왜 넌 채소를 먹지 않냐?"라고 물으니 "채소 알레르기가 있다"라고 장난 삼아 말한 것을 나는 믿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채소를 거의 먹지 않는데, 이유는 채소 가격과 고기 가격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형편이 녹녹지 않은 사람들은 고기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우기 시즌이 되면 채소 가격이 많이 오른다. 삼겹살집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은 고깃값보다 상추값이 더 비싸다고 했다. 그래서 서비스로 제공되는 상추보다, 고기를 1인분 공짜로 주고 싶을 정도라고 한다.
5. 인스턴트 음식의 열광
필리핀의 대표 페스트푸드점 졸리비. 필리핀 입맛에 딱 맞춰져 있다. 스파게티를 먹어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이보다 달달한 스파게티는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한국에서는 시간이 없거나, 초이스가 별로 없을 때 패스트푸드를 먹지만, 필리핀은 메인 메뉴가 된다.
6. GYM 찾기가 어렵다.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나도 운동을 하고 싶어 근처 헬스장을 찾지만 정말 잘 사는 동네 말고는 찾기 힘들다. 있어도 시설이 매우 열악하다. 물론 헬스장의 개수와 분포도에 근거해 운동을 안 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운동을 안.한.다.
조깅할만한 코스도 찾기 힘들며, 국민건강에 대한 시설투자와 관심도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7. 웬만해선 병원에 안 간다.
약국이 정말 많다. 한국의 약국은 보통 병원 근처에 있지만, 필리핀은 어디에도 있으며 다 잘 된다. 병원이 없는 시내에도 3~4군데가 있으며, 24시간 운영하는 곳도 많다. 아프면 병원보다는 약국에 가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주변에 건강검진받는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물론 일반 필리핀 사람들 이야기다. 평소 본인의 몸상태를 점검하며 관리를 해주는 것이 현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이 걸리기 쉽고, 병에 걸리면 약국으로 가고, 정말 참지 못할 때 병원에 가지만 이미 늦었다.
8. 열악한 안전장비
안전장비가 너무 열악하다. 남자의 수명이 여자보다 짧은 이유 중 한 가지는 위험한 외부활동에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슬리퍼를 신고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도 많이 봤고, 사다리 하나에 의존해서 높은 전봇대를 오른다. 트라이시클 사고 현장은 언제나 비극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필리핀의 일반 사람들이다. 채소를 많이 먹는 사람도, 운동을 하는 사람도, 병원에서 관리를 받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다. 필리핀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이 낮은 이유는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선택의 폭이 없는, 말 그대로 못살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