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날 신부인 나는 예식시간이 1시 반이었지만 아침 일찍 예식장에 가서 신부화장하고 단장하느라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신부화장이 끝나고 아직 가운을 입고 있는 상태였는데 신랑친구들이 거침없이 드레스 룸까지 들어와서 축하한다고 악수 청하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신랑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친구들도 신랑이 왜 안 오냐고 물어보고 안 오면 서로 내 옆자리에 서겠노라고 농담을 하면서 웃고 그랬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점 걱정이 됐습니다.
드레스를 입고 나니 예식 시작 10여 분밖에 안 남았습니다. 신랑이 그때까지도 오지 않으니 이거 내가 잘못한 게 있나? 갑자기 마음이 변했나? 그럼 누구를 대타로 세울까? 하며 조금은 여유로운 생각까지 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졌습니다.
전날 밤에는 5월인데도 장맛비처럼 억수로 비가 내리다가 이렇게 하늘이 맑고 화창하게 개어 날씨마저 우리 결혼식을 축복하는 듯하는데 정작 신랑이 오지 않으니 시댁 식구들 또한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핸드폰이 있으니 연락이 가능하지만 그 시절은 핸드폰은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연락할 방법도 없고 최소 30분 전에는 식장에 와서 인사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정작 신랑이 안 오고 있으니 다들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겨우 시간이 임박해서야 신랑이 도착해서 결혼식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나중에 신랑한테 왜 늦었냐고 물어보았더니 신랑은 전날 김포집에서 미리 올라와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놀다가 늦게 신길동에 사는 큰누나 집으로 들어가서 잠을 잤다고 합니다.
한참 곤하게 자다가 눈을 뜨니 아뿔싸!! 해가 중천에 떠있어 얼른 일어나 부랴부랴 세수만 간단히 하고 옷 챙겨 입고 뛰어 나왔답니다. 누나는 누나대로 자기가 일어나서 오겠지 하고 미리 자기네 식구들끼리 먼저 집을 나서 결혼식장으로 온 것입니다. 알아서 할 나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깨워서 함께 와야 했는데 자고 있는 신랑을 그냥 두고 나왔다니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신랑은 대충 준비하고 뛰어나와 간신히 택시를 잡았는데 그때 시간이 낮 12시였습니다. 일요일인데다 결혼시즌인 5월이라 길이 무척 많이 막혀 마음이 급했답니다.
"아저씨! 신설동에 있는 신궁전예식장 1시 30분까지 빨리, 최대한 빨리 가주세요!"
시간은 자꾸 가는데 길은 막혀있고 답답하니 계속 빨리 가주기를 재촉했답니다.
"아저씨, 속도 좀 더 내요!"
그러자 기사아저씨께서 여유롭게 한 말.
"예식장 조금 늦어도 됩니다. 한 30분 정도 식을 하니깐 그 안에는 충분히 도착합니다." "아 그래요? 그런데 제가 신랑인데 어쩌죠?" "뭐라구요? 아니 그럼 진작 말씀을 하셔야지요."
신랑 나이가 그때 25살, 신부가 24살인데 둘 다 동안인지라 아마도 기사아저씨가 신랑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상등을 켜고 간신히 정말 간신히 식이 시작하기 5분 전에 도착하여 신랑은 결혼식에 무사히 동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계속 잠을 잤다면 또 길이 많이 밀려서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이번에는 비행기가….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친구들과의 피로연 때문에 늦은 시간에 떠나는 것으로 예약을 한터라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마도 8시 30분 비행기였던 것 같은데 1시간 전에 도착해서 친구들의 배웅을 받고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비행기 안에서는 조용한 노래가 흐르고 있었는데 그때 흘러나오던 노래가 바로 '웰컴 투 마이 월드'(welcome to my world)입니다. 그 의미 있는 날에 들었다는 우연으로 난 이 노래를 참 좋아합니다.
승무원들이 음료수를 갖다 줍니다. 기내 손님은 거의 모두 신혼부부들입니다. 이륙 시간은 다가오는데 또다시 음료수를 돌리더니 책을 보라고 갖다 주고 서비스가 정말 만점입니다. 속으로 '역시 서비스가 괜찮구만' 하고 생각했는데 이륙시간 20분이 지나가도록 이륙은 안 하고 또 다시 애꿎은 음료수만 갖다 줍니다.
'에구 물로 배 채워주나? '
또 다시 20여분이나 흐르고 이제나 저제나 비행기가 이륙하길 기다리는데 드디어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기장입니다. 신혼부부 여러분! 제주도의 기상이 좋지 않아 부득이 오늘 비행은 내일로 미뤄야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게 뭔 소리? 어쩐지 물로 배를 채워주는 이유가 있었다고 하면서 신혼부부들이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기상조건이 안 좋아 비행기가 안 가겠다는데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 신혼의 단꿈을 꾸며 행복한 나래를 펴다가 갑작스런 결항에 비행기에서 내리니 비행사측에서 신혼부부 전체를 집합시킵니다.
이미 우리 앞에 앞에 떠난 비행기는 제주상공에서 40여 분간 착륙을 시도하다 다시 회항하고, 우리 앞 비행기는 중간에 되돌려 회항하고, 우리 비행기는 아예 뜨지도 못했습니다. 그날 3대 비행기에 탑승했던 신혼 부부가 200쌍이 훨씬 넘는 답니다.
어떤 신혼부부는 분명히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는데 한참 자고 일어나니 도로 서울이라고 웃으면서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신혼부부는 편도 요금에 왕복했으니 덕을 봤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신혼부부는 어디서 자야하는지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각양각색 신혼부부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공항측에선 가까운 호텔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공항으로 나오라고 하면서 다음 날은 신혼부부를 위한 특별기를 제공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혹시라도 잠잘 곳이 없을까봐 부지런히 공항을 빠져나와 어쩔 수 없이 공항 근처 깨끗한 호텔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그날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신혼부부 때문에 김포공항 근처 호텔이나 여관은 그야말로 만원이었습니다. 방을 구하지 못해 집으로 돌아가는 신혼부부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우리의 결혼 첫날밤은 서울하늘 아래에서 보내게 되었답니다.
다음날 공항에서 정말 특별기 2대가 제공되었고 노란 유채꽃으로 뒤덮여 있는 정말 아름다운 섬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1984년 5월 13일에 제주도로 신혼여행가려 했던 신혼부부들 중 같은 추억이 있는 분이 이 글을 봤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당시 함께 찍은 단체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그분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
첫댓글 어찌보면 이사빛님에게서는 이 때가 가장 아름다웠던 한 때가 아니었을까요?
늘 그날이 생각이 나죠....어제 일어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한 날인데....웨딩드레스가 맞는게 없어서 고치고 그랬는데....그때 내 허리가 22반이었거든요..상상도 안갑니다...ㅋㅋ 내 허리 돌려주라~~제발....흑...
어머 정말? 싸빛님 허리 돌리도.......
거짓말 아니어유~!! 3년전만 해도 허리 25이었는데....다음에 우리가게에 오면 내 바지 보여줄께...ㅋㅋ 안버리고 놔두고 있거든요.. 이번에 옷장정리하면서 안버리고 놔두니깐..식구들이 웃어요!!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저보다 딱10 일 늦게 결혼하셨군여??ㅎㅎ
감초님..정말요? 5월10일 이세요? 같은 해? ...하하..그럼 친구네요!!
같은 해 5월 3일입니다..저두 당일 오전까지 출근해서 근무하고 이발소들러서 오후에 장미예식장에 겨우 참석하구..ㅎㅎ 비참했답니다..
아...5월 3일...ㅎㅎ 장미예식장? 청량리 맞죠? 예전 한림대 동산성심병원 맞은편....거기인가요? ㅎㅎ
답십리 명문예식장 맞은편이죠?? ㅎㅎ
아...그렇구나..이름이 낯이 익었거든요...명문예식장도 잘알지요....신답역 맞은편에...^^
ㅎㅎ여기서도 새로운 인연이...우리나라 사람들 모여앉아 이야기 하다보면 다 사돈에 팔촌이라도 된다고하는말이 실감나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