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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기영 감독 원작의 하녀가 신분상승 욕구가 대단했던 요부였다면, 임상수 감독의 하녀 은이(전도연)는 백치 같은 순수한 마음을 지닌 캐릭터로 그려진다. [미로비젼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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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본지가 영화계 전문가 20명에게 ‘올해의 기대작’을 물었을 때 ‘하녀’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1월 7일자 24면). 1960년대에 일찌감치 ‘컬트 감독’으로 불렸던 김기영 감독(1919∼98년) 원작, ‘칸의 여왕’ 전도연 주연, ‘바람난 가족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재능 넘치는 임상수 연출. 이 삼박자가 기대를 부추긴 요인이었다.
높은 기대는 고스란히 ‘하녀’가 넘어야 할 산이기도 했다. “왜 50년이 지난 지금 ‘하녀’를 리메이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짐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다. 각본·연출을 맡은 임상수 감독의 부담은 말할 것도 없다. 임 감독은 통속극적인 과감한 각색, 강렬하고 충격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두 가지의 결말, 700평 대저택 세트와 50억원 상당 미술품을 앞세운 고급스런 만듦새로 리메이크의 돌파구를 찾았다.
전도연의 안정적인 연기력을 믿고 띄운 승부수임은 말할 것도 없다. 국내 개봉과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상영을 앞둔 ‘하녀’의 선택은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까. ‘김기영+전도연+임상수’조합에게서 ‘웰메이드 상업영화’ 그 이상을 기대하는 시선을 딛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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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작 ‘하녀’. 김진규(왼쪽 위)가 방직공장 음악교사를, 이은심(맨 오른쪽)이 그의 집에 들어간 하녀 역을 맡았다. 당시 아역배우였던 안성기가 김진규의 아들(왼쪽 아래)로 나왔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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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비천한 이름=은이(전도연)는 훈(이정재)과 해라(서우)부부의 집에 하녀로 입주한다. 훈은 은이의 방에 한밤중에 들어와 몸을 요구한 뒤 거액의 수표를 던지듯 건넨다. 모든 걸 다 가진 훈에게 은이의 임신과 유산은 대수롭지 않은 일일 뿐이다. 은이는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비극적인 선택을 한다.
원작의 배경은 중산층이 막 형성되던 산업화 초기다. 갓 이층양옥을 지은 부부(김진규·주증녀)가 하녀(이은심)의 출현으로 인해 파멸을 맞는다는 줄거리다. 중산층 가정의 욕망과 붕괴, 계급갈등이 선연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2010년작은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노골적 비판을 시도한다. 백치처럼 순수한 심성의 은이는 팜므파탈은커녕, “멍충인 아닌데 딴 생각은 없는 것 같은” “백치 같은 년”이다. 영화는 “칸 경쟁작 중 가장 지루하지 않을 영화”라는 임 감독의 말처럼 끈끈하고 흥미진진하다. 그런 재미의 상당 부분은 은이를 둘러싼 속물들이 그리는 천박한 풍경을 지켜보는 데서 나온다. 실내에서 구두를 신어야 할 정도로 광대한 대저택은 졸부들이 벌이는 “아더메치한(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 생쇼의 무대다.
은이를 피해자로 조명하다 보니, 원작에는 없는 등장인물이 추가됐다. 해라 엄마 미희(박지영), 나이 든 하녀 병식(윤여정)이다. 두 사람은 속물근성의 집약체이며, 이 영화를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막장드라마와 같은 통속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인물들이다. 검사 아들을 둔 “인간승리” 병식은 자신의 이득을 따라 움직이는 기회주의자다. 미희는 은이를 유산시키려고 2층에서 밀어 떨어뜨리고, 딸에게 “넌 즐길 것 다 즐기면서 여왕처럼 살면 된다”고 부추긴다. 원작의 주요 모티프였던 쥐약은 은이의 보약으로, 계단은 샹들리에로 변주된다.
◆‘칸의 여왕’의 열연=50년의 시차를 두고 요부에서 백치처럼 순진한 피해자로 바뀐 은이의 캐릭터는 사실 영화적 맥락에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은이의 욕망은 육체의 본능, 신분 상승욕이나 모성애, 혹은 밟히니까 꿈틀하는 지렁이의 욱 하는 심정이라고 이해하기엔 충분치 못하다. 배우 스스로도 다소 답답했을 성 싶은 상황에서, 전도연은 열과 성을 다해 스스로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누구도 영화를 보고 나서 그에게 ‘몸을 사렸다’고는 비난하지 못할 정도로. 뒷모습과 가슴을 온전히 드러내는 베드신의 문제만은 아니다. 가령 파국을 맞기 전 실성한 듯 장난기 어린 듯 훈의 말을 따라 하는 연기, 미희와 병식에게 “그걸(임신한 걸) 다들 어떻게 아시고…”라고 무심코 주워섬기는 연기는 전도연 아니었으면 자칫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13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기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