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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감독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뮤즈, 연극 제작자, 스타일 아이콘, 두 권의 사진집을 낸 포토그래퍼. 배두나의 특이한 좌표를 설명해주는 수식어들이다. 그녀에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은 좀 더 특별하다. 이 영화로 칸영화제의 레드 카펫도 밟기도 했던 그녀는, 외로운 남자들의 성적 대상인 '공기인형'으로 태어나 '가져선 안 될 마음'을 가지게 되고 쓰라린 첫사랑을 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오직 배두나를 생각하며 쓴 시나리오"는 그녀에 의해 생생한 육체와 깊은 숨결을 얻었다.
글 l 박혜은(영화 저널리스트) 구성 | 네이버영화
감사하게도 고레에다 감독님이 부산영화제에 오실 때마다, 인터뷰를 하실 때 내 이야기를 하셨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를 보고 배두나의 팬이 되었다"면서 꼭 한 번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더라. 그제야 나도 감독님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내가 완전히 팬이 됐다.(웃음) 그러다가 봉준호 감독님을 통해서 "고레에다 감독이 배두나를 캐스팅하기 위해서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공기인형]이었다. 나에겐,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감독님도 시나리오를 보내면서 걱정하셨다. "좀 야해요. 괜찮을까요?"라고 먼저 운을 떼시더라.(웃음) 막상 시나리오를 봤더니, 너무 겁을 주셔서 그런지 생각보다 야하지 않더라.(웃음) 노출 신이나 특이한 설정보다 노조미의 마음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했다. 내가 원래 캐릭터를 분석하고 연구해서 연기하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영화를 하든, 단 한 장면이라도 내가 납득할 수 없으면 출연 자체를 거절하곤 했다. 배우라면 "나는 이런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바꿔주세요"라고 말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걸 못하기 때문에, 내 연기에서도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공기인형]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노조미의 마음이었다. 노조미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느끼게 하기 위해선, 내가 가진 마음을 모두 쏟아야만 했다. 그게 가장 어려웠다.
관객들이 그렇게 느껴줬다면 정말 좋겠다. 노조미는 인형이면서 인형이 아니고,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다. 내 생각에 '인형'을 꾸며서 연기하는 것도, '사람'을 강조하면서 연기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는 방향으로 연기를 했다. 울고 싶을 때도 울지 못하고, 웃고 싶어도 웃지 못하는 마음. 연기하면서도 너무 절제하는 거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이러다 관객들이 "쟤는 왜 연기를 안 하지?"라고 생각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그리고, 야한 건 별 문제 아니었다.(웃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독님을 믿었다. 노출 신이 있고 섹스 신도 있지만 그걸 선정적이거나 끈적거리는 느낌으로 그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현장에서 노출 신을 찍을 때, 나보다 오히려 감독님이 더 걱정하고 배려하셨다. 첫 장면에 마음을 가지고 움직이게 된 노조미의 전신을 비추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그냥 옷 벗고 밥 먹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웃음) 노조미에게 '벗고 있는' 것은 그런 느낌일 것 같았다. 감독님이 너무 긴장하셔서, 오히려 내가 나서서 긴장을 풀어드리는 형국이었다. "이렇게 엉덩이가 큰 인형이 어디 있을까요?"라고 농담을 했더니, "예쁘니까 괜찮다"면서 막 웃으셨다. 노출 연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전에는 여자로서의 두려움이 있었다면, 지금은 배우로서의 두려움이 있을 뿐이다. 내가 이 장면을 제대로 연기해낼 수 있을 것인가만 걱정했다. 결과적으로 감독님이 아름답게 찍어주셔서 개인적으로도 기분이 좋다.
어떤 연기적 스킬을 사용했다고 할 수 없다. 초반의 노조미는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아이 같다. 이것저것 다 신기하고, 남을 따라 하면서 말과 행동을 배운다. 그냥 나 스스로도 모든 것을 처음 접한다고 생각했다. '인형이라면 이럴 것이다'보다는, 내가 무엇인가를 처음 봤을 때 느끼는 신기함을 순수한 마음으로 연기했다. 물론 특수분장의 효과도 톡톡히 봤다. 그리고 바람이 빠지는 사고를 당하고, 준이치(아라타)의 숨으로 공기를 채운 후에 노조미에게 진짜 '생기'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진심으로 웃고, 진심으로 떨리고, 진심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생기더라. 그 이후부터는 화장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노조미를 연기했다.
나도 소문은 익히 들었다.(웃음) 나는 [공기인형]의 시나리오를 전체를 모두 받았는데, 예전에는 절대 전체를 주는 법이 없었다고 하더라. 감독님과 전작들을 함께 찍었던 아라타가 이야기하는데, 그날 촬영할 시나리오만 건네주고, 그것마저도 다른 배우들의 대사는 오려내고 주셨다고 한다. 배우들이 미리 캐릭터와 상황을 짜놓고 연기하는 걸 싫어하신다는 거다. 쉽지 않은 작업 방식이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나와는 잘 맞았다. 나 역시 미리 연습한 걸 그대로 현장에서 재현하는 방식의 연기는 잘 할 줄 모르니까. 현장에서 감독님과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할 여유는 없었지만, 노조미의 심경이 큰 변화를 일으키는 장면들을 찍을 때는 감정의 수위를 바꿔가면서 여러 번 촬영했다. 그 중에서 감독님이 전체적으로 영화에 어울리는 장면을 채택했는데, 내 의견도 많이 수용해주셨다. 아라타의 말로는 특별 대우였다고 한다.(웃음)
맞다. 감독님 스스로도 [공기인형]을 통해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예를 들면, 감독님 영화 중에는 배우가 펑펑 우는 신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공기인형]에선 노조미가 환상 속에서 펑펑 우는 신이 나온다. 이 장면도 여러 버전으로 찍었는데, 결국 우는 장면을 쓰셨더라. 고레에다 감독님은 감정의 절제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공기인형]을 기점으로 감정을 폭발시키고 드러내는 첫 시도를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폭이 더 넓어진 계기가 된 작품에 출연하게 돼서 자랑스럽다.
처음엔 지금처럼 대사가 많지 않았다. 감독님도 처음에 "인형이니까 말을 많이 안 해도 괜찮다"고 하셨는데, 촬영을 하면서 대사가 점점 늘어나는 거다! 이전에 일본영화 [린다린다린다](2005)를 찍은 경험은 있지만, 그땐 한국인 유학생이었다.(웃음) 그땐 일본어를 현지인처럼 완전하게 소화하는 수준은 아니었는데, 이 영화를 찍으면서 정말 많이 늘었다. 개인적으로는, 배우가 하고자 마음을 먹으면 안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공기인형]을 하면서 마음에 품었던 원칙이 하나 있다. 노조미가 심각한 상황에서 대사를 할 때, 절대 일본 관객들이 (어설픈 일본어 때문에) 웃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연기를 못해서 고레에다 감독님의 영화를 망치는 걸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일본어 대사를 모두 녹음해서 매일 들었고, 한 줄의 대사를 몇 십 번씩 반복해서 입에 붙였다.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억양이나 발음이 이상하면 가차 없이 지적해달라고 스태프에게 부탁했다. 영화에서 그런 노력이 보였다면 정말 다행이다.
일본 영화계가 꽤 보수적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많은 상을 받게 될지 생각 못했다. 일본 기자들이 물어보는 건, 거의 비슷하다. 어떻게 고레에다 감독과 함께 작업하게 됐는지, 연기하면서 어땠는지…. 일반적인 질문이 많았다. 오히려 기억에 남는 건 일반 관객들이 남긴 평이다. 많은 관객들이 "배두나 예쁘다"라는 거다. 태어나서 예쁘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웃음)
사실 내가 예쁘진 않지 않나.(웃음) 귀엽다는 말은 조금 들었는데,(웃음) 예쁘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기분이 얼떨떨하더라. 일반 관객들이 내 연기가 좋았고 노조미가 예뻤다고 말해준다는 건, 나의 마음이 전달됐다는 거니까 그게 가장 행복했다.
정말 그렇게 보였나? 나도 항상 인물을 하면서 현실적이면서도 한 구석은 반드시 판타지가 담긴 연기를 해왔다. 혼자만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 점을 봐주는 사람이 있다니 놀라운데?(웃음) 노조미만큼 진을 빼고 연기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마음가짐이 좀 다르기도 했다. 일본 영화에 한국 배우가 주연을 맡는 건 흔치 않은 경우인데,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힘들고 지친 내색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게 노출 신이든, 감정적으로 끝까지 가는 신이든 혼자 감당하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부분도 있다.
사실, 상을 받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둔 적이 없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레드 카펫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나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배두나는 패션에 관심이 많다"는 생각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웃음) 그래서 칸에 도착하자마자 감독님에게 불평했다. 잠시도 쉴 틈 없이 끊임없이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바닷가도 못 가보고 거의 갇혀 살았으니까. 그런데 레드 카펫에 딱 올랐을 때는 약간 다른 생각이 들더라. 더 대단하고 더 훌륭한 배우가 되고 난 뒤에 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직은 내가 국제영화제에 설 만큼 대단한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열심히 더 좋은 작품들을 많이 해서 자주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진을 찍고, 책을 내고, 연극을 제작하는 일은 내게 영화가 안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이 없어서 다른 일을 하며 잠시 시간을 보낸 것이지, 새로운 일을 찾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나의 직업은 단 한 가지, '배우'다. 배두나라는 이름 앞에 '배우'만 붙으면 된다. 다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단 한 장면이라도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영화를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프로라면 그렇게 일을 가려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나도 고민을 하곤 한다. 이렇게 영화를 내 기준에 맞춰 선택하다가는 배우로서 대중과 멀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내 깜냥이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걸 어떡하나. 대신 내가 선택한 영화는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다. 한 톨의 에너지도 남지 않을 만큼 모든 걸 쏟아 넣는 거다. 종종 너무 힘들 때도 있지만, 버릇이 됐는지 이젠 익숙하다. [공기인형]으로 그렇게 진을 빼고 나서 한동안 좀 쉬고 싶을 줄 알았는데, 벌써 또 연기가 하고 싶다. 단 한 순간도 연기를 쉬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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