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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無比) 큰스님 妙法蓮華經 문수원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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妙法蓮華經 卷 第七 • 觀世音菩薩普門品 第二十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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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내용 ******
오늘은 마침 관음재일인데 관음경보문품을 하게 됐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 보문품을 좀 시작을 했는데 처음부터 한번 주욱 살펴보고 그 다음에 설명할 대목에 가서 설명을 하도록 하지요.
관세음보살에 대해서는 여기서 설명이 되어지기는 합니다마는 우리나라 불자들이라면은 누구나 다 아주 매우 친숙한 그런 사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이 아닙니다. 아주 친숙한, 뭐 불교에서 어떤 성인보다도 우리 불자님들이 가장 친숙하게 생각하는 그런 성자가 관세음보살이다 이렇게 생각해도 됩니다. 그런 그 관세음보살님이기 때문에 이 보문품에 대해서 또 신도님들이 잘 알고 계시고요 이미, 관세음 기도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또 곁들여서 이 보문품까지 잘 공부하고 또 잘 읽고 그렇게 합니다. 또 지장기도를 많이 하는 분들은 지장경에 대해서까지도 역시 잘 이해를 하고 또 독송도 많이 하고 있고 그게 이제 정상이죠. 그게 아주 가장 정상적인 신행생활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건데 뭐 단순하게 관세음보살만 외울 게 아니라 정말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그런 그 자세한 설명을 아는 게 당연하고 또 지장보살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마는 우리가 관음신앙의 모태가 바로 이 법화경이고 법화경에서는 바로 관세음보살 보문품, 이 품을 통해서 관음신앙이 우리에게 친숙해졌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이 관세음보살 보문품, 이것만 가지고도 어떤 종파가 생긴 게 있죠. 관음종이라고 하는 게 또 있습니다. 또 뭐 천태종이라고 하지마는 천태종도 사실 신앙활동을 보면은 법화경, 천태종 하면 법화경 신앙인데요, 법화경 전체보다는 이 관세음보살 보문품, 28품 가운데 이 한 품을 주로 신앙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뭐 거의 99 프로일 거에요. 지금 우리나라 천태종에서는, 뭐 다른 나라 천태종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우리나라 천태종은 거의 99프로가 이 보문품 한 품 가지고 신행활동 하고 있다 이렇게 이해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보문품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보문품 정신을 이해할려면은 법화경 전반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어야 돼요. 법화경 전반의 그 흐름 속에서 이 보문품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또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이런 것과 연관시켜서 이해를 해야 사실은 관세음보살 한 분을 제대로 이해하는 거에요. 그런데 뭐 우리는 편하게 보문품 하나만 가지고 또 보문품도 많다고 생각이 들어서 관세음보살이라고 하는 그 이름 하나만 가지고 신행을 하는 그런 경향이 대다수죠, 사실은. 거의 대다수입니다. 뭐 그러나 그것도 좋은 신행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좀더 욕심을 내서 보다 더 바람직한 관음신앙을 우리가 한다면은 보문품까지 잘 이해하고 또 법화경 전반에 대해서도 이렇게 연관 관계를 지어 가면서 우리가 이해하는게 제일 그래도 바로 이해한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겠어요.
우리가 관세음보살님을 통해서 구제를 받는다, 그래요.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마는 막연하게 덮어놓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렇게 불러 가지고 관세음보살의 어떤 위신력이 나로 하여금 어떤 고난에 빠졌을 때 건져내서 어떤 편안한 자리에 모든 고난이 사라진 그 자리에 이렇게 갖다 두는..던져 놓기를 바라는 그런 그 의미보다는 사실은 진리, 참다운 이치에 의해서 우리가 구제되는 거, 이게 가장 바람직한 구제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은 양면성이 있어요. 지혜의 입장으로서 관세음보살님, 또 자비의 입장으로서 관세음보살님,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양면을 항상 동시에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관세음보살님은 우리가 어떤 분으로 생각하면 되는고 하니 이 세상에서 가장 바람직한 그런 인격자, 또 모든 사람이 제대로 정말 제대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을 때 어떤 이상형이 연상에 그려질 것인가. 바로 그 가장 되고 싶은 사람의 이상형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보면 석가모니불보다 더 이상형이죠. 왜 그런고 하니 석가모니 부처님은 역사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어려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죠. 일주일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건 뭐 아주 불우한 인생입니다 어떻게 보면요. 그런데 관세음보살의 역사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건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하여튼 우리가 그릴 수 있는 최상의 어떤 이상형, 가장 바람직한 삶을 사는 그런 이상형으로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그려놨다 이렇게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 제일, 얼굴을 보더라도 제일 잘났고요 또 옷도 가장 화려하고 값진 옷을 입고 있고 뭐든지 가장 이상형이에요. 얼굴도 저 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형. 옷 입고 있는 것도 그렇고. 또 그분이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 자세를 갖는가 하는 것 그것도 제일 이상형입니다. 지혜와 자비를 동시에 실현하시거든요.
지혜로서 교화할 사람에게는 지혜로, 자비로서 건져줄 사람에게 자비로서. 지혜가 있다면 자비가 뒤따라야 하고 자비가 있다면 지혜가 밑받침이 되야 된다고 하는 거, 이것도 가장 관세음보살이 가지고 있는 이상형이에요. 우리가 보통 뭐 문수 지혜 그러고 관세음보살은 자비,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마는 사실 관세음보살에게는 그 두 양면이, 지혜와 자비 양면이 다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지마는 뭡니까, 관음경보다는 반야심경 같은 그런 경전, 또 기타 다른 경전에는 관음보살이 지혜의 상징 인물로 그렇게 등장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 가장 되고 싶은 사람, 이상적인 사람이라면은 바로 관세음보살이다. 사람을, 남을 위하는 데 얼마나 철저하냐.
그,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다 그 나름의 자기 활동을 하고 살아요. 자기 활동을 하고 사는데 자기 활동이라는 건 뭔고 하니 자기 표현입니다. 사람이 산다는 건 자기 표현이에요 다른 거 없습니다. 뭐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표현이 되든지 간에 자기가 표현되기를 바라는 게 모든 사람의 그 바람이죠. 그런데 관세음보살은 자기 표현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 남을 위해서 그 자비심으로서 지혜로서 사람들을 위하는 것으로서 자기 표현을 하고 있다 이겁니다. 그 사람의 일생이란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모두가 자기 표현인데 우리가 어떻게 표현하며 살것인가 이건 상당히 중요한 문제에요.
이거 뭐 경전상에서 이야기라고 해서 멀리 있는 걸로 생각을 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아무리 뭐 이름없는 어떤 한 시민으로, 소시민으로서 설사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다 자기 표현을 하고 사는 게 사람이에요. 어디든 자기 표현을 하고 사는 게 사람이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자기 표현을 하면서 사는 사람의 표본으로서도 역시 관세음보살 같은 이가 없다. 최상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보다도, 석가모니 부처님 보다도 오히려 더, 훨씬 더 우리 머리에는 이상적인 사람으로 나타난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이다. 이렇게 이제 생각을 하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爾時無盡意菩薩이 卽從座起하사 偏袒右肩하고 合掌向佛하사 而作是言하사대
이시무진의보살 즉종좌기 편단우견 합장향불 이작시언
그때(爾時),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卽從座起), 오른쪽 어깨에 치우쳐 매고(偏袒右肩)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서(合掌向佛) 이런 말을 했다(而作是言)
2.
世尊하 觀世音菩薩은 以何因緣으로 名觀世音이닛고
세존 관세음보살 이하인연 명관세음
세존(世尊)이시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무슨 인연으로(以何因緣) 이름을 관세음보살이라고 했습니까(名觀世音)
3.
佛告無盡意菩薩하사대
불고무진의보살
그러니까 불고무진의보살(佛告無盡意菩薩) 하시기를, 무진의보살에게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4.
善男子야 若有無量百千萬億衆生이 受諸苦惱하대 聞是觀世音菩薩하고 一心稱名하면
선남자 약유무양백천만억중생 수제고뇌 문시관세음보살 일심칭명
觀世音菩薩이 卽時觀其音聲하야 皆得解脫케하나니라
관세음보살 즉시 관기음성 개득해탈
선남자(善男子)야, 만약에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若有無量百千萬億衆生), 온갖 고뇌를 받고 있을 때(受諸苦惱),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관세음보살을 듣고(聞是觀世音菩薩) 일심칭명(一心稱名) 한다, 아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는 것을 일심칭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이름을 소?? 일컫는 거에요. 우리가 보통 기도할 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면서 하는 그 식입니다. 그렇게 할 거 같으면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즉시(卽時)에 관기음성(觀其音聲)하고 그 음성을 말하자면 잘 관찰해 가지고서 그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서 다 해탈하도록 해준다(皆得解脫)
5.
若有持是觀世音菩薩名者는 說入大火라도 火不能燒하나니 由是菩薩의 威神力故며
약유지시관세음보살명자 설입대화 화불능소 유시보살 위신력고
예컨대, 만약에(若有)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가지는 사람은(持是觀世音菩薩名者) 늘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 늘 관세음보살로 꽉 차 있는 사람, 이런 말이죠.
이건 이제 다른 의미로 보면요 관세음보살의 삶이, 관세음보살의 인생이, 말하자면 경전상에 나타나 있는 관세음보살이 살아가는 삶의 그 표현이 바로 자기화 되어버린 사람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인생이 내 인생이 되어 버린 사람이에요, 사실은. 그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가지는 사람은, 하는 이 말은 관세음보살의 삶이 내 삶이 돼 버리고 관세음보살의 마음 씀씀이가 내 마음 씀씀이가 돼 버린 사람이에요. 그 정도 된 사람입니다, 사실은요.
우리가 뭐 망상 부리면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또 법당에나 들어갔을 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또 이렇게 차나 타면은 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몇 번 부르고 그러다가 또 잊어버리고 또 차나 좀, 택시 같은 거 타도 조금 위험하게 달린다 싶으면 그때 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대중 웃음) 고속버스 타고 한참 가다가 잠 깨면은 그때 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또 보니까 너무 빨리 달리거든, 그러니까 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대중 웃음)… 이런 식으로 하는 관세음보살 정도가 아니에요 여기는. 그럴 때도 좋죠. 부르면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여러분들은 어떤지 몰라도 내 경험에 의하면은 상당히 편안해요.
내 그 전에 어릴 때 보문사 오르내릴 때 캄캄하거든요. 밤에 늦게 걸어 올라가고 차도 잘 없을 때라. 아주 숲 속으로 캄캄한 길을 가는데 아주 무서워요. 나는 또 무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 (대중 웃음.) 그런데 그 때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관세음보살 뿐이야. 그런데 마침 어떤 보살님이 한 분 또 어두울 때 같이 올라가게 됐어. 어디가냐 하니까 경연암 간다는 거야, 더 멀리 가는 거라. 그래서 아이 무서워서 어떻게 가냐고 그 걱정 하더라고요. 나도 이렇게 다니니까 보살님도 이렇게 다니면 괜찮을 거라고 경연암 아니라 뭐 어디라고 상운봉이라도 가실 수 있으니까 그렇게 가시오, 그렇게 한 경험도 있고 그래요. 나는 늘 그런 경우에 늘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다녔습니다. 그리고 뭐 차가 빨리 달린다 택시가 빨리 달린다 뭐 고속버스가 빨리 달린다 위험을 느낄 때 부르면은 하여튼 괜찮아요, 어쨌든. 괜찮고 내 마음 첫째 편안해.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해.
그러나 이 관음경에서 보문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런 어떤 일시적인 뭐 진통제같은 그런 관세음보살님이 아니라 말하자면 관세음보살의 삶이 관세음보살의 인생이 내 인생이 돼 버린 것. 관세음보살의 생각이 내 생각이 돼 버린 그런 정도의 삶입니다. 그렇게 돼야 이 모든 문제가 아예 없어요.
그렇게 되면 여기 보면 설입대화( 說入大火) 라고 해 가지고 지난 시간에 불에 대해서..분노의 불길이다 그랬어요, 분노의 불길이다. 뭐 손 대면 뜨거운 그런 불도 좋아요. 액면대로 그런 불도 좋지마는 정말 진짜 뜻은 분노의 불길이거든요. 하 그냥 가슴이 타잖아요. 온 세상을 다 태워 버리고 싶은 그런 분노의 불길, 이럴 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은 여기보면은 만약에 어떤 사람이 관세음보살을 가진 사람은 설입대화( 說入大火)라도, 혹 큰 불구덩이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화불능소(火不能燒) 한다, 불이 능히 그를 태우지 못한다. 왜 그러냐. 관세음보살의 위신력 때문이다( 由是菩薩의 威神力故), 그랬습니다.
그러면은 정말 관세음보살의 생각과 관세음보살의 정신이 내 정신이 돼 버린 그런 정도라면은 불도 만나지도 않습니다. 설사 만나도 그 불은 나에게 해당이 되지가 않아요. 왜냐? 참 이치, 참 이치로서 구제를 받는 것이 바람직한 구제다 그랬어요. 그러면은 참 이치란 게 뭐여? 내가 불길을, 뜨거운 불길을 만날 그런 상황이 그렇도록 돼 있어. 만나도록 돼 있는 불길이라면은 그건 당연히 만나야 돼. 당연히 만나야 할 불길을 만나는 사람은 이게 불길이 아니에요. 뜨겁지가 않습니다. 뜨겁지가 않다고요. 분노가 일어날 턱이 없는 거라.
아 그거 돈 백만원 빌렸다가 말이지 백만원 갚을 때에 무슨 분노가 나고 무슨 아까운 생각이 나겠어요. 약간은 나지, 약간 아까운 생각이, 빌린 돈을 갚는데도 약간 아까운 생각이 나지마는 그래도 한번 돌이켜 보면은 아무 것도 아니거든요. 금방 사라져 버린다고요. 또 대개 상식인이라면은 빌렸던 돈 갚으면서 아까운 생각 하는 사람 거의 없고 혹 일어난다손 치더라도 그건 금방 잠깐 일어났다 사라지는 마음이고 그런 생각이라.
그와 같이 이치를 꿰뚫어 본다면은 자기가 어떤 상황을 당하더라도 이것은 분노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설입대화( 說入大火)라도 화불능소 (火不能燒) 지. 설사 불길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 불이 나를 태우지 못한다는 거에요. 이치가 그렇게 돼 있어요. 참 이치, 진리, 진리. 이 종교나 철학에서는 한결같이 말하는 게 진리 아닙니까, 참 이치. 참 이치를 아는 거. 그게 말하자면 관세음보살의 정신이고 관세음보살의 마음입니다. 그쯤 되야 되는 거요.
내가 관세음보살 기도해서 제일 영험 많이 본 이야기 한마디만 하고 넘어가겠는데, 그 전 걸망지고 다닐 때 대전역에서 내렸어요. 대전역에 내렸는데 그 때 거기 뭐 어떤 사람들이 말하자면 뭐 수사관이라. 그래 수상해 보였는가 하여튼 가자고 그러더라고요. (대중 웃음.) 역전 역 바로 옆에 가면 그 사람들 사무실이 있어요. 사무실이 있는데 사무실에 가서 걸망을 전부 이렇게 뒤지는데 걸망 속에 다른 건 아무 것도 흠을 잡을 게 없었는데 편지가 한 장 있었는데 편지가 한 다섯 장 쯤 되는 그런 편지라. 그런데 딴 사람의 편지라. 내가 그걸 만나면 갖다 줄려고 도반 편지라서 그래서 넣어 놨던 건데 거기에 뭐 구례 오라고 하는 일 때문에 경찰의 욕을 잔뜩 써 놓은 그런 내용이 있는 거라. (대중 웃음.) 나는 그것도 몰랐어요. 남의 편지다 보니까. 그래서 그걸 꼬투리로 딱 잡아가지고는 가자고 하더라고요.
차를 딱 태우더만 산회본사(?), 지금도 안 잊어버려, 산회본사(?)라고 하는데 그거 대전역에서 얼마 안되는 데라. 무슨 회산가 그랬어, 그 때만 해도. (대중 웃음.) 그래 거기 떠억 데리고 가는 거야. 그런데 내가 하여튼 거기 붙들려 가면서부터 계속 관세음보살만 부른거야. 뭐 딴 생각 하나도 안하고 오로지 그저 관세음보살만 불렀는데. 참선하다가도 급하니까 관세음보살이 나오더라고요. 어쨌든. 화두도 필요없고 관세음보살만 찾는 거야. 그래서 관세음보살 계속 불렀는데 그 입구에 딱 들어가는데 열쇠를 이렇게 만지면서 열쇠를 하나 딱 꺼내는데 그 수위가 열쇠를 착 돌려서 보니까 그 열쇠를 하나 딱 꺼내 주면서 열쇠를 줄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람이 열쇠만 받았으면 나는 끝장 난 거야. 그 고문실에 들어가는 열쇠라 말하자면은.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떤 이유에선지 하여튼 열쇠 필요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데리고 본 사무실로 간 거야.
그래 하여튼 가도 나는 계속 관세음보살을 불렀지. 그래 가지고 그 사무실에 들어 가가지고 이런 저런 자기보다 상관한테 인도를 하는 거야. 그래 가지고 그 인도를 하는 과정에도 나는 건성이고 계속 그냥 관세음보살만 부르는 거지. 그래서 그 소장이 그 편지를 꺼내 놓고 둘이서 이야기 하고 이런 편지가 나왔다는 거야. 나는 보니까 본인은 아니고.
그래서 이 사람이 스님이고 하니까 이런 거 저런 거 불교에 대해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때부터는. 모여 앉아서 물어보고 그리고 이제 그 사람보다 상관이 물어보고 내가 이제 성의껏 대답해주고 하니까 아주 호의를 가지고 나를 대하고 한참 이야기하고 뭐 불교 이야기만 실컷 하다가 나왔어요. 그래서 내가 그것 참 못 잊어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슨 이치가 어떻게 됐든지간에 나는 하여튼 일념으로 그 순간 관세음보살을 불러서 그런 어떤 참 아주 크게 당할 뻔 한 것을 모면했다 하는 그런 생각을 하고 또 가끔 내가 범어사 다니면서 내가 옛날에 관세음보살 불렀던 그런 일들. 우리가 단순한 기도지마는 그런 영험이 틀림없이 있는 것이고 그건 우리가 쉽게 우리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마는
보다 더 바람직한 관세음보살에 대한 그런 신앙의 영험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관세음보살의 생각, 관세음보살의 사상과 그 정신이 내 것이 될 때 그 때 그건 뭐 너무나도 확실하고 분명한 그런 그.. 그리고 또 일시적인 것이 아닌 영원한 구제를 우리가 받을 수 있고 그런 영험을 그런 위신력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신앙하는 것도 사람 따라서 차원이 여러 차원이에요. 같지가 않습니다. 한국 땅에서 관음기도를 하는 사람이 백명이라 하더라도 사람 사람마다 다 달라요. 관세음보살에 대해서 느끼는 것도 다르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아주 쉽고 일상적인 관음기도가 있는가 하면 보다 더 차원높은 정말 법화경에서 우리에게 일깨워주고자 하는 그런 의미의 관음기도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곁들여서 아시라는 거죠. 그렇게 알면 그 다음 밑에 내려가면서 있는 이야기는 한결같이 그런 열쇠로서 열면은 다 납득이 됩니다. 이게 뭐 틀린 말은 결코 아니에요.
6.
若爲大水所漂라도 稱其名號하면 卽得淺處하며 若有百千萬億衆生이 爲求金銀瑠璃와
약위대수소표 칭기명호 즉득천처 약유백천만억중생 위구금은유리
硨磲瑪瑙와 珊瑚琥珀眞珠等寶하야 入於大海할새 假使黑風이 吹其船舫하야
자거마노 산호호박진주등보 입어대해 가사흑풍 취기선방
飄墮羅刹鬼國하니 其中若有乃至一人이라도 稱觀世音菩薩名者면 是諸人等이
표타나찰귀국 기중 약유내지일인 칭관세음보살명자 시제인등
皆得解脫羅刹之難하리니 以是因緣으로 名觀世音이니라
개득해탈나찰지난 이시인연 명관세음
약위대수소표(若爲大水所漂)라도, 이건 탐욕의 물결이다 그랬어요, 탐욕의 물이다. 분노의 불길, 탐욕의 물, 이렇게 으레히 경전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큰 물에 떠내려가는 그런 상황이라 하더라도 칭기명호(稱其名號)하면, 그 이름을 일컬을 것 같으면은, 즉득천처(卽得淺處)하며, 곧 얕은 곳을 얻게 되며.
그 정말 관음 신앙을 제대로 하는 사람 같으면은 일상에, 예를 들어서 이번에 뭐 인명 피해가 많았습니다마는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무모하게 살지를 않습니다, 무모하게. 대개 보면 무모하게 어떤 행동이라든지 그런 경우에. 좀 조심성 있고. 관세음보살이 얼마나 조심성이 많고 얼마나 지혜롭고, 얼마나 상황 파악을 잘 하는 사람입니까. 그게 우리 삶이 되야 된다는 거에요. 관세음보살은 무모한 분이 아니에요. 아주 지혜로운 분이야, 슬기롭고. 상황 파악을 잘 해. 물가에 괜히 차 대놓고 그렇게 앉아 놀고 그러는 분이 아니에요, 관세음보살님은. (대중 웃음.) 놀러 안 간다는 뜻이 아니고 놀러 가더라도 안전한 데서 놀고 비가 오고 그러면은 빨리 들어가든지 그럴 분이 관세음보살님이여. 늘 슬기롭고 지혜로운 거, 그걸 우리가 이야기 안 할 수가 없는 거죠.
약유백천만억중생(若有百千萬億衆生)이, 만약에 백천만억 중생이, 위구금은유리(爲求金銀瑠璃), 이건 이제 금은 유리, 자거마노(硨磲瑪瑙), 산호호박진주등(珊瑚琥珀眞珠等) 그런 보배(寶)를 구하기 위해서, 이건 우리가 돈 벌기 위해서, 이렇게 생각해도 좋아요. 입어대해(入於大海) 할새, 큰 바다에 이제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가사(假使), 가령, 흑풍(黑風)이, 아주 그 태풍이죠. 우리 지금 쓸고 간 그런 시커먼 바람, 태풍이, 취기선방(吹其船舫)하야, 그 선방이라고 하는 건 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큰 배, 작은 배, 이것을 전부 船이니舫이니 그렇게 표현을 해요. 그 배를 그냥 몰아쳐 가지고서 표타나찰귀국(飄墮羅刹鬼國)커든, 나찰귀국에 표류해서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 만약에(其中若有) 전체거나 아니면은 한 사람 만이라도(乃至一人)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를 것 같으면은(稱觀世音菩薩名者) 모든 사람들이(是諸人等) 곧 나찰의 난(羅刹之難), 나찰의 난에서부터 해탈을 얻게 된다(得解脫) 그랬습니다. 전체가 부르면 말할 것도 없고 한 사람만 제대로 관세음보살을 부른다 하더라도, 지혜로운 사람, 정말 자비와 지혜가 관세음보살처럼 충만한 사람이 그 가운데 한 명만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그런 난을 면할 수가 있겠죠.
이시인연(以是因緣)으로 명관세음(名觀世音)이니라, 이러한 인연 때문에 이름을 관세음이라 한다.
7.
若復有人이 臨當被害하야 稱觀世音菩薩名者면 彼所執刀杖이 尋段段壞하야 而得解脫하며
약부유인 임당피해 칭관세음보살명자 피소집도장 심단단괴 이득해탈
若三千大千國土에 滿中夜叉羅刹이 欲來惱人이라도 聞其稱觀世音菩薩名者면
약삼천대천국토 만중야차나찰 욕래뇌인 문기칭관세음보살명자
是諸惡鬼가 尙不能以惡眼視之어니 況復加害리요
시제악귀 상불능이악안 시지 황부가해
약부유인(若復有人)이, 만약에 다시 어떤 사람이, 임당피해(臨當被害), 피해를 당할 때를 임해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일컬을 것 같으면은 (稱觀世音菩薩名者),
피소집도장(彼所執刀杖)이, 그 사람이 누구를 찌를려고 했다든지 때릴려고 할려고 칼이나 막대기를 가지고 있다, 그거는 그 칼이나 막대기가 심단단괴(尋段段壞)라, 곧, 즉시에, 尋 자는 곧바로, 조각조각 깨어져 버리거나 부러져 버린다. 그래서 이득해탈(而得解脫) 한다, 그런 그 어려움에서부터 벗어나게 된다, 벗어남을 얻게 된다. 그런 상황도 안 만난다 이거여. 누가 칼 가지고 찌르려고 하고 막대기로 때리려고 하는 그런 상황을 안 만나게 된다.
약삼천대천국토(若三千大千國土)에, 만약에 삼천대천국토에, 만중야차나찰(滿中夜叉羅刹)이, 그 가운데 가득 차 있는 야차나 나찰들이 와서 사람을 괴롭게 하려고 한다(欲來惱人). 그런 어떤 험한 귀신들, 한다 하더라도
문기칭관세음보살명자(聞其稱觀世音菩薩名者)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일컫는 그 소리를 들을 것 같으면 모든 악귀(是諸惡鬼)가, 상불능이악안시지(尙不能以惡眼視之)여, 오히려 악한 귀신들이 오히려 그 사람을 나쁜 눈, 악한 눈으로서 바라보지를 못한다 이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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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若爲大水所漂라도 稱其名號하면 卽得淺處니라.ㅡ큰 물에 떠내려가는 상황이라도 관세음을 염하면 얕은 물이 되느니라._()()()_
고맙습니다 ()()()
스님께서 엉뚱하게도 큰일날 뻔 하셨던 일화도 소개되어 있네요. 그럴 때도 관세음보살!! ^^* 잘 읽었습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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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의 법비를 뿌려 주시는 보살님._()()()_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의 威神力 ...고맙습니다. 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_()()()_
어떤 일시적인 관세음보살님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의 삶이 내 인생이 돼 버린 것. 관세음보살의 생각이 내 생각이 돼 버린 그런 정도의 삶이 돼어야... 禪慧珠 님! 수고하셨습니다..고맙습니다._()()()_
우리모두 관세음 보살님 같이~~~~~()()()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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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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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觀世音菩薩이 卽時觀其音聲하야 皆得解脫케하나니라 .............
禪慧珠 님 ! 고맙습니다.
관세음 보살 보문품---법화경 전체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관세음 보살-- 지혜,자비를 겸비한 ,실천하는 불교의 가장 이상적 인간형
관세음 보살의 이름을 가지는 사람;자기의 삶이 관세음 보살의 삶과 하나가 된 사람,자기의 마음 씀씀이가 관세음 보살과 하나가 된 사람
----그렇게 되어야 모든 문제가 아예 없어진다,단순히 관세음 보살을 불러서 얻는 효과는 일시적인 진통제와 같다
참 이치로 구제받는 것이 바람직한 구제다-불길을 만날 인연을 지었으면 만나야지,돈을 꾸었으면 갚아야 하고
---인연 도리를 알면 분노의 불길이 일어나지 않는다
스님도 급하실 때 화두를 두고 관세음 보살을 부르셨네요.
관세음 보살을 불러서 영험이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보다 바람직한 것은 관세음 보살의 사상,정신이 내것이 될 때 확실하고 분명한,영원한 구제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