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및 외식업계, 최고· 최초를 찾아라!
신년을 맞아 월간 호텔&레스토랑은 호텔 업계와 외식업계의 최고, 최초 기록, 이색 이력을 가진 호텔맨, 외식인들을 한 자리에 모아봤다. 우리나라 첫 호텔인 대불호텔서부터, 첫 총지배인, 현존하는 여성 총지배인 등 호텔업계의 진기록 등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호텔업계의 지난 이야기와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외식산업 역시 단시간에 시장의 크기를 쑥쑥 늘려왔다.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이 국내 진출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으나 업체수도 크게 늘고 많이 대중화됐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패밀리레스토랑과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벅스 매장이 국내에 있을 만큼 우리 나라 외식산업이 성장했다. 그간의 최고 최초 기록들과 외식업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패밀리레스토랑
패밀리 레스토랑 베니건스 도곡점은 연건평 6백30평, 매장면적 5백10평, 6백4석의 규모로 국내 최대 규모이며 동양의 레스토랑 중 가장 크다. 베니건스 도곡점은 현재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또한 지난 상반기 리뉴얼 공사를 통해 고급스러운 모습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를 했다.
명동의 스타벅스 역시 전세계 5천8백여 개의 스타벅스 매장 가운데 가장 큰 매장으로 기록돼 있다. 지상 5층으로 2백 15개의 좌석을 갖추고 있는 스타벅스 명동점의 하루 방문 고객 수는 약 2천명 정도.
국내 최초 패밀리 레스토랑
국내 패밀리 레스토랑의 역사는 지난 1992년 소개된 T.G.I.Friday's가 시작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겠지만 그 보다 훨씬 이전이다.
국내 패밀리 레스토랑의 시초는 코코스. 지난 1988년 3월 강남구 신사동에 1호점을 오픈했으며 현재로 전국 30개 매장을 운영중이다.
현재 부도, 계약 만료 등 끊임없는 설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현존하는 최장수 패밀리 레스토랑임에는 변함이 없다.
국내 최초, 최다 패스트푸드
국내 최초 패스트푸드는 단연 롯데리아.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1979년 대한민국 패스트푸드의 첫 역사를 쓴 롯데리아는 국내 토종 브랜드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패스트 푸드 1위인 맥도날드를 제치고 당당하게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으니 실로 그 위상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03년 8백96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이들의 2005년 목표인 1000호점 돌파는 무난하게 달성하지 않을까 싶다. 한편 1979년 롯데리아가 탄생한 당시 국내 최초 햄버거라고 할 수 있는 ‘롯데리아 햄버거’의 가격은 4백 50원이었다고.
국내 최초 패스트푸드 브랜드이다 보니 롯데리아는 이외에도 여러가지 최초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980년 5월 중앙일보에 최초로 신문광고를 게재했으며, 1982년 10월에는 최초로 TV광고 필름을 제작, 83년에는 TV광고를 실시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10월 RvA HAPPC(식품위해요소 분석 및 중점 관리기준), ISO9001(품질경영시스템)ISO을 획득하면서 지난 6월 획득한 ISO 14001(환경경영시스템)을 포함, 국내 외식업계 최초로 품질, 환경, 식품, 안전 부문의 주요 인증을 모두 획득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로 공산국가 진출
현재 1백21개국에 약 2만9천여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다국적 패스트푸드 맥도날드는 세계 최초로 공산국가에 진출한 햄버거 레스토랑이다. 지난 1982년 유고슬라비아와의 계약 체결로 시작된 맥도날드는 이후 1990년 모스크바, 1992년 베이징(세계 최대 규모의 매장)에 연달아 매장을 오픈했다.
국내 FR 업계, 최단기 최대 매장 오픈 기록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는 오랫동안 패밀리 레스토랑 업계의 선두주자였던 T.G.I.Friday’s를 따돌리고 공격적인 매장 오픈으로 약 4년만에 30개의 점포를 출점하며 매장 수 업계 1위를 탈환했다.
특히 지난 2003년 2월 11일 24호점 오픈과 함께 지난 12월 2일 33호점 여의도점 오픈까지 올 한 해 동안만 총 10개의 신규매장을 오픈해 패밀리 레스토랑 부분 최단기 매장 오픈 기록을 세웠다. 한 달에 하나씩 점포를 오픈한 것이나 마찬가지. 서울특별시가 총 25개의 구로 나눠져 있으니 나머지 8개 점포를 지방매장으로 포함시킨다 해도 서울시의 각 구마다 하나씩 아웃백 스테이크 하나씩 자리잡고 있는 셈.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는 오는 2005년까지 약 70개 점포를 출점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 매출 최고기록은 얼마일까?
국내 외식업체 중 하루 매출이 가장 높았던 패밀리레스토랑으로 기록된 곳은 어디일까? 지난 2001년 12월 25일 베니건스 도곡점에서 올린 5천8백 만원이 현재까지는 최고 기록이다. 객단가 2만원에 매장 방문 고객수는 약 3천명으로 추정됐다.
피자헛, 국내 최초 배달 보온 시스템 도입
피자헛은 지난 2002년 9월 국내 최초로 배달 보온 시스템인 ‘핫박스 시스템’을 도입했다.
핫박스 시스템이란 피자를 배달로 주문했을 경우, 피자의 맛있는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피자헛에서 특수 개발한 보온 시스템. 1588-5588이라는 통합 배달 주문 서비스를 피자업계 최초로 시행한 데 이어 서비스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것.
외식업계 최초 논문 현상 공모 실시
지난 2000년부터 놀부는 외식업을 이끌 인재 배출의 산실로 ‘놀부 외식논문현상공모’를 실시, 학계와 업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 5회까지 논문공모를 실시했다.
논문 공모의 모체는 지난 1989년 설립된 ‘놀부 장학회’. 놀부 가족의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면서 시작된 이 작은 시도가 사회에 아름다운 일을 실천하는 장학사업으로 발전했다.
특히 올 해에는 아모제도 외식 논문 현상 공모를 실시, 점점 외식업계의 학문적 수준이 높아질 수 있는 발판이 넓어지고 있어 향후 한국 외식산업의 발전이 더욱 더 기대된다.
패밀리 레스토랑 최장수 인기 메뉴는 ?
패밀리 레스토랑 최고의 히트메뉴는 케이준 프라이드 치킨 샐러드. 이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92년 T.G.I.Friday’s가 양재 1호점을 오픈하며 국내에 첫선을 보인 케이준 프라이드 치킨 샐러드는 T.G.I.Friday’s에서 2002년 한 해 동안만 약 54만 7천개가 판매되었으며 출시된 이후 지금까지 총 5백 20만개 이상 판매되었다.
출시 이후 11년 동안 최장수 해 오며 탑 셀링 메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 케이준 치킨 샐러드의 인기 비결은 매콤한 케이준 양념으로 튀긴 닭 안심, 다양한 야채, 따끈따끈한 드레싱의 조화. 앞으로도 케이준 프라이드 치킨 샐러드의 인기 행진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참고로 200년 전 미국 뉴 올리언스 지방에서 시작돼 미국 남부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 비법인 케이준 쿠킹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레스토랑은 파파이스. 이는 파파이스가 루이지애나주 뉴 올리언스에서 탄생한 데 연유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케이준 쿠킹’요리법은 미국 뿐 아니라 현재 국내 모든 외식업계가 도입해 적용하고 있는 요리법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호텔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가스에 위치한 MGM 그랜드 호텔 & 카지노는 그 면적이 43.3ha에 달한다. 총 4개의 건물에 30층짜리 타워를 가지고 있다.
객실수는 5천 5백 개. 이 외에도 1만5천2백석의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13.3ha의 테마파크를 자랑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
일본 아와주에 있는 호시료칸 호텔은 세계에서 수명이 가장 긴 호텔. 서기 717년에 세워졌다. 당시 ‘가료호시’란 사람이 이 지방의 온천수가 몸에 좋고 원기회복에 뛰어나다 것에 착안. 여관을 세운 것이 지금까지의 호텔로 남아있는 것.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으며 총 1백개의 객실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텔
아랍 에미리트 연방 두바이의 돛모양 호텔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텔로 기록돼 있다.
버지 알 아랍 또는 아라비안 타워라고도 불리는 이 호텔은 지상에서부터 안테나 끝까지의 높이가 무려 321m나 된다고. 인공섬에 건립된 아라비안 타워는 2백2개의 객실과 총 111.480m²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 이 호텔을 건립하는데 든 인력도 엄청나다. 약 3천5백명의 설계사, 공학자, 인부가 동원됐다는 기록이다.
한국최초의 소믈리에
교사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소유한 국내 최초 소믈리에 서한정씨는 호텔 바텐더로 시작해 와인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지난 1976년부터 소믈리에 생활을 시작했다. 현재 한국 소믈리에 협회 명예 회장이기도 한 서한정씨는 지난 8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농업공로 훈장인 메리트 아그리콜(Merite Agricole)을 수상하기도 했다.
10년 이상의 경력과 특별한 공로를 가진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이 훈장은 1883년 제정된 이래 아시아에서는 서한정씨가 두 번째 수상자일만큼 특별한 훈장.
국내 최초 호텔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은 19세기 말 서구문물이 유입되면서 1888년 인천에 세워진 대불호텔이다. 또한 1902년에 세워진 서울 정동의 손탁호텔은 처음으로 프랑스 요리를 제공한 최초의 근대적 호텔로 기록되고 있다.
이어 철도가 개통됨에 따라 1912년에 세워진 부산철도호텔은 국내 최초의 철도호텔로 이후 신의주 철도호텔 등 역사 주변 호텔들이 들어서게 된다.
1914년에 세워진 조선호텔은 최초로 회의 장소로 사용된 호텔로 알려지고 있다. 1936의 반도호텔은 최초의 상용호텔로 이 시기에는 우리 국민의 여행이 제한되어 일본인 등의 외국인을 위한 시설이었다.
1950년대에는 민영호텔들이 등장하기 시작해 1952년의 대원호텔, 1955년의 지금의 소피텔 앰버서더 호텔의 전신인 금수장 호텔, 1959년에는 M.O.T가 서울의 반도와 조선, 지방의 8개 등 10개 호텔을 직영하기도 했다.
또한 1966년 12월에는 순수민간자본호텔로는 최초로 지금의 세종호텔인 세종관이 52객실 규모로 지금의 자리에 개관하기도 했다. 1970년에는 조선호텔이 국내 최초로 자본과 경영을 분리하는 현대적인 경영 시스템을 도입했다.
국내 객실최다, 최 고층 호텔 ‘롯데호텔 서울’
서울 중구 소공동 1번지에 위치한 ‘롯테호텔 서울’은 1천4백86개로 국내 최대 객실을 보유하고있다. 특히 롯데호텔 서울은 여 타 호텔들의 객실과 비교해 두 배가 훨씬 넘는 격차를 보였다.
또한 15개의 레스토랑과 바를 비롯해 8개국 동시통역이 가능한 국제회의장, 15개의 연회장, 면세점 등 다양한 부대 시설을 자랑한다.
이 밖에도 지하 6층 지상 34층으로 국내 호텔들과 높이 싸움에서도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메리어트 호텔과 함께 최고층임을 자부한다.
국내 호텔에 가장 오래 투숙한 고객-그랜드 힐튼 오이다씨
국내 하디스 아시아 본부장인 미국인 오이다씨는 88년 그랜드 힐튼 레지던스 개관 이후 올해 7월 홍콩으로 가기 전까지 한번도 옮기지 않고 그랜드 힐튼에 머물렀다고 한다. 대략 15년 정도를 머무른 이 미국인은 두 자녀의 통학과 안전문제, 휘트니스 센터 이용 등의 편의성 때문에 이 호텔을 이용했다고, 가장 싼 객실의 한달 이용료가 세금, 봉사료 제외하고 6백만원선이라고 하니 단순 계산만으로 한다면 그동안 지불한 객실료만 해도 10억원을 훨씬 상회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내 1호 총지배인
지난 1987년 12월 1일 국내 최초로 총 지배인 자격증을 획득한 오문환 전 경주대 교수.
당시 총 지배인 자격증을 얻기 위해서는 1급 지배인 자격증으로 소지자 중 경력 5년이상 이거나 특급호텔의 임원으로 활동하고 박사학위 과정 수료자에 한해 시험자격이 주어졌다
1967년에 호텔 종사원이란 명칭이 처음 생긴 이후 정확히 3년이 지나서야 지배인이란 이름이 등장했던 시기에 자격 구분상에 있어 1급, 2급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
오 교수에 따르면 “‘86 아시아 게임’과 ‘88 올림픽대회’를 계기로 국내 입국 관광객의 수요가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호텔 규모의 성장은 호텔지배인 자격증의 필요성을 더욱 가중 시켰다”며 “당시 교통부 관할아래 호텔지배인 자격증이 발급 됐다”고 설명한다.
총 지배인 자격을 획득했을 당시 오 교수는 경주 코오롱호텔에서 전무이사 겸 총지배인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자격요건이 부합됨에 때라 무난히 합격 했다고 전한다. 한편 오 교수는 지난 1962년 당시 관광공사가 운영하던 워커힐호텔의 하우스 지배인으로 호텔리어의 삶을 시작해 67년 YMCA호텔 지배인겸 호텔학교 책임자와 74년 서울 로얄호텔 총지배인, 79년 경주 코오롱호텔 전무이사 겸 총지배인, 95년 경주대학교 관광학부장까지 약 40년 간을 호텔업계에 몸담아 왔다.
국내 현존하는 여성 총지배인 1호
뉴스타 호텔은 지난 2000년 3월 레스토랑에서 8년간 근무한 정 씨를 총지배인으로 정식 임명했다.
효성여대에서 회화과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양품점을 운영하던 그녀는 우연한 계기에 스위스 용푸라우의 한 호텔에서 호텔 회장에 의해 전격적인 발탁으로 호텔리어의 삶이 시작된다.
지난 1993년 뉴스타 호텔의 레스토랑 지배인으로 입사했던 정 총지배인은 당시 호텔내 거피숍은 건달들이 주로 들락거려 잦은 다툼과 소란으로 큰 골칫거리를 앓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총 지배인으로 부임한 2003년 이후 ‘국내 최초의 유럽풍 호텔을 만든다’는 기업이념으로 호텔 이미지 개선과 함께 단계적인 고객관리 계획을 단행한다.
그의 강인한 업무 추진력과 카리스마에 지역 건달들도 마침내 호텔을 떠나고 차츰 가족단위 고객이 늘어남에 따라 그의 능력은 다시 한번 인정 받게 됐다.
연속 경품 당첨, 홈씨어터에 뉴비틀까지
2003년 1월 3일 10시 호텔 아미가에서 여러 사람들의 탄성이 흘러넘쳤다.
고객 송년 사은 행사 추첨을 하는 도중 뜻밖의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1등 당첨의 순간. 사업가 김 모(53)씨가 3천 8백만원 상당의 폭스바겐 뉴비틀의 주인공이 된 것.
그는 지난 월드컵 기간동안 실시했던 1천 6백만원 상당의 PDP TV 포함 홈씨어터 세트의 주인공이기도 해 주위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추첨은 강남경찰서 서장과 행사 협력업체 외환카드, 진로발렌타인, 고진모터스사 관계자는 물론 고객들과 호텔측 직원에 의해 진행됐으므로 거짓 추첨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관계자 설명이다.
김 모씨는 홈씨어터 세트와 폭스바겐 뉴비틀를 받게돼 총 5천 4백만원 상당의 경품을 아미가로부터 받게 됐다. 사업가인 그는 당첨 사실에 크게 기뻐하며 호텔 아미가가 뉴욕 검사 정범진 검사와 진행한 지난 연말 진행한 불우이웃돕기 행사에 1백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국내최초의 조리명장
한춘섭씨가 요리를 직업으로 삼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0여년 전인 1970년대였다고 한다. 요리 입문한지 올해로 34년째를 맞이하는 한 씨는 요리를 맨 처음 시작할 당시 서양식으로 시작하였으나 사실 영역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국내에 단 두 명뿐인 조리명장 가운데 한명이었기 때문.
지난 1999년 서울 서초구 방배역 인근에 ‘한국국제요리아카데미’라는 요리학원을 개원하기도 한 그는 현재 호텔 캐피탈에서 조리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과거 음식이 배를 불리는 수단에 머물렀다면 현재는 일종의 문화산업이자 관광산업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전하는 한 원장은 우리나라 음식을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연소 조리기능장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초등학교 졸업 후 고향인 경남 합천을 떠나 부산의 냉면집과 중국음식점을 전전하며 조리사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말하는 송청락 호텔롯데월드 조리사. 그는 경희대학 조리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군 복무시절 공군참모총장공관 취사병과 공군회관 조리사 등으로 복무하면서 방송통신대학 과정까지 마치는 근성을 보였다.
송 씨는 호텔에서 7년 동안 일본요리만 고집한 이유에 대해 “현대인들은 건강을 위해 육식은 피하고 생선과 채소류를 선호해 일식조리사의 전망이 매우 밝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요리 또한 개인의 건강 등을 고려하고 식품과학을 응용하는 등 식이요법 수준까지 발전할 것이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가장 비싼 객실
국내에서 1일 숙박료가 가장 비싼 객실은 그랜드 쉐라톤 워커힐 호텔의 애스톤 하우스다. 하루 숙박에 객실료가 1천 3백만원으로 조사됐다. 애스톤 하우스는 또한 국내 유명 연예인들이 자주 묵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애스톤하우스는 VIP Mansion(1988년 건축)을 2000년 9월부터 12월까지 전면 개보수공사를 하여 새로운 컨셉과 정책으로 운영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인테리어 전문회사인 Wilson & Associates가 디자인했으며 1천1백63평의 넓은 대지 위에 4백30평 규모로 지어졌다. 넓게 트인 가든과 한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이 유명하다. 건물 양쪽에 첨탑과 테라코타 타일로 이루어진 지붕, 옐로우톤의 외벽 등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스카이락 햄버그 패티와 관련된 이색 기록
최고나 최초를 뛰어넘을 만한 이색적인 기록도 있다. 지난 1994년 오픈한 스카이락은 1호점 오픈 이래 판매된 햄버그 스테이크의 개수가 4백98만개. 이를 길이로 이으면 747km(4백98만개×15cm)로 이는 서울~부산~천안까지 이어지는 거리라고 한다.
또한 높이로 쌓으면 74.723km(4백98만개×1.5cm)로 63빌딩(지상249m) 3백개를 쌓아 올린 높이와 같다. 이를 넓게 펼쳐 놓으면 68.226m²(4백98만개×137m²)로 이 넓이는 잠실 축구 경기장(7.350m²)을 무려 9개나 만들고도 남는 면적이 라고 하니 과연 그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상상이 가시는지?
음식에 관한 재미있는 기록들
자장면
그 모태는 중국이지만 오히려 중국에는 없는 음식 자장면. 1950~60년대 국내 외식문화 개념이 생기면서 현재까지 인기 음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자장면에 관한 몇 가지 재미있는 기록들을 알아보자. 기록상 최초의 자장면 가격은 1960년대 초반 15원. 전국에서 하루 동안 소비되는 자장면은 약 8백만 그릇. 남한의 인구가 약 4천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하루에 5명 중 한 사람은 자장면을 먹는다는 얘기. 국내 최초 중국 음식점은 1905년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 현재 한국 음식업 중앙회에 등록된 우리나라 중국음식점 수는 약 만 4천여개이다.
과자류
우리나라 최초의 사탕은 지난 1946년 시판된 ‘해태 캬라멜’이다. 해태제과는 1954년 국내 최초로 무료 시식행사를 열었고 이는 오늘날 시식판매의 효시가 되었다. 지난 1974년 탄생한 해태제과의 에이스크래커는 시판 된 후 지금까지 판매된 금액이 국내 크래커 제품 중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외식업계 마라톤맨 VS 호텔업계 마라톤맨
두 다리로 출근하는 호텔 아미가 이학재 팀장
호텔 아미가의 이학재(47) 객실팀장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다. 유니폼 너머로 보이는 단단한 근육. 단정한 매너가 담긴 목소리에 감춰진 헉헉한 숨소리.
그는 바로 아마추어 마라토너. 일년에 수번의 마라톤에 참가해 탄력적인 뜀박질을 길에 쏟아 붓는다. 현재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적은 15번, 하프코스는 10번 남짓 된다. 42.195km를 3시간 1분 20초라는 시간에 주파한 놀라운 기록도 갖고 있다. 신문사 마라톤이나 서울마라톤클럽 등 달리기를 주제로 한 행사는 항상 눈여겨 봐뒀다 직접 참가하곤 한다. 한번 참가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다음날부터 잠실에서 논현동의 호텔까지(약 10km) 교통수단은 오직 그의 두 다리이다. 큰 일이 없는 한 일주일에 3~4번은 짧은 운동복 차림으로 뛰어서 출퇴근 한다. 그는 42.195km라는 거리에만 주안점을 두지 않는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경기에 더 관심이 있다.
2003년 ‘100Km 서울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해 5백50명 중 26등에 오르는 쾌거를 이뤄낸 적도 있다. 시간도 2003년 보다 약 40분이나 단축하며 9시간 1분 20초로 테이프를 끊었다. 2003년 3월에는 제주 일주 200km 울트라마라톤대회 출전의 꿈에 부풀어 있었으나 아쉽게도 급한 일과 겹쳐 참석을 못했다.
마라톤을 왜 좋아하게 됐냐고 그에게 물었다. “기록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달리는 게 좋아요. 어렸을 때는 체구가 작아 아이들에게 놀림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며 소극적일 때도 있었지만 달리면서부터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달리면서 한 발 한 발을 땅에서 떼기 힘든 때가 되면 그 때부터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죠. 나약한 내 자신을 이겨내는 데에 희열을 느끼곤 합니다. 아이들도 마라톤을 하는 저를 상당히 좋아해요. 뛰고 나면 스트레스도 사라지기 때문에 집에 가면 항상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대하죠. 이것은 호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기본적인 서비스 정신은 혹독한 저의 취미에서 나오는 것이죠.”
마라톤을 시작한지 12년째. 호텔에서 궂은일부터 시작해 일찍 객실 팀장의 자리에 섰지만 결코 만만한 자리가 아님을 안다. 그는 호텔의 객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리하고 체크하며 고객의 안전과 관리에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이런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초 체력은 물론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이학재 팀장은 마라톤이라는 운동을 선택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었다. 조만간 호텔 내 마라톤 동호회 창단에 대한 계획도 가지고 있다.
‘마라톤에 발레까지!’ 박상덕 토니로마스 홍대점 주방장
박상덕 토니로마스 홍대점 주방장은 특이한 취미와 이력을 가지고 있다. 우선 그는 외식업계에서 알아주는 마라토너다.
2001년 4월부터 취미 삼아 달리기 시작한 그는 마라톤을 시작한지 반년만인 그 해 11월 춘천 마라톤 대회 완주에 성공했다. 이후 2002년 3월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3시간9분23초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2003년 4월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 출전 자격까지 따냈다. 국내에서 1백40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박매니저는 국내 참가자 중 3위를 기록했다.
또한 2002년 10월 20일 춘천 마라톤 대회에 또다시 출전한 박씨는 참가자 1만6천명 가운데 20명만이 선발되는 Pace Maker로 발탁되며 참가자들의 기록을 조절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지난번 성적보다는 조금 부진하지만 3시간 36분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틈만나면 서울 및 근교의 좋다는 곳은 찾아다니면서 달린다는 박씨는 지금 미국 대륙 횡단 마라톤을 꿈꾸고 있다.
키182cm. 몸무게 71kg의 균형잡힌 몸매. 경희대학교 무용학과 졸업. 전 서울 현대무용단 단원. 전 서울 발레시어터 단원. 박상덕(35)씨의 이력이다.
박씨가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소위 잘 나가는 발레리노에서 주방장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에 대해 “솔직히 한계를 느꼈지요. 나이도 있고 체력적인 문제도 생겨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서울 발레시어터 연습실 같은 건물 1층에 있던 토니로마스 압구정점을 방문했다가 갑자기 흥미를 느껴 그 자리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게 된 것이 지금 제 인생을 180도 바꾸게 하는 계기가 된거죠.”
낮에는 서울 발레시어터 단원으로, 저녁에는 토니로마스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기를 2년. 그 성실함을 인정한 토니로마스는 그를 정직원으로 발령하였고 이후 2002년7월 토니로마스 주방에서는 최고의 자리인 매니저로 발탁되었다.
초창기 웃지못할 이야기 하나는 워낙 발레 동작이 몸에 밴 박씨의 몸짓과 손짓이 평범한 남자와는 사뭇 달라서 박씨에 대해 알지 못하던 동료들이 그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것. 결국 오해는 풀렸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고.
“요리와 발레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다는 점에서 매우 흡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박씨는 아직까지도 발레에 대한 미련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주는 아니어도 틈만나면 발레 공연이나 뮤지컬을 관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