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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소천면 “낙동강 비경길”을 걷다.
글 쓴 이 旲 熀 高 達 五
10월 22일 묘시(卯時) 초(初)에 일어나니, 금성(金星)이 동남방(東南方)에 찬란하고 서남방(西南方)에는 삼태성(三台星)이 또렷 하도다! 간단히 조반(朝飯)을 들고는 이 것 저 것 챙겨서 대문을 나서니 기분이 상쾌합니다 그려!
9월에는 벌초(伐草)가 겹쳐 두 달 여만에 동참하니 오랜 지기(知己)님들의 반가움이 더욱 큼니다. ‘동명휴게소’에서 준비한 조식(朝食)을 마치고 차는 목적지를 향해 신나게 달리는데, 차내는 최회장님의 인사말씀과 조병하 산대장님의 “산행개념도(山行槪念圖)” 설명이 진행됩니다.
이것도 나이라고 봄 4월에 다리가 불편한 관계로 주어진 소임(산대장)을 다 하지 못하고, 조산대장님께 바톤을 넘겨 드려서 못내 송구하고 부끄러웠었는데... 너무 잘 해 주셔서 그저 감사 감사 할 뿐입니다.
차는 미끄러지 듯 내달아~ 안동을 지나 영주 부근에 이르니 울긋 불긋 단풍의 기운이 더욱 선명하다. 들녘에는 오곡백과(五穀百果)들이 누렇게 물들어 황금물결로 넘실대고 머~언 산천에는 오색단풍으로 물들어 내리시니 풍요로움이 넘쳐남니다.
다시 봉화읍(奉化邑)을 거쳐 소천면(小川面)으로 나아가니 산색(山色)은 붉음으로 물들어 단풍이 완연하고 도로는 구~불 구~불 그야말로 구절양장(九折羊腸)이로다! 춘양면(春陽面) 부근을 지날 때는 오래전(1978년)에 이 곳에서 ‘동원예비군훈련(4박5일)’을 받았던 기억이 어제런 듯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시간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드니... 과연 그러합니다! 옛 성현의 말씀에 “역천겁이불고(歷千劫而不古)(천겁을 지나도 옛날이 아니요) 긍만세이장금(亘萬歲以長今)(만세를 뻗쳐도 항상 오늘이라)”드니... 삶의 연륜이 더해갈수록 지극히 마음에 와 닿습니다.
출발깃점인 분천리(汾川里) ‘회룡천(回龍川)휴게소’ 부근에 도착하니 시계는 거의 11시가 다 되어간다. 조산대장님의 구호에 맞춰 간단히 체조로 몸을 푼뒤 단체로 기념촬영을 마치고 일렬로 진행하니 선두와 후미가 어찌나 긴지 도시 끝간데를 모르겠습니다.
차례 차례로 열 지어서 ‘회룡천 징검다리’를 건너는 모습들을 디카에 담으면서 뒤따라 건너니 거대한 사각돌들을 다듬어서 징검다리를 놓았는데... 충북 진천의 “농다리”에 비하면 운치가 많이도 떨어집니다.
‘산악회(山岳會)하면 의례(儀禮)히 등산만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요즈음 들어서 많이도 바뀌고 있습니다 그려! ‘지자제(地自制)’ 이후 전국의 이름난 명소(名所)를 중심으로 많은 산책로, 또는 올래길, 탐방로 등을 어찌나 아름답게 꾸며 놓았는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물 따라 바람 따라 천변(川邊)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남산님들에게 기념촬영도 해 드리면서 걷는 재미가 참으로 쏠~ 쏠~ 합니다. 불가(佛家)에서 한 철 안거수행(安倨修行)을 마치고 구름 따라 바람 따라 “운수행각(雲水行脚)”을 하신다 드니... 바로 이런 기분인가 여겨집니다.
그럭저럭 구암사(龜岩寺) 부근에 도착해서는 거대한 암벽이 탐방로 바로 옆에 있어 사진배경으로는 멋들어진데, 바로 그 옆에다 거미줄(전깃줄)에 감긴 듯 전봇대가 세워져 있어 영~ 기분을 그러침니다 그려! 이왕이면 조금만 비켜서 세웠드라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텐데...
구암사 부터는 산길을 오르는데... 산문 밖에서 바라보니 근래에 창건됀 절이라 고색어린 멋은 없으며, 그 규모도 왜소하고 도량(道場)내에는 전각의 수도 단촐하다. 다만 인적이 드문 곳이라 수행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곳이라 여겨집니다.
산모롱이를 돌아 돌아 얼마를 오르니... 나지막한 “바람재”가 낯선 이방객을 반갑게 맞아 주십니다. 선채로 잠시 쉬다가 원곡마을쪽으로 나려가니 농로(農路) 옆으로 단풍나무들을 많이도 심어 놓아서 울긋 불긋 보는 눈이 다 시립니다!
연하여 좌우 산 기슭에는 전원주택들이 여러채 보이고 어떤 집은 잔디밭에 ‘고인돌’ 형식의 돌탑을 쌓은 곳도 보인다. 이 깊은 산골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촌락(村落)을 보면 사람이 못살 곳은 없는가 봅니다.
‘원곡마을’을 거쳐 양원교(兩元橋)를 건너니 좌 우측 깎아지른 절벽위에는 6각정자가 하늘에 닿아있고, 그 옆으로 성처럼 쌓은 돌축대 위에 전원주택들이 지어져 있는데... 거의 별장수준이다.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바로 여기메든가! 양원교 동편으로는 지척(咫尺)의 거리에 다리기둥만 서너개가 서 있는데... 저것도 일제시대의 잔유물(殘遺物)인가? 용도가 없다면 철거되는 것이 좋으리라!
다시 언덕을 올라 양원역(兩元驛)에 도착하니 “낙동강 비경길”에 탐방(探訪)을 오신 산악회가 생각보다 엄청나다. 플래카드(placard)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양원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혀있다.
그렇습니다. 역(驛)이라기 보다는 간이정류장에 가깝고, 역사(驛舍)도 한켠에 조그마한 판자집으로 지어져 있어 되려 앙증스럽기까지 합니다. 연하여 낙동강 비경길의 인기에 편승하여 천막이 대여섯개나 세워져 있어 역사(驛舍)는 있는지 없는지...
천막내에는 대개 지역 농산물들을 전시판매하고 있으며, 또 간식거리로 컵라면, 옥수수, 구운계란, 어묵, 우동 등을 팔고 있다. 몇 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도 해 드리면서 10여 분을 쉬다가 다시 승부역(承富驛)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이제부터는 태백시에서 흘러내리는 낙동강을 거슬러 오름니다. 회룡천의 시냇물은 원곡마을 인근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하여 봉화를 거쳐 안동댐으로 유입되고 있으니... 천갈래 만갈래의 시냇물이 모여서 장강(낙동강)이 되는 것이리라!
강변(江邊)을 따라 울퉁 불퉁 자갈돌을 밟으면서 10여 분을 나아가니 작은 솔밭이 나오는데... 벼랑 끝에 기찻길을 내면서 동강난 동산으로 짐작이 됨니다. 여기 저기 그늘진 솔밭에는 점심을 드시는 탐방객들이 많기도 합니다 그려!
우리 남산님들도 솔밭을 지나 비탈진 언덕 아래 적당히 평평한 곳에 모여앉아 준비해 온 도시락을 맛나게 드심니다. 우측으로는 은빛 찬란하게 흐르는 시냇물과 사방으로 둘러싸인 가을산의 풍광들을 눈요기로 함께 드시니... 더는 바랠것이 없습니다.
오후 날씨는 흐렸다 개였다, 또 가끔은 가랑비도 뿌려서 우의를 입었다 벗었다, 걷기도 바쁘고 탐승(探勝)도 바쁜데... 조물의 시기인가?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광들을 디카에 다 담으려고 해도 기술의 한계인지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쉬운 발걸음으로 부지런히 나아가는데 오늘도 황까페지기님과 김해진님은 아름다운 풍광들을 사진 찍기에 분주하시고, 필자에게도 김영구님의 배려로 한판 찍습니다. 고사(故事)에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드니... 강변의 경치는 갈수록 수려(秀麗)하고 빼어나서 모두들 감탄에 감탄을 연발합니다!
아울러 가끔씩 아주 드물게 기적을 울리면서 벼랑끝위를 달리는 기차는 전원적인 풍광에 운치를 더 해 주며, 뚫어 놓은 터널로 빠져 나오는 철마(鐵馬)를 보니 마치 동화속에 한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옥(玉)에 티라고나 할까! 딱딱한 콩크리트 인공터널과 거칠은 옹벽은 아름다운 대자연에 작은 흠집을 내고 있어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쉬~엄 쉬~엄, 도란 도란, 유머스런 얘기들도 나누고 들으면서... 얼마를 걸었을까? “태극물길 전망대”에 이르니 주위의 풍광들은 참으로 빼어나서 오늘 코스의 ‘하일라이트(high-light)'라 여겨집니다.
모두들 이야! 이야! 하면서... 너도나도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습니다. 노장 서부장님(81)을 비롯해서 박태옥님, 금발례님, 김두열님, 박명옥님, 윤총무님, 정미경님, 정일영님 등 등 아~휴! 끝이 없습니다 그려!
벼랑끝 절벽에는 아슬 아슬하게 철책다리를 건설하여 탐방객들에게 한껏 스릴(thrill)을 느낄 수 있게 시설해 놓았으며, 출렁다리를 건널 때는 짓-궂게도 몇 몇 회원님들이 심하게 흔들어대서 후미의 여성회원님들은 아우성을 침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자연의 품속에 동화되면 모두가 동심(童心)이라!
흐르는 대하(大河)를 바라보노라면 세월의 흐름도, 거북이도, 두꺼비도 함께 보입니다. 이만큼 지나와서 되돌아보니 전망대(展望臺)의 지세(地勢)가 역시 산태극(山太極) 물태극(水太極)이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쉬엄 쉬엄 탐승하면서 30여 분을 더 걸어 승부역(承富驛)에 도착하니, 기차를 타기위해 기다리는 산행객들이 온 골짜기에 빽~빽합니다. 아직도 승차시간 까지는 1시간여 정도 여유가 있어서 몇 몇 회원님들과 이곳 저곳을 둘러봅니다.
‘승부역’은 워낙 깊은 협곡(峽谷)인데다, 농사지을 땅도 없어서 주거(住居)는 할 수가 없는 곳이라! 그래서인지 이 곳의 슬로건이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이다. 역내에 거대한 돌비석에는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고 새겨져 있으며, 오늘날은 산림휴양지로 가꾸어서 낙동강 비경길과 더불어 새로운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아울러 태백시에서 나는 석탄이나 금광 등과 봉화군 석포면의 금광제련소에서 생산되는 광물들을 수송하는데 한몫을 하는 곳이니 수송의 동맥이라 자찬(自讚)할 만 합니다. 또 소광장 옆에는 ‘승부역 세평하늘 체험장’이 있어 노장(서부장)님께서 직접 누워 시연(試演)을 하시니... 크게 한번 웃고 지나갑니다.
다시 ‘승부현수교’를 건너서 작은 언덕위에는 조그마한 체험장이 설치되어 있는데, 육각정자를 비롯하여 한국의 호랑이상, 눈축제의 상징인 얼음집, 작은 전망대, 휴양림 등 볼거리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30여분을 정자에서 머무르다 한기(寒氣)가 느껴져서 소광장으로 되돌아오니 김두열님의 색소폰 소리가 정적의 승부역을 춤추게 합니다. 16시가 거의 다 되어 ‘동대구행 완행열차’를 타고 20여 분만에 분천역(汾川驛)에 도착하여 주위를 살펴보니 때 이른 ‘산타할아버지’가 분천역광장을 수 놓고 있습니다.
안내판에 “분천역 이야기”가 소개돼 있어 간단히 옮겨 봅니다. 과거 석탄산업이 활성할 때는 열차도, 상주인구도 지금의 열배가 넘었었는데, 그 산업이 쇠락(衰落)한 이후로 차츰 사람들이 떠나고 분천역도 무인역(無人驛)이 될 뻔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던 1991년 어느 도인이 역앞에 호랑이를 닮은 산을 보고 “저 산이 무서워 사람들이 오지 않으니 저것을 깎아 버리면 이곳에 천호가 들어설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채석공장(採石工場)이 들어서 자갈을 채취하여 호산(虎山)모양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2013년에는 V-Train과 O-Train이 개통되었고, 2014년 12월 20일에는 산타열차가 생겨 나면서 불과 50여일 만에 10만 명이넘는 사람들이 다녀갔으며, 이제는 전국적으로 알려져서 이름난 명소(名所)가 되었다 한다.
재미난 얘기들을 상기하면서 주차장으로 나려오니 역광장 주변에는 많은 상가들이 도열해 있으며, 아직 춥지도 않은데 “꼬마산타아제야”는 벌써 코가 빨갛게 익어있다. 그 옆으로 거대한 ‘네델란드 풍차’가 ‘대한민국 봉화군 분천역’에서 ‘돌지않는 풍차’가 되어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낙동강은 태백시 매봉산에서 발원하여 천리를 휘돌아 흐르는데
봉화 안동 상주 대구 창녕 삼랑진을 거쳐 부산을 어루만지시니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정기가 녹아들어 인걸들의 생명수가 되었다네
아~ 산천은 의구(依舊)한데 인걸(人傑)은 간데없으니
조국의 산천은 갈수록 그리웁고 마음에 찬란(燦爛)하구나!
단기 4350년(서기 2017년) 10월 22일
경북 봉화군 소천면 “낙동강 비경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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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산님들 그간 강녕하신지요?
이사준비 관계로 원고를 쓰다 말다 쓰다 말다를 반복하여 문맥이 매끄럽지 못하고,
올해는 바쁘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글을 올리니 필력이 어찌나 둔한지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이점 회원님들께서 널리 널리 이해를 해 주시옵고 부족한 점들에 대해서 많은 질정을 바라옵니다.
아울러 산행당일 동참하신 모든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리오며,
진행에 수고 많으셨던 최회장님을 비롯하여 모든 임원님들께도 감사 감사를 드림니다.
연하여 황까페지기님과 김해진선생님의 사진자료를 이용하였슴에 이해와 깊은 감사를 드리옵니다.
모든님들 11월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소원성취 하시길 바랍니다.
오랜만에 산행후기를 접하다보니 감개무량합니다 . 후일 남산 산행역사의 많은 참고가 될것같슴니다.
긴 장문의 글을 쓰시느라 많은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산행자료에 도움을 주신 김해진선배님 황고문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ㆍ
늘 강녕하시고 고고문님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림니다.
벽송회장님께서 다녀 가셨군요.
늘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심에 감사드리며,
부족한 장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 감사드리옵니다.
항상 강녕하시고 가내 만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