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간 화요일>(2023. 5. 16. 화)(요한 16,5-11)
복음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5-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5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6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7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요한 16,5-7).”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라는 말씀은, 아버지께서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고 아버지께로 되돌아가신다는 뜻이기도
하고, 당신의 ‘죽음의 시간’이 곧 닥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지상에서의 사명을 마무리하신 일입니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라는 말씀은, “너희는 왜 이렇게 나의 ‘죽음의
의미’는 생각하지 않고 슬퍼하기만 하느냐?” 라는 뜻입니다.
앞의 13장을 보면,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분명히 물었습니다(요한 13,36).
그래서 여기서 예수님 말씀은, 묻는 사람이 ‘지금’ 없다는 뜻이고,
당신의 말씀은 들으려고 하지 않고 슬픔에만 빠져 있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는 “떠난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입니다.
여기서 ‘근심’은 ‘슬픔’으로 바꿔야 합니다.
당시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별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 없이 슬퍼하기만 했습니다.
<그 당시에 제자들에게는 아직 부활 신앙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기만 한 것을
크게 잘못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부활 신앙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가?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의 임종과 장례 때에 슬퍼하면 안 되는가?
이별을 슬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입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거나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라는 말씀은, 당신이 지금 하시는
말씀은 중요한 ‘계시’ 라는(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라는 말씀은,
당신이 떠나시지 않는 것은 제자들에게 해롭다는 뜻이 아니고,
“내가 떠나도 너희의 영적인 이로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로 해석되는 말씀입니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라는
말씀은, “내가 떠나도 성령께서 너희에게 오신다.”, 또는 “나는
떠난 뒤에도 성령을 통해서 너희와 함께 있겠다.”로 해석됩니다.
이 말씀의 “떠나지 않으면... 오지 않으신다.” 라는 표현 때문에,
예수님과 성령이 마치 임무 교대를 하듯이, 또는 서로 마주치는
것을 피하듯이 그렇게 엇갈려서 제자들에게 오시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것은 아니고, 예수님 말씀의 뜻은,
당신이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 제자들이
따로 성령을 받지 않아도 되지만, 이제 당신이 승천하신 뒤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변화하시면, 늘 제자들 가운데에 당신이
현존하신다고 해도 제자들을 위해서 따로 성령 강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타내신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라는 말씀은,
앞의 14장에서 하셨던 약속 말씀을 다시 확인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요한 14,16).”
<교리서에는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복음서에서는 아버지께서 보내신다고 표현될 때도 있고,
예수님께서 보내신다고 표현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뜻은 모두 같습니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요한 16,8-11).”
여기서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라는 말씀의 뜻은, “너희가 성령을
받게 되면, 너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박해자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입니다.
<성령께서 직접 사람들을 가르치신다는 뜻이 아니라,
제자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도 그들이 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 말씀들은,
신앙인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그 일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항상 일은 신앙인들이 하는 것이고,
성령께서는 일하는 신앙인들을 도와주십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아무 일도 안 하면,
아무 도움도 못 받게 됩니다.>
‘보호자’는 성령이고, ‘세상’은 박해자들입니다.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라는 말씀의 뜻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은 것은
죄라는 것을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고”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신앙인들을 ‘죄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죄인은 믿지 않은 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라는 말씀의
뜻은, “내가 아버지께 가는 일은(나의 승천은) 곧 내가 의롭다는
것을(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을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고, 나를 죄인이라고 생각해서 단죄한 그들이 잘못
생각했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의 뜻은,
“그들은 자신들이 나를 심판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의 부활은 사탄이 심판을 받았음을 나타내는 일이 될 것이고,
동시에 사탄의 하수인이었던 그들도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닫게 될 것이다.”입니다.
[출처] 부활 제6주간 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