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조배, 성체흠숭의 은총
루브르 박물관 화재와 장군의 회개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자연의 힘을 다루는 당신의 전능을 성체의 은총을 통해 자주 보여주신다. 물론 성체 안에서 은총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 바로 그분이시다. 예를 들어, 1661년 파리의 루브르 왕궁에서 성체의 기적이 일어났는데, 프랑스 역사에서 유명한 어떤 사람에게 가톨릭 신앙이 진리라는 것을 납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의 프랑스 왕 루이 14세(1638-1715)는 문화와 예술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프랑스를 군사적 학문적 문화적인 측면에서 유럽의 주도 세력으로 만들었다. 루이 14세는 국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받는다는, "하나의 신, 하나의 신앙, 하나의 법, 하나의 왕"이란 원칙을 천명하며 “태양왕Le Roi Soleil"이 되었다. 또한 그는 가톨릭 신앙이 왕국의 유일한 종교이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에서 칼빈주의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리는 위그노파들이 개종을 하면 특권을 허가했고, 개종하지 않는 수천 명의 칼빈주의자들은 권리를 박탈당한 채 외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한편 당시의 총사령관인 앙리 드 라 투르도베르뉴Henri de la Tour d'Auvergne, 즉 튀렌 백작(1611-1675)은 젊은 왕 루이 14세에게 눈엣가시였다. 튀렌 백작은 유명한 가문인 라투르 도베르뉴 가문 출신으로 당대에 아주 저명한 최고 지휘관이었으며, 프랑스 군사 역사상 단 6명만 임명된 '프랑스 대원수大元帥, Marshal General of France' 중 1명이었다.
사람들은 이 군사 천재를 "튀렌"이라고 불렀으며, 그 당시 모든 면에서 가장 올바른 사람들 중 하나이며 가장 성공한 장군으로 생각했다. 왕 루이 14세도 "튀렌"을 높이 평가했다. 사실 스물세 살의 루이 14세의 전제군주로서의 첫 번째 공무집행 중 하나가 쉰 살의 튀렌을 "왕의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튀렌은 프로테스탄트 부모에게서 태어나 칼빈주의자였다. 그는 20년 전에 리슐리외 추기경의 조카딸과의 결혼 제의를 거절했듯이, 개종을 권하는 왕의 제안도 단번에 거절했다. 그로서는 개종은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1652년 어느 프로테스탄트 장관의 딸을 아내로 맞았었다. 이 때문에 루이 14세는 최고의 훌륭한 군사 지휘관 튀렌이 가톨릭 신자가 되기만 하면, 공석인 총사령관의 자리에 앉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루이 14세는 성 빈첸시오 드 폴의 제자이며 당대의 저명한 설교자이고 자신이 무한히 신뢰하는 자크 베니뉴 보쉬에 주교(1627-1704)에게, 튀렌을 가톨릭 신앙의 진리에 눈뜨게 할 임무를 맡겼다. 보쉬에 주교의 달변,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주교의 수많은 저서, 튀렌과의 수많은 신앙 대화 덕분에 이 칼빈주의자의 신념을 강하게 부서뜨리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튀렌을 가톨릭 신자로 만드는 것은 성공하지 못했다. 튀렌은 그리스도교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분리된 것은 정말로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성체 안의 예수님 현존에 대한 가톨릭 교리는 그에게 걸림돌이었다. 그는 자주 탄식했다. "아, 내가 그것을 확신할 수 있다면 .… 그러면 정말 끊임없이 예수님을 흠숭했을 텐데!"
루브르 박물관은 처음에는 요새였다가 수차례의 확장 끝에 프랑스 왕의 궁전이 되었다. 그리고 1682년 루이 14세(위의 석상)가 베르사유 궁전에 거처를 정하고 루브르를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는 장소로 정하면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관이며 박물관이 되었다.
군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휘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앙리 드 라 투르 도베르뉴(튀렌) 백작은 고결하고 겸손했다. 그는 휘하 부대에서 전우로서 사랑받았고 지휘관으로서 존경받았다. 전장에서 포탄을 맞고 전사했을 때는 적군들마저도 그에게 애도를 표할 정도였다. 루이 14세는 “자신의 총사령관을 왕들이 묻히는 생 드니 납골당에 안장하도록 명했다. 프랑스대혁명 후에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튀렌은 앵발리드 군사박물관에 마지막 안식처를 찾았다.
역사가 정확하게 증명하는 대로, 1661년 2월 6일, 루브르에 화재경보가 갑작스레 울렸다. 튀렌은 바로 그때 그곳에서 보쉬에 주교와 또다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루브르 궁전과 그 옆 튈르리 궁전을 연결하는 루브르 궁전의 왼쪽 측랑 쁘띠 갤러리에 있는 엄청난 예술품들이 화마의 위협에 놓이게 되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불길이 치솟아 맹렬히 번져나갔다.
그 순간 튀렌은 불이 난 곳으로 달려가서 직접 사람들을 지휘하며 진화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바로 그때, 역사책에는 언급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거대한 불길을 보자마자 보쉬에 주교는 궁정 성당으러 달려가더니, 성체가 현시된 성광을 손에 들었다. 곧이어 갤러리 입구의 작은 종으로 성체의 거동을 알렸다.
불을 끄던 사람들은 다가오시는 성체를 향해 양쪽으로 갈라졌다. 보쉬에 주교는 성광의 성체를 모시고서 단호한 자세로 자욱한 연기를 뚫고 걸어가더니 불길에 대고 강복하였다. 그 성체강복과 동시에 순식간에 바람이 잦아들 더니 번져나가던 불길이 사그라졌다.
이 기적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한목소리로 "떼 데움Te Deum”(하느님께 바치는 감사와 찬미의 노래)을 바쳤다. 튀렌 장군도 알 수 없는 힘에 사로잡혀 무릎을 꿇고 성 체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 생전 처음으로 흠숭을 바쳤다. 그리고 그는 보쉬에 주교를 따라 성당에 들어갔다. 보쉬에 주교는 감실에 성체를 다시 모셨다.
그 후 태양왕 루이 14세는 쁘띠 갤러리를 복구해서 아폴론 갤러리로 확장했다. 오늘날 아폴론 갤러리에는 프랑스 왕실 보석들과 귀중한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고,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런데 이보다 중요한 사실은,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 튀렌 백작에게 끼친 영향이다. 왕과 주교가 성공하지 못했던 것, 쉰일곱 살의 칼빈주의자 총사령관 튀렌 장군이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한 것이다. 부인과 사별하고 2년 뒤인 1668년 10월이다.
<Triumph des Herzens nr. 166>에서
이선영 옮김
Te Deum 떼 데움
찬미하나이다 우리 천주여
주님이신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영원하신 아버지를
온 세상이 삼가 받들어 모시나이다.
모든 천사 하늘들과 그 모든 능한 이들
케루빔과 세라핌이
끊임없이 목청을 높이어 노래 부르오니,
거룩하셔라, 거룩하셔라
온 누리의 주 천주 거룩도 하시어라.
엄위로운 당신의 영광
하늘과 땅에 가득도 하시어라.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대열
그 보람 뛰어나신 선지자의 대열
눈부시게 무리진 순교자들이
아버지를 높이 기려 받드나이다.
땅에서는 어디서나 거룩한 교회가
그 엄위 한량없는 아버지를
뫼셔야 할 친아드님 당신 외아드님을
아울러 위로자 성령을 찬미하나이다.
영광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여
당신은 아버지의 영원하신 아드님,
인간을 구하시려 몸소 인간이 되시고자
동정녀의 품 안을 꺼리지 않으셨나이다.
죽음의 가시를 쳐버리시고
믿는 이들에게 천국을 열어주셨나이다.
지금은 천주의 오른편 아버지의 영광 안에 계시어도
심판하러 오시리라 우리는 믿나이다.
보배로운 피로써 구속받은 당신 종들
우리를 구하시기 비옵나니,
우리도 성인들과 한몫에 끼어
영원토록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주여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고
당신의 기업을 강복하소서.
그 백성 당신이 다스리시고
영원까지 그들을 이끌어주소서
나날이 주님을 기리는 우리 세세대대 당신 이름 기리오리다.
비오니 주여 우리를 지키시어 이날에 죄 없도록 하여주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당신 자비를 우리에게 내리시어
당신께 바란 대로 되게 하소서
주여 우리 당신께 바랐사오니 영원토록 부끄럼이 없으리이다
(마리아지 2024년 1•2월호 통권 243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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