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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가톨릭어버이성경학교 원문보기 글쓴이: 해오름
교회론 25. 선교와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
1. 개요
2005년 통계청 주관 '인구주택총조사'에서 10년 동안 종교별 신자증감결과가 나왔는데,
천주교는 74%증가, 불교는 18%증가인데 비해 개신교는 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개신교에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렇게 선교에 대해 전력을 다하는 개신교이니 이러한 결과가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종교에 입교하는 데는 교리지식보다는 그 종교에 대한 호감이 첫 번째로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 중에 텔레비전이나 주변사람들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종교에 대해 접하면서 호감이나 반감을 갖게 됩니다.
호감을 가진 사람은 어느 기회가 되면 입교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선교해도 반감을 가지면 입교를 거절할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전략의 첫 번째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2. 선교증가요소
서울대 종교학과의 김종서교수는 한국에서 천주교증가의 가장 결정적 원인으로 5가지를 들었습니다:
첫째, 조직력과 결속력
둘째, 청렴성
셋째, 과거 군사정권시기의 정의와 인권운동 참여
넷째, 조상제사에 대한 유연한 입장
다섯째, 다른 종교에 대한 열린 입장.
1) 천주교의 결속력
천주교 기본조직은 교구인데 교구에는 교구장주교가 있습니다.
주교들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를 구성하고 춘계와 추계정기총회를 통해 교회정책을 공동으로 논의하고 결정하고 실천합니다.
주교회의 산하에는 다양한 위원회들이 있어서 교회정책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천주교는 교구별로 움직입니다. 신부들은 주교의 협력자로 거의 모든 신부는 교구에 소속됩니다.
수도회의 신부들도 있지만 교구 내에서 활동할 때에는 교구장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각 교구에는 교구청이 있고, 교구청은 여러 부서로 나뉘어 교구의 정책을 지원합니다.
예를 들면 대구대교구는 대구, 김천, 구미, 경주, 포항지역을 관할하고 현재 153개의 본당이 있습니다.
교구청의 부서는 본당과 기관의 활동을 지원합니다.
교구의 교납금제도도 천주교의 결속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53개의 본당은 50여개의 등급으로 나누어 수입금의 5%-60%를 교납금으로 교구에 납부합니다.
교납금은 주로 교구운영과 성당부지구입에 쓰입니다.
신자들은 이사하면 전에 다니던 성당에 가지 않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에 다닙니다.
그러다보니 천주교신자들은 모든 성당이 우리 성당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고 이것이 결속력의 바탕이 됩니다.
2) 천주교의 청렴성
천주교에서는 신부와 수도자들의 청빈한 생활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교구장은 신부들의 청빈한 생활에 대해 늘 관찰하고 부족한 점이 있으면 지적하고 문제가 있으면 일정한 조치를 합니다.
신부들은 교구가 생활비와 주거지, 노후생활비, 질병치료 등을 책임지기 때문에
재산을 모으는 일에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수도자들은 개인재산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천주교는 모든 수입과 지출을 투명하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본당에서의 교무금이나 헌금, 또 다른 수입은 모두 컴퓨터에 입력되고 매일 본당신부가 결재를 합니다.
본당의 모든 수입과 지출은 매달 교구청에 보고되고, 일 년 모든 재정을 결산해서 교구청에 보고하고 주보에 공지합니다.
본당에서의 지출은 관련부서의 평신도들이 서명하고 본당신부가 서명해야 돈이 지출됩니다.
가끔씩 신부들 가운데서도 돈 문제로 신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습니다.
또 신부들은 골프와 같은 운동을 과하게 하거나 과도한 음주 같은 것도 피해야 하겠지요.
돈이라는 것은 요긴한 곳에 꼭 맞게 쓰일 때 그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신부들이 청빈의 정신을 잊지 않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3) 천주교의 정의와 인권활동
군사정권시절 천주교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의와 인권활동도 천주교신자증가에 좋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군사정권시절 곳곳에서 억압받고 부당하게 인간의 기본권이 유린되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정보기관의 서슬이 시퍼럴 때 그 누구도 저항하거나 약자들의 권리를 대변해주기 어려웠습니다.
이럴 때 신부와 수도자들이 탄압을 무릅쓰고 구약시대 예언자처럼 나서서 이들의 권리를 대변해주었습니다.
신부와 수도자들 가운데 더러는 숱한 박해를 받거나 감옥에 가기도 하였지요.
이렇게 자신의 안위에 연연해하지 않고 정의의 소신에 따라 약자들을 보호하고 도와주었던 모든 일들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천주교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어 선교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인권이나 환경문제에 대해 정의평화구현 전국사제단의 활약이 여전합니다.
사람들은 더러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활동에 못마땅해 하지만 정의와 평화를 위한 그분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결코 가볍게 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약자들의 눈물을 누가 닦아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다면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나 농민, 외국인노동자와 같은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겠습니까...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무엇하러 이 많은 제물들을 나에게 바치느냐?
나 이제 양의 번제물에는 물렸고, 살진 짐승의 기름기에는 지쳤다.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아라.
이제 제물 타는 냄새는 구역질이 난다. 아무리 빌어보아라.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억눌린 자를 풀어주고, 고아의 인권을 찾아주며, 과부를 두둔해주어라”(이사 1,11-17).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 때가 지금이다”(루카 4,18-19).
과연 예수님은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하셨고, 병자들, 고통 받는 사람들...
모두가 진정한 해방을 얻을 수 있게 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 ‘인간에 대한 연민’이 예수마음이었습니다.
4) 조상제사와 장례예식에 대한 유연한 태도
1742년 교황 베네딕도 14세는 유교의 조상제사를 금지시켰는데 이것이 중국에서 천주교박해의 빌미가 되었고,
조선에서도 1791년 조상제사를 거부한 진산사건이 천주교박해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1939년이 되어서야 교황 비오 11세께서 유교식 조상제사를 허용하게 되었지만...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천주교발전의 적절한 시점을 놓쳤고 뒤늦은 문서상의 동의로 그 의미가 퇴색된 것 같습니다.
제사도 모두 허용되는 것은 아니고 미신적인 요소는 금지됩니다.
예를 들어 돌아가신 분의 이름이 적힌 위패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향을 피우고 절하는 것은 허용됩니다.
그렇지만 위패에 신위라는 말은 안 쓰는 것이 좋습니다.
조상님이 귀신이 아니고, 또 제사상에 오셔서 음식을 드시고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상님은 천국에 계십니다. 또한 천지신명께 고하는 축문, 조상 혼이 제물을 받도록 병풍을 가리고 문밖에 나가는 합문,
초상집에서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를 때 저승에서 온 사자를 먹인다는 사자밥을 차리는 것은
모두 미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금지됩니다.
천주교의 장례문화는 선교에 큰 힘이 됩니다. 신자들이 밤낮으로 빈소에서 연도를 드리고
대가 없이 봉사하고 성당에서 깨끗하게 드리는 장례를 보고 감동해서 입교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5) 타 종교에 대한 열린 태도
천주교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에는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었는데,
공의회 이후 정교회나 개신교를 갈라진 형제,
갈라진 교회라고 부르면서 좋게 대하려는 태도도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 있습니다.
개신교가 타종교를 무시하고 더러는 지옥 간다고 욕하는데 비해,
천주교의 타종교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는 사람들에게 천주교에 대한 인식을 좋게 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천주교도 천주교에서 세례 받지 않으면 모두 지옥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순신장군도 지옥에 갔겠습니까? 세종대왕이나 황희정승도 지옥에 갔겠습니까...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양심에 따라 선하게 산다면 구원될 수 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하지만 천주교는 구원의 정도입니다. 다른 길은 예외적인 길인 것이지요.
6) 기타 사회복지활동 등
그 밖에도 천주교가 펼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활동도
천주교에 대한 호감과 선교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충북 음성의 '꽃동네'는 종교를 초월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상징적인 사회복지시설이 되었습니다.
일부 악덕 사회복지시설 원장이 국가의 지원금을 빼돌려 배불리다가 구속되는 일이
가난한 사람들을 두 번 아프게 하는 결과가 되는데 비해,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은 그런 문제에 대해 투명하기에
천주교시설은 사람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점도 천주교의 장점이겠지요.
오늘날 선교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개신교는 우리나라에서의 선교가 한계점에 달했다고 판단하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천주교도 결코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복음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것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건강하고 힘이 되는지를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정신적으로 병들고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선교라는 것이 천주교를 알려 내가 덕을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도록 해주는 것이지요.
그 힘은 진정한 힘... 약하게 보이지만, 세상 그 어떤 힘보다도 강한 힘... 죽음도 두렵지 않는 힘인 것이지요.
- 대구대교구 전광진 엘마노신부님 -