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국화리그 경기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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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경기도 양평 풀향기 팬션.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와 함께 100여명의 여성들이 쏟아내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떠들썩했다. 2009 시즌을 마친 여성 야구동호인들의 ‘국화리그’의 MT였다.
최우수선수상, 우수선수상, 감독상, 홈런상, 타격상, 투수상(다승), 특별상, 상금은 없고 트로피만 수여되지만 이를 받아든 선수들의 표정은 프로야구의 골든글러브가 부럽지 않아 보였다. 폐막식 및 시상식이 끝나면 팀별 장기자랑과 바비큐 파티가 이어진다. 이들이 바로 한국의 ‘야구하는 여자들’이다.
◆WBC 열풍 두 번, 야구하는 여자들의 등장
올해 프로야구는 입장객 530여만명을 기록해 사상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하일성 전 KBO 사무총장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WBC를 시청하면서 국민이 복잡한 야구 규칙을 배워 야구의 재미를 느끼게 됐다”며 “특히 2006년 WBC를 계기로 점차 늘던 여성 팬들이 지난해부터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는 복잡한 규칙을 굵직굵직한 국제대회 시청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힌 결과”라고 설명했다.
제1회 WBC(2006)-베이징 올림픽(2008)-제2회 WBC(2009)의 인기가 확실히 여성 야구팬의 증가로 이어졌다. 두산베어스 구단의 경우 지난해 선착순으로 받은 회원 2000명 가운데 약 30%가 여성 회원이었다. 하지만 제한 없이 접수한 올해 신규회원 약 1만2000여명 가운데 여성회원이 45%에 이르렀다.
- ▲ 지난 3월 국화리그 개막식
◆현직 경찰, 전직 소프트볼 선수 등 전국에서 모여들어
국화리그는 인천시 부평구에서 후원한다. 부평구의 상징 꽃이 국화라서 리그 명칭을 ‘국화리그(정식명칭은 부평국화리그야구연합회)’라고 부른다. 매년 3월부터 10월까지 팀별로 14경기를 하고, 플레이오프는 결승전을 포함해서 3경기이다. 팀별로 약 100만원 정도 참가비를 내 심판비와 기록비 등으로 지출한다. 참가비는 회원들의 갹출이다. 올해까지는 부평 미군 부대 운동장에서 리그가 열렸지만, 내년에는 부평 부영 공원에 있는 야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국내 여자야구팀 가운데 최다 회원(38명·한국여자야구연맹 등록 기준)을 가진 ‘나인빅스’(국화리그 참가팀)의 최수정(34·IT 프로젝트 업·서초구) 감독은 “고등학교 때부터 야구장에 갔다. 야구를 정말 좋아한다”며 “야구를 보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야구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4년 야구를 시작한 최씨는 2005년에 ‘나인빅스’ 야구단을 창단했다. 훈련은 관악구 인헌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토요일과 일요일 하루에 4시간 정도 한다. “인헌 초교 야구부 감독님이 돈을 받지 않고 운동장을 쓰도록 허락해주셨다.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에 야구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이 ‘나인빅스’의 팀원들은 거주지도 다양하다. 일산, 부평, 대전 심지어 태안에서도 주말마다 야구를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는 선수가 있다. 야구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국화리그’ 정규리그 우승팀(포스트 시즌 우승팀은 ‘해머스 스톰’)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야구단(2004년 1월 창단)인 ‘비밀리에’ 유경희(30·리틀야구연맹) 감독은 소프트볼 선수 출신이다. 2008년부터 야구에 관심을 가졌고 ‘비밀리에’ 팀에 합류했다. 투수와 내야수를 맡고 있는 유씨는 “소프트볼 선수를 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소프트볼이 아닌 야구를 하고 싶어서 팀에 가입하게 되었다”며 야구계 입문 동기를 설명했다.
‘떳다볼’ 야구단의 배새롬(31·서울 중부경찰서 경장) 선수는 올해 5월에 열린 계룡대회에서 처음으로 홈런을 쳤다. ‘떳다볼’ 팀이 소프트볼팀으로 창단했을 때부터 선수로 활동했던 1997년부터 선수로 활동했던 배씨는 여자야구팀이 늘어나면서 ‘떳다볼’ 팀은 2004년 8월에 야구팀으로 재창단했다.
‘국화리그’에서 홈런을 못 쳐본 것이 아쉽다는 그녀는 “동계훈련을 착실히 한 결과 기량이 많이 늘었다”며 훈련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올해까지는 도루가 없었지만, 내년부터는 도루도 적용된다. 펜스는 남자선수들보다 짧지만 기량이 늘면서 이제 거의 남자들과 다름없는 규칙으로 경기할 수 있다”며 기량 향상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블랙펄스’ 야구단의 원칠성(33·법무사) 감독은 올해 리그 감독상을 받았다. “선수들이 잘 따라왔기 때문에 감독상을 받을 수 있었다”는 그녀는 “햄스트링 상처를 입고도 경기에 출전할 만큼 투혼을 발휘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또 “여자 경기에서 더블플레이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며 올해 첫 리그 경기에서 더블플레이를 성공한 것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블랙펄스’ 팀의 단장이자 후원자인 강형선(48·대한스포츠 사장)씨는 “직원들이 후원하는 것을 보고 대승적 차원에서 후원을 결심했다”며 “기사로 쓸 만큼 대단한 후원을 하는 것은 아니고 유니폼과 장비 정도 후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야구단을 후원하는 이유를 “그저 야구가 좋아서”라며 웃었다.
◆ 야구장에서 경기하는 게 작은 소망
남자 야구에 비해 여자 야구의 역사는 매우 짧은 것다. 2007년 3월 여자야구 활성화를 위해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이 출범했고, 현재 21개 팀(2009년 기준) 450여명의 선수가 등록되어 있다. 현재 매년 3개 정도의 전국대회(계룡대회, KBO 총재배대회, 연맹 회장기대회)가 열리는 수준이다.
하지만 여자야구대표팀은 올해 일본에서 열린 세계야구월드컵대회에 처음 출전해 8개 팀 가운데 6위를 차지했다. 바로 ‘국화리그’ 성적과 전국 대회 성적을 고려해 연맹에서 선발한 선수들이 이룬 성적이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여자 야구 선수들은 한결같이 구장 부족 문제를 언급했다. ‘부산 홀릭스’에서 유격수를 맡은 박정희(29·사무직) 선수는 “대연정보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매주 일요일 훈련을 한다.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는 땅에서 훈련을 하다 보니 다치는 경우가 많다”며 구장 문제의 해결을 희망했다.
구장이 있더라도 20만원에 달하는 대여료가 문제다. 사회인 야구팀이 많아서 구장 대여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액수를 더 지불하는 팀이 구장을 대여하는 실정이다.
올해 4월부터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의 제2대 회장직을 맡은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구장문제는 여자 야구 뿐 아니라 한국야구 전체가 안은 숙제”라며 “현재 대한야구협회, 한국야구위원회 등과 공조를 통하여 야구 인프라 개선과 구장 신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또 전 의원은 “63년 역사의 여자축구에 비해 2004년 첫 야구팀이 창단된 여자야구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앞으로 1~2개의 대회를 더 늘릴 예정이다. 선수들이 야구에 전념할 수 있는 실업팀 창단을 위해 지자체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