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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자 / 1669년경 / 캔버스에 유채 / H.262cm, W.206cm / 상드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돌아온 탕자>는 1669년경 렘브란트 말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렘브란트는 자신을 그림 속에 그려넣기로 하고 성경의 사건 속에 대입시키기를 좋아했다.
이 작품은 렘브란트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뒤 고독한 상태인 자신의 심정을 성경 속 사건을 토대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렘브란트가 살던 암스테르담은 칼빈주의의 본거지라 할 수 있다. 일상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화랑의 문화적 풍토에 영향을 받아 역사적 관점을 그대로 수용하는 신앙고백 형식을 띠고 있다. 암스테르담으로 이사한 지 3년 정도 지난 1636년에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철부지 탕자에 관한 이야기를 토대로 <유산을 탕진하는 탕자>를, 1669년에 <돌아온 탕자>를 제작한다.
렘브란트는 성경의 삽화를 그리는 동시에 자신이 탕자가 되어 인생을 고백하는 기회로 삼는다.
명화 <돌아온 탕자>는 술과 여자 등 정욕의 충족으로 자기 영혼을 만족시키려 했던 둘째 아들이 결국 몸과 마음이 병든 만신창이 탕자가 되어 돌아온 순간을 기록한 내용이다. 렘브란트는 첫째 부인 사스키아와 사랑하는 외아들 티투스의 죽음 외에 여러 번 커다란 불행을 겪어 절망에 빠져있었다. 자신을 탕자로 묘사해 자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만이 끝까지 함께한다는 사실을 작품에 담아냈으며,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아들의 행색은 형편이 없고, 나이든 아비의 마음이 표정에 애잔하게 나타납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좀더 자세히 보자면,
아버지의 얼굴은 많이 기운이 없고, 아들때문에 그새 많이 쇠잔해진 느낌입니다.
아마 아들 걱정에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샜을것 같아요. 정말 많이 기운이 없어 보입니다.
아버지의 두 손이 다른것이 보이나요?? 아버지의 두 손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입니다...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아버지나 어머니나, 다 같은 부모의 마음이겠지요??
아버지의 강인한 손과 어머니의 온화한 손
아버지의 눈은 매일같이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짓물러 멀게 되었다. 때문에 아버지의 시선은 초점이 없다. 이는 눈이 멀기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눈물로 밤을 지새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아들을 감싸 안고 있는 아버지의 손을 자세히 주목하여 보라. 아버지의 두 손은 서로 다르게 그려져 있다. 왼쪽 손은 힘줄이 두드러진 남자의 손이고, 오른쪽 손은 매끈한 여자의 손이다. 아버지의 강함과 어머니의 온화한 부드러움이 손을 통해 동시에 표현되고 있다.
아들의 어깨를 만지는 아버지의 왼손은 매우 강하고 근육질이다. 그러한 손가락들이 아들의 등과 어깨를 넓게 감싸고 있다.
그러나 오른손은 누르거나 잡거나 하지 않는다. 아들의 등 위에 부드럽게 얹혀 있으며 마치 안도감과 위로를 주는 어머니의 손과 같다.
또한 이 손에 모든 빛이 모여 있고 화해와 용서, 치유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림에서 다른 목격자들의 시선도 아버지의 손에 주목된다.
탕자는 삭발한 죄수의 모습
아들 탕자의 머리는 죄수처럼 삭발한 모습이다. 뉘우치는 아들이 스스로
죄인임을 나타낸다.
또한 탕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마의 자궁에서 갓 태어난 아기의 모양이고,
마치 어머니의 뱃속에 머물고 있는 태아의 모습처럼 평안해 보인다.
이것은 본래 고향인 하나님의 품에 돌아왔음을 상징하며, 하나님의 품에 안긴 인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렘브란트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긴 인간의 모습을 엄마의
자궁 속에 있던 아기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즉, 아버지의 모습엔 어머니의 모습과 함께 ‘가장 인간적인 모습 안에 드러나는 신성’을 나타낸다.
죄 지은 인간이 하나님 품에 안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럼 아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행색이 참 초라합니다. 그동안의 고초가 나타납니다. 신발이 말이 아니군요.
돼지먹이까지 먹을 정도였으니까... 짐작이 갑니다.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탕자
아버지에게 돌아온 탕자는 누더기
속옷을 걸쳤는데 거의 몸만 가리고 있다. 그가 감옥에 있었던지, 수용소에 있었던지
황갈색의 찢어지고 핏기 어린 속옷은 그의 참담했던 생활을 대변해 주고 있다. 게다가 샌들이 벗겨진 탕자의 왼발은 상처투성이고, 오른발은 다 닳은 샌들 자체다. 거친 발바닥은 그의 삶이 얼마나 곤궁했는지를 보여준다.
"렘브란트의 작품 <탕자의 귀향>을 정밀하게 모사한 포스터 한 장.
그냥 스쳐지나 갈 수도 있었던 그림과의 만남이 길고 긴 영혼의 순례를 떠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험을 통해 소명을 새롭게 깨달았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앞에 섰습니다.
거의 3년이 다 되도록 생각과 마음에 자리잡고 있던 그림과 마주하게 된 겁니다.
장엄한 아름다움에 숨이 턱 막혔습니다. 그림 사이즈는 사람 실물보다 더 컸습니다.
붉고, 누렇고, 노란 색깔들이 풍성하게 흘러 넘쳤습니다. 음푹 파인 부분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웠고 튀어나온 면은 밝게 빛났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신비로운 구경꾼 넷에 둘러싸인 채 환한 빛 아래 서로 끌어안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원작이 다소 실망스러울지 모른다고 걱정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얼마나 웅장하고 눈부시던지 모든 의구심은 사라지고 그림에 깊이, 또 깊이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곳에 간 것이야말로 진정한 귀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가이드를 따라 수많은 관광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왔다가 또 사라졌습니다.
아랑곳하지 않고 코앞에 놓인 붉은 벨벳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진짜배기를 감상하고 있는 겁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껴안고 있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맏아들이 다른 세 사람과 함게 서 있는 것도 보입니다.
<탕자의 귀향>은 가로 1.8미터, 세로 2.4미터의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대작이었습니다.
한동안은 그저 멍하니 거기 있었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그림 앞에 실제로 와 있다는 감격에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탕자'를 질리도록 구경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머무는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렘브란트의 포스터를 처음 본 이래로 지금까지 살아온 발자취는 내게 영감을 불어 넣어서 이 책을 쓰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뼈대까지 잡아 주었습니다.
먼저 작은아들을 돌아 보고 이어서 큰아들을 검토한 다음,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살펴볼겁니다. 내가 바로 작은 아들이었고, 큰아들이었으며,
이제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더불어 이 영혼의 길을 함께 걷는 이들 역시 스스로 내면을 돌아보고
'길 잃은 주님의 자녀'뿐만 아니라 '안타깝고 불쌍해서 마음이 끓는 부모', 곧 하나님의 모습을 찾게되길 간절히 바라며 기도합니다"
- "탕자의 귀향" 중에서 -
큰아들 ... 바로 내 모습은 아닐까?
다가가지도, 용서하지도, 아니 분노 가득한 저모습속에 ...
첫댓글 요즈음~~ 복음 말씀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 말씀을 강론하시는 신부님들께서~~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 그림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오늘 대건 안드레아님 올려주신 그림과 설명을
통하여 더 잘 알아 들을 수 있게 되었어요.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윤운중 회원님 처럼~~
운중이 열매가 설명했던 내용과 비슷하여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자비하신 아버지와 돌아온탕자의 묵상글과 그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