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
: 많은 절에서 정월이면 방생법회를 엽니다. 매스컴에서
무분별한 방생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지적이 있기도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물고기 방생은 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答 : 예로부터
방생은 불교와 민간에서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 주로 음력
3월3일, 8월15일에 행해졌지만 지금은 일년 중 날짜를 정하지 않고 자주 방생법회를 엽니다. 특히 정월방생은 백일기도 회향과 정초기도에 맞추어
중요한 행사로 자리잡았습니다. 기도의 공덕을 잘 회향하고, 한 해의 시작을 공덕 쌓는 것으로 출발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생의 정신보다는 형식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질문에서처럼 우리는
방생에 관해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선 방생이 주로 물가에서
행해지는데, 외래어종
방류로 인한 생태계 혼란의 문제입니다.
예전에 블루길이나 베스같은 외래 육식어종의 방생으로 인해 우리
토종어류가 피해를 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방생지역 생태계에 맞는 어류를 선택하도록 신중을 기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사찰에서 신도들에게 잘 알려야 합니다. 지금은 많이 시정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 불자들의 인식
전환이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제가
군승(軍僧)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인연이 있는 절에서 저의 부대지역으로 방생을 오곤 했습니다. 참여하는 불자님들이 많은 관계로 장소나 편의시설을
도와드리면서 저도 방생법회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방생을 위해 많은 불자님들이 준비해 온 물고기나 자라
같은 어류들을 한 쪽에서는 놓아주고
다른 쪽에서는 다시 잡아 현장에서 되파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공덕을 쌓으려고 물고기를 방생하는 것은 그렇다하더라도, 물고기를 풀어주고 잡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정작 물고기들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 좋자고 물고기를 고생시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행위입니다. 물고기 방생은 상징적인 의미로 행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불교에서 방생은 불살생(不殺生)의 가르침과 더불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살생을 금하는 것이 소극적인 선행의
방법이라면 방생을 행하는 것은 보다 적극적인 작선(作善)의 방법입니다.
물고기 등의 미물을 풀어주는 것은 물론 생명이 제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모든 생명을 위협하는 환경파괴, 생명경시의
풍조를 바로잡는 것도 넓은 의미의 방생입니다. 또 어려운 조건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고 도움을 주는 것도 방생입니다. 그래서 절 집에서는 방생을 자비방생(慈悲放生)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정신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최근에는 물고기 방생의 대안으로 인간방생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근무하는 군장병을
위문하는 일,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환경보호를 위해 자연보호 활동을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등의 자비의 복지행으로 방생을 대신하는 사찰과
불자가 늘고 있습니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철저한 인과법은 다른 사람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는 일이야말로 자신에게 이익이
됨을 알려줍니다. 이것이 사람을 넘어 모든 생명에게로 확대된 것이 방생의 참된 의미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환경파괴와 생명경시의 풍조가 만연된
때에는 다른 생명체에 대한 배려와 봉사가 절실합니다. 인간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 자연과 환경, 더 나아가 모든 생명을 중시하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됩니다.
방생이 진정으로 복(福)의 종자(種子)가 되어 모든 일을 성취시키는 인(因)과 연(緣)이 되기 위해선 방생의
의미를 보다 철저히
이해하고 나 이외의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방생법회는 자주 열어야 할 소중한 법회가 아닐까요?
첫댓글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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