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준 물레도예전 / 1994 / 전북예술회관
몇 해 째 한번 가겠노라던 그의 아틀리에를 마침내 갔다.
그는 지금 전주 효자동에서 정읍으로 나가는 어느 길모퉁이를 잡고
물레를 돌리고 있다.
그는 그가 소속한 그룹이 기획한 무슨 '大作展'을 앞두고 한창 준비중이었다.
작품하는 모냥으로 보아 마치 간장 된장독 항아리展이나 되는 것처럼 큰 것들을
차고 있었는데 내가 앉아서 웃었다.
모름지기 조각가나 도예가는 힘이 장사여서
떡발과 허우대도 아조 거만해야 큰 물건들을 닦아세울 수 있으리라!
자귀나무처럼 지다란 리치를 항아리 안에다 푹 쑤셔넣고 겨드랑이에
흙붙이를 스쳐가면서 휘영청 대형 달항아리를 짓는 것을 보고도
내 키와 팔꿈치를 언능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작을 잘 만드는 그를 보고 내가 미소지은 이유이다.
내가 그를 즐거워하는 것을 농담 삼자면 또 있다. 비밀은 아니지만
그가 늦깎이로 원광대학교를 다닐 무렵이었던가,
그러니까 옛날꼰날에 그가 도예의 기초를 단단히 터득했던 '한벽도예'로 나를 불러내더니
다짜고짜 그가 만든 햇 다기세트들을 싸주고 그릇접시들을 줏어담고 여러 주발
주병모가지를 내 상자 안에 비틀어 넣어주곤 하였는데
ㅎ.. 그 때 얼매나 오졌겠는가~
(실은 난 도자기에 대한 매력과 수고를 당시엔 알 바 없었던 무뢰한無賴漢이었다)
그 뿐인가, 내국에서 자신 있는 자 몇 없다는 그
직경이 1m씩 넘는 압권의 대형 탁자들을 만든다 어쩐다 할 때는 그가 이미
'선수'로서 여러 자격을 두루 둘레에 미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는 어느 날 길에서 만나 트렁크를 열더니 예의 민화호랑이문양이 어여쁜
대형 탁자를 내 차에 묵신 털어넣어주었다.
간간하고 희한한 친구다.
그 어느 시절이었을까, 함께 재수할 때나 되었을까...
집에 똥개가 새끼를 낳았다며 무담시 내 아틀리에로 강아지를 한마리 끌고왔다...
뚝심좋은 사람들이 딱 하나 좋은 건 남에게 주는데 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 시절 그림은 나도 잘 그렸던 것 같은데 이 친구 도자기도안이 오늘날 범상치 않다.
내게 잠시 쉬는 동안 자기 도자기에 그림이나 한나 적어넣으라 주문 하는데
내가 꽁무니를 뺐다.
나도 요새 도자기를 조금 만들어보고 싶다.
근간 시골로 내려가면 거기다 유리온실을 내고 도자기의 기초를 훑어
가끔 이 친구를 초대해 지도도 받을 요량인데 조금 손에 익으면 그때 해보자고 했다.
(나로서 조금 어색한 항아리화면에 붓을 댔다가 공연히 망치는 것이 염려스러웠던 것...)
김흥준이 단국대와 원광대 전주대 등지를 다니며 학생들에게 물레를 가르치면
도자기솜씨들이 팍팍 늘 것이라 늘 믿음직스러웠던바
그의 도자기에 대한 다원적 재조와 발빠른 창조력에 나는 자주 놀란다.
이 친구 중소품들이 뿜어내는 자유자재의 형상들은 다생산의 물량력과 함께 가위
프로다움에서도 유력했고 유감 없다. 적이 그의 손목의 맥관은 굵고 탄력적이며
혈류는 도도하고 풍부했으며 가끔 심장을 상회하는 작은 열꽃도 감지되었다.
김흥준은 내 친구다.
'호작도虎鵲圖'처럼 소탈하고 '십장생도十長生圖'나 '응도鷹圖'처럼
든든한 그의 '고향스런' 그의 '단도직입'적인 성정이 나와 대조적으로 미남이다.
그러면 그는 나의 어떤 점을 사서 이렇게 오래도록 친구일까...
건 잘 모르겠곰.. 그와 첫처음 만난 것은 근 사십년전? 허허...
나는 지금 그의 소년기를 살았던 고향 광주의 대촌마을에 들어와 산다.
15년 가득...
고교시절을 만난 인연으로 하여 이제 함께 늙어가는 경진데
이 풋풋하고 설레는 우정이 여간만 미쁘지 않다.
전주의 한 횟집에서 지난 술배가 아파 술잔을 들지 못하는 이 친구 너머로,
김정희 교수와 내 아내 틈으로, 그 잘난 '韓方'을 종재기처럼 들었다놨다 하며
쏘주 두 병이나 홀짝거렸는데도 윽, 아직도 모자라나...
흥준이.. 밖은 눈이 새하얗고 나는 지금 해장술 한잔 털고 있네.
자네가 막걸리 한잔 하라 했던 잔이 분홍사발 맞았는가?!
막걸리 맛이 그 사발 속에서 뽀얗게 진달래로 퍼지는고만...^^
김흥준金興準
원광대 도예과, 단국대 대학원 졸
개인전 5회, 전북미술대전 심사위원, 황실공예지평선대전 심사위원, 반영 미술상 수상,
전북공예품 경진대회 금상, 현 단국대 전주대 호남대 군산대 등 출강, 김흥준도예연구소 소장...
첫댓글 잘 지내시는가 봅니다. 흥준형.
옛시절이 생각나제? 시절 자체가 우리 모두 촌티나는 도시소년들이었디... 산수동 계림동 화실에 이은 양림동 화실에 이르기까지 누구누구와의 아련한 연애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감탄사만 나와요 ^^와~~ 부러워요! 와~ ^^
노란꽃은 아랫 것, 작고도 노랗고 화려한 것이 기분 좋지요?
네^^ 위에서 세 번째 작품이 많이 끌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