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 (이음전)
자유게시판에는 남편의 폭력과 외도로 이혼을 결정한 어떤 아내의 하소연이 올라와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앞에서 좀처럼 꺼내기 쉽지 않은 사적인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풀어놓았다.
익명이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회원들이 대부분 주부들이라는 점에 동질감을 느껴 거침없이
본인의 고민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면 사건의 추이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글쓴이의
상황을 최대한 고려해서 저마다의 생각을 댓글로 답해준다. 이 시점에서 이혼은 글쓴이에게 깊은
상처를 남길 뿐 아니라 경제적 손실까지 더하다는 현실적인 댓글이 삽시간에 수 십 개씩 달렸다.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함께하고 위로한다는 의미로 ‘토닥토닥’이라고만 썼다. 또 다른 사람은 토닥토닥2222222222,
그 아래의 댓글은 토닥토닥3333333333가 되기도 했다.
눈보라까지 치는 허허벌판에 벌거벗고 홀로 서있는 황량한 심정이었을 글쓴이에게 짤막하지만
토닥토닥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지.
얼굴을 마주하지는 않더라도 온전히 글쓴이의 편에 서서 조용히 달래주는 수많은 토닥토닥에 나도 흠뻑 젖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우리는 할머니나 엄마의 끝없는 토닥토닥 가운데 성장할 수 있었다.
엄마의 품안에서 심장 소리를 박자 삼으며 토닥토닥 등 두드려주면 편안해져서 스르르 잠들곤 하지 않았는가?
어른이 된 후 잠을 불러오는 자장가로 들릴 일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곁에 있어야 안심한다.
살다보면 늘 좋은 일만 생기지도 않을 뿐더러 하는 일이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기에,게다가 인간관계는 이리저리 얽혀서 복잡하기 짝이 없다.
조금만 실수해도 용납되지 않고 틀어지기 십상인 게 사람과의 관계 같다.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된 토닥토닥이 짠! 하고 나타나면 크게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잘못을 하고 어른들에게 혼날 것을 두려워하며 잔뜩 주눅이 들었는데 의외로 어루만져 주시던
토닥토닥은 지금껏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가족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는 걱정거리를 자유게시판에 쭉 나열하고 네티즌들의 생각을 기다렸다가
확인해본 경험이 내게도 있다. 타인의 일은 되려 방향제시가 수월할 수 있지만 스스로의 문제는
판단이 흐려졌던 경우를 생각해서다. 진솔한 댓글이 깊이 와 닿아 골칫덩이가 눈 녹듯 사라졌었다.
그때도 나를 위로하는 온갖 미사여구의 댓글이 달렸지만 간결했던 토닥토닥이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실제로 내 등을 살살 두드리는 따뜻한 느낌이 전신으로 퍼졌었다고 할까.
막막하고 난관에 봉착한 어떤 이에게 나는 진정 토닥토닥 그 슬픔이 희석되도록 달래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남의 고단함따위 외면한적 많았을 것이다.
위안 받고 싶어서 내 아픔이나 요란하게 내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은 글쓴이에게 나도 댓글을 달았다.
‘내가 그녀라면’ 이라고 가정하면서, 또한 내가 작성한 댓글을 읽고 그녀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안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최선을 다해 썼다. 나를 비롯한 네티즌들의 독려에 힘입어 지금쯤
글쓴이는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으리라 믿는다.
‘토닥토닥’
세상에 그처럼 정겹고 포근한 낱말이 또 있을까?
(끝)
첫댓글 참으로 포근한 토닥토닥 입니다. 요양원에서 제일 순한 순둥이로 불리는 울엄마가 그립네요. 기억 저편의 어지러움은 다 날려버려서주는대로 받아 먹고 배설하니 말 잘듣는 순둥이로 불립디다. 엄마의 등을 만져도 알아 보지는 못하지만 느낌은 있을테죠? 글 잘 읽고 갑니다. 뭐든 쓰야 하는데 이몸은 남의 글만 읽고 부러워만 하고 있으니... 안되겠지요
마음만 먹으면 미성씨도 좋은글 줄줄 낳는 사람인데요 뭐.
쓰고 싶을 때 쓰면 되니까요.
나도 요즘 글이 쓰고 싶어져셔요.
선배방은 늘 여기저기가 사람냄새가 납니다. 글도 포근하고 편안하여 공감대가 팍팍 와 닿고요. 저도 글 쓰고 싶어질란다...
고맙네.
좋은 글을 써야하는데 마음처럼 되지도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