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진해, 상남등에 거주하면서 학교다녔던 동문들은 봉암다리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구마산에서 봉암다리까지 걸어서 간다는 것은 아이들로서는 대단한 모험이었다. 우리는 몇번 그곳에 다녀왔다가 아버지에게 엄청 혼나기도 했다. 봉암다리 부근 얕은 바닷가에서는 예전 1970년대 까지는 꼬시락 이라는 고기가 아주 많이 잡혀, 그 일대에 꼬시락 횟집이 꽤 많았었다. 그러나, 공업화가 되면서 바다도 오염되고, 오, 폐수로 봉암다리 부근 갯벌들도 시커멓게 변해 폐허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마산-진해 사이에 있는 봉암다리 인근 바다 및 갯벌에서 수십년만에 바지락과 꼬시락이 돌아왔다고 2009년 3월 언론에서는 크게 보도했다. 마산, 창원, 진해 모두 오, 폐수 정화시설이 오랫동안 가동되고, 환경오염을 막기위한 지역사회의 지속적인 활동이 결실을 거둔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30년만의 이 일대 어패류 채취로 동 갯벌 지역 매립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시민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참 반가운 일이다.
2009. 3월 지역신문기사 :
"아직 1시간도 안됐는데 바지락을 5㎏도 넘게 캤어요. 어릴 적 고향마을을 되찾은 것 같아요.” 경남 진해시에 사는 김점순(65·여)씨는 10일 오후 친구들과 함께 마산시 봉암동 봉암대교 아래 개펄에서 바지락을 한 광주리 가득 캤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김씨는 자신의 고향이 되살아났다며, 친구들에게 봉암개펄에서 뛰어놀던 옛 추억을 쉴 새 없이 풀어놓았다.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에 휘말려 죽었던 마산만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마산만에서는 1975년 수영이 금지됐고, 79년에는 어폐류 채취가 금지됐다. 어패류 채취를 금지하지 않아도 어차피 자취를 감춰 캘래야 캘 수도 없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봉암동 일대에서는 70년대 초반까지 재첩과 백합조개 등이 나왔으나, 주변에 마산자유수출지역 등 공단이 들어서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 지역 명물이었던 ‘봉암꼬시락’도 추억으로만 남아 있었다. 마산만은 죽은 바다의 대명사가 됐다. 1997년 환경운동연합이 봉암개펄의 생물실태를 조사했을 때까지도 조개 종류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바지락을 캐던 근처 봉암아파트 주민들은 “3~4년 전부터 물고기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조개도 띄엄띄엄 눈에 띠었다”며 “최근에는 김과 파래 같은 것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국 처음으로 2008년 10월부터 마산만에서 연안오염 총량관리제를 시행하는 등 죽은 바다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거두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임희자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중금속 함유 정도를 분석해봐야 하겠지만, 마산만에 사라졌던 바지락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반가운 일”이라며 “마산만을 노랫말처럼 ‘내 고향 남쪽바다’로 완전히 되살리기 위해서는 마산만 일대에서 추진되는 각종 매립사업을 재검토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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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봉암다리 밑 꼬시락횟집 모습 (1960~1970)
꼬시락,장뚱어 비슷하게 생겼다.
봉암꼬시락장(사진)은 옛날(1960~1970년) 봉암다리 밑에서 적현쪽으로 접어드는 길 옆 해변에 징검다리를 놓아 해상 꼬시락장 간이횟집을 만들어 고객을 맞이했다. 대부분이 둥근 지붕형이어서 봉암다리 위를 건널 때마다 눈길을 끌었다. 이같은 형태의 봉암꼬시락장은 5~6개나 되었는데 대부분 고객들은 마산 진해 등지에서온 꼬시락회 애호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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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자유지역 조성전 봉암갯벌 모습 - 1968년
우리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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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들이 살고 있는 지금의 봉암갯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