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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6.3.왜 현재형인가?범박가족은 동일한 논리틀을 써야 넷에서 근혜님을 돕는 것
-이명박이 좌익이라고 부르면서 왜 좌익인지 모르는 범박가족들에게-
-선거판에서 팔이 안으로 굽기를 잘하려면, 현대사를 3040과 동일하게 인식해야-
1. ‘30~40’에 강제로 배워진 강만길과 좌파역사학 기준이 이 시대의 진실.
lovingu님이 4.19 세대로서 유명세 있는 자가 거의 대부분 6.15세력이라는 것에 대하여 크게 힐난했다.
50대들이 대학교 시절에 5.16이 4.19를 승계했다는 점에서 제한적으로 승인한 바를 긍정한다. 그러나, 그 지식은 완전히 잊혀졌다.
4.19는 좌파들이 8.15부터 대한민국 건국까지 부르는 ‘해방공간’이란 표현과 더불어서 ‘4.19 공간’으로 부른다. 박정희 대통령 연설문을 통해보면 4.19 공간 시위의 본질은 ‘건국 자체’에 대해서 ‘역사도 짧은 것이 국민 배굶긴다’는 차원의 전국민적 얕잡아보는 데모와 항의 시위였다.
함석헌은 [사상계]잡지로 박정희에 대항했고 이승만부터 박정희 시대 이후의 역사 전체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좌익 반체제 기독교단의 하나님 역할’을 차지한다.
함석헌이 민주화 인사라고 하는 바에서 결국은 ‘건국 정통성’마저 부정했다는 것보다는, 박대통령의 유교적 권위주의 양식에 대하여 숨통을 줬다는 의미와 정부 비난의 재미를 줬다는 측면이 강하다.
4.19 공간의 시위는 좌파 역사책 어디에도 이승만 정권 타도로 만족한 것이라고 적지 않는다. 오히려, 류근일 기자가 참여한 5.16의 직접적 유발 계기가 된 남북학생연석회의에서 ‘남북만남’을 전제로 가난을 면치 못하던 나라를 절단 내려는 움직임이 드러난다.
6.3은 두 얼굴을 가졌다.
4.19 공간 안에서 박대통령의 시선을 통해보면, 반국가적 내란행위이다.
박대통령 시선 아니래도 그 당시에 생각가능한 법학자의 최대치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6.3은 대학가에서 사무라이 배포의식 대로 한 대학이 나가면 다른 대학도 따라나가야 한다는 식으로, 1980년대 대학가 학생데모의 어버이 역할 형식을 차지한다.
또, 좌익 시위로 잡힌 학생을 담보로 학부모가 좌익이 아니라고 억울하게 잡혔다는 시위의 최초 형태에 해당된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만나서 반공전선 하길 바랬다.
한국 국민 대부분은 ‘반공전선’엔 동의하나 일본에 저자세 아닌가 하는 측면의 시위를 잠깐 했다.
6.3의 데모 시위글에는 노골적인 계급혁명글이 적시되어 있다.
한일회담 문제에서 김종필의 일처리 불만을 넉넉하게 분명히 초과한다.
6.3의 데모대의 문장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이론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 한국을 식민지로 얽고 있고, 그것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 주요 논거이다. 오늘날의 반 에프티에이의 민노당 학생투쟁위와 정확히 동일한 이데올로기이다.
4.19는 본질이 통일운동이다.
즉, 겉으로는 이승만의 독재 반민주 처단이 이유이고, 속으로는 김일성의 연방제에 동의하는 대학생 집단의 움직임이다.
좌파 모든 텍스트가 표현만 보다더 ‘한겨레신문’적으로 적시할 뿐이지, 기본 내용은 같다. 4.19로 지적 재산권을 발휘하는 자는 아마도 북한과 과거부터 오랜 접속이 되는 이들일 것이다.
6.3은 4.19 서적에서 받아주는 책도 있고 아닌 책도 있다.
6.3의 본질적인 성격은 학생은 4.19 연장선으로 친북적 대한민국 전복운동을 했는데, 국민은 5.16정부에 궁극적 신망을 가져서 박대통령의 6.3 진압이 성공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박사모 ‘러빙유’의 쪽글로 드러났지만, 범박가족 중 일부에서 가장 이해 못하는 것은 임종석이 1980년대에 대해서 혼자서 다 아는 것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알면서, 김근태, 백낙청, 강만길 등 유명한 6.15세력이 4.19를 혼자서 독점하는 바를 모르는 것이다.
특히, 교과서마저 6.15 세력 학자 논리로 기록되고 청소년들이 전부 그렇게 배웠는데, 과거 기준의 이미 죽은 개가 된 낡은 학설을 고집하는 것이다.
2. ‘4.19의 본질이 이승만체제 전복 이후의 친북연공운동(좌파책은 동일하게 표현하나 친북연공운동 아닌 통일운동이라 기록)’임을 알지 못하면, 이명박의 6.3이 왜 좌익인지를 전혀 모른다는 말. 6.15는 4.19에서 씨뿌려진 정신의 지속이다. 물론, 4.19의 본질을 이승만 체제 전복 이후에 류근일기자가 학생운동하던 바탕의 정신이라고 할 때, 6.15는 4.19의 지속이다.
범박가족은 4.19에 대해서 1980년대 데모대로 참가해서 자기는 순백한데 전체를 주사파 논거로 몬다는 투로서 울부짖는 노인들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이미, 임종석이 정치의 승리자로서 서술권을 독점했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고 뒤엎으려 하지 않고 도대체 뭐하는 일인가?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민족해방운동’으로 불려진다.
민족해방운동인즉슨 ‘국민국가의식’을 담보한 이를 악당으로 모는 것이다.
이승만, 전두환, 박정희가 악마가 되는 이유, 그리고 반 한나라 연합전선의 이회창이 악마가 되는 이유도 동일하다.
여기에서 조갑제기자식의 ‘유럽의 민주화’는 깨끗하고 그들이 더렵혔다는 프레임은, 결국은 우파의 논거를 방황하게 하면서 좌파의 민족해방운동가의 동료를 살리게 하는 방향성이다.
기독교인은 한 시대 학계 전체 논거를 쏟고서 전혀 다른 이에게 자신을 신뢰해서 말하기에 주저 없어야 될 정도의 바탕이 있어야 한다.
정말로 상대에서 반론 가능한 논거에도 자유로워야 하지만, 결국은 중고교 지식이 청소년들을 특정 사유로 찍어서 고정시키는 정치성에 이유가 있다면 현실에 돌아가고 있는 지식은 정확히 인정해야 한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곧 민족해방운동(북한은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체제로 하는 게 아니라 인민민주주의 민족해방운동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즉, 국가주의의 사유주의의 모토 자체도 부정하고, 김일성 공산당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패권자이며 어떠한 논거도 대항을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김영삼에 대하여 비판하는 논거는 김일성 주체사상의 논거를 그대로 활용하되, 김일성 자리에 김영삼을 배치하면 애국사상이 되느냐의 문제와 같다.)이다.
민주화운동=민족해방운동=통일운동이다.
‘선’은 국민국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이들이고 ‘악’은 그것을 인정하여 자유민주주의 법적 보호를 받아 발전한 이들이다. 통일운동의 본질은 ‘정반합’으로 미래의 통일조국을 긍정적으로 만든다는 말이 아니다.
이렇게 하는 한 ‘중국공산당’처럼 매사의 모든 악마적 깽판을 ‘과도기’문제로 얼버무리는 일이 발생한다.
실제로 정반합이란 변증법은 맑스의 헤겔해석일 뿐이다.
통일운동의 본질은 곧 훌훌 섞는 논리 속에 대한민국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암호코드로 암호가 발각되면 ‘빨갱이’아니라는 극렬 반대로, 문맥 그대로 읽으며 ‘코드해독’독법을 하지 말라고 하는 차원이 반복된다.
6.3 동지회는 4.19 공간 끄트머리의 대한민국의 공권력 집행을 승인하면, 동지 자격이 남아 있지 않기로 유명하다.
곧, 대한민국의 국가기강이 약하다는 차원으로서, 건국 10여년 역사의 *같이 가난하기만 한 대학생들의 타도대상으로서의 국가 의식 자체를 영원히 ‘善’으로 장착해야 동지 자격이 유지된다.
과연, 이명박 시장이 한나라당의 당권을 장악하고서 한나라당을 보수당으로 유지해야 될 이유가 존재할까? 연기력 보수주의조차도 북한의 적화야욕에 맞서는 데에 중요하다.
6.3 운동은 4.19 공간속에 자리하며 4.19 공간은 이승만 전복 이후에 참의미를 발하는 ‘친북연공’(통일)운동이다.
3. 6.15 세력 권력층의 심층은 전부가 4.19 세대 좌파들. 6.3 운동과 전부 조직의 맥이 닿고 있어. 조갑제기자의 유신시대 해석을 놓고 보면, 분명히 조갑제기자는 4.19 무렵에 대한민국 타도 운동을 벌였던 이로 사유될 수 밖에 없다.
조인스닷컴 디지털 국회 모 논객이 조갑제기자가 생산한 경제 발전과 독재를 분리해서 두는 논거가, 편의적으로 경제 살리기의 어떠한 국가기강 요소도 만들지 못하며 박정희 경제성과 그대로 흉내낼 수 있다는 사기극이란 기록이 말해준다.
6.15 세력 권력층의 심층은 전부 4.19 세대 좌파들이다.
군사평론가 지만원님이 류근일기자에 대하여 다시 의문을 취하는 것은 정당하다.
6.15세력의 본질이 그들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 사이의 혁명 투쟁에서 몸에 각인된 첫사랑의 은은한 반백년을 이어가는 지속인 것임을 아는 입장에서는 마땅히 정당하다.
이념 문제가 국난기에 다시 떠올라져야 하는 것은, 내전 지형에서 내부에 적이 있을 때 얼마나 허약한가에 대해서 국방차원의 상상력인 것이다.
(지만원군사평론가에 모든 내용이 불만스러울 때가 있어도, 하늘이 무너져도 변함없는 것은 지만원 군사평론가는 진짜 장교이고 조갑제기자는 방위병이란 사실이다.
도무지, 조갑제기자는 전쟁 마인드가 군대에서 배운 게 아니라 무협지에서 배운 듯 하다.
기독교인들의 띄워주기의 과잉수사는 역겹다.
하나님의 심판을 제들 스스로 믿지 않으니, 그따위 과잉수사가 나오는 것이다. ) 6.15 세력의 심층이 전부 4.19 세대이며, 김영삼 세력의 인맥의 핵심이 6.3운동에서 기원한다면, 이러한 결론이 가능하다.
김영삼 김대중은 겉으로만 싸운 척 했지, 대한민국 건국 세력이 처음부터 완전히 끝까지 무너지는 것에는 언제든 동의할 수 있다는 바탕이다.
범박가족들이 이명박에 좌익이라고 했으면서도, 왜 좌익인지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정치인에 부정 이미지 생산으로서 상대가 약올라하는 것에만 즐겨 했던 것이다.
결국, 지금부터라도 일치된 프레임으로서 역사인식을 세워야 한다.
이승만 타도 이후의 4.19학생운동의 연장선상의 6.3이 6.15 정신에서의 반역지평의 원조였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4. 박근혜의 열린당 공격은 ‘과거사’, 범박가족의 단일한 역사 프레임만이 해결책. 한은경의 박근혜 공격 수법이 열린당의 열독 대상으로 열린당 대변인이 취합했다면, 바다를 건너다의 이명박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열린당지지자가 열독했다.
박근혜를 돕고자 했던 것이 범 박가족은 이미 폐기된 낡은 역사관에 빠져 있는 동안에, 김일성 충성의 수십년 파벌들에 ‘이명박의 재발견’의 이유가 되었다.
박정희 체제에 타협한 것은 살기 위해서 타협한 것이며, 줄기차게 6.3 동지회 정신을 고수함은 김일성 주체사상만을 좋아한 사람들로 열린당 지지자에 강하게 인식된 것이다.
범 박가족이 3040세대의 인식 체계에 대해서 알려줘도 배우려 하지 않는 동안, 열린당 지지자는 이명박에 재 발견했다.
반면에, 조갑제기자같은 딸이 한총련 주사파인 넉넉한 이유가 있는 이들과 비슷한 경력의 매스미디어속의 예전의 반 대한민국 기자 동우회의 은밀한 선택이 좌우되었다.
3040 역사학 인식의 일반을 보수주의 시각으로 재고찰한 것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지 않으며, 상대가 싫어하는 말하면서 즐긴 차원에 그친다.
범 박가족이 동일한 인식틀로 이명박을 몰아가지 않으니 이명박은 김일성 충성파들의 지지도 받고, 위장된 좌파 기자들의 지지를 받아서 보수이미지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은 반성하고 과거와 작별할 수 있음으로서 동물이 아니다.
솔직한 말로 임종석과 동일시될 수 없는 80년대 순수함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러나, 권력자로 임종석이 80년대를 만지작 거리자, 386세대 어디 항변하는 가? 오히려, 암기해야 될 것과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것은 임종석같은 좌파 권력자의 말이다. 4.19 세대의 통일의지가 모르긴 모르되 속층탑에서 김일성 공작금에 의거한 데모대임을 알지 못하면, 6.15 권력의 김대중 보조 조수세력의 정신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손학규도 과거에 6.15 옹호를 멈추고 보수화되었고, 이명박도 6.15 옹호를 멈추고 보수화되었다.
그러나, 20대 에 세워진 마음은 어디가지 않는다.
연기력 보수도 별도로 즐기고, 한나라당도 유지하여 승리하려면, 박근혜의 승리 밖에 길이 없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친북좌파들이 김일성 충성파로서 비춰지는 고통 받는 세력이 있으면 바로 팔이 안으로 굽는다. 그런데, 우파는 위장된 좌파 세력기자들의 말을 너무 믿고 있다.
본시, 통일안에 대하여 우파의 통일안은 통일안이 없는 것이었다.
미국의 식민지 됨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모두에게 흘러넘쳐서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될 때로서 ‘주님의 계시’가 올 때를 기다리는 준비론적 자세가 우파의 통일안이 맞았다.
첫댓글 데모꾼은 데모꾼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군대를 갔다온 데모꾼은 몇명이나 될런지...오죽하면 데모한 인간들이 그것을 민주화네 어쩌네 하니까 선거벽보 붙일때 전과 기록도 올리자고 했을까??난 그들을 데모꾼이라고 부르고 박정희 시대때 데모꾼들은 결코 국가에 기여도가 없다라고 단정한다..사돈을 삼더라도 데모꾼 자식하고는 삼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