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시20분 배낭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며칠전 안산 상록수에 있는 만인 통증 의학과에 가서 아픈 어깨 치료를 받았다.
지난 11월부터 끈질지게 나를 괴롭혀 온 오른쪽 어깨 치료를 선부동에 있는 두군데 정형욋과를 다녔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든 차에 어떤 지인으로부터 소개 받아 이 병원으로 오게 된 동기다. 벌써 3번째 방문이다. 모든병은 초전에 의사를 잘 만나야 하나보다 여기서 아픈어깨가 많이 호전 되고 있다. 초음파로 검진 하면서 약물주사 치료다.염증 으로 인한 인대의 부기가 많이 빠진 모양이다.
배낭멜빵에 손을 제대로 집어 넣지도 못했는데 오늘은 한결 수월하게 통증없이 짊어진게 알마만인가?
배낭속에는 삶은 달걀과 다과류 조금 쏘세지 몇개 방울 토마토 쪼코렛등 제법 많이 준비했다. 지난번 산행을 거울 삼아서다. 이곳은 상점이나 음식점을 기대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비 때문에 15일에 실행치 못하고 오늘로 연기 했는데 어제 종일 비가 와서 마음을 졸이며 오늘은 비가 와도 결행 할려고 마음 단단이 먹었다.인천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고 제물포역에 내려 800번 버스를 타고 강화도로 향했다 개학을 해선지 도로가 엄청 밀린다. 결국 09시 30분에 강화도 터미날에 내렸더니 서울서 온 석탄공사 입사동기가 조금전에 막 도착 했단다 거기는 나보다 더 심했던 모양이다 앉지도 못하고 콩나물시루 같은 모양새로 왔단다.현재 입사동기회 회장을 맡고 있는 친구다. 둘이서 막걸리 두병을 한병씩 나누어 배낭에 꼽고 드디어 나들길이 시작 되었다. 오늘코스는 호국 돈대길로 터미날~갑곶돈대~용진진~용당돈대~화도돈대~오두돈대~광성보~용두돈대~덕진진~초지진으로 약 20km로 6시간 30분이 소요 될 것 같다.
도로 표시판을 보고 갑곶돈대에 도착하여 패스포드에 출발인증을 찍고 이곳은 전쟁박물관이 있는 곳이며 1694년 갑구나루에 2,400m의 문수산성이 축조 된 철웅요새 였는데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한후 또 인조때 청나라에 항복한후 그들이 성을 허물고 초토화 시켰다. 제방같은 해변 뚝길로 나오니 온몸이 날려갈 것 같은 세찬바람이 눈뜨기조차 힘들다~~~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바다바람에 엄청 익숙하여 고향 온듯한 모처럼의 화끈한 바람에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모든 불만과 마음속 찌꺼기 까지 날려 버릴 수 있는 호기라 여겨진다.동행하는 친구는 무척이나 애를 먹고 있는데도 말이다.
뚝길같은 길을 동서남북으로 확트인 곳에서 안면으로 바람이 불때는 모자는 벗어 손에 쥐고 반쯤 눈을 감고 걸었다. 뒤에서 바람이 불면 휩쓸려 뚝길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다. 우리뒤에는 30명쯤 우리 또래의 나이 든분들이 무리져 따라오고있다. 모임회꾼들인 모양이다. 용진진에 당도하여 사방을 둘러보고 사진몇장 박고 돈대 주위를 맴돌고 용당돈대로 향했다.돈대는 지형이 마치 문어 대가리 같이 앞으로 솟아나 있는 전망좋고 경계하기 좋은 해안경비하는곳을 말한다. 고려 숙종 5년에 49돈대를 만들고 다시 후에 4개돈대를 신설하고 2개돈대를 폐하여 현재는 51개 돈대가 있다.이는 진,보,돈대로 구별 되는데 강화도에는 5진 7보 51돈대로 구성 되어있다.진은 지금으로치면 대대병력규모인 900명~1,000명이 주둔하며 보는 100명~300명 중대병력 돈대는 9~50명으로 소대병력인 셈이다. 12개의 진과보는 인근의 3~5개 돈대를 관할했었다.
돈대는 평지를 높게 축조한 포대를 말한다.다시금 출발하여 용당돈대에 이르니 12시가 되었다. 화강암으로 양사방으로 둥글게 축조 되었고 중간 공간은 잔디가 깔려 있었다. 포가 진열되어 그때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강화도를 교과서적인 고려사 항쟁내지 무신정치 그리고 철쭉꽃으로 유명한 고려산과 고인돌 체전때 봉화의 시발점 마니산의 이모저모 석모도의 보문사의 기도처 정도가 내가 가진 지식의 전부였다.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뒤 밤새워 고려를 제대로 알기 위해 몽골제국과 원나라 무신정권의 참모습 친명 배원정치 고려말 사행길 행보등을 파기 시작했다. 칭기스칸을,외포리 곶창굿,강화도 여행관련서적, 몽골은 왜 고려를 멸망 시키지 않았는가 몽골은 왜 강화도를 치지 못했는가 포은 정몽주의 외교활동,정도전의 변명,최영장군의 구국정신,이성계의 위화도 회군후 역성혁명등
십여권의 관련책을 통독 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이 후기를 쓰면서 많은 도움이 도처에 되리라 본다.
용당돈데 성벽 뒤 양지 바른곳 바람이 없는 곳을 골라 잔디밭에 퍼질고 앉아 막걸리 한병 비우고 방울토마도랑 쏘시지등을 먹었다.
그리고 화도돈대로 향했다. 봄의 문턱에 여기저기 새싹이 움터고 있다. 길따라 갈대들이 바람에 몹씨 흔들 거린다. 아직도 기나긴 겨울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원래 철따라 다르지만 강화도 꽃길이면 벚꽃이랑 진달래 영산홍 매화등 볼거리가 많이 있는데 지금은 그냥 황금들녁 일 뿐이다 저멀리 산은 이직도 하얀 잔설이 보인다.
일잔술 취기에 세찬바람도 비켜가고 노란 띠 강화도 나들길 표시따라 바다 건너 해안길 너머를 수없이 바라보며 길을 걸었다. 가마니길을 아스팔트길을 걷다가 진흙길내지 풀잎이 깔려있는 길을 걸으니 발감촉이 너무 좋아 흥이 난다. 화도돈대를 돌아보고 오두돈대에 다달았다.썰물인 모양이다 갯벌 저너머 있던 물가가 한층 물이 차오는 모습이다 6시간마다 하루 밀물과 썰물이 교차한다.
갯뻘이 왜적으로부터 많은 자연 방패막이 역할을 했단다. 고려의 판막선은 밑이 평평하여 갯뻘에도 걸리지 않고 잘 다닌 방면 몽골이나 왜구의 배는 밑바닥이 u자 내지 v자 형태로 갯뻘에 균행을 잃고 쓰러져 돈대에서 쏘는 포내지 화살받이가 되고 이곳 강화도는 한강과 예성강 그리고 임진강이 한데 어우러져 물살이 쎄고 겨울철에는 염하의 강과바다라 유빙이 처처에 떠돌아 눈에 빤히 보이는데도 쉽게 건너지 못한다. 천연의 요새라 하지 아니 할 수 없다. 몽고는 7차례에 걸쳐 39년간 침략 하지만 6시간마다 물길이 바뀌고 있고 해안은 s자 굴곡진 곳이 많고 해안 절벽이 심하고 밑에는 갯벌로 형성 되어 그들은 대규모병력을 상륙 시킬 수 없었다. 설령 상륙 한다해도 강화도는 내성,외성,중성으로 삼겹성을 구축하고 있어 몽골군은 수전에 약하고 공성전에 약한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기마전이나 기동력이 강한 몽골이 여기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리고 몽골은 당시에 주병력을 금과 송나라 전투에 투입하고 있어 고려에는 1만명 내지 2만명 소수의 병력으로 공격 하였다.
더구나 그들은 7~8월에 군사를 동원하여 속전속결로 결정짓고 겨울이 오기전에 군사를 되물리는 작전으로 일관했다.
성벽안쪽에는 포가 설치 되어있고 포를 쏘기 위한 사각형 포구멍을 측정코자 명아지팡이를 돼 봐더니 닿질 않았다. 족히 1m 50cm는 넘을것 같다.그리고 성곽길을 도는데 며칠전 면접본 곳에서 모레부터 근무해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기쁨이 배가 되어 부첫님께 두손모아 감사 드렸다. 108배나 참선을 드리며 소원한바 이루게 되었다. 간밤에 21시에 잠을 청하였으나 23시가 조금넘어 잠을 깨어 내일을 위해 또 잠을 청했으나 그동안 습관이 된 탓인지 3시간 이상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남희가 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밤새 읽었다. 프랑스 남부의 생장 파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고 산티에고에 이르기(800km)까지 고난의 연속을 이겨내고 산티에고에서 90km 떨어진 피니스테제(바닷가 마을)에 이르러 카르페 디엠을 외치며 순레를 마치고 신고온 신발을 태우며 한없는 눈물을 쏟을땐 내눈에도 감동의 눈물이 서려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산티아고 순레길은 에수의 12대 제자중 야곱보가 예수가 사형된 후 복음을 전달 하기위해 에루살렘에서 산티아고까지 순레후 산티아고에서 죽어 그의 무덤이 이곳 산티아고에 있다. 김남희는 몇년전에 땅끝 해남에서 통일전망대까지 820km을 도보로 걸어 국토를 종단 한 기행문을 나는 책으로 읽은바 있었다.
이제 저너머 광성보가 시야에 들어왔다. 유난히 길게 앞으로 튀어나온 보다. 포항만 처럼 말이다. 이때 걸려온 전화 오늘은 함께 하지못한 친구 그친구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부인과 함께 걸었던 또한 통일전망대에서 동해안 해변을 따라 20여일만에 부산 해운대에 도착했다)격려 전화로 축하하며 광성보는 입장권을 끊어 꼭 구석구석 탐방 할 것을 권했다. 나는 입장권이 무료다 만65세 이상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누린 셈이다. 13시30분에 광성보에 당도했다. 이곳은 조선조에 쇄국정치로 겪었던 병인양요,신미양요의 흔적들이 지나간 역사를 되새김 하고 있었다. 삶은달걀을 안주삼아서 남은 막걸리 1병을 이곳에서 마저 비웠다.곧이어 건너편에 커다란 배위에 대형 태극기로 덮어쒸운 듯한 손돌목을 바라보며 걸었다 이때가 가장바람이 거세었듯하다 오늘은 원없이 바람을 쏘였다. 어제비온 탓인지 가시거리가 저멀리 바다 건너편까지 보인다. 고려 고종이 몽골에 쫓겨 이곳으로 피난와서 강화도로 건너기 위해 배를 탔는데 손돌 이란 뱃사공이 빨리 건너편으로 건너지 않고 왔다리 갔다리 하니까 장난치는 것으로 오인하여 그를 참수 하면서 건너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묻자 그는 바가지를 띄워 바가지를 따라 가면 된다 고 했다. 고종이 바가지를 따라 무사히 배를 건너고보니 그가 장난친게 아니라 세찬 물길 때문이였음을 알게된다. 묘를 크게 조성하고 사당을 짓고 해마다 손돌의 수호신을 기려 제사를 지내고있다. 손돌목 목은 사람의 목처럼 해협이 갑자기 좁아지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손돌목은 강화도 건너편 육지에 자리하고있다.
용두돈대를 지나 덕진진에 도착했다. 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도의 제1의 포대다. 강화해협을 지키는 최고의 요충지로 광성보와 초지진의 중간지점에 위치하며 신미양요 당시 이틀에 걸쳐 포격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15문의 대포가 설치 되었던 남장포대가 한몫을 당당히 했던 곳이다.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반달모양의 요새로 축조 되었다. 덕진돈대는 덕진진에 소속된 2개의 돈대중 하나다.
덕진돈대 앞에는 덕진진 경고비가 있다. 높이 147cm 폭 54.5cm 두께 28cm로 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 로 바다의 관문을 지키고 있으므로 외국선박은 통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직도 탄헌 흔적이 남아 있다. 9 기의묘도 조성 되어 있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초지진으로 향했다. 원래 초지진은 안산의 초지진으로 수군부대였다.고려 효종 7년(1656년)에 강화도 길상면의 초지진으로 옮겨 육군부대로 바뀌였다. 여러횟집이 옹기종기 해변을 병풍삼아 늘어서 있고 모텔이 여러곳 눈에 보이고 초지진대교가 길게 뻗어 대륙과 연결하고 있다 건너면 인천과 서울로 교통이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2번코스 인증도장을 패스포드에 찍고 보니 오후 16시다 꼭 6시간 30분이 소요 되었다.강화도 터미날 가는 5번버스를 기다리며 따듯한 커피 한잔 하니 맛이 그저그만이다. 다시금 강화도 터미날에 와서 풍물시장 2층 황금밴댕이 횟집으로 발걸음을 했다. 지난번에 들린 것을 아는 지라 반갑게 맞이해 준다 소주맛과 반댕이맛과 간장게맛이 한데 어우려져 오늘하루의 피로를 말끔이 씻어준다 18시30뷴에 악수하고 친구는 300번 타고 서울로 향하고 나는 800번타고 제물포을 거쳐 인천 그리고 숭의역에 내려 집에오니 21시가 지나 있었다.
강화도는 남북으로 100리요 동서로 50리다 오늘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100리길을 걸은 셈이다.
즐거운 하루였다.
2018년 03월 20일
토돌이 박 용 수
첫댓글 고문님. 건강하시죠. 어디서든. 건강하시고. 시간이되면. 한울타리도. 다녀가십시요. 즐거운시간되세요
정말 올만입니다~~~너무 반갑고요~~~사모님도 잘 계시지요?~~~함께 산행 했을때가 엊그제 같은데 일년이 훌쩍 흘렀습니다~~~보고 싶순요~~~
감사합니다
오호~ 건강도 점점 좋아지시는 소리가 들립니다.... 20KM 좋습니다.... 어데를 다니시든 재미난 후기 꼭 올려주십시요~~다음편은 어디일른지 기대하겠습니다
길을 걸을때는 스스로의 내면을 드려다 보게 됩니다~~~길위에 숱한 사람들과 만납니다 그중에 큰곰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반갑습니다~~~20개 코스 중 2코스와 15코스 돌았습니다~~~아마도 6코스가 될 듯 싶습니다~~~강화도 터미날에서 내륙코스에서 광성보까지 화남 생가 가는길 18.8km 6시간~~~힝상 건강 하시길~~~
어깨가 많이 좋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건강도 챙기시고 좋은후기도 올려주세요^^
그렇습니다~~~새로운 곳에서 정 부치느라 열심입니다~~~항상 건강 하시길~~~
고문님 반갑습니다.
새직장에도 새롭게 출근하셨겠군요. 축하드립니다~
둘레길 거센바람 맞으며 장시간 걷는것도 대단하신데 고려역사까지 세심히 살피시며 후기에 남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며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인연들과 벗 하시며 멋지게 사시길 응원합니다~
아!참으로 반갑습니다~~~언젠가 아들과 함께 고려산으로 산행 할때 강화도에 대하여 질문 받은적이 있지요?
그때가 기억이 납니다~~~부끄럽게도 교과서적인 지식 이외에는 몰라든 가뵈요~~~새로운 일 5년만에 갖고보니 새로워집니다~~~20코스증 이제 18코스가 남았는데 업무가 익숙 되는데로 남은 코스를 도전 할 까 합니다~~~가내 두루 안녕 하시고 화목 하시길~~~
어깨가 그토록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넘치는 열정으로 20개 둘레길 코스 탐방에 도전 하셨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함께 동행한듯한 기분으로 후기 잘 읽었네요. 새롭게 시작한 직장에서도 보람과 긍지를 느끼셨음 좋겠네요. 아무쪼록 제1번은 건강이지요. 다음 잼난 후기 또 기대해 봅니다. 건강 하십시요.
반갑습니다~~~몽땅연필과 다쓴 볼펜이 다시금 재활 하듯이 나이 먹어 낯선 곳에서 모든 것 시작 한다는 게 새롭기만 합니다~~~아픈 어께도 아물어 가고 새로운 직장에서도 정신없이 바빠 혼신의 힘으로 적응 해 가고 있습니다
범하늘의 총총한 별처럼 봄날의 화사한 꽃처럼 살고자 합니다~~~항상 건갈 하시길~~~
@토돌이 새로운 곳에서 적응 하시기 힘드시겠지만 항상 열정과 패기가 있으시잖아요. 연세도 생각하시면서 건강 챙기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