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서울 갑니다.
예진이의 몸과 마음이 또 얼마나 자랐을까 기대합니다.
예수님 이야기로 행복한 우리들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계시록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진리의 말씀을 밝히 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본문 주해)
요한계시록의 기록된 연대는 AD. 95년 전후로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박해시대로 추정한다. 이것을 기록한 목적은 도미티아누스 시대의 박해받는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함이다.
계시록의 수신자가 되는 아시아의 교회와 성도들은 극심한 박해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들은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께만 영광과 능력을 돌려드림으로써 순교의 잔을 받아야 했다. 다른 한편으로 성도들은 팍스 로마나가 주는 세상의 사치와 향락에도 맞서야 했다.
바벨론의 음녀로 표상되는 세상적인 번영과 풍요, 사치와 쾌락은 신실한 자들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1~3절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를 주시는 분도 되시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라는 말씀도 된다.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
지금 사도 요한은 복음으로 인하여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고, 당시 엄청난 핍박과 순교가 일어나는 시기의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이 속히 올 것이라고 말씀은 큰 위로가 되며 기쁨과 소망이 된다.
계시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주셨고 그리스도는 천사들을 보내셔서 그의 종 요한에게 이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요한은 이것을 보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과 요한의 증언은 동일하다.
3절의 ‘예언의 말씀’은 당시 예배 시에 큰 소리로 읽혀지도록 의도된 말씀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계시는 교회 예배 시에 크게 읽혀져 모든 성도들의 듣고 주의해야 하는 말씀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단수)와 듣는 자(복수)와 지키는 자(복수)는 복되다. 지킨다는 것은 ‘주의하다’라는 뜻이다.
4~6절 : 사도 요한이 받은 이 계시를 전달하는 일곱 교회에 대한 인사말이다.
일곱 교회란 세상의 모든 교회를 가리키고, 세상의 모든 교회란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교회로서 하나뿐인 교회라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교회에 편지하면서 인사하는 말이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인사를 한다.
성부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로, 성령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으로 4절에서 말씀한다. 성자는 5a절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으로 말씀한다.
5b~6절은 성자 예수님의 사역을 말씀한다.
첫째, 그의 피로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하였고, 둘째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그의 피로 죄로부터 해방하신 것은 그의 죽음으로 우리가 죄에서 자유케 되었음을 말한다.
그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이다. 피로 값을 주고 산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요 제사장인 것이다. 즉 주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자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자들인 것이다.
7~8절 : 두 가지가 계시가 이어진다.
첫째,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가 구름 타고 재림하심에 대한 계시이다.
그때 땅에 속한 자들, 주님을 찌른 자들이 보고 애곡한다. 십자가에 죽은 그 예수를 거리끼고 어리석다고 믿지 않았는데 그분이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심이 드러나기에 믿는 자들은 구름 가운데로 이끌려 들어가서 그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애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 자신을 계시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시간인 과거-현재-미래를 초월하여 시간 밖에 현존하신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시작과 끝을 말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개념을 포괄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알파와 오메가로서 하나님은 모든 시간적인 것과 공간적인 것을 벗어나신 분이시며, 시간과 공간의 주가 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나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모든 것의 지배자이시다. 그래서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만물의 근본이 되신다.
(나의 묵상)
계시록을 시작하면서 주해를 읽어보니 처음부터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다.
내 머리로는 다 정리되지 않지만 크게 정리해 본다.
박해받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아시아 일곱 교회들)에게 속히 일어날 주님의 재림을 말함으로 그들에게 소망과 평강을 주고자 하는 말씀이다.
오늘날은 사도 요한의 시대, 목숨을 걸고 믿어야 하는 그 당시와는 다르다.
누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죽이려고 으르렁대지 않는다.
정말 믿음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시 오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얼마나 간절히 기다릴까?
그 옛날과는 달리 물리적인 위협은 없지만, 우리들의 믿음은 늘 위협받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탄은 열심히 자기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시대적 상황에 맞게 때로는 위협하기도 하고 때로는 유혹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유혹은 무엇인가?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의 풍요로움에 젖게 하거나, 자기 열심에 몰입하게 함으로 십자가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열심히 교회를 다녀도, 십자가와는 상관없는 종교생활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그 중에, 일주일에 한두 번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그나마 복음을 듣는다면 간간히 숨은 쉬겠지만, ‘세상에서 잘 사는 법’과 같은 쓰레기를 설교라고 듣는다면 그런 불행이 없다.)
때때로, 주일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일주일을 잘 살아내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듣기도 한다.
그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그 말씀으로 어찌 일주일을 어떻게 살아낼까?
한 번의 진수성찬으로 배부르면 일주일을 굶을 수 있을까?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주님의 십자가는 한없이 멀어진다. 멀어진 그 자리에서, 일에 실패하면 자기연민이 들어오고, 일에 성공하면 자기의가 자리잡는다.
그러면 자신을 합리화하게 되면 그럭저럭 지내다가 드디어는 자기가 만든 신을 부지런히 섬기면서도 신앙생활을 잘 하는 자로 착각하는 것이다.
예배의 자리도, 말씀의 자리도 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자기부인이 되는 그 자리에서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기다릴 수밖에 없다.
십자가에 연합되는 자는 아무도 핍박하지 않아도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린다.
오늘날 예수 믿는 나를 아무도 핍박하지 않지만, 나는 주님 다시 오심을 점점 더 기다리게 되었다. 그것은 주님이 점점 더 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내 마음이 되도록 하는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그 사랑을 나타내신 아들의 십자가 대속의 사랑과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 때문이다.
그 사랑을 누리며 이제 맑은 하늘이든, 구름 많은 하늘이든, 불타는 저녁 놀을 볼 때도 ‘혹시 주님 오시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묵상 기도)
주님,
그 옛날 핍박 속에 주님을 기다리던 성도들의 간절함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없는 믿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따르는 대열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은혜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오늘일지 내일일지 알 수 없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합니다.
그날에 이르기까지 이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