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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한통의 메일을 재전송 받았읍니다.
동창여러분 건강 유의하시고, 그리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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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제일 입니다
아래 내용은 폐암으로 투병하면서 임종 몇일전에
삼성전자 프린팅사업부 최성욱대리께서 남기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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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으로 춥고, 낮에는 조금 포근한 늦가을이 되었네요.
제가 회사를 휴직 신청한지가 벌써 6개월째 에 접어 드는군요
회사 생활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다시금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나기 시작합니다.
그 동안 지내 온 소중한 시간들은 직장상사님, 동료,후배 분들이 보내 준 격려로
열심히 병마와 싸워 이기겠다는 의지로 보낸 시간과 그 병마가 가져다 주는 통증과
고통 속에서 나약해져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교차하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제 생활을 송 두리 채 바꾼 병의 발단은 작년 건강 검진 때 였 습니다.
2000년 11월 사원 종합 검진 후 강북삼성병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검진결과 혈액검사에서 대장암 소견이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배가 아프지 않느냐, 변은 정상적으로 보느냐 등의 질문을 하고
나는 정상적 이라고 얘기를 했고 병원에서는 정밀검진을 받아 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일본 출장 7일간을 보낸 후, 강북삼성 병원으로 갔습니다.
내과의와 상담 후 정밀검진을 받았습니다.
초음파,위장 조형술,위장X-Ray,위내시경,대장내시경,CT등 7개 항목을 검사하는데
무려 20일 넘게 걸렸습니다. 물론 검사 일은 매번 월휴 처리를 해야 했고 회사의
사무실이전 (기흥->수원)과 과제업무 가 많던 때여서 시간적 부담 및 정신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되었습니다.
이때까지 만해도 제 몸이 특별히 아프다거나 그런 증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정밀검사 결과도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2001년 2월부터 오른쪽 명치 옆이 조금씩 아프고, 가끔 급체한 것 같은 느낌
이 간혹 들곤 했습니다.
소화기 쪽은 강북삼성병원에서 정밀검진까지 했으니 크게 잘못 되지 않았으리라 믿었고
아내와 토/일요일 오후에 같이 한의원에 가서 나란히 침을 맞고 했었습니다.
아내는 늘 오른쪽 어깨 결림이 심했거든요.
그러나 아프던 부위는 계속 아팠습니다. 오른쪽 명치끝부위의 통증을 견딜 수 없게
되었고 오른쪽 가슴 쪽의 피부가 만지면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근처 내과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또 했습니다.
아무렇지 않다는 얘기. 진통제만 처방을 받았습니다. 이러다 낫겠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밤에 잠을 자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옆으로 눕거나, 편안히 눕거나 할 수가
없고 거의 앉은 자세로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잠을 잘 때 뒤 척 일수 없으니
1시간 정도 자다 깨고 자다 깨고 반복되니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살이 빠지기 시작했고 머리가 멍해지곤 했습니다.
동 수원 병원, 성 빈센트병원을 이젠 아주 대 놓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병명없음.
난 정말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고 병원에서는 이상소견이 없다는 겁니다.
했던 검사 또 하고 해도 나타나지 않는 병. 몸은 아파서 어쩔 수 없이 동 수원 병원에
입원 다시 정밀검진을 받았습니다.
X-Ray, 동위원소, 위 내시경 검사 등 3일 입원해서 얻은 결과도 이상없음 이었습니다.
이젠 옆구리까지 결리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는 계속 진통제만 주더군요. 6월이 되었고 어느 일요일 집에서 쉬다가
몸이 하도 아파 동네 병원에 가서 X-Ray를 다시 찍었습니다.
드디어 나타난 늑막에 물고임. 결핵도 조금 보였습니다.
동 수원 병원에 가서 다시 X-Ray 촬영을 하고 보니 동일했습니다.
동 수원 병원에서 입원 정밀검진을 했을 때 검사했던 X-Ray Sheet에서도 약간의
물고임 흔적이 보였는데 그냥 넘어간 내과의 과장이 괘씸해져 보이기 까지 했습니다.
삼성의료원으로 내진 기관을 바꿨습니다.
그전에 아내가 여러 번 더 큰 병원에 가보자고 하였으나, 계속 정밀검사를 위해 이전에도
휴가를 많이 내었었고 바쁘던 회사일 때문에 그러지 못 했던 것이 이제 후회로
남습니다.
삼성의료원 내원하여 늑막에 물 고인 것을 빼내고, 2주 후 다시 내원하여 상담 때
입니다
김교수 : 역시 결핵으로 늑막에 물이 고인 것이네요. 아! 잠깐 이거 안 좋은 소식을
전해 드려야 겠네요.
그러더니 저보고 나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5분 정도 경과 후 들어오라고 하더니, 물이
또 찰 수가 있으니 흉 막 유착수술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입원수속을 하고 병실이
나면 오라고 그 때 뵙자고 하더군요.
상담실을 나온 아내가 울면서 화장실로 가고 다녀 온 아내에게 뭐라고 얘기하더냐고
하니까 내가 들은 수술 얘기만 하더라는 겁니다.
왜 우냐는 질문에 여윈 당신이 수술을 한다니 안쓰러워서 그런 다는 거였지요.
병원에서는 보호자에게만 암이라는 얘기를 전하면서 본인에게는 알리지 말라는 말을
했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7월8일 병원에 입원. 이것 저것 검사를 많이도 하더군요. 심심 하지 않을 정도로
데리고 다니면서 검사하고 밤에도 잘만하면 와서 피 빼어 가고, 혈압재고, 체온재고
이틀 후 수술대에 난생 처음 누웠습니다. 마취제가 투여되고 한쪽 눈이 먼저 감기고
한쪽 눈으로 수술조명을 보다가 하얘지는 세상이더니, 깨니까 회복실이더군요.
수술 후 많은 사람들이 문병을 왔습니다.
그 동안 못 보던 사람들까지 많이도 오더군요.
참 좋았습니다. 근데 전 이때까지도 제 병명을 몰랐습니다. 문병 온 사람들은 제 병명을
알고(물론 내게 얘기는 안 했지만)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습니까.
입원 중 어느 날
김 교수가 병실에 들러 하는 얘기가 동위원소 검사에서 뼈로 전이 된 것을 주치의에게
얘길 하면서 항암치료를 미뤄야 겠다는 얘길 하는 겁니다.
아내를 다그쳐서 들은 청천벽력 같은 한마디.
폐암
당장에 주치의를 찾아가 물어 보았습니다. Chest CT를 보여 주며, 이게 안 좋은 그거
라며 내가 완치 할 수 있 냐 는 질문에, 완치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믿었습니다. 폐암 2기라는 말을
당장은 결핵과 등뼈 전이로 항암치료는 불가능 했고 통원 방사선 치료를 10회 실시
했습니다. 다시 동위원소 검사를 했더니 좋아졌다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기뻤습니다.
그 후 집에서 며칠을 지내면서 인터넷에서 보니 폐암2기는 수술로 완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아내에게 수술을 하겠다는 얘길 했고, 그러다 아내가 떼어 논 회사 및
보험사에 전달할 내 진단서를 보았습니다.
"고식적 방사선치료 및 항암치료 필요" 라고 주치의 의 진단이었습니다.
고식적이라는 말의 뜻은 완치할 수 없는 환자에게 생명을 늘이거나 고통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치료 라는 걸, 치료가 가능한 것을 근치적 치료라고 한다는 얘기를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났었습니다.
아내에게 또 다그쳐 물으니 말기 병기라고 했습니다.
절망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본 말기 병기의 생존기간은 고작 6개월 정도 이었습니다.
내 살아온 모든 게 아무 것 도 없는 백지 상태처럼 보였습니다. 밤에 혼자 깨어
자고있는 철부지 내 아이들을 보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아들 하나 믿고 살고 계신 연로하신 부모님이 걱정되어 또 울었습니다.
만약 내게 형이나 남동생이 하나만 있었어도 이만큼 부담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 이 들곤 했습니다.
주저 앉을 순 없었습니다.
일산에 있는 국립 암센터를 찾아 갔습니다. 5시간 여를 기다린 끝에 들은 얘기
"더 도와 드릴 것이 없네요" 삼성의료원 치료를 믿고 그대로 따르라는 얘기 였 습니다.
아내는 이제 민간요법으로 치료 키 위해 동분서주하며 별의 별걸 다 사 오기 시작했습니다.
없는 식욕에 민간요법 약 먹다, 진통제 먹다, 병원에서 준 약 먹다 보면, 하루종일
약만 먹는 시간이었습니다.
흉막 유착수술 후에도 오른쪽 명치끝과 배가 아픈 것은 낫지 않았고, 아파서 많이
걸어다니지 못하니 운동량은 없고 먹는 게 부실하니 점점 쇠약해져 갔습니다.
멀리 가지는 못하고 아내와 가까운 곳 만 그것도 아주 간혹 조금씩 다니곤 했습니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어 녹음의 푸르름 이 형형색색의 옷들로 갈아입고
추석이 되었지만, 객지 생활 후 처음으로 고향에 가질 못 했습니다.
커다란 보름 둥근 달과 고향을 향해간 이들의 불꺼진 아파트의 고즈넉한 풍경
아내와 덩달아 아무 곳에도 못 가보는 내 아이들과 집에 있으니, 처음으로 느껴 본
허전하고 황량한 느낌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건강은 나날이 조금씩 나빠져 오기 시작했고 이젠 몰핀 이라는 먹는 마약성 진통제로
모자라 펜타닌 이라는 몸에 붙이는 마약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는 통증을 줄여 주나 내 몸의 신경과 소화기계에 많은 영향을 미쳐
속이 거북함, 변비, 정신몽롱 등의 부작용도 많았습니다.
이때부터 난 2개의 마음속에 날 지배 당하기 시작 했습니다.
살아야 한다는 마음과 말기의 암을 더 이상 고통 속에서 견딜 수 없어 포기해야 한다는 마음.
모든 것 들이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마음이 나서고 답답했습니다.
점차 시들어져 가는 정신력. 포기의 힘이 강했나 봅니다.
다시 병원에 입원 했습니다.
아주대 병원에서 5일간의 병원생활. 상복부,하복부 신경차단수술을 받고 조금이라도
아니 몇 일 이라도 더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아주대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1 Cycle 받았습니다.
비싼 약재 값에 비해 좋아질 확률보다는 안 좋을 확률이 높다고 했고, 그 누구도 항암
치료를 받지 않고 어떨 것 이라는 얘기를 할 수가 없기에 그리고 내게도 희망의 풀 한 포기
같은 것 이라도 있어야 삶에 집착할 것 같아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늦게 항암치료를 받게 된 듯 하네요. 체중이 초기보다 많이 떨어져 있고
지금 내가 생각해도 너무 쇠약해, 조금의 항암제에도 이겨내질 못하니까요
환자 자신의 의지대로 병원시술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병원의 의지 대로 환자가 끌려
다녔다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더 아파지는 몸, 숨쉬기 거북함, 백혈구 감소로 어지러움 등의 항암치료 부작용이
많고
착실하게 열심히 살던 제 인생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것과 그 병을 조기에 찾아내지
못한 것이 회한으로 남습니다.
병원을 다니지 않다가 말기 병기라는 것과 아파서 계속 병원을 다녔음에도 찾지 못하다가
갑자기 말기 병기 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의 차이 때문 일 것 이라는 생각입니다.
병중 어느 날, 책을 읽고자 서점에 들러 저자 박 완서 의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이라는 책을 집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집게된 책 내용이 나와 동일한, 정말 나와
똑 같은 경우를 당한 사람의 얘기가 나오더군요.
나와 시술까지도 꼭 같고, 암도 나와 동일한 비소세포성 선 암 이었습니다.
운명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그 책을 다 보는데 보름이 걸렸습니다. 마음이 너무
상해서 자꾸만 책을 놓게 되었고, 그 책에 나오는 다른 한 명은 동일 병명으로 조기에
발견되어 수술 로 완치가 가능했는데도 지레 겁을 먹고 자살을 택한 어리석은 사람
이 있었구요.
저의 병의 경우는 흉 막에 물고임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비소세포성 선 암은 폐의 끝부분에서 잘 생기며 임파절이나 다른
장기로의 전이 가능성이 크다. 폐 주변부에서 주로 발견된다. 여성에서나 담배를
피지 않는 사람에게서 주로 발병하며 전이가 잘되는 암 종으로 림프절 이외에도
간,뇌,뼈 그리고 부신 등에 전이가 된다라고 했고, 폐암은 주로 50~60대에 60%이상
발병하는 병이고, 전 담배를 피우긴 했지만 오래 동안 그리고 많이 피운 편은 아니
었 습니다.
폐에 생긴 암은 충분히 제거가 가능 했지만,흉 막에 물이 찼을 때 다른 장기로의
전이가 의심되었고 수술 시 더 빨리 번질 수 있다는 의료진의 판단아래 수술이
불가능 했습니다.
이렇듯 젊은 나이에 갑자기 닥친 병마 걷 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 버린 변형된 세포
그 고통은 나 만의 것이었고 나는 다른 사람들 과는 단절된 세상에 있는 듯 했습니다.
어제까지는 같이 웃고 떠들던 동료가 오늘 문병 와서 마주 대하니 그 와 난 영 다른
세상 사람 같은 낯 설은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하지만 상사님, 동료 분 들이 가족 같이 걱정하고 위로 해 주었고 나눠 준 마음을
고맙고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아주대 병원 입원 때 본 그 아름답던 단풍과 벽에 널린 담쟁이 넝쿨, 그리고 나을 수
있는 병을 가진 환자는 얼굴에 웃음과 건강 해 질 것 같은 느낌이 있었고, 불치의 병
을 앓고 있는 것 처 럼 보이는 이는 정말 웃음이 사라진 근심 어린 얼굴이었습니다.
거울을 통해 보는 내 얼굴과 몸은 이제 정말 가지만 남은 듯 앙상하고, 얼굴은 너무
까매져서 내가 봐도 안쓰럽기 그지 없네요.
제 넋두리 같이 길게 쓴 이 글은 더 많은 정을 남겨 주지 못한 내 가족과 회사 가족들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에 아쉬움이 남아서 일겁니다.
상사님,동료 여러분들은 건강을 잃지 않길 바랍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 이 새롭게 다가 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주위의 아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세요.
웃음이 있을 때 가정과 당신은 행복 한 겁니다.
회사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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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성 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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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데~ 쉽지가 않지요? 알때는 이미 늦은경우가 많습니다. "건강신경 씁시다" 먼저간 동창이 여섯이나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