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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우루릉 쾅 수차례 천축을 흔들더니 푸른 번개 빛이 능소화 꽃 사이를 가른다. 그 사이 주황색 능수화는 서늘한 푸른빛으로 바뀌더니 혼절에 빠져들었다. 사람은 소리에 혼절하지만 여름 꽃들은 찰나의 빛을 통해 혼미 속을 파고드는 것 같다. 마른하늘에 쏟아지는 소리와 빛은 날벼락이지만 무겁고 속을 알 수 없는 잿빛 두꺼운 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칠흑 같은 밤에 번개 소리와 빛은 위기를 부추긴다. 소리에 있어서 쏟아지는 장대비는 숨 고를 사이도 없이 폭우로 변신하여 여름밤을 어질러 놓는다. 하긴 여름 폭우는 늘 극단적이지만... 저만치 떨어진 계곡 물소리도 혼미를 부추기려는 지 여태 듣지 못한 굉음을 내고 내달리는 것이 귀청을 난도질하는 것 같다. 요즈음 이와 같은 여름밤의 꿈과 같은 폭우가 끝 칠 사이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요 며칠 폭염과 함께 맑은 날이 있어지더니 다시 장맛비가 다시 퍼붓기 시작한다. 흙은 흙으로만 존재하였을 때 장력이 있어 형체를 구성하지만 물과 어울리게 되면 곤죽이 되어 물처럼 흘러가 버리게 된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산림이다. 초목이 밀도 있게 건강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면 흙과 결합하여 여간해선 변형되지 않는 것이다. 산림이 건강하면 할수록 산 아래에 있는 마을도 공장도 보존되어 마음 놓고 사람들은 문명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산림자원은 이처럼 중요한 일이다. 또한 흙의 변형을 막는 방법으로는 인공 구조물을 설치하여 흙을 가두는 방법이 있고 물이 흙과 섞이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사방댐을 만들어 물을 모으고 수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 바탕으로 산막을 세워 오랜 세월 물 피해를 겪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자꾸 근심 어린 시각으로 바라보며 걱정 지수를 올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보니 나이 탓인가 하는 생각이 짙어진다.
이는 기본기가 점차 사라져 가는 체질적 변화에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깊다. 생각과 행위에 있어 점점 어눌해져 가는 자신을 간혹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는 시간이 많아진다. 본태의 변화는 오랜 세월 나를 지탱해 온 습관과 맥을 있어온 사고력과 행동거지의 질서가 사라지고 뒤죽박죽 되는 현상이다. 적응과 항거 사이에 극복이란 단어를 (직벽 암벽을 타고 오를 때 사용하는 하켄이란 철 확보용 장비를 바위틈에 박아 놓고 그 끝에 달린 동그란 구멍에 카라비너를 밀어 놓은 후 확보를 하거나 자일을 통과시켜 다음 동작을 활용하여 오르다 혹시 추락하여도 안전확보가 된다. 그러한 확보장치를 하고 오르면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것이다.) 하켄처럼 생긴 독심으로 심어 놓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며 얻는 성과가 있지만 본태의 변화 속도는 여름밤에 쏟아지는 번개 빛과 물처럼 거침없이 나를 몰아치는 것이 현실이다.
본태의 변화는 주신 생명의 빛이 세월 따라 바래 가는 이유도 있지만 외적인 돌발적인 근심과 격정의 영향에 의하여 변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좋은 지기와 저녁과 함께 조금 과한 반주를 곁들인 다음날 아침 자리를 털고 일어난 후 머리에 심한 자각통증이 느껴졌다. 마침 집에 오래된 아날로그형 혈압체크기기가 있어 서둘러 체크해 보니 무려 180이 나왔다. 즉시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하자 조금 일찍 출근하겠으니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다. 가서 다시 체크하여도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처방전을 만들어주며 복용하라는 것이다. 당시 공박 사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었다. 다른 사람보다 늦게 본태 고혈압이 생겼다는 것이다. 일주일 복용하며 관찰하다 부작용이 없으며 계속 복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화계통의 문제가 생겨 약을 다시 바꾼 후 지금껏 120 / 72 정도 유지하고 있었는데 혈압에 이상이 온 것이다. 여름철에는 보통 10 -20 정도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470이 나온 것이다. 이를 이상히 여긴 주치의가 요즈음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어왔다. 혈압을 끌어올리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불면증, 스트레스 영향이 크고 다음으로 섭취하는 술, 커피, 아주 짠 음식, 운동소흘 등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긴 요즈음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겼다. 토지분쟁 건으로 법인으로부터 대리인으로 지정되어 업무를 진행하는 중 봉착이 생긴 것이다. 법률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압박을 가하며 몰아붙이자 할 수 없이 이 일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나에게 업무의뢰를 해 온 것이다. 과거의 일도 있고 하여 여러 차례 거부하였으나 현장 실무자의 간곡한 부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4월 중순부터 시작한 업무, 초반에 집중한 일은 소송으로 갈 경우를 대비한 일이었다. 당시 사업 주 측과 협의하여 이끌어낸 점유토지 부분 증여문제에 대한 증인 선별이었다. 지주, 사업주, 토목 공사 시행업자, 토목설계 사무소 등이었다. 토목업자만 협조적이고 토목설계사무소는 두 사람 공동으로 운영하다 서로 갈라서는 바람에 서류가 온전하게 보관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소송을 하면 불리하다는 판단이 서 토지반환으로 급선회하게 된 것이다.
할 수 없이 상대와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가며 최종적으로 5월 6일 최종적인 우리 측 의견을 통지하겠다는 메일을 보낸 후 6일 날 정식으로 문서를 만들어 반환의사를 표기하여 보내 주었다. 그런 후 예산이 반영되어 창고용도 컨테이너를 납품받아 설치하고 창고를 철거하고 경계복원 측량을 한 후 6월 19일부로 반환을 완성하였는데 법원에서 소송 선고일을 지정하여 송달문서가 접수된 것이다. 상대는 5월 6일 통지문을 받기 전 임의적으로 5월 3일 소송을 접수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좋다. 6일 통지문을 보낸 후 8일 즈음 통화를 하면서 반환을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 말과 그 밖에 토지반환 일정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는데 소송에 대하여요 일절 말이 없었다. 소송 접수 후 보통 상대가 문서를 송달받으려면 약 15일에서 20일이 소요된다. 소송이 걸린 것도 모르고 반환일을 진행한 것이다. 이후 경계복원 측량 당시 상대를 초대하여 경계복원 측량을 입회시켰다. 이 당시에도 아무 이야기가 없어 이젠 토지를 찾아 가 뜻하는 일을 성취하라고 덕담까지 했더니 고맙다고 인사한 사람이 소를 취하하지 않아 선고일이 지정되어 법원서류가 송달되어 받아보니 배신감이 느껴져 얼마나 분노했는지 모른다. 문서를 받은 날 7월 12일부터 불면증이 몰려왔다.
여름 폭우처럼 물밀듯이 몰려오는 감정의 풍랑 수위가 나날이 높아져만 갔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모든 것을 원상 복구하고 제대로 법률적으로 상고하여 붙어보자는 것이었다. 이럴 때마다 10년 전 일이 떠올라 더욱더 분노를 부채질하였다. 사업주로부터 증여받기로 하고 문서를 작성하기 위하여 증여문서를 만든 후 재단법인 도장을 받기 위하여 나섰다가 거부하는 바람에 일이 틀어져 결국 지금 고통을 받게 된 것이다. 고심하고 고심한 끝에 상대에게 전자 내용증명을 보냈다. 타협점을 찾자는 의견과 원상 복구하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견으로 보낸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혈압이 상승된 것이다. 다행히도 싸우겠다는 의견을 구하였더니 전화도 받지 않던 사람이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사실 소송 전을 펼치면 우리가 불리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결국 상대는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고 나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라와 주어 해결되었다. 그러나 개운하지 않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점유하는 토지 때문에 토지를 매입하는 날부터 권리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매월 금융비용 등으로 손해가 발생하여 그 비용을 우리에게 받겠다는 심사로 소장 청구취지에 집어 놓은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건물철거와 토지반환은 완성되었지만 손해비용과 소송비용 및 인지대를 받으려고 소 취하를 하지 않은 것이다.
선고일 송달서류로 인하여 그 사실을 눈치채고 급하게 다니며 대책을 세웠다. 답변서를 제출하여 선고기일을 연장하기 위하여 답변서를 작성하고 상고할 법률적 서류도 작성한 후 법원에 제출할 목적으로 전부 작성해 두었다. 그리고 대법원 전자소송 홈페이지에 회원으로 가입해 두고 만반에 준비를 끝낸 후 마지막으로 마석성당, 수동면 성당 교우들과 동내 주민들에게 회람을 돌려 원고 측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진정서를 만들 계획도 세워 두었었다. 그러면서 한쪽으로 합의를 위한 노력도 함께 기울인 것이다. 초반에는 늘 선의를 이기는 것이 악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선의가 악의를 물리치는 것이 사실이다. 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였지만 결과가 좋아져 개운하다. 그가 소송에 요구한 금액은 취소하고 소송비용에 우리 측에 통보한 날부터 몇 개월을 계산하여 지급하는 것으로 하여 합의하였다. 방치할 경우 패소하고 추후 토지 경계선에 세워야 할 구조물 경비까지 반씩 부담하자고 소송을 할 하며 덤벼들 것 같아 싹을 잘라버린 것이다. 합의로 작업일정이 많이 당겨진 것도 큰 수확이다. 이 문제로 남은 공정을 할 수 없어 내가 묶여 있었던 것도 개인적으로 어려움이었다.
합의 후 현장으로 가 서류를 만들어 준 후 상정시켜 놓고 차가 많이 막히는 금요일이라 서둘러 내려온 산막, 여름 꽃으로 참 아름답다. 벌개미취 꽃이 산막에 피기 시작하였다. 산막에 벌개미취 꽃은 6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여 10월 초까지 이어지는 꽃이다. 한국 고유 특산 식물로서 깊은 산에서 자라던 들국화 종류였지만 원예종으로 개량되어 도시에서도 잘 자라는 꽃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꽃이다. 벌개미취라는 뜻은 벌판에 피는 개미취라는 뜻이다. 결국 취나물에 속하여 식용이나 약용으로 사용된다. 고려 쑥부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양지바른 곳이면 잘 자란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연보라 빛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꽃이다. 이 꽃이 절정에 다다르기 시작하면 흰색 쑥부쟁이가 피기 시작하여 산막에 늦가을 정취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원래 10여 개 속을 심었었는데 연꽃처럼 뿌리를 연결해 가며 잘 퍼지는 꽃이며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흙을 찾아 앞으로 나가는 성질이 강한 편이다. 봄에 싹이 돋고 자라기 시작할 때 이식을 해주지 않으면 뒷 공간이 자꾸 생기게 되어 보기 싫어 이식해 주면 잘 자란다.
여름 꽃으로 유명세를 갖고 있는 원추리 꽃도 꽃자리를 만들며 영역을 넓혀 나가는 중이다. 장맛비와 폭우에도 끄덕 없이 버티는 유일한 여름 꽃이다. 투박하면서도 강인함과 안정적인 용모가 사람의 시선을 이끈다. 덕유 평전에 참 많이 피던 꽃인데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이어지는지 궁금하다. 덕유산만큼 긴 산도 드물다. 설악과 지리산의 종주도 길지만 덕유산도 길어 북덕유와 남덕유로 나누어 이름을 갖고 있는 산이다. 전북 무주군에 위치한 구천동 탐방지원센터에서 경남 함양군에 위치한 영각 탐방지원센터까지 덕유산을 종주할 수 있는 탐방코스 (편도 26.9km, 14시간) 덕유산을 상징하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과 한국의 특산식물인 구상나무와 아고산대 지역에서 서식하는 다양한 야생화를 볼 수 있는 덕유산 종주코스는 구천동 탐방지원센터에서 향적봉~중봉~동엽령~무룡산~남덕유산~탐방 지원센터로 이어지는 코스로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 여름에는 원추리군락과 겨울에는 설경이 아름답다. 당일 종주보다는 향적봉 대피소나 삿갓재 대피소를 사전에 예약하여 여유 있는 산행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 덕유산은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75년 1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행정구역 상으로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 등 영호남을 아우르는 4개 군에 걸쳐 있으며, 총 229.43㎢의 면적이 공원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덕유산국립공원은 동쪽의 가야산, 서쪽의 내장산, 남쪽의 지리산, 북쪽의 계룡산과 속리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덕유산은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향적봉 1,614m)으로 아고산대 생태계의 보전가치 또한 높으며, 북쪽으로 흘러가는 금강과 동쪽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수원지다.
참 나리꽃을 아름답게 보고 느낀 곳은 북한산 문수사 산신각으로 가는 샘 바로 위에서였다. 아주 오래전이다. 원래계획은 인수봉 암벽등반이었으나 비가 뿌려 포기한 후 북한산 종주산행을 선택한 것이다. 인수산장을 출발하여 백운 산장을 오른 후 다시 위문을 통과하고 만경대를 트레파스 한 후 노적봉 초입에서 밑으로 내려섰다. 다시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병풍암이 나오고 그 끝에 용암문이 있다. 용암문은 도선사 뒤로 오르는 길이다, 도선사에서 오르다 김궁상바위를 지나 계곡을 만난다 갈라지는 길에 작은 폭포 우측으로 오르면 바로 백운 산장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그리고 작은 폭포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바로 용암문이 나온다, 용암문 지나 성곽을 곁에 두고 0.4km 더 걸어 나가면 옛 절터가 나오고 질 좋은 샘이 있고 승병들이 거처하던 큰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은 오래전 엠포로산악회에서 자비를 들여 대피소를 건축해 놓아 여름철 내내 요긴하게 사용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목을 축인 후 작은 언덕을 넘어 나가면 전망이 좋은 동장대가 나타나 북한산 동남서부권까지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게 된다. 이어서 나오는 대동문은 아카데미하우스나 백련사, 소귀천을 통해 오르는 코스다. 다시 성곽길에 바짝 붙어 걸으면 칼바위부터 서울 도심권이 펼쳐지고 보국문과 대성문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은 정릉방향에서 올라오는 길이며 이어서 만나는 문이 바로 대남문이다. 대남문은 세검정에서 올라는 오는 등산로가 있고 대남문을 중심으로 보현봉과 문수봉이 우뚝 솓아 있어도 태평로에서도 볼 수 있는 봉이다. 이곳에 서면 늦은 오후시간 서해의 낙조를 볼 수 있어 즐겨 찾던 곳이다. 특히 샘물이 좋아 편안하게 주변에 앉아 있다. 노을 붉게 물든 구름 경치를 본 후 세검정으로 하산하던 곳이었다. 이 샘 바로 옆에 참나리꽃 단지가 있어 꽃 사진을 남기곤 했었다. 이곳에는 참나라 이외에도 노루귀를 처음 보고 부채꽃도 발견한 곳이며 참나리 아름다움에 빠져 야생화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도 부여된다.
참나리 꽃말은 순결 고귀, 깨끗한 마음이다. 깨끗한 마음이면 깨끗한 정신이 저절로 연상되기도 하는데 이 꽃만 보면 생각하지 못한 우연한 일이 반복적으로 생긴 해프닝(happening) 떠오른다. 어느 날 노크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다시 똑똑똑 처음엔 착각인 줄 알고 응대를 하지 않았더니 계속 이어진다. 우선 누구세요 하고 일반적인 응대의 말을 던져 놓았다. 그래도 계속 이어진다. 목소리를 몇 단계 올렸더니 "저예요" 하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외의 답이었다. 목적이 있는 사람은 그 목적을 분명하게 말을 한다. 소독하러 왔습니다. 또는 도시깨스 검침입니다. 구역장입니다라고 말을 하는데 저라니 그렇다면 아랫사람인 친인척의 내방인가? 고개가 갸우뚱하였다.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자 어느 여인이 집으로 들어설 기세의 동작을 취하더니 멈칫하는 것이 아닌가! 반사적으로 제지한 후 누구냐고 묻고 가만히 표정을 살폈더니 처음 보는 여자였다. 그래도 요즈음 여자 입에서 저예요 라는 소리를 여간해서 듣기 어려운 귀한 목소리라 이외 성을 느끼며 다시 쳐다보자 옷매무새는 곱고 말솜씨도 안정되었으며 맑게 느껴졌다. 여러 차례 허리를 굽혀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후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하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계속 이어진 손잡이를 잡아당기는 인기척이 느껴져 다시 문을 열자 그대로 서 있었다. 절망하는 모습과 자책하는 모습이 겹쳐진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웠다. 그렇게 길게 이어진 시간, 결국 밖으로 나와 경비반장에게 인계를 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 이웃주민을 통해 정보를 얻게 되어 집으로 안내할 수 있었다. 605호였다. 지금도 종종 그런 일이 재현되고 있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참 신중하고 가만가만하다. 문을 열고 아니라 하기 전까지 이어진다. 아니라 확인해 준 후에도 여러 차례 반복되다 밖으로 나오면 어쩔 줄 모르며 허리를 숙여 절을 하고 자신의 손을 감자 주먹을 만들어 뒤통수를 쥐어박는다. 그 모습이 너무 가련하여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실내 보턴을 6으로 눌러 내려 보내면 이어서 조용해지는 것이다. 한두 번은 해프닝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의 외출이 있는 날이면 반복된다. 고장 난 정신줄로 인하여 생기는 현상이 인간으로서 슬픔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세월은 그렇게 정신의 해면체를 갉아먹는 것이다. 여인도 어떤 연유에서 그 구분성을 잃은 까닭에 겪는 혼돈이다. 마음이 아프면 정신도 덩달아 아프기 마련이다. 삶이라는 것은 아프면서 성장하며 살아가다 허덕이고 지치면 아프면서 죽어가는 모양이다. 간혹 외출하고 돌아오는지 그때 엘리베이터를 같이 탈 적도 있는 날이 있다. 목례로 인사를 하는 모습도 받을 적이 있는데 나 역시 목례로 답을 하며 지금 같은 맑은 정신과 마음이 이어지기를 마음기도를 드리며 참 나리꽃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의식은 흘리는 것이 아니라 매듭을 짓는 것이 좋은 일인데... 그것은 나를 포함하여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살아오면서 어떤 지배를 당하며 살아왔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조사를 통하여 억압적이 삶의 고통이 일으키는 분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자신의 자아의식에 신선한 자유를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진 것이다.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제일 먼저 느낌을 받는 것이 자유로움이다. 그리고 그 행복은 지속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연에 집중할 수 있고 자연은 그렇게 되도록 살피고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분심을 허용하지 않는 자연의 세계 속에는 인간의 근본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금꿩 다리는 쌍떡잎식물 미나리 아재비목 미나리 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주로 산지에서 자라고 우리나라에서는 강원, 경기지방에 분포해 있다. 꽃은 연한 자주색으로 7월에서 8월에 걸쳐 핀다. 꽃말은 키다리 인형이라 한다. 키가 꿩의다리를 닮아 껑충하고 꽃잎 안에 금실이 가득하게 달려 있어 금꿩다리라는 귀한 이름을 부여받은 식물이다. 동그란 꽃 주머니가 떠지는 소리를 보면서 듣게 된다. 소리로 재현하고 싶어.... 의성어와 의태어를 끌어 모아 살피다 주저앉았다. 풍선 같은 꽃주머니가 두려움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귀를 막아야 하는 펑 소리가 연상되어 그렇게 된 것이다. 함부로 열 수 없는 열매 같기도 하고 금실이 또한 두렵기 때문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꽃주머니 보다도 금실이 큰 것은 사실이니 요란을 떨 것은 분명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혹 자신의 존재성을 착각하여 유난을 떠는 경우가 참 많은 세상이고 그것을 따르는 이들도 많이 있는 것 또 한 사실이기에 두려운 것이다. 먼 곳까지 보여주려 하는 키다리 인형꽃의 속셈을 이미 알았으니 시비는 멈추고, 관조의 실상으로 즐기고 마음에 놓아 두어야겠다. 미우면서도 사랑하는 것이 서로의 마음이다. 다행스럽다. 7월이 가기 전에 이 노래를 기억할 수 있어서.... 함께 듣기를 청하며 몇자 적어 놓는다. 이만 총총~~ 모든 것은 다음으로 미루겠소, 여름 건강 잘 챙기시오. 늘 마음에 두고 사는 것이 행복하오, 이렇게 7월을 마감하겠소. 작은 바람에 휘청이다. 바로 제 자리로 돌아서는 꽃이 미래를 가늠하게 해 주는 것 같다. 실바람이 마음을 적신 후 여름 습기를 안고 저 앞 능선으로 사라졌다. 어느새 가을 꽃 빛이 모이기 시작하는 것이 눈치로 알려 온다. 선율이 몰려온다 아름다운 음률과 함께~~ 참 하모니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