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차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음료다. 우리 조상들은 아득한 옛적부터 보리를 은은하게 볶아서 차로 만들어 마셔 왔다. 차나 커피가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 겨레가 제일 즐겨 마셨던 음료는 보리차와 숭늉이었다. 보리차에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의료지혜가 집약(集約)되어 있다.
보리에는 겉보리, 쌀보리, 메보리, 찰보리, 늘보리 등의 여러 종류가 있다. 보리차는 여러 종류의 보리 중에서도 늘보리를 껍질 채 볶아서 만든다. 늘보리는 경상북도 지방에서 제일 많이 재배한다. 어렸을 때 흔히 보리쌀을 곱삶아 ‘꽁보리밥’을 지어먹던 보리가 겉보리이다.
겉보리를 늘보리라고도 한다. 늘보리 껍질에 살충(殺蟲), 살균(殺菌)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여름철에 늘보리를 볶아서 차로 마셔서 배탈과 설사를 예방하고 치료했다. 여름철에 상한 음식을 먹었거나 찬 음식을 먹어서 배탈이 났을 때, 곽란(癨亂), 설사(泄瀉), 이질(痢疾) 등에 보리차가 매우 좋은 약이 된다.
우리 조상들이 여름철에 보리차를 마시도록 한 것은 무더위로 인한 몸의 열을 식히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찬 음식을 먹고 차가워진 뱃속을 따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름철 차가운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났을 때 보리차를 먹으면 곧 배탈이 낫지 않는가? 보리차는 성질이 따뜻한 음료다. 게다가 보리차는 살균력이 있어서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 한 여름철에 3일을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 보리 껍질에 있는 살충, 살균 성분들이 부패균의 번식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탄소는 생명의 기본물질
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 중에서 가장 단단한 것은 다이아몬드다. 다이아몬드를 다른 말로 금강석(金剛石)이라고도 한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깨트릴 수 없는 물질이 다이아몬드다. 다이아몬드는 세상에 알려진 모든 물질 중에서 강도가 가장 강하다. 다이아몬드의 모체(母體)는 숯이다. 숯이나 다이아몬드는 그 성분이 같다. 숯과 다이아몬드는 다 같이 탄소로 구성되어 있다.
숯과 다이아몬드는 그 성질이나 기능이 변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숯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곧 절대로 부패하지 않는다. 만년불패지재(萬年不敗之材)다.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박테리아나 세균도 분해할 수 없는 물질이라는 뜻이다. 우리 옛말에 숯의 특성을 나타내는 말로 ‘숯에 곰팡이 날 때까지 살아 보아라’ 거나 ‘사금파리가 썩지 숯이 썩는 것을 보았나’ 하는 말들이 있다.
탄소는 몸에서 독을 내보내어 몸을 정화하고 면역을 키우는데 매우 중요한 물질이다. 모든 생명체는 탄소를 뼈대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 동시에 면역물질로 쓴다. 식물은 햇빛과 물과 이산화탄소와 온도가 반응하여 탄소동화작용으로 영양물질을 만들고 생명력을 얻어 생장한다. 그러므로 탄소는 식물이 생장하고 면역력을 지니는데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산에서 약초를 캐면서 다니다가 깊은 산속에서 간혹 약초꾼을 만날 때가 있다. 약초꾼이 ‘무슨 약초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올바르게 가르쳐 주지 않고 거꾸로 가르쳐 준다. 약초가 동쪽에 있으면 서쪽이나 남쪽에 있다고 하고 서쪽에 있으면 동쪽이나 북쪽에 있다고 가리켜 준다. 전문 약초꾼한테는 반드시 자신만이 아는 약초밭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남한테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약초꾼들한테는 불문율(不文律)로 되어 있다.
며칠 동안을 혼자 깊은 산 속에서 혼자 정신없이 약초를 찾아다니면서 약초를 캐다 보면 더러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일행(一行)이 없으므로 의논을 하거나 물어 볼 수도 없다. 나침판도 없으므로 방향을 알기도 어렵다. 첩첩 산중에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해서 마을을 찾을 수 있을까?
깊은 골짜기에서 약초를 캐다가 날이 저물고 땅거미가 져서 어두워지면 산 능성이나 산꼭대기로 올라간다. 산꼭대기 부근의 바위 밑이나 억새밭에 마른 풀이나 억새 같은 것을 모아 엉성하게 움막을 짓고 그 속에 들어가서 쪼그리고 앉아서 날을 새운다. 추위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자는 듯 마는 듯 하다가 새벽이 되어 먼 산등성이가 희미하게 보일 때쯤 일어나서 마을을 찾아서 발걸음을 옮기기기 시작한다.
그믐날 밤이나 초하루 밤에는 달이 뜨지 않는다. 그런 날은 한밤중이 되면 사방이 말 그대로 칠흑(漆黑)같이 어둡다. 첩첩 산 속이라 산으로 겹겹이 가려져 있어서 사방을 둘러보아도 멀리 마을의 불빛 한 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밤에는 어둠이 깊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으므로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 자리에 앉아서 밤을 지새우고 새벽 세 시나 네 시쯤 되어 어둠이 약간 걷혀서 먼 산마루가 희미하게 보일 무렵이면 일어나서 마을을 찾아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나무 타는 연기가 식물을 잘 자라게 한다
새벽이 되었다 해도 마을의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깊은 산 속에서 어떻게 마을이 있는 방향을 정확하게 찾을 수 있을까? 마을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멀리서 보아서 산등성이의 명암을 희미하게 분간할 수 있을 무렵에 숲이 가장 짙푸르게 보이는 곳을 찾으면 된다. 숲이 가장 짙고 무성한 곳 아래에 반드시 마을이 있다. 동네 주변에 있는 산이나 동네 뒷산의 숲이 가장 무성하기 때문이다.
왜 마을 주변에 있는 숲은 다른 숲보다 더 무성하게 자랄까? 사람이 거름을 주거나 가꾸지도 않는데 마을 주변의 숲이 훨씬 무성하게 자라는 까닭이 무엇일까? 그 이유는 마을에서 밥을 짓거나 소죽을 끓이거나 방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하여 불을 땔 때 나오는 연기 때문이다. 식물들은 나무가 탈 때 나오는 연기를 맡으면 더 잘 자란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나무와 풀을 더 잘 자라게 하기 때문에 숲이 더 무성해지는 것이다. 나무가 탈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탄소성분이 연기에 섞여 나무의 잎에 접촉하여 잎의 탄소동화작용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탄소동화작용을 제대로 못하면 나무나 식물이 말라죽는다.
그래서 늙은 나무들이 어린 나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스스로 몸을 비벼서 그 마찰열로 산불을 일어나게 하여 스스로 불에 타 죽어서 어린 나무들을 키운다는 옛날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탄소는 식물을 잘 자라게 한다. 그러나 요즘 시골이나 깊은 산 속 마을에 사는 사람도 목탄(木炭)이나 나무를 연료로 쓰지 않는다. 너나 할 것 없이 밥을 짓거나 난방을 할 때나 농사를 짓기 위해서 비닐하우스 같은 데 난방을 할 때에도 석유나 가스를 쓴다. 온 산에 나무가 빽빽하게 나서 자라다가 저절로 죽어서 쓰러진 것이 온 산과 골짜기에 널려 있으나 그것을 가져다가 연료(燃料)로 쓰지 않는다.
요즈음 모든 소나무들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 마을 주변이나 도시 주변의 소나무들이 점점 말라죽는다. 옛날에는 마을 주변의 소나무들이 더 무성하고 건강했으나 요즘은 마을 주변의 소나무가 제일 먼저 말라 죽는다. 옛날 마을 주변의 소나무들이 제일 건강하고 무성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마을에서 나무를 태울 때 나는 연기가 소나무를 건강하고 잘 자라게 하는 영양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요즘 마을 주변이나 도시 주변의 소나무가 먼저 말라 죽는 것은 석유나 기름이 탈 때 나오는 매연이 소나무한테 독이 되기 때문이다.
나무를 태운 것이나 기름을 태우면 다 같이 탄소가 생기는데 어째서 나무가 탈 때 나오는 연기는 나무를 잘 자라게 하고 석유가 타면서 나오는 연기는 나무를 말라 죽게 하는 것일까?
소나무가 말라 죽는 이유
소나무가 말라 죽는 것은 소나무 잎에 있는 숨구멍을 매연이 막아서 잎에서 탄소를 흡수하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식물이 타서 생긴 연기에는 탄소가 많아서 식물이 탄소를 더 많이 흡수할 수 있으므로 식물이 더 잘 자라게 한다. 반대로 동물성 지방이나 석유가 타서 생긴 매연은 잎의 숨구멍을 막아서 나무를 말라죽게 한다. 연기의 성분은 어느 것이나 꼭 같이 탄소인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연료가 탈 때 생기는 탄소 입자가 기름과 섞이는가, 물과 섞이는가에 달려 있다. 물과 섞인 탄소 입자는 비와 바람에 쉽게 씻긴다. 그러나 기름과 결합된 탄소 입자는 결합력이 강해서 비바람에 씻기거나 분리되지 않는다. 기름에 먼지와 같은 작은 입자들이 달라붙으면 여간해서는 씻어내지 못한다. 때는 몸에서 생기는 피부 조각이나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먼지 입자가 사람의 피부에서 나오는 기름과 결합해서 생긴 것이다. 기름과 결합된 먼지는 물로 씻어낼 수 없다.
기름이 탈 때 생기는 연기에는 불완전 연소된 기름이 섞여 있기 마련인데 이 기름이 미세 먼지와 결합하여 솔잎의 숨구멍, 곧 기공(氣孔)을 막아서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이고 산소를 내뿜는 기능을 마비시켜 버리기 때문에 숨통이 막혀서 나무가 말라죽는 것이다.
소나무는 한 해에 한 마디씩 자란다. 그래서 소나무의 마디를 세어 보면 나이를 알 수 있다. 건강한 상태의 소나무는 솔잎이 3년 동안 가지에 붙어 있다. 그러므로 솔잎이 가지 제일 끝에서부터 세 번째 마디까지 솔잎이 붙어 있으면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나무이다. 그런데 요즘 소나무들을 살펴보면 잎이 첫 번째 마디에만 붙어 있거나 두 번째 마디까지만 붙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깊은 산 속 인적이 없는 곳에서 자라는 소나무도 잎이 세 번째 마디에까지 붙어 있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솔잎이 첫 번째 마디에만 붙어 있으면 그 나무는 얼마 안 가서 말라죽는다. 우리나라에 자라는 모든 소나무의 수명이 전체적으로 3분지 1이 줄어든 것이다.
나는 몇 달이나 몇 년이 지나도 한 번도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깊은 산 속에 있는 소나무까지 바닥에 잎이 수북하게 떨어져서 말라죽어가는 것을 보고, 몹시 슬퍼서 어느 날 북한산의 말라 죽어가는 소나무 숲에 가서 온 종일 소리내어 통곡하며 울었다. 나는 나무한테 내 잘못을 용서하여 달라고 빌었다. ‘내가 잘못해서, 내 욕심 때문에, 내 이기심 때문에 그리고 내가 잘 몰라서 너희들을 죽게 한 것이다. 내가 직접 도끼를 휘둘러서 너희들을 죽인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저들과 꼭 같은 사람이라, 너희들 신세를 지고 살고 너희들 덕분에 편리하게 살면서도 너희를 죽게 하였으니 제발 나를 용서하여 달라’고 하면서 목을 놓아 통곡하며 하루 종일을 울었다.
사람이 지은 잘못으로 인해 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다. 사람이 제 편리함을 위해서 자동차에 기름을 때고 집에 난방을 하며 공장 굴뚝에서 매연을 뿜어내고 발전소를 만들어서 전기를 만드는 등 기름을 태워 연료로 사용한다. 석유가 탈 때 나오는 독으로 인해 나무가 죽어가는 것이므로 사람의 편리와 이기심으로 인해 나무들이 억울하게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