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mphony No.3 in F major, Op.90 | |
브람스 교향곡 3번 바장조 Op.90
Brahms, Johannes 1833∼1897
1. Allegro con brio - 2.3.4 전악장 연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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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Szell-Cleveland Orchestra | |
작품개요 및 구성
영화 Goodbye again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브람스 교향곡 제3번 F-major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는 브람스 작품을 대표하는 곡 중 하나가 되었다. 깊어 가는 가을 저녁...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브람스를 찾아 유럽의 과거사를 돌아본다. 19세기 유럽은 낭만파 음악가들이 음악계를 주도하던 시대였다. 브람스는 당시 음악계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고전파 음악의 전 통을 고수하며 그것을 새로운 모습으로 재 탄생시킨 신고전주의 음악의 기수였다.
1883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그의 교향곡 중 가장 힘이 있고 웅장하며 베토벤의 3번 교향곡 영웅 과도 곧잘 비교된다. 다만 베토벤의 영웅보다 강렬함이 부족하다는 평도 있지만 경쾌한 구성과 풍부한 악상은 브람스답다. 브라암스의 평화적이고 목가적인 교향곡 제2번이 흔히 `전원'이라 불 리듯이 이 3번은 `영웅- Eroica'라고 불립니다. 2번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씩씩한 느낌에 차있고, 특히 마지막 악장이 비극적이면서도 당당한 구도로 엮어져 있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프랑수와즈 사강이 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소설 AIMEZ-VOUS BRAHMS...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브람스의 3번 교향곡 3악장 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이 곡을 브람스 작품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곡 중 의 하나로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이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지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는 순진한 청년이 겪는 사랑과 고독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랍니다. 영화의 제목은 Goodbye again 1961년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배급 영화로서 잉글리드 버그만과 안소니 퍼킨스 그리고 이브 몽땅이 출연한 멜로물이랍니다. 잉글리드 버그만이 40대의 파리 여성으로 분해서 열연한다는데 그녀의 부자 애인이 불성실해서 속상해하는 중에 그녀 앞에 젊은 청년이 나타나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데요. `Do you like Brahms?'는 영화 중에서 연상의 여인을 음악회에 초대하면서 물었던 주인공의 대사의 일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대사를 영화 제목으로 삼았던 모양입니다.
제 1악장 Allegro con brio F장조 6/4박자
관악기에 의한 3마디의 강렬한 상승화음으로 시작된다. F-A flat- F의 상승형으로 기본동기가 된다. 이 관의 상승화음과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의 호른에 대비시켜 본다면 왜 이 곡을 브람스의 영웅이라고 부르게 되는지 수긍이 간다. 이 기본동기는 다른 악장에서도 쓰이며 전곡을 통일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 있다. 브람스는 이것과 닮은 기본동기를 앞의 두 개의 교향곡에도 썼는데, 여기에서 앞의 것과 같이 좁은 음정의 것이 아니고, 커다랗게 상승하는 것으로서, 박력이 있고 강렬하며 영웅적으로 쓰여져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영웅동기라고 불리운다.
이 기본동기의 음은 독일어로는 F-As-F이다. 칼베크에 의하면, 이것은 브람스가 젊을적부터 즐겨 입에 담은 표제인 "Frei, aber froh!"(자유로이, 그러나 즐겁게)의 세 단어의 머리 글자를 따서 한 것이라는데, 그렇게 보면, 이 곡에도 그 표어의 느낌이 보여지는 것 같다. 이러한 3음을 연주하고 이어서 바이올린이 정열적인 제1주제를 노래한다. 제2주제는 클라리넷에 나타나며, 그 뒤에 이 주제를 바탕으로 한 전개부가 이어지고 재현부에서 클라이맥스를 구축한다.
1악장은 빠르고 생기있게 시작됩니다. 브람스가 클라라를 만날 당시는 이렇게 격정적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저 정신이 없었겠지요. 자신의 작품을 뜯지도 않고 반송한 슈만의 집에서 20살의 청년 브람스와 34살의 음악가이자 스승의 부인인 슈만클라라의 첫 만남이었으니까요. 어쩜 처음엔 브람스의 일방적인 사랑이었겠지요. 자신도 모른체......존경내지는 경외라고 이름 지으면서.......
제 2악장 Andante C장조 4/4박자
목가적 서정과 고독의 쓸쓸함을 호소하는 듯한 악장이다. 우선 아름다운 선율이 클라리넷과 파곳에서 나타나는데, 이것을 현악기가 받아서 로맨틱한 분위기를 빚어낸다. 아름다운 감정의 소상한 표현은 브람스의 독특한 것이다.
2악장은 느리게 연주됩니다. 퍼붓던 비는 멈추고......자장가처럼 조용하면서도 소박하게 연주됩니다. 브람스가 어느 정도 자신의 마음을 정리한 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브람스의 감정이 쉽게 정리가 되지 않은 듯 합니다.
제 3악장 Poco Allegretto C장조 3/8박자
3악장은 다시 약간 빠르게 연주됩니다. 이 때쯤이 자신의 사랑을 어찌할 수 없어 "자, 이제 막 자신을 쏘려고 하는 한 남자를 상상해 보게. 왜냐하면 그에게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말야." 라고 하며 당시 착상한 광포한 <피아노 4중주 C단조 작품 60>의 도입부를 친구에게 소개하면서 당시의 자신의 절박한 심정을 주저 없이 토로하고 있는 브람스를 발견하게 되니까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슈만이 죽고.... 브람스는 실의에 빠져있는 클라라를 위로하기 위해 살아남은 자를 위한 독일의 레퀴엠을 작곡하기까지 합니다.
첼로의 점잖은 선율로 감미롭게 시작되어 바이올린으로 반복되고 이어서 첼로와 바이올린이 하모니를 주고받다가 목관악기로 옮아가는 형태를 취합니다. 가을처럼 관대하고 감미롭고 서정적인 우수와 노스탤지어를 불러 일으키면서도 낭만을 한껏 구가하는 악장입니다. 사랑의 궁극적인 종착은 결혼이 아닐 진데 브람스가 독신으로 평생을 지냈다 하여 고독했으리라는 추정은 어쩌면 지나치게 속세적인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란 머리와 가슴의 완전한 교류라는 관점에서 보아 클라라와의 관계가 진정한 `사랑'중에 하나였다면 브람스는 결코 고독했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향곡 3번은 센티멘탈리즘의 극치를 보이고 우리는 그것을 듣고 무척이나 감동하는 것입니다.
브람스는 여기서 베토벤 이래로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강렬한 스케르쪼 대신에 특별히 낭만적인 곡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제2악장의 간소한 소박함 뒤에는 격렬한 스케르쪼가 적당하지 않고, 더욱 별다른 것, 쓸쓸하고 동경적인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브람스는 제2악장의 고요한 지난날의 꿈의 연속으로서, 여기서 추억을 이야기하여 그리움을 노래한다. 형식은 3부 형식이다.
곡의 제1부분은 첼로의 낭만적인 아름다운 선율로 시작된다. 그것은 고적하지만 브람스답지 않게 달콤하고 아름다우며, 과거의 추상과 같고, 꿈의 동경같아서 한 번 들으면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제2부는 밝고 부드러운 내림 A장조로 계속된다. 거기에 목관에 의한 기도와 체념의 선율이 첼로의 부드러운 반주 위에 고요히 나온다. 그것은 곧 바이올린의 흔들리는 선율로 변한다. 마친내 목관의 기도와, 바이올린의 악구가 이어 나온다. 여기서 곡은 제3부분이 되고, 곡의 처음에 나온 노래하는 듯한 선율이 호른으로 재현되어, 오보에로 되풀이되어서, 파곳으로 계속되고, 다시 바이올린과 첼로로 주제가 달콤하게 교태를 부리면서 나와 짧으나 아름다운 코다로 끝난다.
이 제3악장은 영화 "이수"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후 가장 인기 있는 브람스 곡이 되었다. 이 제3악장은 표정이 풍부한 멜로디에 실려 있는 우수와 동경이 감명적이다. 브람스가 이토록 감미로운 로맨티시즘에 몸을 담근 예도 많지는 않다.
제 4악장 Allegro F단조-F장조(coda) 2/2박자
제2악장에서는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고, 제3악장에서는 동경을 가진 작곡자는 제4악장에서 더욱 강하게 되어 영웅적으로 투쟁한다. 이렇게 하여 이 끝 악장은 전곡의 으뜸을 이룬다. 이 곡을 브람스의 영웅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렇듯 힘차게 솟구치는 기개가 있기 때문이다.
이 악장의 대부분은 원조(F장조)가 아니고, 그 단조(f 단조)로 쓰여있어, 간신히 코다에서 장조로 해방된다. 브람스는 여기서 얼마동안은 암흑의 세계에서 신음하여 투쟁하고, 최후에 해방되어서 광명을 찾아, 마음에 만족을 얻는다.
그럼 마지막 코다 부분을 자세히 살펴본다. 마지막 코다는 밝고 크며, 폭풍우 뒤의 빛나는 무지개와 같다. 여기서는 현의 자잘한 음형이 계속된다. 그 위에 먼저 목관이 제1주제를 밝고 커다랗게 낸다. 그 뒤 제1주제의 변형이 낮은 음 악기로 잠깐 나오나, 이제는 꿈과 같고 보람이 없다. 거기에는 제1악장의 제1주제가 추억처럼 어렴풋이 나와 고요히 사라져 가서 곡이 끝난다. 영웅은 투쟁을 끝내었다. 그러나 베토벤처럼 환호를 울리지 않고, 다만 자기에게 만족을 느끼며, 고요히 홀로 잠기는 것이다.
4악장은 다시 빠르게 격정적으로 시작되지만 곧 가을 하늘의 풍성함과 함께 노을이 곱게 물드는 듯 조용하게 마무리 짓습니다. 언제 끝나는지 모르게........ 어찌 되었든 40년이 넘게 이들은 사랑의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20살에 클라라를 만나 63세에 죽기까지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떠난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클라라뿐 인 듯 합니다. 사랑, 사랑이 대체 무엇이길래.....
브람스 교향곡
브람스는 베에토벤 이후 최고의 교향곡 작곡가로 불리워지고 있다. 그는 교향곡을 4개뿐이 남기지 않았으나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우선 제1번은 베토벤의 제9에 뒤따른다는 뜻으로 "제10"이라고 불리운다. 브람스는 원래 자기 비판에 엄격했는데, 특히 교향곡에 있어서는 베토벤이라는 거인이 있었던 만큼, 이 위대한 선배의 불멸의 9 교향곡보다 더 뛰어난 것을 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결심으로, 몇번이나 생각하고, 다시 고쳐 썼다(교향곡 제1번).
제2와 제3은 중후함에 충실해 있고, 제4는 어두운 힘과 완숙한 기교와 고요한 체관에 의한 걸작이다. 이 중 제2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6번과 견주어서 전원이라고도 불리웠고. 또 브람스 교향곡 제2번과 제4번을 비교하여 2번을 조춘(早春) 교향곡, 4번을 만추(滿秋) 교향곡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해 올릴 제3번은 브람스의 영웅이라고 불리우는 기개와 힘이 넘치는 작품이다.
이와 같이 브람스는 4개의 교향곡을 만들었는데, 어느 곡 하나 비슷한 것 없이 각기 개성이 뚜렷한 네 개의 걸작을 탄생시켰다.
교향곡 제3번의 작곡배경
브람스는 1883년 5월에서 9월까지 중부 독일의 비스바덴에 머물면서 그곳에서 그의 세 번째 교향곡을 작곡했다. 브람스가 예년과 같이 피서지에서 지내지 않고 비스바덴에서 보내려고 결심한 이유는, 그곳에 살고 있는 앨토 가수 헬미네 시피스라는 젊은 여성이 권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재능이 있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독일 가곡, 특히 브람스의 가곡에 깊은 공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작곡자를 만나서 인품을 알게 됨에 따라서 한층 친근미와 애정으로써 그의 가곡을 부르게 되었다.
당시 50세인 브람스는 이 명랑하고 지성적인 알토 가수에 호의 이상의 것을 느꼈고,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떤 무리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밝은 행복감에 넘쳤던 비스바덴의 여름은 브람스의 교향곡 제3번에 더없이 열정적인 기쁨과 동경의 꿈을 빚어 넣었다.
이 교향곡 제3번은 완성된 해인 1883년 12월에 비인에서 초연되었는데, 그때 지휘를 맡았던 리히터는 유명한 음악평론가 한슬리크에게 이 교향곡은 브람스의 "에로이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에 견주어서 한 말인데, 이 말은 이 곡의 본질을 어느 정도 맞추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교향곡은 브람스의 4개의 교향곡 가운데서 가장 남성적이고 웅장하며 묵직하다. 그러나 영웅적이라는 것은 나폴레옹 같은 정복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다만 강한 의지의 인간일 따름이다.
또 한 베토벤의 경우는 이상을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씩씩하게 싸워서 적대자를 극복하는 것이며, 그 싸움을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한다. 그러나 브람스의 경우에는 완강히 버티고 서서 싸울 때도 있지만, 동시에 꿈을 꾸고 사랑을 생각한다. 때로는 맹렬히 공격도 하지만, 곧 한숨을 내쉬면서 스스로 단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제3번은 만약 영웅이라 한다고 할지라도 매우 서정적이고 고고하다.
나겔(Willibald Nagel, 1863-1929, 독일의 음악학자)은 이 교향곡이 브람스의 작품 가운데서 가장 독백적이며, 가장 순수한 것이라고 했으나, 그 밖에도 다음과 같은 특징이 보여진다.
즉, 또 하나의 특징으로서 악상이 극히 명쾌하고 신선하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것이 잇따라 나오면서 그칠 줄 모른다. 주제는 베토벤처럼 간결하지 않고 매우 분방하다. 이만큼 신선한 악상을 분방하게 구사한 곡은 브람스 자신에게도 드물 뿐만 아니라,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전체를 들어 보더라도 많지 않다.
이 교향곡은 이상과 같은 여러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호평을 얻었고, 어디서도 결정적인 성공을 획득했다. 이 곡으로써 브람스는 교향곡 작곡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확보했다. 지금도 브람스의 교향곡 가운데서 가장 널리 환영받고 있다.
1883년 12월 2일 비인의 음악협회 홀에서 행해진 필하모니의 제2회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다. 그때는 유명한 지휘자 한스 리히터가 지휘했다. 이때 브람스의 적대자들은 편을 짜서 성공을 방해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브람스 음악의 몇 가지 특징
브람스가 태어난 고향인 독일 북단의 항구도시 함부르크가 미친 영향도 있습니다. 그가 자란 고향은 어둡고 추우며 언제나 북국 특유의 무거운 구름이 음울하게 하늘을 내리 덮고 있으며, 파란 하늘을 보기란 1년에 열흘이 넘을까 말까 한 곳입니다. 그래서 브람스 음악에는 북독일인의 정서라 할 수 있는 어둡고도 텁텁한 맛을 느끼게 합니다.
이 점에서는 남독일인의 정서를 대표한 베토벤과 대조적입니다. 북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태양이 내려 쪼이는 남쪽 지방의 특성대로 남독일인 베토벤의 음악에는 직설적이고 개방적이며 외향적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성향에 비해 북독일인 브람스의 음악은 구름 낀 날씨만큼이나 텁텁하고 내향적이고 직선적인 것을 피해 중용을 지키며 사색적인 특색을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예가 베토벤의 직설적이며 갈 때까지 뻗쳐보자는 식의 3번 영웅 교향곡과 브람스의 영웅 교향곡이랄 수 있는 3번 교향곡인데 브람스는 사색적이고 갈 때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뒤로 물러 사색하는 모습이 대조적이죠.
베토벤이 트럼펫이라면 브람스는 호른이라고 비유를 들 수도 있겠네요. 실제로 베토벤 영웅 교향곡에서는 트럼펫이 돋보이고 브람스의 영웅 3번 교향곡에서는 호른이 돋보입니다.
브람스는 특유의 중후한 화성과 음색을 중시했습니다.
이 점은 화사하고 선명한 프랑스 음악과 대조적이라 프랑스인들에게는 처음부터 그리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프랑스인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프랑스인의 평소 브람스에 관한 감성적 반응(일반적으로 잘 적응하지 못하는)을 이해하게 합니다.
브람스는 음악을 신중하게 작곡하는 성격이라 한 번 쓴 것을 여러번 고치고하여 다소 인위적인 가공의 미를 보여줍니다. 또한 그런 면으로 볼 때 짜집기의 천재라 할 정도로 여러 선율을 짜집기 합니다. 그러니까 한 선율을 소개한 후에도 쉽게 그 선율에 친숙될 정도로 전개하지 않고 소개하다 말고 들어가고 또 다른 선율을 소개하고 잊을만하면 이전의 선율을 변주, 반복하고 해서 선율전개가 끊기는 느낌을 갖게 하는데 이점이 브람스의 단점이자 장점이랄 수 있습니다. 쉽게 선율이 잘 기억되지 않지만 여러 번 듣다 보면 조금씩 보여줬던 선율과 하나씩 친근해져 가는, 그래서 왠지 깊이 있게 느껴지는 면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한번 악상을 들으면 끝까지 한 곡의 노래가 그려지는 모차르트와 대조적입니다. 그외에도 성악곡이 200여곡이나 있는데 슈베르트와 대조적으로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인위적인 가공의 맛이 있습니다.
브람스가 64살 평생 독신으로 지낸 점이 그의 음악에 묻어 있습니다.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평생 정신적으로 사랑했으며 한 때는 젊은 시절에 아가테를, 또한 슈만의 딸 율리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실연의 상처와 우수가 녹아 있는 것이 많습니다. 특히 성악곡 '알토랩소디'에서는 슈만의 딸 율리와의 이루어지지 못한 상실감으로 쓰라린 상처를 받고 고뇌하는 작품으로 그의 내면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입니다.
또한 평생 독신이었기 때문에 성적으로 해소되지 못한 격정이 그의 음악에도 묻어 있는데, 예를 들면 그의 교향곡이나 협주곡 등의 작풍이 텁텁하고 고리타분한 분위기를 보이면서도 마치 성적으로 억압된 것을 표현하기라도 하듯이 갑자기 휘몰아치기도 하고, 때로는 광폭하게 때리기도 하면서 정신을 아찔하게 충돌질 하기도 하면서, 다 듣고 나면 마치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왔을 때의 화사함과 후련함을 느끼게 하는데, 독신의 성적 갈등을 음악으로 해소하는듯한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Brahms, Johannes 1833∼1897
브람스는 1833년 5월 7일 생으로, 허름한 밴드의 콘트라베이스 주자(혼 주자라는 설도 있음)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브람스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그의 家族史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 여관 경영이라는 가업을 이으며 살기 싫었답니다. 그래서 가출을 했답니다. 음악가가 되려고 말이지요. 간신히 일자리를 찾은 그의 아버지는 당시 철물점에 하숙을 하였다고 하며, 하숙집 딸과 일주일만에 결혼하는 충동적인 일을 저질렀다고 하지요. 그런데 결혼 당시 그의 아버지는 24세, 그의 어머니는 41세였다고 합니다. 놀랍죠? 이런 환경은 브람스가 14살 연상의 클라라 슈만을 짝사랑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게 된 밑그림이 되었을 것입니다.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은 플라토닉 사랑의 예로 꼽히기도 합니다.
브람스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음악을 배우게 되었죠. 10살 때부터 정식 교육을 받기 시작하여 피아노를 배웠으며, 15살 때부터는 정식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후로 브람스는 연주 여행을 통하여 여러 음악가들과 교분을 쌓게 됩니다. 그 중 중요한 인물은 작곡가이자 <음악신보>의 발행인이었던 로베르토 슈만, 그리고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제프 요하임입니다. 슈만은 당시 음악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슈만은 약관인 브람스의 재능을 꿰뚫어 보고, <음악신보>에 '새로운 길'이라는 글로서 브람스를 칭찬하며 격려하게 됩니다. 이후로 슈만 부부는 브람스의 뒤를 돌보아주는 든든한 후견인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한편 요하임은 브람스와 평생교류하며 걸작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77>을 작곡하게 했습니다.
흔히 브람스의 음악은 신고전주의라고 합니다. 즉 브람스는 베토벤, 슈베르트같은 전통적 작곡자의 계승이라는 목표 의식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페라같은 종합예술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고 기악곡 위주의 순음악을 중시했지요. 즉 브람스는 음악적 어법에 있어서는 무척 완고하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편 브람스와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진 베를리오즈나 베버처럼 개혁적인 음악가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바그너를 꼽을 수 있죠. 바그너는 예술 전반에 대해 능통해서 개혁적이고 종합적인 오페라를 작곡하길 즐겼습니다. 브람스는 바그너보다 20년 가량 연하로서 처음에는 바그너를 존경했었다고 합니다. 바그너 앞에서 연주하면서 칭찬 받고 서로 격려해 주기도 하고.. 그런데 브람스와 바그너의 사이가 극도로 악화된 것은 우습게도 여자 때문이라고 하지요. 바그너가 골드박이라는 여인에게 보낸 비밀 편지를 우연히 손에 넣은 브람스가 당시 저명한 평론가 한 슬릭에게 이를 이야기 했고, 가뜩이나 리스트의 딸 코지마(당시 한스 폰 뷜로라는 지휘자의 부인)와의 염문으로 비난 받던 바그너는 사회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이후로 바그너는 브람스를 맹렬히 헐뜯기 시작했고, 두 사람의 다툼은 유럽 음악계 전체를 브람스파와 바그너파로 양분하게 되는 파급 효과를 가져오게 되죠. 브람스 진영에는 슈만부부, 한스 폰 뷜로, 요아힘 등이 있었고, 바그너를 옹호하는 인물로는 리스트, 브루크너, 니체, 쇼팬하우어 등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성격도 대조적이었습니다. 브람스는 끓어오르는 정열을 내면에 꼭꼭 눌러둔채 도덕적으로, 그리고 이성으로 억제하는 타입의 내성적 인물이었고, 바그너는 사회적인 관념과는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만 하는, 다혈질이고 다소 오만한 성격. 자유로운 의지의 소유자였습니다. 한편 이 두 사람은 마틸데 베젠동크 부인이라는 한 여인을 두고 힘겨루기를 했다는 뒷얘기도 전해집니다. 두 사람 모두 상처를 입었다고 하며 누가 이겼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브람스는 오페라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분야의 음악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역시 교향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브람스는 베토벤의 계승자답게 교향곡에 많은 정열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네 곡의 교향곡밖에는 작곡하지 못했는데, 첫 번째 교향곡에서 거인 베토벤을 등 뒤에 의식하고 작곡하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하지요. 그의 교향곡 1번은 '암흑에서 광명을' 또는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를'과 같이 베토벤의 작품세계와 일맥 상통하는 정신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스 폰 뷜로는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베토벤의 교향곡 10번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