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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외정책과 남북한 통일문제
정 천 구
[국문요약]
이 글은 중국의 대외정책 특히 그 한반도정책을 검토하고 남북한 통일문제가 국제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때 중국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며 한국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논의하려는 것이다. 중국의 내외정책은 2020년까지 높은 수준의 소강사회를 건설한다는 국가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화해사회건설을 대외적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국력신장과 평화적 환경유지에 맞추어져 있다. 중국의 강대국부상과 통일적 다민족국가건설의지는 중화주의의 부활에 대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중국의 국력은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양 측면에서 성장하고 있으며 아직 세계적 패권에 도전하기에는 부족하나 아시아의 패권을 확립하기에는 충분한 힘을 축적해가고 있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기조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유지, 대화와 타협을 통한 자주적 평화통일지지 및 한반도의 비핵화 지지인데 현실적으로 이는 한반도 현상유지, 완충지대로의 북한의 유지, 북핵문제에 대한 소극적 태도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중국이 북한핵문제해결에 진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미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중국은 통일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일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따라서 북한에 대한 경제 및 기타 지원을 통해 현상유지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북한이 자산이 되기보다는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된다고 판단할 때 북한의 정권변화 등을 위해 북한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 또한 북한 급변사태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군사적 개입을 포함하여 어떤 형태로든지 북한에 개입할 수 있다. 한국의 대응책은 첫째, 한국의 통일의지와 목표를 명확히 하고 통일에 대비한 준비체제를 본격화하며, 둘째, 북한급변사태에 대비하며 이를 위해 헌법의 영토조항을 유지하고, 셋째, 무역의 다변화와 안보동맹으로 한중간의 비대칭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우려야 한다.
주제어 : 대국굴기, 화해사회, 소강사회, 중국의 한반도정책, 완충지역, 북한, 북한핵문제, 급변사태, 통일준비체제, 영토조항, 비대칭성
Ⅰ. 서 론
이 글은 북한의 급변사태 등으로 남북한 통일문제가 국제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때 중국의 대외정책 특히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남북한 통일문제에 어떤 작용을 할 것이며 우리의 대응책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려는 것이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가능성과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논의는 이제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한미 양국은 2005년 참여정부 당시 주권침해 논란으로 개념계획에 머물러 있던 북한급변사태를 대비한 작계5029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작전계획으로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김정일의 건강문제와 북한의 화폐개혁 실패 등으로 급변사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도 있으며 급변사태에 대한 언급을 꺼리던 중국이 이에 관한 논의를 원하여 한미일 3국이 북경에서 북한 급변사태와 관련한 토론회를 갖게 된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급변사태란 ‘북한의 정권 혹은 체제의 붕괴를 초래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하고 주변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비상조치를 강구할 필요성이 있는 상황’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에 대한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부분에서의 대비계획을 세워야 함은 당연하지만 남북한통일에 관한 구상과 계획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 급변사태는 한국이 극복해야 할 위기임과 동시에 남북한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통일에 관한 구상과 계획이 있어야 사태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국민을 이끌어 갈 수 있고 관련 당사국과의 제대로 된 교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 처리에 가장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나라는 의심할 여지 없이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이다. 근세 이후 한국에게 중요했던 사건은 1905년의 일본의 조선에 대한 외교권 강탈과 1910년의 병합, 1945년의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분단, 그리고 6.25전쟁이다. 이러한 사태에 세 나라는 다 책임이 있다. 일본의 한국 침략은 일본이 범한 큰 죄악이지만 조선왕조 500년 동안 중국의 주자학적 세계관을 맹신한 조선 조정의 중국에 대한 사대와 관료의 수탈로 민족의 역량이 급격히 약화되었던 점은 우리 민족 스스로의 책임도 있다. 미국은 조선과의 수교조약을 외면하고 일본과의 태프트-가즈라 협정을 맺어 조선을 일본의 영향권으로 넘겨준 책임이 있다. 미국은 또한 1945년 일본의 패망 후 일본 극동군의 항복을 받는 과정에서 소련과의 균형을 위해 38도선을 획정함으로써 분단의 씨앗을 심었으며 1949년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시킴으로써 북한의 공격을 가능하게 만든 실책을 범하였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은 한국전쟁의 당사자이며 한반도의 안보 상황에 대처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이익상관자(stakeholder)이지만 직접 당사자는 한국과 북한이다. 북한정권이 북한주민을 통치할 자격은 물론 능력까지 상실한 상황이라면 한국은 유일한 직접 당사자인 셈이다. 직접 당사자로서 통일에 대한 어떤 구상과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글의 주제는 중국의 대외정책과 남북한 통일에 대한 입장임으로 우리의 대응책은 결론 부분에서 원칙만을 언급하는 것으로 제한할 것이다.
이 글은 먼저 강대국으로의 부상을 추구하는 중국의 대외정책의 기조를 분석하고 이를 배경으로 중국의 한반도 정책과 남북한 통일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분석할 것이다. 다음으로 남북한 통일문제에 관한 한중간의 쟁점과 과제에 관해 분석하고 결론으로 우리의 대응방안에 대하여 논할 것이다.
Ⅱ. 중국의 대외정책
1. 강대국으로의 부상 목표
중국의 국가목표는 이른바 대국굴기(大國崛起), 즉 경제발전을 통한 강대국으로의 평화적 부상이다. 중국의 외교정책은 이러한 국가목표를 추진하는데 맞추어져 있다. 중국 외교부는 2006년 8월 24일 ‘중국외교’ 제목 아래 중국외교정책의 기본을 천명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세기 첫 20년 이내에 중국은 10억 이상의 인구가 혜택을 볼 높은 수준의 소강사회(小康社會)를 건설하는데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중국 외교의 주요 임무는 국가의 주권 및 안전과 발전의 이익을 지키며 전면적 소강사회를 위하여 사회주의 현대화를 다그치고 양호한 외부환경을 조성하며 세계적 평화와 발전 사업을 적극적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중국은 독립자주적 평화외교정책을 견지해나갈 것이며 평화발전의 길을 지속해 나갈 것이고, 상호공동이익의 개방전략을 실행해나갈 것이며, 지속적 평화를 건설하는 일과 공동번영의 화해사회(和諧社會)를 추진해 나갈 것이다.
여기서 보면 중국의 당면 국가목표는 2020년까지 삶에 큰 불편이 없는 소강사회를 건설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고 중국 외교의 임무는 국가의 안전과 발전의 이익을 지키면서 전면적 소강사회건설을 위해 유리한 외부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목표는 공동번영의 화해사회를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조화사회를 의미하는 화해사회라는 표현은 대국굴기(화평굴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외교적 수사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덩샤오핑이 1980년 도광양회(韜光養晦), 즉 빛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는 정책을 표방하였고 2003년에는 대국굴기의 다른 이름인 화평굴기론(崛起論)을 내세워 평화적 부상을 주장하였다. 후진타오는 이를 2004년 화평발전론으로 변화시켰고 2006년부터는 화해세계론(和谐世界論), 즉 조화세계론을 내세우기 시작하였다. 장쩌민 시대의 대국외교와 차별화하고 미국 조야에서 나오는 중국위협론에 대응하여 중국의 발전이 협력적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또한 국내정책과도 연계되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은 2010년 "세계평화와 발전적이고 희망적인 미래를 함께 창조하자“라는 제하의 신년사에서도 전면적 소강사회의 추진을 계속할 것을 천명하면서 ”중국은 오늘의 정세를 기회로 삼아 평화, 발전, 합작의 기치를 높이 들고 세계평화를 철저히 지키며, 공동발전을 향한 외교정책의 기본방침을 촉진하고 평화발전의 길을 변함없이 따르며, 상호공동이익의 개방전략을 일관되게 받들어 행하고 평화공존5원칙에 기초하여 국가들과의 우호합작을 발전시키며, 국제금융위기 대응, 기후변화문제에 관한 국제합작, 각국 인민이 함께 추진하는 항구적인 평화건설 및 공동번영의 화해세계에 적극 참가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표현상의 변화는 중국에 관한 미국의 담론인 중국위협론을 의식하여 화평발전론과 화해발전론으로 스스로 변화해 온 것이지만 그 본질은 결국 강대국으로의 평화적 부상을 의미하는 화평굴기론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화평굴기론의 발제자로서 상황변화에 대처하여 이를 계속적으로 발전시킨 정비젠(鄭必堅)이 제시한 화평굴기론을 이병석에 따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화평굴기는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하고, 발전을 중공의 집정흥극(執政興國)의 제1 요무(要務)로 흔들림 없이 견지하며, 대외개방을 실행하여 경제글로벌화와 연계시키고, 경제글로벌화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독립자주를 견지하는 것이다. 화평굴기를 실현하는 시기는 21세기 중반이며, 2010년에 GDP를 2배 증대시키고, 2020년 다시 2배로 증대시켜 개인당 소득 3,000 달러를 달성하여 전면적 소강사회를 실현한다. 이에 따라 중국은 21세기 중반에 이르러 기본적인 현대화(중등발전국가)를 실현하며 부강하고 민주적이고 문명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실현할 예정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면 중국은 중진국 수준에 진입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고, 중국 화평굴기를 실현하게 된다. 또한 화평굴기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거대한 역사적 기회를 가져다주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중국공산당이 인지하는 중국역사문화전통은 화위귀(和爲貴)와 화이부동(和而不同) 등과 같은 중국인민이 고래로 실천해온 덕목이다. 또한 중국은 역사적으로 타국을 침범한 적이 없으며 강대한 나라가 되어도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강대했던 한나라 때도 흉노의 공격을 받아 전쟁을 치룬 다음 화친하였을 뿐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
위의 주장들은 중국의 역사가 대외확장과 침략의 역사라는 사실 앞에서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박병석의 지적대로 “중국의 우수한 역사문화전통으로 제시한 항목들은 과거 중국 중심의 차등질서 및 차별 질서를 강요하고 유지하던 논리이며 주장으로서 이를 현대 국제질서에 적용하려는 것은 위선이며 사기일 뿐이다.” 중국의 강대국으로의 부상이 주변국에게 거대한 시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회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중국 중심적 사고방식 때문일 것이다.
2. 소강사회와 다민족국가의 꿈
중국의 외교정책은 또한 국내 정책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경제발전이 진전되면서 2002년 후진타오 정권에 이르러 국가발전의 목표를 소강사회로 구체화 시켰다. 소강사회는 대동사회의 이전 단계이다. 대동사회란 공자가 말한 이상사회로서 모든 것이 풍족하고 큰 도(大道)가 이루어지는 대동사회(大同社會)이고 그 전단계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소강사회(小康社會)이다. 소강사회는 이상사회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큰 불편 없이 지낼만한 사회이다. 중국이 2020년까지를 전면적 소강사회의 실현으로 설정하고 있으니까 그 이후에는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공자와 유교사상을 부활시키고 있다는 점과 관련하여 중화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을 읽을 수 있다. 중국은 화해사회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유교적 덕목을 강조하고 국내에서의 화해사회건설과 국제사회에서의 화해사회건설을 동일한 맥락에서 언급하고 있다. 유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논리체계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유학은 원래 서주(西周)의 봉건질서를 이상화한 이념체계이다. 김만규가 요약한 바와 같이 본질적으로 유학은 제왕학이요 지배학이기 때문에 먼저 가족집단에서 가부장적 차별 질서를 확립하고 다음으로 이를 사회적 신분질서로 연장시키며 이를 군신간의 제왕적 통치로 연결하며 최종적으로는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로 유도하려는 정치사상이다. 그것이 바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학사상은 동질성이 강한 한(韓)민족에게는 사회내부에서 반발을 가져오기 쉬워 동질성이 파괴되고 민족의 응집력을 약화시키는 역기능을 가져왔던 것이다. 오늘날 중국이 채용하고 있는 공산주의사상은 차별사상을 반대하고 평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과거 중국 중심의 아시아 지배체제를 유지했던 유교이념을 다시 내세우고 자신이 일방적으로 정의한 질서를 국제사회의 이상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유의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소강사회는 중국이 규정한 다민족국가의 꿈이다. 중국은 주류인 한족(漢族)과 티베트족, 위그르족, 몽골족, 조선족 등 55개 소수민족이 함께 살고 있는 다민족 국가이다. 중국은 인구학적으로는 한족(漢族)이 대부분이고 55개 소수민족은 모두 합해야 인구의 8% 밖에 점하고 있지 않지만 이들이 사는 거주 지역은 중국 영토의 64.3%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는 자원이 많이 나고 외국 국경과 접하고 있어서 중국의 경제와 안보상으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중국은 정부 수립 이후부터 소수민족에 대하여 많은 관심과 배려를 해 왔으며 이들을 한족과 함께 하나의 중국민족으로 통합하려고 노력해 왔다. 중국이 중화민족다원일체(中華民族多元一體)를 내세워 민족대단결을 통한 민족공동번영을 강조하는 교양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1980년대 이후 중국이 ‘통일적 다민족국가’라는 논리를 확립하였다. 중국 내의 모든 소수민족은 현재 중국으로 통일되어 있으니 그들의 역사 또한 중국의 역사라는 이론이 여기서 나왔다. 그래서 서남공정으로 이미 티베트의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였고 이제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 역사를 비롯한 한국의 고대사 역시 중국 역사로 편입이 진행 중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독립 국가의 일부로 살았던 티베트 인 거주 지역, 위그르인 거주 지역, 몽고인 거주 지역, 조선족 거주 지역을 ‘다민족국가’ 체제에 강제로 편입시켜 소강사회라는 하나의 사회로 통합하려고 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주제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었다. 우호와 협력, 그리고 행복한 삶을 원하는 인류 공통의 꿈을 향한 중국의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중국은 티베트족을 포함하는 55개 소수 민족을 여러 가지로 출연시켜 중국 스스로가 하나 된 ‘통일적 다민족 국가’임을 세계에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일사 분란한 대회조직과 철통같은 보안을 통해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세계라는 것이 ‘통제와 강압에 의한 하나’라는 사실 또한 드러내었다.
준비기간 동안 티베트 문제로 인한 세계 각국에서의 중국 반대 여론과 성화 봉송 방해가 있었다. 대회기간 중에는 당국의 철통같은 방비 속에서도 간헐적인 소수민족의 폭탄 테러 공세로 중국은 곤욕을 치렀다. 또한 대회를 통해 과시된 중국의 위상과 표출된 중국인들의 민족주의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과 위협감을 강화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라는 주제는 어찌 보면 중화사상의 또 다른 표현이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한족(漢族)이 지배하는 중국 중심의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였다. 고대에도 고구려, 거란, 티베트(토번 吐蕃)와 같이 대등한 국력을 가진 나라와도 조약을 체결할 때는 명목상으로라도 자기들이 천하의 중심임을 명시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중국은 독립국이었던 티베트를 군사적으로 병탄하고 몽고에서 내몽고 지역을 떼어내어 중국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등 강제적 통일을 추구했다. 현재 조선족 자치주로 되어 있는 지역은 원래 조선 영토의 일부였으나 일제가 외교권을 빼앗은 다음 철도부설권과 만주국 설립에 대한 대가로 청나라에게 넘겨주었던 것이다. 일제가 패망하고 중국은 일제에게 빼앗겼던 만주에 관한 모든 권리를 회복했으나 그것과 맞바꾸었던 조선영토는 그대로 점유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의 구호인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라는 주제는 어찌 보면 나무랄 수 없는 인류의 이상(理想)인 것 같지만 거기에는 전체주의의 위험한 함정이 있다. 중국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 하나가 되어 모든 사람이 하나의 꿈만을 꾼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 될 것인가?
중국의 입장에서는 소수민족 문제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도미노 현상으로 번져갈 것을 우려하고 있어서 대내적으로는 소수민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분열주의자들의 책동으로 몰아 분쇄하고 그것이 외부 세력과 연계될 움직임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한다. 중국은 ‘중국은 하나’라는 원칙을 외교관계를 맺는 모든 국가에서 받아들이게 하고 대만의 독립움직임이나 대만 정부에 대한 외국의 승인을 철저하게 봉쇄해 왔다. 티베트 망명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외국 방문에 대하여 거세게 항의해 왔고 한국의 경우에는 중국의 반발을 우려하여 종교인의 자격으로 개인적인 방문을 하는 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3. 중국의 하드파워와 소프트 파워
그러면 중국은 대국굴기의 꿈을 어느 정도 이루고 있는가? 중국 대외정책을 지원해 주는 중국의 국력을 평가해 보자. 국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다. 군사력, 경제력, 지리적 여건, 인구, 자연자원 등이 기본이지만 한스 모겐소(Hans J. Morgenthau)는 여기에 정부의 질과 외교의 질을 중요한 요소로 간주했다. 1980년대 레이 클라인은 국력을 계산하는 공식으로서 NP=(C+E+M)⨱(S+W)를 제시했다. 여기서 C는 인구, 국토의 크기, 자연자원과 같은 상수(constant)이고 E는 경제력 M은 군사력이며 S는 국가전략 그리고 W는 바로 국민의지이다. 이 공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국토와 자연자원 그리고 경제력과 군사력이 아무리 커도 국가전략과 국민의지가 형편없으면 국력은 반감되거나 심한 경우 제로가 된다. 무형적인 힘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무형적 힘은 다시 소프트파워란 개념으로 발전되었다.
나이(Joseph Nye)는 1990년 Foreign Policy에 기고한 논문에서 국제정치에서 점점 더 군사력과 경제력과 같은 강력한 힘 즉 하드파워 보다는 동맹과의 관계, 경제원조, 문화관계 등을 통하여 개발될 수 있는 ‘부드러운 힘’(soft power)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소프트파워란 군사력, 경제력 등을 가지고 힘으로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정치이념, 외교력 등으로 상대의 협조를 얻어내는 매력(attraction)이라고 정의한다. 이로서 국력을 구성하는 요소는 군사력,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로만이 아니라 문화, 정치이념, 외교 등과 같은 소프트파워가 중요하다는 점이 인식되었다. 미국의 오마바 행정부는 새로운 외교정책을 구상하면서 국력을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결합한 스마트파워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였다. 한 보고서는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적 힘을 소프트파워로 보강함으로써 미국은 강력한 글로벌 도전에 대처할 수 있다면서 동맹과 파트너십 및 제도, 세계적 개발문제, 국민외교, 경제통합, 그리고 기술과 혁신 등 5개 분야에 치중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중국의 하드파워
중국은 대국굴기를 위하여 군사력과 경제력 등 하드파워는 물론 외교적 진출과 문화적 힘의 세계적 전개 등 소프트파워를 건설하는데도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 10년간 중국의 힘은 크게 증대하여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하드파워를 볼 때 우선 경제력에서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에 있어서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 외환보유고(2조 달러)에서 세계 1위, 그리고 군사력에 있어서 미국 다음의 세계 제2위다. 2005년 수준으로 중국의 군사력 규모는 병력 235만 5천명이고 비정규병력은 396만 9천명으로 미국의 정규군 약 142만 6천명에 비해 많다. 그러나 군사비 규모는 세계 총 군사비의 4%에 불과하여 47%에 달하는 미국의 군사비 예산에 비하면 매우 약하다. 문제는 중국의 국방비 예산이 2006년 351억 달러로 전년 대비 14.7% 증가하는 등 증가율이 높다는 것이며 중국의 군사체제의 불투명성 때문에 실제로 군사비 지출이 얼마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쨌든 중국의 군사력은 미국을 위협하는 데는 크게 미흡하지만 아시아의 패권국가가 되기에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자신의 계획에 의하면 2020년까지 중국은 연평균 7.2%의 경제성장을 지속하여 2020년 GDP는 4조4200억 달러이고 1인당 GDP는 3,000달러에 달하여 소강사회를 실현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중국은 GDP에서 세계 제1위가 되고 종합국력에 있어서 미국과의 격차를 1,5배 내지 2배 이내로 축소하고 국가안전의 목표도 국가안보통일을 유지하고 하이테크 방어 작전을 제고하며 군현대화와 하이테크 인민전쟁 능력을 이룩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소프트파워
중국은 조지프 나이(Joseph Nye)에 의해 이론화시킨 소프트파워에도 관심을 기우리고 있다. 첫째, 문화적으로 중국의 소프트파워의 잠재력은 매우 크다. 중국 문명은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중국 주변 국가에 전파되어 중국과 다른 나라들과의 연결고리를 형성했으며 아시아의 전통적인 중앙 권력으로서의 중국의 지위는 현대에도 소프트파워로 활용될 수 있는 풍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개혁개방은 중국 문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증대시켰으며 중국 지도자들이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유인을 제공하였다.
중국은 중국판 TOFEL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어 시험제도(HSK)를 해외에 보급시켜왔다. 중국은 2002년 교육부와 국가대외한어교학영도소조를 통해 해외에 한어보급기구를 설립하고 2003년 3월에는 공자학원을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공자학원은 중국과 세계 각국의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고, 세계 각국 국민의 중국 언어ㆍ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한편, 각국의 중국어 학습자에게 편리하고 우수한 학습 컨텐츠를 제공하기 위하여, 그 필요성이 인정되고 조건을 갖춘 국가에 중국어교육을 주요활동으로 하는 "공자학원(Confucius Institute)을 설립한 것이다. 중국 베이징에는 “공자학원총부(总部)가 설립되고 2004년 11월 21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 공자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공자학원 한국본부가 설립되었다. 2005년 7월에 베이징에서 세계한어대회가 열린 이후 공자학원은 많은 국가들의 호응을 얻어 2009년 12월까지 전 세계적으로 88개 국가에서 289개소의 공자학원과 272개의 공자학과를 건립하였다. 해외에서 약 4,000만 명이 한어를 학습하고 그 외에도 50개 이상의 국가에서 260개의 공자학원설립을 신청하고 있다.공자학원은 정치적 의제를 추구하는데 그것은 외부세계에 대하여 중국의 친근하고 신사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대만이나 대만에 기원한 전통적 중국 이미지 대신에 베이징의 전망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중국 대학에 등록하는 외국 유학생들도 극적인 증가를 보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외국인 유학생은 3배 증가한 110,844명이었는데 그 중 75%는 한국과 일본을 주축으로 한 아시아 유학생들이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의 유학생도 지난 6년간 6배가 증가했는데 이러한 아시아 유학생의 빠른 증가는 아시아의 문화적 자석(磁石)으로서 중국의 역할을 보여준다. 중국은 자신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세계문화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후진타오 주석의 말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중국 문화는 중국인에게만 속하는 것이 나니라 세계 전체에 속하는 것이다.…우리는 문화적 번영을 공동으로 촉진하는데 있어서 세계와 함께 문화적 교류를 실시할 준비가 되어 있다” 고 말했다.
둘째, 이념적으로도 중국은 개혁개방의 중국적 모델을 소비엣 체제나 미국 방식에 대안(代案)으로 제시하고 있다. 중국은 워싱턴협력기구(Washington Consensus)에 대응하는 기구로 2001년 중국, 러시아 연합, 타지크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국가들로 'Beijing Consensus' 즉 상하이협력기구(SCO)를 발족시켜 운영하고 있다. 중국의 모델은 경제개발과 정치적 자유가 필연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고 중국식의 권위주의적 개발방식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많은 나라들이 베이징의 성공적인 발전경험을 모델로 삼고 있다. 앞의 옛 소련연방이었던 공화국들만이 아니라 인도, 브리질, 이란과 같은 중동 국가들, 아프리카의 나라들에서 중국의 발전모형은 상당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대안적인 정치경제적 모델로 자신을 제시하고 있는 중국의 능력은 냉전 종식 이후 서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적인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다.
셋째, 외교정책 분야에 있어서 중국은 소프트파워를 키워나가고 있다.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의 외교는 혁명을 수출하는 등 극단주의적 외교행태를 보였으나 실용주의 개혁 이후 중국의 외교정책은 지역적 국제적 문제에 대하여 보다 건설적이고 좀 더 세련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중국의 이미지를 개선해 왔다. 중국의 이러한 외교행태는 주변국들에게 중국의 힘을 확인하게 하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강대국들과의 건설적인 관계를 촉진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중국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신중국의 선린외교정책은 국제관계를 규율하는 규범과 분쟁의 평화적 해결, 호혜적인 경제 관계, 테러리즘과 국제범죄와 같은 비전통적 안보 위협 퇴치 및 효과적인 군축 및 군비통제 등을 지지한다고 한다.
이러한 선린외교정책으로 중국은 과거보다 협력적 방법으로 다른 나라와의 23건의 영토분쟁 중 17건을 해결하였다. 중국은 또한 1994년 이래 과거에는 꺼려했던 많은 국제기구에 가입하였다. 중국 주도로 2001년 처음으로 구상된 중국-아시안 FTA는 2005년에 상품관세협정을 체결하고 2010년 1월 1일부터는 정식으로 10개국이 참여하는 중국-아세안 FTA협정이 발효되었다. 중국은 또한 아시아에 있는 다자간 국제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ASEAN, ASEAN+3 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n Summit:EAS), 아사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지역회의에 적극참여하고 있다. 1990년대 말 이래 중국은 UN평화유지활동에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 2005년 8월까지 14건의 UN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여 4,000명의 군인과 경찰을 파견하여 UN회원국 중 다섯 번째 평화유지활동 기여국가가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중국은 또한 워싱턴 협력기구에 대응하는 기구로 2001년 중국, 러시아 연합, 타지크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국가들로 상하이협력기구(SCO)를 발족시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경제발전으로 과거의 원조 수혜국가에서 원조공여국가로 변신하여 2005년 대외원조 액에 전년의 14%가 증가한 11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이 소프트파워 증강을 잘 보여주는 지역이 아프리카이다. 아프리카는 중국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잠재력이 클 뿐 아니라 안정적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중요하다. 중국은 그 동안 아프리카 51개국과 외교관계를 맺어 유엔에서 11차례나 ‘중국인권상황’을 부결시키는 등 중국의 정치적 입장을 지원해 주었으며 중국 전체 석유소비량의 30%를 아프리카 지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파워로 성장하기 위한 시도로서 아프리카지역 외교를 공세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노예무역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그 동안 아프리카 해방운동을 지지했고 남남협력의 동인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의 아프리카 지역 원조가 정치적 끈을 달지 않는다는 점 등 때문에 이 지역에서 호감을 얻고 있다. “중국의 아프리카지역에서의 소프트파워는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경험과 정치적 조건을 부과하지 않는 경제원조, 보건외교 및 기반시설 확충지원외교가 어우러져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4. 중국의 대국화는 위험인가 기회인가?
이렇게 대국화의 목표를 위해 적극적으로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모두 신장시키고 있는 중국의 대외정책을 논할 때 가장 관심을 갖게 되는 주제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세계에 위협이 될 것인가, 아니면 기회가 될 것인가”라는 물음이라 할 수 있다.
강대한 중국의 부상은 초강국인 미국과의 패권경쟁을 불러올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A. F. K. Organski의 힘의 전이(轉移)이론에 의하면 국제정치의 역사는 패권국가와 부상하는 신흥 강국 사이의 패권경쟁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1,750년대부터는 제3기 산업화가 진행되는 시기인데 산업화의 진행정도에 따라 각국의 국력 차는 계속 바뀌고 지배국가도 계속 교체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존 패권강대국과 신흥강대국 사이에 지배권쟁탈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중국이 바로 그런 신흥강대국의 길을 걷고 있으며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패권국가인 미국과의 지배권쟁탈전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중국위협론은 1992년 Ross H. Munro에 의해 제기된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발전되었으며 중국에 대한 서방세계의 지배적 담론이 되었다. 중국위협론의 “핵심논지는 중국이 지속적인 발전을 발판으로 아시아에서의 패권수립을 시도할 것이며 이는 아시아의 안보환경과 미국의 지역적 안보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중국은 중국의 성장은 과거 독일의 성장과는 달리 결코 세계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며 공동발전을 통해 세계의 발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박병석이 지적한대로 그런 주장이 중국위협론이라는 지배적 담론을 극복하지는 못했으며 중국자신도 내적으로 화평발전론이나 화해사회론이 내용상으로는 대국부상론(화평굴기론)의 다른 표현임을 앞서 언급한 정비젠 등의 지속적인 논설과 주장을 통하여 확인해주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중국위협론과 화평발전론의 논리 중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이내영과 정하늘은 중국위협론을 경험적으로 검증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들의 연구는 중국의 부상을 바라보는 중국 자신과 외부세계의 인식을 비교 분석하고 중국위협론에 대한 국제여론조사를 경험적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그들은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은 미국뿐만 아니라 주변 이해당사국들에게 커다란 기회와 위협을 동시에 주는 세력으로서 중국을 위협세력 혹은 기회요인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한다. 중국이 발전을 지속하고 경제적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상호이익이 크면 많은 나라들은 중국에 대해 실용적인 입장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호이익이 멈추는 순간 완화되었던 중국 발 위협요인이 커질 수 있으며 중국위협론이 가장 위협하는 대상은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아니라 소강사회 건설을 위해 대외적인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중국 자신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중국이 서구의 중국위협론을 불식시키는 방법으로 연성권력(soft power)의 강화를 추진하면서 자신의 담론을 화평굴기론에서 화평발전론으로 그리고 다시 화해세계론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그 내용과 조화되지 않는 중국 일방적인 주장이 특히 한국과 같은 주변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박병석이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화평발전론과 화해세계론의 내용은 “유교사상 및 파생된 국제질서(중국 중심의 패권질서)에 대한 향수와 의향을 그대로 담고 있어 서구 및 주변 국가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통시대 중국이 자신을 문명과 중화로, 주변 국가를 야만 또는 이적(夷狄)이라고 규정하여 왔듯이 오늘날에도 전통사상과 역사에 대한 향수의 영향으로 미국은 패권제국주의, 일본은 군국주의, 그리고 한국은 미제국주의 하수인 등으로 규정하는 배제담론이 잠재되어 있다.“
중국이 대국화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양 측면에서 이제 중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제2의 강대국이며 세계의 패권을 놓고 아직 미국과 경쟁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아시아지역의 패권세력이 충분히 될 수 있다. 또한 중국이 표방하고 추구하는 반 패권주의나 다자주의, 중국의 문화적, 이념적, 외교적 소프트파워의 추구는 미국을 겨냥하는 것이어서 중국의 종합국력이 커질수록 패권경쟁의 가능성에 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 고전적인 ‘힘의 전이’ 이론은 약회되고 있으며 기존 헤게모니 국가는 국제질서의 힘으로 현상유지를 방어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국이 현상을 타파하려고 한다면 미국만이 아니라 서구, 일본, 기타 민주국가들을 중심으로 세계가 공유하는 서구의 국제질서 자체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그러한 국제질서는 매우 견고하고 글로벌한 것이며 국제적 호소력을 가지고 있어서 쉽사리 도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이 이러한 질서에 도전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리라 예상하기 어려울수록 또한 중국이 미국과 서구를 합한 힘과 동등할 정도로 성장하리라고 예상하기는 어려울수록 중국은 아무리 강해져도 결국 국제질서에 적응하고 통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질서 속에서 중국의 중요한 이익이 좌절된다면 그리고 중국이 지배적인 국가로 성장한다면 기존의 국제질서는 바뀔 것이다. 이럴 가능성이 물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를 지시하는 지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과거의 패권 국가들이 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자기 복제가 가능한 국제질서를 창출하였다. 그러한 국제질서는 모든 구성원들을 함께 묶어주는 제도 위에 건립된 개방적이고 확장된 질서이며 그 속에서 안보 경쟁이 완화시킬 수 있는 질서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전략은 그러한 질서를 보호하고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Ⅲ. 중국의 한반도정책과 한중관계
1. 한반도 정책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앞에서 살펴본 중국대외정책의 원칙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의 대국화를 위해서는 평화적 대외환경을 필요로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이의 연장선상에서 중국의 대회정책에서 긴요한 것이다. 한반도에는 또한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의 하나인 조선족의 모국인 두 개의 정권이 있다. 조선족이 이들 어느 하나와 연계되어 동요하게 되면 통일적 다민족 국가의 유지라는 중국의 정책이 위협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의 대 한반정책은 크게 3가지 기조 아래 전개되어 왔다. 첫째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유지이고 두 번째는 남북한 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자주적 평화통일지지이며, 세 번째는 한반도의 비핵화 지지다. 한반도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중국은 이러한 원칙에 부합하면 이를 지지하고, 이에 부합되지 않으면 반대하는 외교행태를 보여 왔던 것이다.
우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유지는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안보와 번영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지역으로서 중국의 사활적인 이해가 걸려있다. 한반도는 라오닝성(遼寧省)과 지린성(吉林城) 등 중국의 동북부 지역과 육지로 접경되어 있으며 중국의 동북3성 지역에는 조선족 200만이 거주하고 있어 중국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유사시 이들의 동요와 북한 주민 탈북 등 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한 한반도는 황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 동해안과 마주하고 있어 중국의 해양 안보에도 중요한 지역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유사시에 병력을 파견하여 개입하여 왔으며 1950년 한국전에는 100만 이상의 군대를 파견하여 전쟁에 개입하였고 한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의 기회를 봉쇄하였다. 중국의 한반도 무력 개입에 관한 한 역사적 연구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중국의 이러한 지정학적 이해를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중국은 반드시 무력개입을 했다고 한다.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는 또한 중국의 국가목표인 경제발전을 위한 평화적인 대외 환경의 조성을 위해서 필요하다.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를 발표한 공동성명 제4조가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양국 간의 수교가 한반도 정세의 완화와 안정 그리고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한 것은 한국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며 동시에 중국의 정책목표를 반영한 것이다. 한국과의 수교를 통해 중국은 한반도에서 남북한과 동시에 중요한 관계를 발전시켰다.
한국과는 경제적 협력관계를 중심으로 관계발전을 확대하면서 북한과는 동시에 사회주의 형제국으로서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의 유지와 중국과 자본주의 세력 사이의 완충지대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중국에게 있어서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는 중국의 사회주의체제와 입과 입술(脣齒)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한반도에 자유주의적인 통일국가가 수립되면 중국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중국은 북한을 중국 안보에 대한 완충지역으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 북한에 대하여 막대한 경제 지원과 외교적 지원을 퍼부었으며 군사동맹조약을 유지해 왔다. 중국의 북한지원 강화는 미중관계가 악화될수록 강화되었다. 예를 들어 1999년 5월 미국의 유고 주재 중국 대사관에 대한 오폭으로 미중관계가 경색된 후 중국-북한관계가 강화되었으며 김정일의 2001년 1월 중국 방문과 장쩌민의 북한 방문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중국은 한국과 북한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포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미관계가 기존의 동맹관계를 회복하고 북핵문제가 어떤 형태로든지 종착역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다시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2009년 ‘북중우호 60주년을 맞이하여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이끄는 대규모방문단이 평양을 친선 방문하였으며 후진타오 주석의 초청으로 금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2. 한중관계의 발전
중국은 한국과의 경제적 호혜, 정치적 선린, 안보적 협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 양국 관계는 수교이후 이런 방향으로 외교관계가 계속 격상되어 왔다. 양국은 한중수교 공동성명 제2조에서 “선린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킬 것으로 합의하였으며 그로부터 6년 후인 1998년 11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중국 방문 시 양국관계를 “협력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데 합의하였고 2000년 10월 당시 주롱지(朱鎔基) 총리의 한국 방문 시에는 양국관계를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확대 발전시키기로 합의하였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중시 양국은 다시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확인하였고 2005년 11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과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중에서 이를 다시 확인하였다. 중국의 대외관계에서 한중관계가 어떠한 지위에 있는지를 알려준다.
한국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노선을 달리하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에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5월 27일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중관계를 기존의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수준으로 격상하고,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외교관계의 계속적인 격상은 경제관계를 중심으로 한 양국 간의 실질적 관계 발전과 연계되어 있다.
양국관계 개선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던 경제관계의 발전을 보면 1992년 수교당시 양국의 교역량은 65억 달러였으나 2001년에는 314억 9천만 달러, 2003년에는 570억 2천만 달러, 그리고 2005년에는 1,005억 8천만 달러에 달하였다. 이로서 중국은 한국의 제1의 수출대상국이 되었으며(수출입을 합한 무역대상국으로서는 미국에 이어 제2위), 한국은 중국의 제6위 무역대상국이 되었다. 또한 2002년 이래 중국은 한국의 제1위 투자대상국이 되었으며 한국의 대 중국 투자 액수는 2004년 22억 7천만 달러에 이르렀다.
2008년 8월 이명박-후진타오 정상회담에서 양국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격상시킨데 이어 같은 해 10월 이명박 대통령은 한중일 정상회담을 위한 중국 방문에서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와 함께 당시 1,450억 달러에 이르는 한중교역량을 2015년까지 3,000억 달러로 배가하기로 하는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하였다.
한중간의 인적교류는 2005년 354만 5천명으로 1991년에 비하여 32.7배나 급성장하였다. 특히 한국인의 중국 방문이 해마다 급증하여 2005년 중국방문 전체 외국인의 17.5%를 차지하여 제1위가 되었다. 문화교류가 활발히 진행되어 중국의 현대문화가 한국대중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하면 한류열풍이 불어 한국 TV드라마와 대중가요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양국은 또한 양국정상과 주요 정치인의 상호방문, 안보 분야의 교류 등으로 정치안보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을 확대해 왔다.
교류가 늘어남에 따라 영사관계도 발전하여 한국에는 주 중국 총사관이 서울의 중국 대사관 이외에 부산에 설치되었고 중국에는 대한민국 주 서안(西安) 총영사관(2007. 09), 주 성도(成都) 총영사관(2005. 02), 주 홍콩 총영사관 (49. 5. 1), 주 상하이 총영사관(93. 7. 14), 주 청도(靑道) 총영사관(94. 09), 주 심양(瀋陽) 총영사관(99. 07), 주 광주 총영사관(2001. 08) 등 총 7개의 총영사관이 개설되었다.
3. 북핵문제
중국 정부는 1990년 초반부터 시작된 북한 핵문제에 대한 입장을 ①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②한반도의 비핵화, ③그리고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3원칙으로 정리하였다. 여기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란 북한체제의 유지라고 해석된다.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반대하지만 이에 대한 대응은 어디까지나 북한체제의 유지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먼저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 시도를 “북한의 경제적 전략적 취약성으로 인한 방어적 선택”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북핵 문제가 발생한 1990년대 초에 ‘당사자 간 해결원칙’을 되풀이하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1993년 미국이 북핵문제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넘기려할 때 반대표를 던져 북한을 도와주었다.
9.11 테러 이후 반테러전쟁을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패권주의가 강화되자 중국은 북한 핵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인 개입정책으로 선회하여 IAEA가 북핵문제를 유엔에 회부하는데 찬성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강압적으로 북한을 제재하는 데 반대하고 문제를 6자 회담이라는 다자적 틀 안에서 해결한다는데 합의하였다.
이런 중국의 행태를 중국의 대북한정책의 본질적인 변화로 해석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강행한데 대하여 국제사회는 한목소리로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였고 중국도 이제 북한을 비난하는데 동참하였다. 그러나 대북제재를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78호를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중국은 과거와 달리 찬성표를 던졌지만 이 결의안 논의 과정에서 무력제재의 가능성을 포함시키는데 집요하게 반대함으로써 결의안을 약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경제적 제재를 골자로 하는 결의안이 통과된 다음에도 중국은 결의안의 집행을 이행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는 북한 에너지의 약 70%에 달하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미사일과 불법무기가 북한에 반입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으로 가는 수송물자를 검색하라는 결의안 내용도 이행하기 않았다. 중국은 약화된 유엔결의안 마저도 사실상 무력화시켰던 것이다.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이 강행되자 국제사회는 1차 때보다도 강도 높은 유엔안보리 결의안 1874호를 마련하였다. 이 결의안은 중국의 찬성에 힘입어 통과되었으나 중국은 역시 “북한을 자극하거나 고립시키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면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할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하였고, 오히려 국제사회에 대북제재의 수위를 낮추어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더 나아가 중국은 원자바오의 10월 북한방문에서 북한에게 5,000만 달러 상당의 석유, 식량 무상지원과 1억 5,000만 달러로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압록강 대교 건설 사업 지원을 약속하는 등 유엔의 대북제제 결의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있다. 중국의 역할은 단기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 역할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필자는 이미 한국과 미국은 중국이 진정으로 북한에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미망(迷妄)에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2차 핵실험 후 함재봉도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다 해도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북한체제를 흔들 만큼의 압력을 넣거나 제재를 가할 용의가 전혀 없다. 따라서 중국이 對北 제재에 본격적으로 참여해 북한이 白旗를 들고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허황된 기대는 빨리 접는 것이 좋다”고 충고하고 있다.
북핵 문제는 이제 거의 종착점에 이르렀다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는데 대타협(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을 중국에서는 ‘대타협’으로 번역)이 진행된다면 미중 합작으로 이루저질 것이며 한국의 외교역량이 중요해진다. 미국도 북핵 해결을 위한 포괄적 패키지를 제안하고 있는 바, 이는 일본의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구상과 맞물려 북한 핵을 중심으로 북핵문제뿐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신질서 구상을 향한 대타협이 성사될 수도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점에 관하여 북경대 김경일 교수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특성상 근대사 이후의 동북아 질서 교체기 때마다 늘 진통의 중심에 서 있다. 동북아의 질서를 바꾼 갑오중일전쟁, 러일전쟁, 한국전쟁 모두가 한반도를 진원지로 하였던 것이다. 작금의 동북아 신질서 구축도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전쟁이 아닌 평화로 새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모든 나라들이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핵⦁개방⦁3000 구상의 후속 제안으로 그랜드 바겐 안을 제시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새 질서구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당사자로서 한국이 주도권을 확립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제안이라고 본다. 북핵 해결과 새로운 질서를 구체적으로 연관시키고 관련된 당사자들의 역할에 대한 보다 진전된 후속제안이 나오면 좋을 것이다.
‘그랜드 바겐’에서 아쉬운 점은 실현가능성과 한반도 통일문제와의 관련성에 대한 고려이다. 안의 골자는 북한의 핵 포기를 북한에 대한 대규모 경제 지원과 북한의 안전 및 체제보장을 한꺼번에 맞바꾸자는 것인데 북한이 이를 원안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안을 받는다 해도 어떤 조건을 걸거나 추가 요구를 해서 한국 측을 수세에 몰리게 할 수 있다. 또한 대타협이 이루어진다 해도 북한의 안전과 체제의 보장은 한반도 분단을 고정화 하고 통일의 기회를 다시 연장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할 문제인 것이다.
‘대타협’ 안에는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구상과 비전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강대국의 게임에 한국까지 합세한 또 다른 분단의 시작이라는 역사의 평가를 면하지 못할 것 같다. 북한 핵과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가 바로 한국임을 들어 대타협에서 한국이 소외되거나 한국분단이 고정화되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우려야 할 것이다. 여기서 북핵문제는 남북한 통일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4. 남북한 통일문제
남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공식적 입장은 남북대화를 통한 긴장완화와 남북한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성명 제5항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임을 존중하고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支持由朝鲜民族自己来实现朝鲜半岛的和平统一)”고 천명하였다. 조문의 문장으로만 보아도 중국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지지는 조건적임을 알 수 있다. 우선 ‘한민족에 의해’라는 말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서방 국가에 유리한 통일을 언제라도 봉쇄할 수 있는 용어이다. 북한이 말하는 자주라는 용어와 연결될 수 있으며 중국이 원하지 않는 형태의 통일을 언제든지 반자주로 몰아 반대할 수 있다. 평화라는 용어도 정의하기 나름이다.
사실 중국은 중국의 입장을 꾸준히 문건으로도 축적해 왔다. 한중수교성명 제2조는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유엔헌장의 원칙들과 주권 및 영토보전의 상호존중,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불간섭, 평등과 호혜 그리고 평화공존의 원칙에 입각하여 항구적인 선린 협력관계를 발전시킨다.”라고 되어 있다. 수교원칙에 있어서 유엔헌장의 원칙은 양측이 공유하는 것이지만 평화공존 5원칙을 받아들이려면 우리 측의 외교원칙의 담론도 들어가야 했다. 평화공존 5원칙만을 받아들이려면 그것이 양국관계에서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분석하고 대응해야 했다고 본다. 평화공존 5원칙은 1954년 중국과 인도사이의 국경분쟁을 마무리 지우면서 중국의 주은래 수상과 인도의 네루 수상 사이에 합의한 원칙으로 판치실라(Panchi Silla 五戒)라고도 부른다. 그 자체로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원칙이지만 중국이 한국에게 적용할 때 간도의 영유권 문제를 제기할 수 없도록 활용할 수 있는 중국의 외교적 담론조항이라 본다. 중국은 이후 한국과의 공동성명에서 꾸준하게 이 평화공존 5원칙을 환기시키고 있다. 간도문제와 같은 중요한 영토문제에 대하여 우리 측 입장을 전혀 제기하지 않았으면서 중국의 5원칙은 받아들인 것은 영토문제에 관해서 심사숙고하지 못한 결과라고 본다.
또한 제3항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하며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한국은 북경정부가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중국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인정해 주었다. 6.25전쟁에 불법으로 개입하여 남북분단 지속의 책임이 있는 중국에게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제5조)하는 것으로 타결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 조문은 앞에서 지적한대로 우리에게 유리한 조문이 아니라 중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의 통일은 평화통일이 아니라고 규정하여 중국이 반대할 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특히 중국을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 오랜 동안 우방관계를 유지해온 대만과 예고 없이 단교함으로써 관계가 회복될 때까지 대만과의 무역, 경제협력 등에서 커다란 피해를 감수하였다. 더구나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에서 북한 카드를 활용하는데 비해서 한국은 대만과의 관계를 소홀히 다룸으로써 두 개의 중국을 활용 할 수 있는 실리외교의 카드를 쉽게 포기했던 것이다.
사실 중국은 표면적으로 통일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한이 한미일 등 자본주의 세력에 대한 완충지역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항구적으로 존재하기를 원하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에는 관심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현재의 시점에서 남북한의 통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미국과 일본의 지원을 받는 한국 주도의 통일이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잃게 됨을 의미한다. 한국 주도의 통일은 중국의 경쟁국인 미일 등 자본주의 국가들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바로 국경에서 받게 되고 북한의 소멸에서 파생되는 여러 문제들과 마주치게 된다. 예로서 거대한 피난민의 중국 국경으로의 쇄도나 중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적 이익을 잃게 되는 등이다.
그러면 북한에 의한 통일을 중국은 지지하는가? 한국에 의한 통일보다는 우선순위가 높겠지만 북한에 의한 통일도 중국이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 중국에 의존하는 일이 줄어들게 될 것이며 북미관계나 북일관계가 정상화될 것이고 북한의 소위 자주노선이 강화되어 중국이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 중국은 베트남의 전례(前例)라는 악몽을 잊지 못할 것이다.
중국은 베트남전생 기간 중 공산 베트남에 대해 전폭적인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아까지 않았다. 그러나 베트남의 공산화 통일이 이루어진 다음 베트남은 당시 중국의 제일의 적대 세력이었던 소련과 밀착하여 중국에 대항하였다. 소련에게 캄란만(彎)을 군사기지로 내어주고 소련과 연합하여 중국의 친선 국가였던 캄보다아를 침공하여 베트남의 위성국가로 만들었다. 결국 중국은 1979년 3월 베트남과 많은 손실을 감수한 교훈전쟁을 벌여야 했던 것이다. 북한에 의해 한반도가 통일되는 경우를 가상할 때 이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것을 중국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형태의 한반도 통일이 이루어지던 중국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상황보다는 좋지 않은 상황이 될 것이다. 더구나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정에서 중국에게 강제 할양된 간도의 한국 영토로의 회복 문제 등 영토문제가 제기될 가능성도 중국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에게는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는 현 상태가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중국이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을 지지한다는 것은 결국 한반도에서 현상유지(status quo)를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게 불리할 가능성이 많은 한반도 통일보다는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는 것을 중국은 원한다고 보아야 한다. 현재의 상태, 즉 북한의 생존을 무한정 유지하면서 한국과는 ‘경제적 호혜, 정치적 선린, 안보적 협력’을 유지 확대해 가는 것이 중국의 이익에 전적으로 부합한다. 앞에서 본대로 북핵문제에서도 중국은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존립이 위태로울 일은 하지 않았던 것은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바라는 중국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발전을 계속하고 북한의 생존을 지켜줄 수 있다면 그래서 한반도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안정적으로 확대해 간다면 결국에는 한반도의 미래와 동북아 지역의 전략적 환경을 자신의 의도대로 유리하게 결정해갈 수 있을 것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압력이 강화되고 중미관계나 중일관계가 악화될수록 중국은 북한체제의 생존 확보에 더욱 매달릴 가능성이 크다.
위와 같은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경우 중국은 북한의 붕괴가 한국의 의한 통일로 연결되지 않도록 어떤 형태로든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의 지속과 핵실험 등 호전적 정책으로 중국의 자산이기 보다는 골칫거리가 될 경우 중국은 북한의 현 정권을 바꾸는데 개입하는 등 북한 국내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붕괴를 막고 북한의 도발에 의한 전쟁을 방지하며 위험한 북한내부 불안정을 통제하는 등 북한의 상황을 관리하려면 중국은 1) 북한을 완충국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중국방식의 경제개혁을 도입하도록 하든가 2) 아니면 한국과의 협력을 통한 통일의 추구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물론 한국과의 협력을 통한 통일은 중국이 원하는 조건에 맞는 통일일 것이다.
Ⅳ. 결론-한국의 대응 방향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중국은 대국으로의 부상을 국가목표로 설정하고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외교정책을 구사해 오고 있다. 이러한 국가목표의 실현을 위해 중국의 안전과 평화적 대외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국의 외교목표이다. 중국은 이러한 목표 아래 미국에 버금가는 세계 제2의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구축했다. 중국이 현재 수준의 성장을 지속한다면 전면적 소강사회 건설 목표 연도인 2020년에는 세계 제2위 심지어는 미국을 앞지르는 경제력을 갖출 수 있다. 중국이 분명 미국을 경쟁상대로 삼고 있고 미국도 중국을 경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표면적으로 협조적인 미중관계는 어느 때고 경쟁의 관계로 전환할 수 있다고 본다.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미국의 글로벌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하여 중국을 세계 제2의 강대국(G2)으로 인정하고 국제문제, 특히 아시아문제에 있어서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하고 있으나 양국이 극복해 나가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필자는 다른 글에서 중미관계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서 중국의 부상에 따른 양국의 패권(hegemony) 경쟁의 가능성, 양국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의 잠재적 갈등, 그리고 티베트문제를 포함하여 인권과 민주화 문제 등 양국의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 요소 등 크게 3개 분야의 갈등요소를 지적한 바 있다. 또한 한중관계는 꾸준히 발전하여 한중 교역량이 한미교역량을 앞지르고 있어 경제적 호혜관계뿐만 아니라 정치적 선린관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고 안보적 협력도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본 것처럼 중국은 경쟁세력과의 완충지역 역할을 하고 있는 북한의 존재를 중시하여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선호하며 남북한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반도에서 표명되지 않은 중국외교의 목표는 한국을 미국-일본 블록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서울정부를 더 밀접하게 중국에게 기울게 하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해서 중국은 경제 및 기타 지원을 통해 현상유지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북한이 자산이 되기보다는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된다고 판단할 때 북한의 정권변화 등을 위해 북한문제에 개입할 수 있으며, 북한 급변사태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군사적 개입을 포함하여 어떤 형태로든지 북한에 개입할 수 있다.
중국의 성장과 대외정책 특히 그 한반도 정책은 한국의 신중한 준비와 대응을 필요로 한다. 첫째로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 자신의 통일의 미래상과 의지를 명백히 하는 것이다. 중국만이 아니라 일본, 러시아, 미국 모두 현상타파를 필요로 하는 남북한 통일보다는 현상유지를 원한다고 보아야 한다. 현상타파를 필요로 하는 통일의 동력을 유지하고 있고 이를 시작할 국가는 대한민국 자신 밖에 없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이 통일의 동력이 발동되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엄청난 통일비용을 이야기하면서 통일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분단을 지속함으로써 치루고 있는 분단비용이 통일비용을 크게 상회할 것으로 생각한다. 분단비용이나 민족의 장래를 생각할 때 통일은 우리에게 필요(need)한데 많은 사람들은 현 상황에 안주하여 그러한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을 뿐이다. 리더십의 역할이란 국가와 민족의 객관적 필요를 국민들이 스스로 욕구(want)하도록 만들어 국민과 함께 그러한 과제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라 본다.
독일 통일의 교훈 중에서 중요한 것은 서독이 자유민주주의 이념 아래 통일을 흔들림 없이 추구하여 기회가 왔을 때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독일통일 바로알기』라는 책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독일인들은 구체적인 통일방안을 갖고 있지 않았으나 통일을 이루었다. 그들은 통일방안보다는 통일을 가능케 할 여건조성에 더욱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성숙한 민주제도, 튼튼한 경제, 안정된 사회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외교적 기반, 이러한 것들이 ‘20세기의 기적’을 이룬 원동력이었다.
필자가 오래전부터 거론하였던 통일준비체제의 필요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아데나워로부터 콜(Helmut Kohl) 총리에 이르기까지 독일은 서방과의 단단한 결속을 중심으로 모범적인 민주사회를 건설하여 통일의 흡인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자석이론(Magnet Theory)을 실천함으로써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교훈을 참고하여 우리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민주, 평화, 번영의 통일국가를 지향한다는 통일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이의 달성을 가능케 할 여건조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정권과 합의하여 연합이나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한다는 발상은 과감히 청산해야 할 것이다. 합의에 의한 통일은 역사적 예가 없거니와(있다 해도 예멘과 같이 일시적이었음)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다른 글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우리는 북한 현 정권과의 합의통일이 가능하다는 미망(迷妄)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제까지 북한을 정상국가로 상정하고 발전시킨 통일정책은 북한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때 오리려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과의 관계는 분단 상황을 관리하고 교류협력 문제 등 현실적 문제들을 협의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본다.
둘째,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대비의 필요성이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나고 상황을 통제하기 위하여 한국의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 헌법 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영토조항이다. 특히 북한의 현 정권이 소멸하면 이 영토조항에 따라 북한지역과 북한주민은 자동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와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때문에 우리의 행정체제가 북한지역과 북한주민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범철의 지적대로 “비록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현행 헌법과 같이 북한 지역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 주장의 근거를 보유하고, 일관성 있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적어도 북한지역 전역을 영토관련 국제법상의 ’분쟁지역’으로 유지해야”한다. 헌법 개정을 통해 영토조항을 없애는 경우 대한민국에 의한 통일의 국내법적 근거마저 없애게 되며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할 때 대한민국의 행정권을 북한지역으로 확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앞에서 논의한 대로 중국은 북한에 대한 지정학적 이해관계로 인하여 북한에 대한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지역을 한국과 서방세력의 완충지역으로 유지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따라서 중국을 통해 북한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이나 북한 문제를 중국에게 맡겨보겠다는 생각도 역시 미망(迷妄)이다.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얻어내기 위해서 6자 회담이라는 다자간 협의 틀을 만들고 중국을 그 의장국으로 만들어서 중국을 통해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미국의 정책은 현재까지는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에 반대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해도 중국은 절대로 북한의 생존을 담보로 북한 핵을 포기케 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이 북핵문제를 실제적으로 6자회담의 의장국인 중국에 맡긴 것은 자기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남에게 맡기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6자 회담과 그 동안 중국이 보여 온 행태는 이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의 경우에도 중국이 사태를 주도하는 일은 결코 막아야 할 것이며 어디까지나 우리의 영토와 국민을 우리의 주도하에 확보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사태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셋째,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은 비대칭성을 극복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비대칭성은 국토와 인구를 비롯한 규모의 차이와 핵무장한 군사력 등에서 온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에서 북한 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는 등 다른 여건들과 함께 한중관계에서 중국에게 늘 유리하게 작용해 왔다. 한중관계가 발전하면서 그러한 비대칭성 역시 늘어나서 중국에 대한 한국의 취약성도 들어나게 된다. 그 동안 한중간에는 고구려사를 중심으로 한 역사 분쟁, 탈북자 처리문제를 둘러싼 분쟁, 중국산 마늘 및 꽃게 수입에 관한 분쟁,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에 대한 한국 참여를 둘러싼 쟁점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문제에 관한 중국과의 외교협상에서 한국은 한중관계의 비대칭성으로 인하여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중국과의 비대칭성에 대한 대책이 없이는 앞으로 통일문제 등과 관련한 중국과의 협상에서도 우리의 의지를 관철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우리의 외교의 빈약한 협상력도 개선해야 하지만 국제정치에서 일반적으로 국력의 전반적인 비대칭성을 극복하는 방법은 동맹을 통해서이다.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에서 중국과 경쟁할 수 없는 한국으로서 한미동맹을 잘 유지하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끝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등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회담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을 아시아문제의 이익상관자(stakeholder)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다른 나라들은 이익상관자이겠지만 한국은 직접 당사자이다. 한반도문제의 당사자로서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한국이 북한지역의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하며 한반도의 재통합이 역사의 순리이고 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를 건설하는 첫 걸음임을 설득해야 한다. 한국은 한반도 통일을 담당한 유일한 당사자로서 역사문제, 주권문제, 통일한국의 미래상 등에 대하여 중국을 비롯한 이익상관자들에게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설득력과 호소력을 갖춘 담론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논문투고일 : 2010.7.31
심사완료일 : 2010.8.19
게재확정일 : 20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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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s Foreign Policy and Korean Unification
Jeong, Cheon Koo(Seoul Digital Universit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China's foreign policy including her Korean policy and South Korea's proper response to it to achieve her national unification goal. "The basic objectives of the China's foreign policy center on safeguarding national independence and state sovereignty, and creating an international environment favorable to its reform, opening and modernization efforts" for its "Peaceful Rise to Great-Power Status". China's rise to great power and her ethnic groups policy based on a united multi-ethnic state formula generates a sense of alarm among great powers as well as surrounding countries. Her national power is on the rising in terms of hard power and soft power alike, still weak to compete with U.S hegemony but enough to be new Asian hegemonic power. The main focus of China's policy towards Korean peninsular has been to maintain peace and security of the region, to support their independent, autonomous unification efforts through dialogue and compromise, and to support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 reality, China has been seeking to maintain the status quo in the peninsular, to protect North Korea as a buffer zone, and to be half-hearted stance on the North Korea's nuclear development problem. China also does not seem support South Korean unification effort. She does not want the Korean peninsular unified by South Korea, thereby rather supports the status quo in the peninsular. China may intervene in the North Korean internal politics when she feels it not the asset but a heavy burden. In the case of a sudden change in North Korea, there may be a China's intervention including military one in the North Korean Affairs. To deal with the China's Korea policy, firstly, South Korea has to make clear her unification goal and will, and to be well prepared for the unification in the near future. Secondly, South Korean government has to make preparation for the sudden change in North Korea including firmly maintaining the territorial clause of her Constitution. Finally, she must continue her efforts to overcome the asymmetry in the rela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by diversifying her export markets and strengthening her alliance with the western powers.
Key Words : rise to great power status, harmonious society, moderately prosperous society, South Korea, China's Korean peninsular policy, buffer zone, North Korea, denuclearization, sudden change in North Korea, territorial clause, asymmet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