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산
춘천 소양산 (698m)
솔향기에 취해 걷는 소양호 조망명산
소양산은 춘천시 동면에 위치하는 해발 698m 산으로 지형도에는 이름이 없다. 1995년 12월, 필자는 도깨비산악회를 따라 두루봉(574m, 2008년 발행 지형도에는 '後峰'으로 표기)을 찾게 되었다. 소양강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황천골에 내려 북녘 능선길을 이어 두루동봉(545m)과 두루봉(후봉)에 올랐었다. 회원들이 산제를 준비하는 동안 사방을 살펴보니 북녘으로 더 높은 봉우리가 보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필자는 일행과 헤어져 잰걸음으로 660봉을 지나 소양호를 지그시 굽어보는 정수리에 올랐다.
제법 너른 공터에는 1988년에 설치한 삼각점이 외로울 뿐, 산꾼들의 흔적이 전혀 없는 무명봉이었다. 저 아래의 낮은 봉우리는 산꾼들에게 소개되는데 이 일대 최고봉에 이름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 그때 필자는 '이름' 이라는 화두를 머리에 담고 산을 내려왔다.
그런데 얼마 전 우정산악회 최진무 회장이, 후봉과 698봉을 올랐는데 이정표가 여러 곳에 세워지고 등산로가 말끔히 정비되었더라고 연락을 해왔다. <사람과산> 독자들에게 소개하면 어떠냐며, 그 전화를 계기로 필자는 참으로 오래된 화두를 다시 꺼내 풀어보고자 한다.
1995년 12월3일, 소양호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황천골에 내려 후봉을 거쳐 홀로 그 무명에 올랐을 때, 외로운 삼각점을 지키던 두릅나무 한 그루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거기서 넓디넓은 소양호를 하염없이 굽어보며 "소양산이면 어떨까?" 라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바로 그 봉우리를 소개해야 하는 마당에 이르러 과람되지만 소양산이라 이름을 붙여본다.
소양산 들머리로는 춘천시 동면을 지나는 56번 국도의 느랏재터널 입구의 임도가 좋다. '느랏재터널 1500m'로 표시된 현수막이 보이는 임도 입구에서 차를 내리면 동북쪽으로 임도가 이어진다. 차단기를 지나 널찍한 임도를 조금 따라가면 오른쪽으로 크게 굽어도는 지점에서 임도 왼쪽으로 본격적인 능선길이 시작된다.
신갈나무, 굴참나무, 겨울잠이 아직도 깊은 지능선길을 오르면 소나무 서너 그루가 아름답게 자라는 쉼터가 나온다. 여기서 동녘 지능선을 따르면 송전철탑 지나 해발 647m의 삼거리에 이른다.
남쪽의 수리봉(533m)과 연결되는 이곳 삼거리에서는 북쪽으로 산길을 이어간다. 잎갈나무 조림지와 아름드리 떡갈나무, 물박달나무도 더러 만나는 산길을 조금 내리면 옛길 사거리를 지나 삼거리를 만난다. 굴참나무가 이정표처럼 자라는 이곳에는 왼쪽은 정수리를 비켜 후봉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오른쪽이 소양산 정수리로 이어진다.
무인산불감시탑이 하늘을 찌를 듯 선 해발 698m의 정수리에는 '내평 24 1988. 재설'로 표시된 삼각점이 있다. 후봉과 수리봉, 깃대봉(392m)을 거느린, 소양호를 한눈에 굽어보는 이 봉우리가 아직도 지도에 이름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소양호 주변의 여러 이름난 산-가리산, 바위산, 계명산, 사명산, 종류산, 부용산, 오봉산, 봉화산, 마적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독립된 이 봉우리에 아직도 이름이 없다니-.
산불감시탑 주위를 한바퀴 돌며 사방을 둘러본다. 그러나 겨울이 무색하게 포근한 날씨로 안개가 자욱해 소양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 어찌하랴. 아쉬움을 접고 산행에 동행한 우정산악회 회원들과 기념촬영을 마치고 다시 북녘산길을 이어간다.
오른쪽으로 소양호를 굽어보며 걷다보면 곧 후봉으로 길이 갈리는 660봉에 이른다. 초입에 바위가 몇 개 있는 이 봉우리는 남북으로 길쭉하며, 북쪽 끝에 '느랏재 2.3km, 세월교 6km, 위험지역, 지내리 3.9km'라 적힌 이정표가 있다.
하산은 세월교 방향인 서쪽을 따른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소나무숲이 푸르른 산길을 이어가면 산불감시탑 지나 '세월교 5.3km, 국도 1km'라 적힌 두번째 이정표를 만난다. 아름드리 장송이 하늘을 찌르는 상쾌한 숲길 가운데다.
또 한번의 이정표를 만나고는 산길이 북쪽으로 꺾어진다. 해발 480m의 안부 사거리를 지나면 골바람에 가지가 한쪽으로 쏠린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이곳에도 이정표(세월교 4.6km, 느랏재 3.7km, 위험지역)가 있는데, 300m 더 가면 오늘 산행의 마지막 이정표를 만난다.
다시 북녘으로 능선을 오르내리면 안부 사거리 지나 춘천옥광산 갈림길에 이른다. 에코로바 춘천대리점에서 팻말을 세운 이곳에서 서쪽으로 내려서면 광산이 있는 월곡리다. 예서 북녘으로 이어가는 능선은 아기자기하다. 곰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가 하면 철모를 닮은 바위도 만난다. 굽은 소나무가 자라는 봉우리를 지나면 누운 소나무가 자라는 봉우리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재미있는 능선을 지나 드디어 마지막 봉우리인 깃대봉(384m)에 올라선다. '춘천 406, 2005 재설'로 표시된 삼각점이 있는 이곳에서 산길은 서쪽으로 꺾어진다.
소양산 산행은 이정표도 확실하거니와 느긋한 산길에 소나무숲이 우어져 피톤치드를 듬뿍 호흡할 수 있는 길이다. 소양강댐을 바라보며 이어지는 능선에는 갖가지 재미있는 모양으로 자라는 노소동락의 소나무들이 신명나는 춤판을 벌여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소나무 두 그루 사이에 통나무를 묶은 간이의자에 걸터앉아 북녘을 굽어본다. 아찔한 벼랑 저 아래로 얼어붙은 소양호가 하얗다. 건너 마적산(610m)과 어울린 소양호를 조망하는 이곳에서 마지막 휴식을 끝내고 서녘능선을 이어내려 월천사 입구에 이른다.
이곳에서 조금 더 내려간 개울가에 '월곡리 등산안내도'가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이곳에도 후봉을 오르는 거리와 시간만 표시되어 있을 뿐, 698봉에 대한 정보는 보이지 않는다. 씁쓸한 마음으로 마을길을 내린다.
소양호 남서녘에 우뚝 솟은 698봉. 예부터 전해오는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을 되찾고, 없다면 오랜 세월의무명봉 설움에서 벗어나 '소양산'으로 거듭나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산행길잡이
느랏재 임도 입구-(1시간)-소양산 정수리-(1시간)-이정표 삼거리-(1시간)-깃대봉-(1시간)-세월교
소양산 들머리는 춘천시 동면 56번 국도의 임도 입구. '느랏재터널 1500m'로 표시된 현수막이 보이는 이곳에서 차를 내려 북동쪽으로 임도를 따르면 곧 차단기를 만난다. 10분쯤 올라 오른쪽으로 임도가 굽어도는 곳에서 왼쪽 능선길로 접어든다.
노송 서너 그루가 지킨 봉우리와 참나무숲길을 이어가면 송전철탑을 만나고 뒤이어 주능선에 올라선다. 수리봉(533m) 갈림길인 이곳에서 북동녘 능선을 이어가면 안부 지나 삼거리에 이른다. 왼쪽은 봉우리를 우회하는 길이고 오른쪽 능선을 오르면 무인산불감시탑이 있는 소양산 정수리다. 정수리네는 삼각점이 있다.
북녘 능선길을 이어가면 첫번째 이정표(세월교 6km) 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에서 길은 서쪽으로 굽어돈다. 동쪽 능선(위험지역)은 후봉으로 이어지니 주의를 요한다. 서쪽 길은 곧 산불감시탑을 지나 두번째의 이정표와 세번째 이정표(세월교 5.2km) 삼거리를 만난다.
능선은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네번째 이정표(세월교 4.6km)를 지나 300m 더 간 곳에 마지막 이정표(세월교 4.3km)가 나온다.
예서 춘천옥광산 갈림길 지나 384m의 깃대봉까지는 1시간 걸린다. 깃대봉에서 길은 서쪽으로 굽는데, 솔숲길 이어 날머리 세월교까지는 다시 1시간 더 간다.
*교통
청량리역에서 춘천까지 가는 무궁화호가 1일 19회(06:10~22:00) 출발한다. 2시간 걸리며 요금은 5,400원. 동서울터미널과 상봉터미널에서 춘천행 시외버스가 수시로 출발한다. 버스터미널에서 산행들머리인 임도 입구까지는 대중교통이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15,000원 정도 요금이 나온다. 춘천28콜택시 033-255-2828.
날머리인 세월교 부근에는 춘천행 시내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또 소양호를 오가는 왕복 시내버스도 있으니 소양강댐 구경하기도 좋다.
*잘 데와 먹을 데
들머리에는 식당과 여관이 없다. 날머리 월곡리에는 세월교 푸줏간(242-0900)이 있다.
춘천시내에 많은 숙박시설이 있다. 꿈의궁전(256-2295), 로즈파크(241-1422), 하이랜드모텔(256-2563).
춘천은 닭갈비와 막국수가 유명하다. 원조명동유림닭갈비(253-5489), 시골막국수(242-6833).
*볼거리
청평사 소양호 선착장에서 배를 이용해 10분 정도 들어가면 만난다. 들머리 계곡에는 7m 높이에 아홉 가지 소리를 낸다는 구성폭포가 있고 고려정원 영지, 청평사 회전문(보물 164호), 3층석탑 등 볼거리들이 풍부하다.
청평사는 고려시대 절로, 처음에는 백암선원이라 부르다가 조선 명종 5년(1550년) 보우선사가 극락전과 요사채 등을 새로 짓고 청평사라 이름을 고쳐 불렀다. 관람료가 있다. 어른 1,300원.
글쓴이:김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