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중학교 1학년때
체육선생이 나를 불러 영양실조에 걸려 너무 말랐으니
잘 먹고 살을 찌우라는 것이예요...
당시에는 우리마을 50여 가구중에 하루 세끼를 다먹고
사는 집이 더물었으니 그나마 세끼 먹는것도 다행인데
잘 먹으라는 주문은 불가능한 주문이였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3때가 되니 키도 지금키(173)로 크고
굵은 뼈대에 어깨가 떡 벌어 지더이다.
또한 힘도 생기며 운동에는 남다른 소질이 있어
못하는 운동이 없고
특히 육상 단거리 달리기는 전교(300여명)에서 1등으로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죠,
가정형편이 어렵고, 돈 없고 배경없는 저는
학교문전에도 못 가본 가난한 농부 육남매의 장남으로써
할 수 있는 것이 뭐 있겠어요.
공부와 운동을 죽으라고 하는 수 밖엔.....
정말 코피가 터져가며 열심히 해 봤죠.
중3때 전기불도 없는 시골 중학교에서
체육선생의 주선으로 전국체전 강원도 예선대회에
도청소재지 춘천에 기차도 처음타고 전기불도 처음보며
참가하여 모두 스파이크를 신고 뛰었는데
운동화와 강목팬티에 런닝구를 입고 뛴
시골 촌놈이 200, 400m를 1등을 했으니
그야말로 난리가 났지요,
지금으로 보면 올림픽 금메달 땄을정도랄까요......
시골 면사무소 게시판에 일간지 지방판의 사진을 붙이고
면이 생기고 처음있는 일이라 환영식까지 열었으니 상상좀 해보소~~~
그해 가을 대구에서 열리는 제43회 전국체전에 강원도 대표로 참가하였지만
예선에 탈락은 당연한 결과였지만 좋은 경험이
나의 견문과 훗날의 자극제가 되었죠.
도내 각 명문고에서는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고 했지만
모든걸 뿌리치고
가난한 농부의 아들은 먹고 살기위해 취직을 쉽게 할 수 있는
전국에서 처음생긴 (서울.부산. 대전.삼척) 국립삼척공업고등전문학교에
어려운 관문을 뚫고 합격하여 다니게 되었답니다.
오직 저는 졸업후 좋은직장에 취직해서 부모형제를 돌봐야겠다는
일념으로 소질있던 운동도 뒷전으로 돌리고
입주가정교사와 과외를 맡아가며 오직 학업에만 몰두하여
우수한 성적(科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답니다.
결과적으로 그로 인해
1973.2.1일(37년 전) 포스코에 입사하게 되었고
포항에 터전을 잡아 제2의 고향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