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아네트>
1. 1980년대 <퐁네프의 연인들>, <나쁜 피> 등의 작품을 통해 조금은 특별한 사랑의 형태를 보여주었던 레오 까락스 감독의 신작이 발표되었다. 2021년 공개된 뮤지컬 영화 <아네트>에는 까락스가 추구하는 사랑에 관한 본질과 그 속에 담겨있는 충돌 그리고 집착 등과 같은 왜곡된 모습의 고발이 담겨있다. 사랑은 가장 아름답고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감정적 성취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언제든지 파국적인 모습으로 전환될 수 있는 비극적 감정이기도 하다.
2. 아름다운 목소리의 성악가 안나와 괴팍하고 가학적인 방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던 코메디언 헨리는 언론의 주목 속에 결혼하게 된다. 최고의 인기 커플이 탄생한 것이다. 영원히 행복할 것만 같던 두 사람의 관계는 헨리의 인기 하락과 그의 폭력성이 폭로되면서 악화되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증오와 차가운 시선 속에서 헨리는 점차 좌절하게 되고 그의 폭력성은 아내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결국 관계 회복을 위한 보트 여행에서 헨리의 난폭한 행동 때문에 안은 죽음을 맞게 된다.
3. 남편에 대한 증오 속에 죽어간 안나는 ‘저주의 노래’를 부르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것은 그들 사이에 태어난 어린 여자아이 아네트에게 특별한 재능을 선사한 것이다. 그것은 빛이 비치면 노래를 하는 능력이었다. 헨리의 사악함은 또다시 발동한다. 자신의 아이를 돈을 벌기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업을 위해 안나와 가까웠던 지휘자와 협력하여 아이의 재주를 파는 세계 일주를 감행하고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아동학대라는 끔찍한 도덕적 범죄가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4. 헨리는 지휘자와 자신의 아내가 특별한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고 지휘자를 살해한다. 또한 비난 때문에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려워진 마지막 공연에서 한몫을 잡기 위해 대규모의 공연을 기획한다. 하지만 아이는 노래하는 대신 ‘아버지의 살인’을 고발한다. 결국 헨리는 감옥에 가고 아이는 혼자 남게 된다. 마지막 장면 아버지와 아네트가 면회실에 만난 장면에서 아이는 부모 모두 용서할 수 없음을 밝힌다. 아버지의 폭력성과 살인 뿐 아니라 자신을 이용하여 돈을 벌었던 일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 또한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자신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비록 불행한 죽음을 맞았지만 아네트는 용서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5. 사랑했고 많은 재능을 지녀 성공했던 단란한 가족이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폭풍우 속에서 산산히 부서져 버린 것이다.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을 분노의 배출구로 이용하고 폭력의 대상으로 바꿔버린 인간의 어리석음이었고, 그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욕망의 실현이었다. 영화 속 비극의 근본적인 동력은 헨리의 폭력성이었다. 자신의 실패를 ‘심연의 고통’이라고 과장하면서도 타인이 겪고 있는 아픔에는 무지한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제멋대로의 감정 표출과 욕망이 바로 문제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6. ‘사랑’은 어떤 행동도 용서받고 허용될 수 있는 무한정의 영역이 아니다. 사랑은 오히려 상대의 감정과 마음을 지속적으로 돌보려는 상대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미약에 중독된 자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편을 파괴하고 도구로 이용하며.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때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라는 보통의 따뜻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다만 하나의 같은 이름으로 인간이 얼마나 추악한 상황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고, 집착을 미화하며, 자신의 입장을 과장하는 것이다. 언론의 자주 보도되는 ‘데이트 폭력’, ‘연애 살인’의 실체적 진실인 것이다.
7. 영화를 보면서 여성들이 ‘나쁜 남자’의 매력에 빠지는 점을 생각해 본다. 여성들은 약간은 폭력적인 성향과 자극적인 행동을 보이지만, 신체적 매력이나 언어적 세련미를 갖춘 남성에게 유혹당하기 쉽다.(물론 여성들은 이러한 경향을 부정한다) 더구나 그가 사회적으로 성공하였다면 매력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청춘은 그런 위험에 빠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매력적인 요소는 위험한 결과로 전환된다. 폭력적인 성향이나 제멋대로의 행동은 상대의 자존심을 파괴하고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무너뜨리기 쉽다.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적이지만, 동시에 성실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성격을 지닌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것은 ‘차가운 불’과 같이 형용모순적인 말에 가깝다. 인간은 충돌하지만 매력적인 성향 모두를 가질 수 없다. 결국 어떤 하나의 측면만을 선택해야 한다. ‘나쁜 남자’, ‘나쁜 여자’라는 말 속에 담겨있는 육체적 매력, 세련된 행동, 사회적 인기 등을 원한다면 그와는 상반되는 성실성, 따뜻함, 공감에 대한 기대는 버려야 한다. 모두를 얻으려는 태도는 자기기만에 가까운 것이다.
8. 까락스 감독은 또 다른 사랑의 실험을 마무리했다. 1980년대 보여주었던 서로 다른 계급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불균형, 나이든 사내의 정부를 사랑하는 소년의 비극적인 심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집착 등 다양한 얼굴을 지닌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까락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랑의 비극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사랑’한다면 포기할 수 있어야 함에도, ‘사랑’한다는 이유로 집착하고, 파괴하고, 욕구하는 인간의 불편한 모습은 그것과 접하는 내내 신선하면서도 불편하다. 당연하다고 믿고 싶은 사랑의 진실을 냉혹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적인 모습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 불편한 것이다.
첫댓글 - ‘사랑’한다면 포기할 수 있어야 함에도, ‘사랑’한다는 이유로 집착하고, 파괴하고, 욕구하는 인간의 불편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