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다 가기도전에 딸기가 끝물이란다.
이런...사람이고 식물이고 이제 혼이 다 빠져 제' 때 '라는것을 모르고 산지 오래다.
한살림에서 끝물딸기를 사오다가
또 한장면이 떠올랐다.
여름이면 외갓집에 놀러가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수박,참외,딸기를 따먹었던 나는
그때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나이였지만
그것들이 여름에 땅위를 기면서 여기저기 널부러져 열매를 맺는다는걸 몸으로 선명하게
기억하고있다.
수박,참외,딸기는 그래서 여름과일이다.
이북서 부인이고 자식이고 모두 곧 다시만날꺼라 생각하면서
한밤에 일어나 아빠를 따라가겠다고
울어제끼는 14살 큰딸인 울엄마만 데리고
급히 피난을 나온 외할아버지는 칼같은 성격과 타고난 근면함으로 경기도 포천에 자리를 잡고 얼마간의 밭농사와 양계업을 시작하셨다.
여름엔 그렇다쳐도 밤이 긴 한겨울에도
칠십이 다 된 노인이 새벽 네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양계장에 불을켜고 물을주고 사료를 주는걸보고
어린나이에도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면서
할아버지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여겼었다.
그때 양계를 하는 농장에 보급되던 잡지가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남들보다 큰 알을 생산하고도 기준무게를 넘긴것은 무조건 특란으로 분류되는걸 억울하게 생각해서
왕란,대왕란이란 분류를 새롭게 만든분이다.
그래서 그잡지에 할아버지네 농장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창고에 앉아 언손을 호호불면서
양팔저울한쪽에 쇠로된 추를 올려놓고
또 한쪽에 계란을 올려
하나하나 무게를 재어 경란,소란,대란,특란...으로 구분하여 계란판에 차곡차곡 쌓아놓으면 커다란 트럭이 와서
그계란들을 실어갔다.
그때는 냉장창고라는 개념도 없던 70년대라서 할아버지는 마당에 지하창고를
지었는데 한여름에도 그곳에 들어가면 온몸이 서늘한것이 너무 신기했었다.
서울에서 나이차이많은 외할머니가 아이넷을 데리고 할아버지와 재혼을 하셨다.
불같은 성격의 호랑이할아버지보다는
나와는 피도 안섞인 외할머니는 당신손주들보다 언제나 우리형제들을 더 이뻐하셨었다.
물론 우리와 훨씬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친손자보다 더 살갑게 감기는 우리에게 더 정이 가는게 인지상정이었을것 같다.
아이넷을 데리고 청상과부로 사시던 할머니께서 할아버지와 재혼하여 고생도 많이 하셨지만
나에게는 눈감고 떠올리면 얼굴하나가득 웃음이 번지게 따뜻한 추억을 너무나 많이 안겨주신분이다.
할머니도 보고싶네. 흑
지금은 할머니의 막내딸과 함께 사시는데
언니와 할머니를 모시고 꽃피는 봄에 예전 농장에 나들이 가자는 약속을 못지킨지 삼년이 다되간다.
봄이 다 가기전에 날을 잡아봐야겠다.
첫댓글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기별언니와 저 ㅎㅎ
저 옥수수꺾고나면 가을코스모스가 농장가는 길에
키보다 더 높게 한들거렸지요.
방학하면 포천읍에서 개구리 풀벌레 화들짝 놀라 피하는길을 십리 걸어들어가면
하성북리에 5촌 당숙이 사셔서 잠간씩이나마 농촌체험을 하곤 했었는데...
딱 보니 버들치님이시네^^
ㅎㅎㅎㅎ
소중한 어릴적 추억....사진속에 들춰보면서
그때 그시절의 소중함을 들먹이셨네요^^
할아버지께서 왕란, 대왕란을 창시하신분^^ 대단한 열정이 있으신 분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