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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https://youtu.be/VUxbJ5s0Ups?si=E7XXbbp29XzADvem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말 씀: 빌립보서4:8~9
교 독 문:85번, 요한일서 4장
찬 송:10(34), 304(404),303(403),563(411)
기 도: 1)무엇에든지 사랑할만 하나님의 사랑
2)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은혜
3)주님 앞에 겸손으로 사랑받음을 고백할 수 있게 하옵소서
4)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
종말로 세상 끝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을 때 생각할 것은 영의 생각입니다.
생각은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거듭난 자는 영의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종말로 세상 끝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을 때
영의 생각으로 여섯 가지를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립보서4:8)”
오늘 이 시간에는 영의 생각할 다섯 번째로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입니다.
1.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할 것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22:37~40)“
계명은 하라 하지마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라, 하지마라“는
율법을 요약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크게 두 계명입니다.
첫째되는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라”입니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계명에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첫째 되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가장 우선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되십시다.
첫 번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이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아버지를 사랑하셨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누가복음22:39~46”
예수께서 고난주간 붙잡하시기 전 감람산이라 하는
겟세마네 동산에 습관을 좇아 올라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에 속한 사람으로 좋은 거룩한 습관을 가져야 할 것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습관이 되어야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시는 것은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틈나는대로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으로 쉼을 얻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 상당히 피곤해집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피곤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적된 피로를 푸는데 가장 좋은 것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을 가져야 할줄을 믿습니다.
성숙한 기도는 자기를 위한 기도가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버지 뜻대로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3인방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게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3인방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누가복음22:39)“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한 기도는 한 시간의 기도입니다.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가복음14:37)”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한 시간의 기도를 하는 거룩한 습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에 대한 성경말씀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도에 힘쓰라”,
“깨어 기도하라”, “성령 안에서 기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에 대하여 부지런한 습관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날이 샐때까지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누가복음22:42)”
예수님은 산상수훈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기도를주기도문이라 부릅니다.
주기도문 중에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입니다.
예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시고 그대로 실천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기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네 이웃을 네 몸과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사랑하라”을 가르치심으로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한 이웃 사랑이 되기를 바랍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이웃이란 나외에 모든 사람을 이웃이라 지칭합니다.
그러므로 네 이웃의 첫째는 부모입니다. 다음은 가족들과
그외에 모든 사람들이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제일 첫 번째 “제오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6:1~3)”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말며 오직 교훈과 훈계로 양육되어지는
이웃 사랑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 - 주는 것이 복이 있다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가장 먼저 본 자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고 알리었습니다.
이 날 곧 안식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요한복음20:19)
예수께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하니 다른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다”고 배에 올랐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고기가 있느냐 물었습니다.
제자들이 대답하여 “없나이다”고 하니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요한복음21:6)”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한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안 계신 빈 배가 되지말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으로 가득채우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비어있는 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가득채우게 하시는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립보서4:19)”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채우는 사랑으로 주는 것이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주는 것이 되어 복이 넘치도록 채워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복음21:15~19)
종말로 세상 끝에 재림을 앞두고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의 말씀을 생각할 때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질문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조반 먹은 후에 시몬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하시니
베드로가 세 번 동일하게 주님을 사랑하는 겸손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1>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요한복음21:15)”
예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에게 지어준 이름은 베드로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16:18)”
그러나 예수께서 시몬을 베드로라 부르신 신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16:16)”고
고백하였기 때문입니다.
시몬이 복이 있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시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몬은 흔들리는 갈대이지만 베드로의 뜻은 반석입니다.
사람은 그 마음이 갈대처럼 바람부는대로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반석은 바람부는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반석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심으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십니다.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은 흔들리는 갈대가 되어 예수님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인본주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무엇에든지 칭찬받을만 대답으로 주님을 사랑함이 되어야겠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에 자신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던 것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고난주간 붙잡하시기 전 베드로에게 경고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태복음26:34)”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하면 맹세하여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마태복음26:35)”
과연 누구의 말이 맞습니까?
실상 예수님이 붙잡히시니 베드로와 함께 모든 제자들은 나 몰라라 도망가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베드로를 쏘아붙였습니다.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하니 주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고 모르쇠로 나갔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맹세한 베드로가 막상 한 비자가 쏘아붙인 그는 예수님을 배신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고 물으시니
그 때 자신의 배신이 생각나 부끄러웠습니다.
그의 경솔했던 행동에 돌이킴에 이제는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대답함으로 나의 사랑은 거짓이었고
주님의 사랑은 진정이심을 겸손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심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증거할 때
하나님은 비로서 예수님의 어린양을 먹이게 하시는 것입니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심을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한 것이라 믿습니다.
2>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이 두 번째도 시몬에게 물으셨습니다.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요한복음21:16)”
예수께서 두 번째도 동일하게 시몬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두 번째도 베드로라 부르지 않으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 부르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사람에게 나서 그 부르는 이름은 여전히 연약한 갈대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하게 예수님에게 대답할 것이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예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는
질문에 자신이 예수님을 두번째 부인하였던 사실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다른 비자가 베드로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니 베드로가 맹세하여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마태복음26:72)”
사랑하는 여러분, 한번 부인하면 두 번째는 더욱 회복되지 아니하고
맹세하여 극구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게 흔들리는 갈대인지 생각하고
생각하여 주님 앞에 겸손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16:16)
예수님은 두 번째 질문에 겸손한 대답을 하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으로 하나님을 사랑을 받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4:6)”
3>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요한복음21:17)”
예수님은 요한이 아들 시몬에게 세 번째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의 예수님의 질문에
세 번째 예수님을 부인한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자신이 나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달아 근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당신 말씨를 보니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라고
다그치자 베드로는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마27:74)”
한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고 두 번째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고
세 번째도 저주하여 맹세하여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 부인하였습니다.
아는데 모른다고 부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닭이 울기전에 세 번 하였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이 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태복음26:75)”
사랑하는 여러분, 진리의 말씀이신 복음의 능력이 되어
거듭나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세 번째 질문에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
자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는 베드로의 정답을 들은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 내 양을 먹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젊어서 미숙한 자기 사랑이 아닌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한 성숙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님을 따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