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선상의 아리아
G 선상의 아리아는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에 들어 있는 곡으로 19세기에 들어와
아우그스트 빌헬르미라는 바이올리스트가 A현 라장조를 G현 다장조로 편곡하면서
유명해진 곡이다.
그때부터 가장 낮은 음인 ‘G선상의 아리아’란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영혼이 교감하는
숨소리라 불릴 만큼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켜 주고 누구나 편안하게 들을 수 있어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도 널리 쓰여 진 곡이다.
음악평론가 박용구 선생은 ‘음악과 인생’이라는 수필을 통해 한 젊은이에게 들은
이야기를 소재로 음악의 위대함을 널리 알린 바 있다.
6.25전란중인 1.4후퇴 때 남쪽으로 가는 피난열차는 초조와 불안, 인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생과 지옥의 갈림길이었다. 조금 가다가 덜커덩하고 멈추기를 반복
하는 암흑의 화물차간은 고성과 폭력이 오가는 무법천지로 총은 없으나 살벌하기가
전쟁터 못지않았다. 그 때 한 젊은이가 말없이 가방에서 축음기를 꺼내 레코드판을
올리고 바늘을 얹는다. 고아(高雅)하고 잔잔한 바이올린의 선율이 극한의 대립으로
아수라장이 된 화차의 공간에 울려 퍼지자 하늘도 땅도 사람도 숨을 죽인다.
그 고요를 타고 잔잔하게 흐르는 축음기의 가냘픈 선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
해지면서 살벌해진 인간의 야성에, 이성의 진정제를 투여한다.
오직 신만이 울릴 줄 알았던 영혼의 소리가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모든 이들을 절망
으로부터 구하고 경건하게 만든다. 서양음악이라곤 생전 처음 접해보는 시골 노인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곡을 한번만 더 듣게 해 달라고 애원을 한다. 그 곡이 바로
‘G 선상의 아리아’였다.
이태리가 낳은 천재적인 바이올리스트로 ‘파가니니’가 있었다. 어느 날, 음악 애호가들이
모인 연주회장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연주 도중에 줄이 하나
끊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남은 세 줄을 가지고 연주를 계속해 나갔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한 줄이 더 끊어지고 이어서 또 한 줄이 끊어졌다.
이제 남은 줄은 달랑 하나 밖에 없었다. 청중들은 불안해하고 당혹해 하면서 오늘 이 연주
야말로 그에게 있어 최고의 불행한 연주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청중들을 바라보고 잠시 음악을 멈추더니 남은 한 줄을 가지고 완벽한
연주를 끝까지 소화해냈다. 우레 같은 기립박수가 연주회장을 떠날 줄 몰랐다.
가장 처절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가장 감동적인 선율을 탄생시킨 명 연주였다.
그 비운의 연주가 파가니니를 그토록 유명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G
선상의 아리아’였다.
4줄로 연주하는 악기가 바이올린이다. 그 중에 가장 낮은 음을 내는 줄이 G선인데 때론
하나 남은 G선만 가지고도 이렇게 훌륭한 음악을 연주해 낼 수 있다고 하니 인간만이
지닌 기적의 산물이고 음악만이 가진 무한의 능력이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차 떼고 포 떼고 장기판을 뒤엎던 그 오기조차 꺾이며 차차 힘이 빠
지기 시작한다. 육신에 힘을 실어 주고 주변을 감싸주던 철석같이 믿었던 줄들이 하나 둘
끊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주위에 마주하는 초라한 노년의 단선(斷線)을 바라보며 ‘설마 나야 안 그렇겠지!’하고
스스로 위안을 해 본다. 허지만 어두움이 드리기 시작하는 황혼의 어느 때 쯤에는, 철옹성
같았던 견고한 줄들이 하나, 둘 끊어져 나가는 아픔이 나에게도 찾아온다. 전전긍긍해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되돌릴 해법은 없다. 어김없이 밀려오는 생노병(生老病)의 고해(苦海)
속에 노년의 가슴을 저며 내는 단선의 아픔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인생
이다.
첫째로 끊어지는 줄이 명예의 줄이다.
나이 들어 은퇴하는 순간, 왕년의 나는 곳간에 묻어 놓아야 한다. 님 자가 붙으며 우대받던
내 직함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아저씨, 노친네로 불러지며 천덕꾸러기가 된다.
몸도 예전 같지 않아 금방 기억한 것도 돌아서면 남남이되고 눈도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방황하기 일수 이고 어깨도 축 늘어져 이빨 빠진 호랑이 꼴이 된다.
그나마 집안에서라도 대우를 해주면 좋으련만 어른이 큰 기침하고 대접받던 시절은 어디
로 갔는지, 어찌 된 세상이 구박만 늘어난다. 화려했던 날들의 명성은 동강난 명예의 줄을
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자개로 멋을 낸 근사했던 명패는 겹겹이 쌓인 먼지에 묻혀
골동품이 되어 간다.
둘째로 끊어지는 줄은 물질의 줄이다.
나이가 들면 은퇴라는 이름으로 직장에서 퇴출을 당한다. 당연히 돈줄이 끊어지게 된다.
연금이라도 제대로 받는다면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열에 하나도 드물다.
돈줄이 끊어지면 자연히 행동반경이 줄어들고 인간관계도 좁혀진다.
늙어서 돈줄은 생명줄이라는데 자식혼사 치르고 아픈 곳 치료하러 병원을 드나들다 보니
가벼워지는 것은 구멍 난 주머니 밖에 없다. 그나마 사람다운 노년을 보내고 인연의 끈을
조금이라도더 붙잡아 둘 요량이라면 남은 돈 줄이라도 꽉 잡고 잘 조절해야 한다는데 한번
빈 주머니는채워질 줄을 모른다.
돈 앞에선 가식이라도 끈을 놓지 않는 게 세상인심인지라 돈을 잃으면 사람도 잃는다.
그래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가 아니고 “일하세,일하세 젊어서 일
하세. 늙어져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놀 수 있나니 젊어서 열심히 일하여 많이 저축하세”
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끊어지는 줄은 인연의 줄이다.
세상을 살면서 이런 저런 연유로 나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숫자가 늘어나고 죽음의 문턱에 다다를 때는 제 가족마저 외면하는 경
우도 있다. 세상을 살면서 소통하고 관계를 맺었던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에 모른 척, 눈을
돌린다. 가장 가까이 했던 친구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환희와 감동을 주었던 그 좋은
풍광과 삶의 즐거움도 건강과 돈이 받쳐주지 못하니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다.
어차피 갈 때는 혼자 가는 것이 인생이라 하지만 나이 들어 외로워지는 것은 여간 서러운
일이 아니다. 내 삶을 즐겁게 했던 가족마저도 자주 볼 수 없게 되고 전화기에 입력되었던
연락처의 숫자도 점점 지워져 손가락 수만도 못하게 되니 이보다 서글픈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미 동강난 세 가닥의 줄 밑에선 G선을 닮은 마지막 한 줄이 달랑 매달려 애처로운 연명을
지속하고 있다. 곡식은 가을이 되면 알곡으로 영글어 머리를 숙이고 오래 붙어 있던 집을 떠
나누군가의 양식이 된다.
사람도 알곡처럼 속 알이 잘 익으면 머리는 숙여지고 교만은 끊어지며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
무욕무지(無慾無知)의 상태가 된다. “몸집을 떠나기 전에 탱탱하게 응곤속알! 감사와 용서와
사랑으로 잉태된 그 말갛게 영 근 속 알!“ 한참 미숙아인 내게도그런 성숙의 환희가 올수 있
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남은 한 줄에 매달려 가슴속의 속 알을 키우고 마음은 하늘로 승화시켜 기쁨으로
충만 된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것이 내 영혼을 내주고라도 붙잡고픈 내 마지막 연주의
주제곡이다.
‘G선상의 아리아’를 들으면. 걱정과 슬픔은 사라지고 행복의 바이러스가 내 몸에 녹아내린다.
그래도 철지난 매미의 울음소리는 처량하게 들리고 살날이 얼마 안 남은 G선의 노랫소리는
그 마저 슬픔인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이렇듯 삶이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며 인생은
정답이 없는 영원한 불가사의(不可思議)인 것을 어찌 하리오.
출처 : 남 택 수
G선상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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