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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어떤 자격도 갖추지 못한 오히려 허물과 죄로 죽은 저와 여러분에게 조금도 당연하지 않은 은혜를 기꺼이 허락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한 심리학자가 집집마다 매일 100$씩 놓아둔 다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실험 첫날, 사람들은 그를 의심했습니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슬그머니 돈을 들었습니다.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사흘이 지났습니다. 집 앞에 100$씩이나 놓고 가는 그에 대한 이야기로 온 동네가 떠들썩했습니다. 두 주 정도가 지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현관 앞까지 나와서 그를 기다렸습니다.
삼주 정도가 지났습니다. 더 이상 돈 받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주 정도가 지났습니다. 돈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조금도 어색해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틈에, 학자가 계획했던 한 달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학자는 더 이상 돈을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동네를 그냥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은 당황했습니다. 대단히 서운하게 여겼습니다. 매우 불쾌하게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왜 돈을 주지 않고 지나가느냐고 따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어떤 조건도 없이 값없이 베풀어주었던 그의 호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겠습니다. 한 여인이 혼자가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생계유지를 위해서 거리에서 호떡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던 그날도 어두움 속에서 호떡을 팔고 있었습니다. 노신사 한 명이 다가왔습니다. 호떡이 하나에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천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노신사는 지갑에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여인에게 주고는 그냥 가려고 했습니다. 호떡을 가져가라는 여인의 말에는 괜찮다고 대답했습니다. 여인은 참 이상한 사람도 다 있다고 여기면서 지나쳤습니다.
노신사는 다음날도 찾아왔습니다. 천원을 놓고는 그냥 갔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천원을 놓고 그냥 갔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거의 일 년이 다 지났습니다. 함박눈이 쌓인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노신사는 그날도 어김없이 찾아와서는 빙그레 웃으며 천원을 놓고 갔습니다. 여인이 만들고 있던 호떡을 내려놓고는 황급히 노신사를 따라나섰습니다. 얼굴은 어떤 결심이라도 한 듯 상당히 붉게 상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조금은 수줍은 것 같으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호떡 값이 올랐다고 말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학자의 호의를 당연히 받아야할 권리라고 착각했습니다. 여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은혜를 당연히 받아야할 권리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당연하게 누릴 권리는 없습니다. 하나같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호의입니다. 은혜입니다. 공기가 그렇습니다. 햇볕이 그렇습니다. 비가 그렇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그렇고, 길가에 돋아나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풀 한포기가 그렇습니다.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저와 여러분의 호흡은 더 더욱 그렇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어지는 모든 것들이 단 한 가지도 빠짐없이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허락해 주시는 결코 쉽지 않은 사람들도, 힘겨운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야를 행진하던 성민 이스라엘이 한 지역Arad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열두 정탐꾼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정탐하기 위해서 올라갔던 길이었습니다. 소식은 즉시 지역을 관할하는 왕에게 알려졌습니다. 왕은 조금도 망설이거나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무방비 상태였던 성민 이스라엘을 급습했습니다. 몇 명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동시에, 성민 이스라엘은 치를 떨었습니다. 분노를 드러냈습니다. 마치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분연奮然히 일어났습니다.
여호와 앞에 섰습니다. 도와주심을 구했습니다. 대단히 끈끈한 유대감紐帶感을 드러냈습니다. 주체적인 공동체 의식을 드러냈습니다. 견디기 힘든 고난을 함께 극복해낸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실제로 성민 이스라엘은 38년 째 광야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갖게 되었습니다. 광야가 아니었다면 가지기 힘들었던 아니 가질 수 없었던 반응이었습니다. 당연하지 않은 은혜였습니다. 그들은 기도한 그대로 응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이 그들의 앞길을 막았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은 지름길이면서 평탄한 왕의 대로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다시 멀고 험한 광야로 돌아 가야했습니다. 마음이 상했습니다. 참지 못했습니다.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극도의 분노를 드러냈습니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습니까? 이 광야에서 죽이기라도 할 작정입니까?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습니다. 이 거친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날 정도입니다.”(민21:5b)라고 외쳤습니다. 이는 음식에 대한 원망과 불평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닙니다. 그들을 죽음 같은 이집트로부터 건져주신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드러냈던 더러운 습관이었습니다.
당신의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절대 주권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한 섭리를 통해서 그들을 세밀하게 인도해 주고 계시던 하나님에 대한 멸시였습니다. 모독이었습니다. 패역이었습니다. 거룩한 생명을 누릴 자격이 없었습니다. 죽어야 마땅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맹독을 품고 있는 불 뱀을 그들 가운데로 보내셨습니다. 많은 백성이 물려죽었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의 현실 판단과 대처는 마치 전광석화처럼 빨랐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자신들을 긍휼히 여기시기를 구했습니다. 불 뱀이 물러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구했습니다.
놋 뱀을 만들어 장대 높이 달아 올리고 바라보라는 여호와의 명령에 두말없이 순종했습니다.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너무나 열악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할지라도 그 결과 기막힌 절망에 빠져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져 있다면 끝은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아직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남아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힘을 다해서 순종하면 반드시 절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불 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아니라 자신들을 이끌어주고 있던 모세 때문이라고 외쳤던 출애굽 1세대들에게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광야가 아니었다면 가질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당연하지 않은 은혜입니다. 그들은 또 여호와께서 광야에서 샘을 열어 물을 주시자 소위 “우물의 노래the Song of Well”를 불렀습니다. 죽음의 땅인 광야에서 생명의 샘물이라는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행진하고 있던 광야는 메말랐습니다. 황량했습니다. 물은 너무나 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는다면 쉽게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광야가 아니었다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자세였습니다. 당연하지 않은 은혜였습니다. 그들은 이 광야 생활을 통해서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너무나 소중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받고 누리기에 합당한 성숙한 신앙 인격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로 거듭났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광야를 지나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부를 수 없는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광야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축복이었습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다 감사할 이유입니다. 소리 높여 찬양할 이유입니다. 영광 돌릴 이유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주변을 조금만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이런 이유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즐비합니다. 넘칩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떻습니까? 받아 누릴 자격을 전혀 갖추지 못한 저와 여러분에게 당연하지 않은 은혜를 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주고 계시는 하나님께 받으시기에 합당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4)라는 증거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높은 보좌를 버리셨습니다.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해서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오랫동안 참고 견디며 사랑했던 당신 백성들에게 버림받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같은 범인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아니 상상 조차도 할 수 없는 영적,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심장이 터져서 물과 피가 분리될 정도였습니다. 죽으셨습니다. 장사되셨습니다.
이는 곧 죽고 장사되는 것은 저와 여러분에게는 불가항력적인 일입니다. 필연적인 일입니다. 단 한 사람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는 다릅니다. 하늘이 두 쪽 난다 할지라도 결단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틈만 나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기부터 하는 파렴치하고도 가증스럽기까지 한 영적 특성을 가진 인류 곧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스스로 당하셨습니다. 기꺼이 당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스스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영원한 죽음과 저주와 지옥 불구덩이를 완벽하게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마침내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를 완벽하게 속량贖良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작정하셨고, 이루기 위하여 새털 같이 많은 세월을 쉬지 않고 일해 오셨던 인류 구원을 완벽하게 성취하셨습니다. 은혜 안에서 값없이 부어진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누구나 다 율법의 준수 여부와 상관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원한 구원과 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또는 저와 여러분의 탁월한 행위로도 지극히 적은 영향도 끼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은혜를 통해서만 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른 그 무엇보다 소중한 피와 땀과 눈물, 힘에 지나는 수고, 조금도 남기지 않고 전부를 쏟아 붓는 희생과 헌신, 쉬지 않고 이어지는 봉사를 통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활동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을 통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속하기 위한 거룩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거룩한 피를 흘리셨습니다. 생명을 위한 속전이 되셨습니다. 기꺼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조금도 당연하지 않은 은혜입니다. 전혀 당연하지 않은 은혜입니다. 절대로 당연하지 않은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구원받을 어떤 조건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죽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저와 여러분을 오랫동안 간과看過해 주셨습니다. 참아주셨습니다. 참고 또 참아주셨습니다. 기다려주셨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주셨습니다. 마침내 당신의 절대 주권과 탁월한 섭리로 채워진 거룩한 때καιρός가 도래하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선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창세전부터 작정하고 약속해 주셨던 구원과 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은혜 안에서, 값없이, 선물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당연하지 않은 선물을 당연한 것처럼 허락해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절대로 당연하지 않은 은혜를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받아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당연하지 않은 은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자랑하려면 당연하지 않은 은혜를 마치 당연히 받아 누려야하는 것처럼 그것도 흘러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주고 계시는 하나님을 자랑해야 마땅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허락해주신 놀라운 은혜입니다. 비록 많이 부족하지만 저 역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해 주신 소중한 은혜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의로운 사람은 없으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 진리로부터 떠나 쓸모없게 되었고 선을 행하는 사람이 없으니 하나도 없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으며 그들의 혀로는 남을 속인다. 그들의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가득하고 그들의 입에서는 저주와 독설이 넘친다. 살해하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그들이 가는 곳마다 파멸과 불행이 뒤따르고 그들은 참된 평안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도 없다.”(롬3:10b-18)라는 증거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죄에 완전히 매몰埋沒되어 버린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었습니다. 하나님을 미워했었습니다. 불의했었습니다. 추악했었습니다. 탐욕에 찌들어 있었습니다. 우상 숭배자였었습니다. 악의로 가득했었습니다. 이유 없이 선한 권면과 교훈을 거역했었습니다. 자신은 행하지 않는 남의 자선 행위까지도 방해했었습니다. 남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했었습니다. 차라리 함께 망하는 것을 추구했었습니다. 살인과 분쟁과 사기와 악독이 가득했었습니다. 끊임없이 수군거렸습니다.
입을 열 때마다 비방했습니다. 악평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멸시하는 자였습니다. 남을 업신여기며 욕보이는 자였습니다. 교만한 자였습니다. 쉬지 않고 자랑하는 자였습니다. 끊임없이 악을 만들어내는 자였습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였습니다. 받고 있는 사랑과 긍휼과 은혜를 전해 깨닫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당연히 감사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일의 이치에 어두운 자였습니다. 약속과 서원을 마치 배설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버리는 자였습니다. 무정한 자였습니다. 누구 하나도 위로하거나 격려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물론 남에게까지도 무자비한 자였습니다. 죄를 행하고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었습니다. 죄를 행하는 자가 옳다며 부추겼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어떤 자격도 갖추지 못했었습니다. 한 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마음으로 진실하게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 하나님 나라는 여전히 하나님 나라일 수 있을까요? 솔직하게 겉과 속이 다른, 때로는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려운 제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저는 자신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한 희생 제물로 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받을 수 없는 은혜를 마치 당연히 받아 누려야 마땅한 것처럼 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값없이 부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질문을 하나 더 해보겠습니다. 걷지 못하던 자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로 걷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가 할 일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걷는 것입니다. 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언제 어디서나 마음껏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할 일 역시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한 것처럼 베풀어주신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것입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신학자인 그Matthew Henry는 “감사는 더하기 같아서 모든 것에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진다...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 같아서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없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지자는 춤이 변하여 탄식이 되어버린 열악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주께서는 지금도 왕이십니다.”(애5:19a)라고 고백했습니다. “당연하지 않은 은혜Undeserved Grace”라는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걸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다 하네
평범한 삶속에 감사함도 없이
너무도 익숙히 하루하루 살지
그러나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죽기까지 내어 주셨네
모든 것을 주셨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
당연한 것 아닌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
당연한 것은 없고 하나님의 은혜만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 뜨는 것과 밤에 편안하게 잠자리에 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사건사고들이 일어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 무기력하게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죽음으로 내몰리는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있는 것 역시 당연하지 않습니다. 죽어 마땅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거듭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도, 자식도, 이웃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다. 은혜입니다. 사랑입니다.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누릴 수 있도록 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주고 계시는 하나님을 자신의 유일한 왕과 주인으로 모실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자신이 가는 곳이 어디든지 다 하나님 나라로 변화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 당연하지 않은 온갖 축복을 당연한 것처럼 기꺼이 베풀어주고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복된 삶, 하나님을 자랑하는 복된 삶,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하나님께 인도할 수 있는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