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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를 먹어도 되는가? 안 되는가?
사도행전 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사도행전 15: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21: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모기는 피를 먹고 삽니다. 살인진드기라 불리는 흡혈진드기가 있는데, 이 진드기도 피를 먹고 삽니다. 지난주 월요일 산에 갔을 때 팔이 근질근질해서 보니 살인진드기가 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또 집에 와서 등에 뭐가 기어 다녀서 웃옷을 벗고 확인했더니 살인진드기였습니다. 그래서 잡아서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모기나 살인진드기만 피를 빠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도 피를 먹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슴피를 즐겨 마십니다. 피가 흥건한 간을 즐겨먹는 사람도 있고, 선짓국이나 돼지피로 버무린 순대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들을 먹어도 될까요?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창세기 9:3-4)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 중에 무슨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를 먹는 그 사람에게는 내 얼굴을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 먹을 만한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여 잡거든 그것의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지니라.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 피를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레위기 17:10-14)
이처럼 하나님은 생명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과 생명을 존중하라는 의미에서 생명과 일체인 피를 먹지 말라고 엄금하셨습니다. 이런 금지는 모세오경에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째 먹지 말며"(레위기 19:26)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신명기 12:16)
"다만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리니"(신명기 12:23)
"너는 피를 먹지 말라. 네가 이같이 여호와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면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신명기 12:25)
"오직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지니라."(신명기 15:23)
구약시대에는 피를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피를 먹으면 죄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째 먹었더니 무리가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 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여기서 잡아 먹되 피째로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사무엘상 14:31-34)
그리고 신약성경에도 피를 먹지 말라고 금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묵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사도행전 15:20)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사도행전 15:29)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사도행전 21:25)
그래서 저는 오래도록 피를 먹으면 안 된다고 믿었고, 실제로 먹지 않았습니다.
한편, 여기서 '피'와 함께 '목매어 죽인 것'을 금한 것은 짐승을 잡은 후 피를 다 빼고 먹은 유대인의 식습관과 관련 있는 것으로 피를 조금도 먹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슴피나 선짓국은 물론 피가 흥건한 간이나 피로 버무린 순대도 먹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제가 본문을 오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피나 피가 들어간 것을 먹지 않습니다. 제 식성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님들에게 안심하고 먹고 싶으면 먹으라고 가르칩니다.
그럼 성경에는 분명 피를 먹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왜 피를 먹어도 되는 것일까요? 함께 그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1. 성경에는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뿐 아니라 먹으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대로 성경의 여러 곳에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피를 먹으라고 한 구절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한복음 6:53-57)
이 말씀이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참으로 충격적이고 괴이한 말입니다. 구약성경이 피 먹는 것을 엄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토록 많이 예수님을 따르는 데서 돌아섰는지도 모릅니다. 존 하틀리는 이렇게 썼습니다.
"피의 상징적 사용에 있어서 구약과 신약 사이의 근본적 차이는 성만찬 예식에서 나타난다. 구약에서는 어떤 형태의 피의 섭취든, 심지어 고기 안에 있는 피라 할지라도 엄격히 금지되었다. ... 이러한 규준은 여전히 독실한 유대인들이 따르고 있다. 그렇지만 새 언약의 체결을 기념하는 식사인 성만찬에서 신자들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나타내는 떡과 포도주를 먹는다(마26:27-28, 막14:23-24). 이러한 성분들을 먹음으로써 신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의 혜택을 나누어 갖는다(고전10:16, 11:25, 히9:15-22). 요한복음 6:52-59에 있는 담화는 생생한 이미지 속에서 놀라울 정도로 급진적이다. 예수님은 담대하게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하신다."
물론 여기서 '피를 마시라'고 한 것은 문자적인 뜻이 아니라 상징적인 말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처럼 여전히 피를 마시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면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추론하는 것이 가능하고 타당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마십니다. 그런데 짐승의 피겠습니까? 그러므로 피를 마셔도 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2. 구약시대에 율법으로 금했던 모든 음식 규정은 폐지되었습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은 레위기 특히 신명기에 집중적으로 나옵니다. 즉 모세의 율법의 계명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 특히 의식법고 음식에 관한 것들은 확실히 폐지되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본 환상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육 시더라.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 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사도행전 10:9-15)
물론 여기서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은 이방인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레위기 11장의 식용을 금한 것들과 상관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환상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하시려는 비유적인 계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자신의 율법을 파괴하시며 비유하시고 계시하실 수 있겠습니까? 먹지 못할 짐승들을 보여주시며 환상 속에서는 잡아먹을수 있고 실제로는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셨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지요!
하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비유적인 환상을 보여주셨을까요? 그것은 구약에 부정했던 먹거리들이 신약에는 깨끗하게 되었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구약시대와 달리 지금은 독이 든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든지 식성을 따라 먹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사복음서와 바울서신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마가복음 7:15)
그러므로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그것이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디모데전서 4:1-5)
바울이 예언한 대로 이단들 중 몰몬교는 커피, 홍차, 녹차를 금합니다. 안식교는 채식교리를 강조합니다. 다니엘이 한때 채식을 한 것을 강조하고 육식을 그만두어야 하고, 육식을 하면 동물적 성질이 강화되고 영성은 약화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단인 하나님의 교회는 본문에 입각하여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먹는 것을 금합니다. 이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모든 음식에 대해 뭐라고 말했습니까?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음식도 금기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사도행전이 피를 금한 것은 유대인 신자들을 위한 조치였습니다.
앞에서 저는 피나 목매어 죽인 것을 먹어도 된다는 이유로 성경에 피를 마시라는 말씀도 있고, 구약의 음식에 대한 규례는 폐해졌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그렇더라도 사도행전에 나오는 본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남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15장 20절과 29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 구절에 대해 존 스토트는 사도행전을 강해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방인 신자들에게 유대인 동료 신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몇 가지 관습들을 삼감으로써 그들의 양심을 존중해 줄 것을 호소할 필요가 이었다. 야고보는 계속해서 설명한다.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그리고 지금도 읽고 있다(21절). 모세의 가르침이 잘 알려져 있고 매우 존중되는 그러한 상황에서, 유대인은 양심의 가책에 민감했으며, 사랑의 정신에서 그러한 그들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일단 할례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선포되었고, 그래서 복음의 진리가 보장되고 평등의 원리가 확립되었으므로, 그러한 것을 금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양심에 대한 예의 바르고 일시적인(비록 어떤 상황에서는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28절) 양보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권하고 있는 금지들은 ... 필수적인 그리스도인의 의무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곧 그러한 음식을 여전히 불법적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것으로 간주했던 유대인들의 양심에 대한 양보로 이해해야 한다.'"
뛰어난 신학자인 하워드 마샬도 이 견해에 동의했는데, 그는 간단하게 이렇게 썼습니다.
"이것들은 특별한 요구사항인데 양심적인 유대인 신자와 교류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이다."
저는 이 견해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로, 야고보가 이것들을 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야고보는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사도행전 15:21)
이처럼 유대인의 회당에서 가르치고 그로 인해 퍼진 유대인 사회의 관습과 문화 때문에 금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음 장에 보면 바울이 유대인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대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사도행전 16:1-3)
바울이 왜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했습니까? 할례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이맘아"라는 단서가 보여주듯이 유대인들과의 마찰을 피하고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피를 금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해석이 옳다는 것은, 사도행전 21장을 보면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해집니다. 물론 할례와 달리 교회 밖의 유대인이 아니라 교회 내의 유대인 신자들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 다르긴 합니다. 아시다시피 사도행전 15장은 기독교와 유대인과의 관계를 다룬 것이 아니라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과의 관계를 다룬 것입니다. 사도행전 21장도 그러합니다.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네가 이방에 있는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사도행전 21:20-24)
이처럼 야고보는 먼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느끼는 양심의 거리낌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결례를 행하고 비용을 댄 것은 믿는 유대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다음 절에 나오는 피 먹는 것을 금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사도행전 21:25)
사도행전 15장을 비롯해서 바울서신과 야고보서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듯이 야고보와 바울은 구원이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지며,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가 불필요하며, 신자가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진리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관습'(21절) 즉 풍속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문화와 예식과 전통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언급한 4가지 금지도 같은 범주에 속합니다. 따라서 그것들은 바울이 행한 결례처럼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4가지 금기는 유대인 신자들의 양심을 존중해서 내린 조치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양보가 사도행전 15장에서 "요긴한 것들"이라고 말한 것처럼 꼭 필요했습니다. 그 필요성을 아지스 페르난도는 다음과 같이 잘 지적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정결을 유지하는 것은 생존과 정체성에 지극히 중요한 양상이었다. 그들이 외국의 지배하에 있었고, 이방인 영토에 널리 퍼져있었을 때에 특히 그러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과 식탁 교제의 이슈와 정결치 못한 음식을 먹는 것은 심각한 이슈였다. 하지만 초대 교회에서 더불어 같이 먹는 것은 공동체적 삶의 한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였다(2:46). 유대인 크리스천과 이방인 크리스천 간의 열린 마음의 교제가 있으려면 유대인들이 양심에 꺼려하는 것에 이방인들이 어떤 민감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야고보는 음식과 관련한 세 가지 교제를 제시한다(20)."
그러므로 그 당시에는 이 4가지를 금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더구나, 김세윤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바울은 그 사도회의의 결의를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교회를 이루고 식탁 교제를 하는 안디옥 교회와 같은 곳들에만 적용성이 있고, 고린도 교회같이 헬라 교회들에는 적용성이 없는 것으로 생각해서 그 결의를 가르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지적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오늘날은 이스라엘에서 선교하는 선교사가 아닌 이상 이 규정들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의문점이 남아있습니다. 만약 본문에서 금한 네 가지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행한 결례처럼 믿는 유대인들의 양심을 존중하고 그들과의 연합을 위하여 요구되었던 것이고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면 "음행"이 왜 이 안에 들어있는 것일까요? 분명 음행은 십계명의 7계명이 금하고 있는 것이고 일시적인 금지사항이 아닙니다. 아지스 페르난도도 이 점을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답을 내놓았습니다.
"성적인 부도덕성에 관한 규제('포르네이아')는 나머지 것들과는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고, 그것은 이 목록에서 잘 맞지 않아 보인다. 확실히 구태여 이곳에서 성적인 부도덕성이 크리스천들에게 금지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마도 안디옥(안디옥은 부도덕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과 같은 곳에서 아주 많은 부도덕함이 팽배해 있었기에 교회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런 부도덕성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기에 특별한 경고가 필요했다. 아마도 이런 규제는 부도덕한 교회 구성원들은 크리스천들과의 식탁 교제의 특권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참조. 고전5:9-11). 이런 설명이 다른 세 가지 규제와의 연관을 만들어준다."
그는 또 이렇게 썼습니다.
"성적인 부도덕성에 관한 이슈는 이방인 크리스천들이 살았던 사회가 성적인 부도덕으로 아주 만연해서 교회가 그로 인해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제기되었다. 이사야는 부정한 입술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기에 자신이 부정한 입술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때, 환경이 그에게 영향을 주었음을 인정했다(사6:5). 동일한 방식으로 교회가 사회를 오염시키는 죄를 교회생활에서 반영할 수 있다. 고린도 교회에서 그런 경우가 분명히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 도시의 이름은 '음탕함의 대명사'가 되었다. 부분적으로 '고린도가 사랑의 신인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는 센터였기' 때문일 것이다."
참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지요? 당시 이방세계는 성적으로 굉장히 문란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계모와 통간한 사람이 있었듯이 이방 신자들 중 세상 문화에 동화되어 아직도 그것을 다 버리지 못한 자들이 다소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 신자들에게 혐오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신자들의 양심을 존중하고 그들과의 연합을 위한 조치에 이것을 포함시킨 것으로 보입니다(십계명은 다른 계명들은 넣지 않고). 따라서 이 조항 때문에 앞에서 한 설명이 부인되지는 않습니다.
이상 설명해드린 바와 같이, 본문의 4가지 금지사항은 믿는 유대인 신자들을 위한 조치였고, 오늘날 유대인들과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하지 않는 대부분의 교회들에서는 더 이상 요구되지 않습니다. 단 음행에 대한 금지는 오늘날도 유효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못지않게 이 시대의 문화도 너무 음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거룩을 추구해야 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모든 먹거리를 통틀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마가복음 7:15)
그러므로 '어떤' 음식이든 그것을 먹는 것 자체가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바울도 유사한 말을 했습니다.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고린도전서 8:8)
여기서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한다"는 것은 우상의 제물에 대해 지식이 있는 고린도 교회의 강한 자들의 구호로 보입니다. 바울 역시 이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럼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몇 가지 다른 번역본들을 살펴봅시다.
헬라어직역성경 "음식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게 하지 못합니다."
표준새번역성경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는 것은 음식이 아닙니다.'"
현대인의성경 "그러나 음식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현대어성경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것을 먹든 먹지 않든 상관하시지 않습니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 앞에 세운다'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 책망받도록 심판대 앞에 세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어떤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음식을 가려 먹었다고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즉 음식이 우리를 하나님께 천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물론 바울은 8절 후반절에서 역도 성립됨을 말하여 고린도의 '강한 자들'의 입장을 교정합니다.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부족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먹었다고 해서 무슨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굳이 우상의 제물을 먹어서 믿음이 약한 다른 신자들을 시험에 들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바울은 먼저 8절 전반절에 나오는 강한 자들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즉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내세우지 못한다"는 것이 진리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상의 제물뿐 아니라 모든 음식에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음식을 먹는 것이 하나님께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에 나오는 규정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이 문제로 한참 씨름하고 있을 때, 교회 인터넷 카페에 "존경하는 목사님께 질문 여쭙니다"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목사님, 순대나 선지는 먹으면 안 되는 것인가요? 저희 아이가 물어서 삶아서 먹고 피째 먹는 것은 아니니 이방인인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답을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답을 달았습니다.
"사도행전 15:20, 29을 읽어 보시고 그대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뒤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서 저의 답변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답글을 달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먹어도 됩니다!"
또, 같은 시기 성령신학교 수업시간에 한 신학생이 반문을 했습니다. 그 신학생은 고린도전서 9장 20절과 '디모데의 할례(행16:3)'를 제시하며 피를 먹어도 된다고 주장했습니다.그때 저는 먹으면 안된다고 일축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신학생의 지적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수업시간에 피가 들어 있는 순대를 한 상자 사다 주면서 공개적으로 사과한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전에는 잘못 알았습니다. 그래서 잘못 가르쳤습니다. 피, 먹어도 됩니다. 선짓국이나 순대도 먹어도 됩니다. 그러므로 식성대로 많이 드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