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하루 종일 비가 내립니다.
오늘은 雨요일이네요.
그대는 봄비를 좋아하나요?
꽃은 떨어져 낙화가 되고, 또 그 위로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아! 봄날이 가네요~~
봄날은 간다
손목인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양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날고 새가 울면 따라 우는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허수경
사카린같이 스며들던 상처야
박분(薄粉)의 햇살아
연분홍 졸음같은 낮술 마음 졸이던 소풍아
안타까움보다 더 광포한 세월아
순교의 순정아
나 이제 시시껄렁으로 가려고 하네
시시껄렁이 나를 먹여 살릴 때까지
봄날은 간다
이응준
스무살에 부르던 투쟁가처럼 꽃이 핀다
그러나 꽃을 노래하지는 말아라
괴로운 건 꽃이 아니다
꽃을 가지고 싶은
꺾이기 쉬운
멍들어 가는
청춘이다
붉은 꽃을 보고 있는 사형수의 마음같은
봄날은 간다
김종인
라일락 향기에 취해 봄날은 간다
바그다드의 미사일을 구경이나 하는사이
벚꽃잎 흩날리는 봄날은 가고
피투성이로 울부짖는
이라크 아이들의 슬픈 눈망울을
남의 일인양 외면하는 사이
무논에서 울어쌓는
개구리 소리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기형도
햇살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熱風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時着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젖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패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히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들어온 것들의 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봄날은 간다
이승훈
낯선 도시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
당신과 함께 봄날은 간다 달이 뜬 새벽
네시 당신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봄날은 간다
맥주를 마시며 봄날은 간다 서울은 머얼다
손님없는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
달이 뜬 거리도 간다 술에 취한 봄날은 간다
안개도 가고 왕십리도 가고 노래방도 간다 서울은 머얼다
당신도 가깝다 내 목에 두른 마후라도 간다
기차는 가지 않는다 나도 가지 않는다
봄날은 가고 당신은 가지 않는다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해가뜨면 같이웃고 해가지면 같이울던 봄날은 간다
바람만 부는 봄날은 간다
글쟁이, 대학교수, 만성 떠돌이, 봄날은 간다
머리를 염색한 우울한 이론가, 봄날은 간다
당신은 남고 봄날은 간다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봄날은 간다
안도현
늙은 도둑놈처럼 시커멓게 생긴
보리밭에서 떠나지 않고 서있는 살구나무에
꽃잎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자고나면 살구나무 가지마다 더덕더덕
누가 꽃잎을 갖다 붙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쓸데 없는 일을 하는 그가 누구인지
꽃잎을 자꾸자꾸 이어 붙여 어쩌겠다는 것인지
나는 매일 살구나무 가까이 다가 갔으나
꽃잎과 꽃잎사이 아무도 모르게
봄날은 가고 있었다
나는 후드득 지는 살구꽃을 손으로 받아 들다가
또 입으로 받아 먹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어느날 들판 한 가운데
살구나무에 돛을 만들어 달고 떠나려는
한 척의 커다란 범선을 보았다
살구꽃 피우던 그가 거기 타고 있을 것 같았다
멀리까지 보리밭이 파도로 넘실대고 있었다
어서 가서 저 배를 밀어 주어야 하나
저 배 위에 나도 훌쩍 몸을 실어야 하나
살구꽃이 땅에 흰 보자기를 펼쳐놓을 때까지
나도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봄날은 간다
김윤아 노래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거야, 아마도
봄날은 무심히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 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같은 것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워서 너무 슬픈 이야기
첫댓글 와~~~ 멋진 편집 구성이어요. 이승훈. 안도현의 시가 공감가네요. 봄날이 가는 날 이렇게 많은 이들은 특별한 감흥을 갖고있었군요. 전 꽃이 피려나보다 하는 사이 어디로 모두 사라졌다 아쉬워하고 연록의 잔치를 벌이는 지금 초여름을 느껴버리고 있네요. 나비님 얄미워요. 그리고 쬐끔 무서워요. 정곡을 팍팍 찌르는 예리한 감각들...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하셔야할 거 같은데 그냥 있으면 아까운 사람. 그리고 이 낙화 복사꽃 너무 좋아요.
어느덧... 또 한계절이 그렇게 떠나갔네요.ㅠㅠ 이와이 순지 감독의 영화 '4월의 이야기'에서처럼 꽃비가 내렸던 그날을 기억해 봅니다. 선생님!^^ 참 세월이 빠르네요.이제 초록빛 6월을 기다리며 우리 모두 가슴 가득 희망을 담아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